#별별인터뷰 #중년여성 #엄마 #또_다시_만들어_갈_나의가족

2019.10.18 @재미난카페

노오란 꽃과 함께한 인터뷰:)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폴리

저는 이 동네에서 나서 자라서, 이제 막 40대를 맞이한, 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폴리입니다. 저는 작곡하고 음악감독 일을 하고 있어요.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겨서 기웃거리고 있다가, 동네에 마음을 함께할 수 있는 분들이 계셔서 여성주의 문을 하고 있고요. 갑자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하하)

써니

저는 써니입니다. 지방 살다가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고, 결혼하면서 동네로 왔어요. 원래는 다니던 회사가 종로구 가회동이었는데 너무 비싸서 대학로 왔다가 비싸서 성신여대 알아보다가 밀려밀려 미아동쯤에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전세를 얻어서 들어갔어요. 거기서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지금은 중학생 아이 한 명 초등학생 아이 한 명 있고요. 지역에서 여성들하고 <여성주의 문>을 하고 있습니다.

잠만보

저는 30대 중후반이 된 잠만보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9년 동안 아르바이트만 했었어요. 그래서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아르바이트하고 어디 소속되는데 없이 히키코모리처럼 아르바이트 좀 하면서 집에 은둔생활 하다가, 20대 후반에 아기 가지면서 남편 집으로 이사 왔어요. 남편 만나고, 아기 낳고 시댁에 들어가면서 시댁에서 5년 정도 살고요, 그러다 분가하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여기 강북구로 이사 오게 되었어요. 그렇게 벌써 30대 중반이 되었더라고요. 

마을에 와서 서울시 뉴딜 일자리 지원해서 처음으로 취업을 하게 됐어요. 청년이라고(하하) 그동안 정체성이 없었었는데 ‘아 청년이었구나’ 이런 느낌을 새로 받으면서 교육도 받고, 무엇보다 마을에서 마을공동체 생활하면서 네트워크라고 할까요, 사람들을 알게 되고 소속하게 되는 경험을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성주의 문>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안내문

<여성주의 문>은 어떤 곳인가요?

써니

지역에서는 대략 2014년 때부터 여성주의 관련된, 페미니즘 관련된 책 읽기부터 시작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지역에 여성 활동가들이 많이 있는데, 여성 활동가들 상담해주고, 만남을 지원해주는 여성 건강사업이 있었어요. 그 계기로 아이도 키우고 지역 활동도 지치고 하는데 만나서 밥먹으면서 서로 알아가고 지역활동 하는 것을 넘어서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2016년도에 서울시에서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젠더 거버넌스’라는 협치 사업을 시작했어요. 

여성 활동가들, 책 모임 활동가들 중 몇몇이 젠더 거버넌스로 지역 정책을 성 평등하게 하는 모니터링을 했었는데 6-7월 짧게 여름에 하는 거였어요. 한 번 하고 그냥 헤어지기 아쉽잖아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만나서 재미있는 것들을 해보자고 해서 페미니즘 관련한 영화를 봤었어요. 그러다가 2017년에 서울시 협치 사업으로 젠더 거버넌스를 25개 자치구에서 시행되면서 지원을 해준다고 참여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모임 이름도 없었어요.(하하) 그냥 한 달에 한 번 영화를 보는 거지 이름을 붙인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참여한다고 하니까 이름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단순하게 ‘강북의 여성주의 모임이다’ 하고 냈었어요. 그때 처음 지원받아서 페미니즘 강좌를 열게 되고, 그 때 지역에서도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알게 됐고, 그래서 모니터링도 하게 되고, 그쯤에 동북권에 단체 네트워크도 하고 활동이 굉장히 풍부해졌어요. 토론회도 하고 캠페인도 하고 여성 영화제도 열고, 큰 단체도 아닌데 활발해져서 우리도 이름을 정하자 해서, 연말에 모여가지고 같이 정한 게 ‘문’이라는 이름이에요. 

한문으로 문을 열다의 문 문, 세상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다 물을 문, 달 moon. 현재는 확장된 것들이 계속 이어져서 현재는 책 읽기 모임, 한 달에 한 번 정기 밥상 모임, 페미니즘 강좌, 토론회, 정책분석, 동북권 단체들과 캠페인 하고 있어요.

제가 문을 꼭 인터뷰하고 싶었던 이유는, ‘가족’이라는 단어에 중년 여성이 빠질 수 있을까? 중년 여성의 이야기는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써니

오늘 위기의 가정들이 안 왔어요, 와야 하는데. (하하)

가볍게 OX퀴즈를 해볼게요. 그 전에, 당신의 가족은 몇 명인가요?

써니

4명

잠만보

5명

폴리

4명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억해주시고, OX퀴즈 시작합니다!

질문 1번. 10억과 가족을 맞바꿀 수 있는가? (단, 10억을 받으면 가족들의 기억에선 내가 사라지는데, 내 기억엔 가족들이 남아있어요.)

잠만보

[X] 저는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이 두려워요. 사회에서 내가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나는 잊혀있고 없는 존재 같다고 느껴지는 게 싫어서 아이를 가지고 싶었고,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만든 가족이라서 제 존재가 없어지고 10억을 받는다 해도 별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에요.

써니

[X] 저는 이렇게 들었어요.(세모) 솔직하게. 현재의 기분 상태라면 가족과 남편이 분리되는 질문이라면 O. 왜냐하면 기억을 못 하잖아요, 기억을 못 하고 이 사람이 나를 기억 못 하고. 내가 죄책감이 있을 거라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있으니까, 아이들은 돈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물론 너무 괴로워요 요즘. 아이가 중학생이라. 

폴리

[X] 저도 원래는 되게 ‘너는 너, 나는 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성향인데, 자식을 낳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을 자식을 낳고 나서 사람과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겠구나, 이건 뭘 줘도 바꿀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요즘 예쁘거든요. 9살 7살인데, 너무 예쁘고, 소중한 존재라서 ‘내가 이 아이들을 낳으려고 세상에 나왔나?’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한 짓 중에 쓰레기만 만들고 가는 세상에 내가 너희들을 낳으려고 세상에 나왔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남자친구 집에서 주 4일을 산다. 함께 사는 남자친구, 가족인가요?

잠만보

[세모] 이유는 4일이라는 것이 명확한 것 같아요. 이 사람을 정말로 가족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해보면서 같이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폴리

[O]저는  가족이 절대적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남자친구도 가족이 될 수 있고 헤어지면 가족이 아니고. 그렇게 그 순간은 좋으니까 같이 사는 거고 마음을 쓰는 거고 아프면 걱정되고, 시간과 돈과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니까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써니

[O] 주 4일을 왜 사는지 모르겠지만(하하) 주 3일은 어디 가서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주 4일을 산다고 했을 때 남자친구 집이면 공간적 셰어가 아니라 그 정도 살면 성관계 이런 것도 하는 관계일 것 같고, 그런 친밀함 속에 있을 것 같아서 가족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렇게  OX퀴즈가 끝이 났습니다!(짝짝짝) 가족이 조금 막연했다면, 이 OX퀴즈로 어디까지 내 가족이고, 어디까지 내 가족이 아닌지 구분이 조금 되셨을 것 같아요. 

원가족과 분리되어 현재의 가족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폴리

저는 일단 대세를 따르는 편이었어서 결혼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내가 되게 좋아하던 남자와 때에 맞춰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고, 아기도 생기고 해서 같이 살게되었어요.

써니

저는 이 사람을 만나고, 원 가족에 대한 부담이 엄청 컸었어요. 아빠가 약간 한량이고 , 엄마는 너무 고생하고. 어릴 때부터 아빠에 대한 미움,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이 있었죠. 그래서 서울로 대학을 오고 어린 나이에 뭔가 가족을 내가 부양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이 어린 마음에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까지는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이 사람, 현재의 남편을 만나서 좋다고 생각한 기억이 선명해서 잊을 수 없는 게, 이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하고 이러면 원 가족에 대한 부담을 잊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부담을 도망치듯이 결혼했어요. 어릴 때부터 나와 살아서 결혼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였던 것은 나의 공간을 갖는 거였어요. 그 전까지는 하숙을 하거나 친척 집에 사는 식으로 지냈거든요. 나의 공간이나 집에 대한 것도 컸던 것 같아요. 저는 이 새로운 가족을 선택한 이유는 원 가족에서 오는 부담, 그게 제일 컸어요. 물론 그때는 사랑도 했겠지만,(하하)

잠만보

써니는 가족을 책임져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면, 저는 제가 부모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그런 부담이 있었어요. 청소년 때부터 경제적인 imf 겪고, 경제적인 문제로 와해됐던 것 같아요. 부모가 ‘내가 자식 때문에 산다, 네가 있어서 산다’ 이런 게 아니라 ‘아휴, 내가 저것들 때문에 죽지 못해 산다’ 이런 상황이였기 때문에 저는 제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웠어요. 가족이 있어서 힘이 나는 게 아니라 가족이 있어서 힘이 더 빠지는 상황이랄까요, 그래서 원 가족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내가 없어져주는 거면 참 좋을 텐데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고. 주변에 가까운 친밀한 사람도 없으니까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외롭고, 혼자는 못 살 것 같다는 두려움도 되게 컸었어요. 그래서 혼자보다는 누군가랑 같이 살게 되면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그렇고 훨씬 안정적일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그걸 원하는 사람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자발적으로 구성한다면, 지금 있는 공동체보다는 조금 더 나은 공동체가 될 것 같아서 떨어져 나왔어요.

공동체가 가족이 될 수 있나요?

잠만보

모든 공동체가 가족이 될 필요는 없지만, 가족은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폴리

가족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는 공동체도 큰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공동체는 어떤 작은 단위의 가족보다 똘똘 뭉쳐서 하나의 뜻을 온 공동체가 실천하는 공동체를 있고 봤거든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는 가족이겠구나, 어떤 하나의 신앙이든 생활방식이든 공동체로 살아간다면 가족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원 가족과 현재의 가족. 가장 큰 차이점은?

폴리

내 공간이 생긴 것? 우리 엄마의 기획에 따라 만들어진 곳에 살다가 지금은 청소 안 하고 싶을 때 안 하고 있어도 되는 것이 큰 차이죠. 원래 제가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내 공간이라고 하니까 페인트를 희한한 색으로 해보고 싶은 거예요. 하고 나니까 너무 좋고 뿌듯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되게 좋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내 공간을 내 계획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원 가족과 떨어져 나오면서 제일 좋았던 점이에요. 원 가족일 땐 결정을 어른들이 내리고 했었을 텐데 지금은 저의 계획대로 내가 결정을 내리니까요.

써니

구성원이 전혀 다르다는 거랑, 일단 공간이 가지고 싶었고. 그냥 원 가족 때는 상당히 엄마에게 전적이지만 기생해서 살았다면, 이 현재의 가족은 오롯이 어쨌든 나와 나의 배우자나 이 둘의 노동으로 먹든, 입든, 뭐든 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가족의 큰 힘든 부분들이고, 경제적인 것이든 일상의 노동이든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되는 부분들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새로운 가족을 꾸리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가족을 새로 꾸릴 것인가요?

써니

현재를 다 알고? 이 기억을 갖고? 안 해요.(하하) 폴리랑은 다를 것 같은데, 저는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타고난 모성애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내가 낳았으니까 책임감으로 기르고 있고, 물론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복장 터질 때도있거든요. 좋은 건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성장했어요. 하나의 생명을 키운다는 게 나를 성찰하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성장시켰다는 의미가 분명히 있는데, 이 과정은 너무 고통스러웠거든요. 이걸 다 안다면 안 할 것 같아요. 아이만 있다면 고민을 하겠지만 남편도 있잖아요? 남편의 가족들도 있고. 생각해보니까 이만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을 생각해보면 선택을 안할 것 같아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원 가족하고 살지만 지금과 같은 가족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독립해서 살든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아빠와의 관계는 안 좋았었기 때문에. 물론 나이가 들고 그러려니 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같이 살거나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잠만보

제일 큰 차이점은 주도성, 주도권, 권한이 일단 너무 많아졌고, 너무 많아진 만큼 책임도 많이 커졌죠. 그게 제일 큰 차이점이에요. 그리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는 어쨌든 가족이 새로운 가족? 내가 가족을 꾸리고 싶어서 선택한 거니까요. 저는 여전히 가족을 굉장히 필요로 할 것 같아요. 다만, 다른 가족을 꾸려도 괜찮다는 생각은 들어요. 다양한 모델이 조금 더 많았다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할 것 같아요 기꺼이. 혈연이 가족의 중심이 되는 것과 어린아이와 가족이 된다는 건 정말 굉장히 정말 다른 경험이거든요, 상호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고 관계가 훨씬 더 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랑으로 충분히 보호하고 긴밀해지는 경험이 꼭 자기 자식 뿐만 아니라, 어떤 어린아이와 그렇게 관계를 맺어도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입양을 해서 마음이 맞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이 가족을 꾸려서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폴리

저는 과거에 결혼의 갈림길에 큰 고민이 있었어요. ‘파리로 취직을 하느냐, 이 남자와 결혼해서 사느냐’ 생각해보면 지금도 아까운 게 있어요. 그 당시엔 이 남자와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되게 좋은 남편인데, 결혼하면 수반되어 오는 것들을 몰랐어요. 시월드도 몰랐고, 출산과 육아가 이런 것이라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거예요. 알고 닥치는 거랑 모르고 닥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그냥 남편과 결혼 안 하고 파리로 가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까 잠만보가 말했던 것처럼 아이를 낳은 경험이 너무 특별한 거예요. 너무 특별하고, 걔랑 나눈 사랑도 너무 특별해서, 남편도 그때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결정요인은 아니고, 결혼을 안했다면 아이들을 못 봤겠구나, 다시 돌아가도 아이들을 선택할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하고 동거를 하는 식의 방법들도 있으니까 지금 사는 가족 구성원은 다시 만나고 싶을 것 같아요.

공유하고, 또 공유되어지는 책과 장난감

가족이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은 무엇인가요? 

써니

일단 혈연으로 연결된 원 가족의 경우에는 혈연이 있으니까 떨어져 살아도 가족으로 인식이 되는데, 따로 만나지는 가족은, 혈연이 아닌 경우에는 공간,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 제일 큰 것 같아요. 혈연이 아닌 다른 사람과 가족이라는 것까지 느낄 정도는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 정도 되면서 관계에 따라서 더하면 가족이 될 것 같아요.

잠만보

저는 공간보다는, 뭐랄까요. 소중한 어떤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엄청 즐거운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아까 ‘10억 주고 버릴 수 있는 건가요’라고 말했던 것처럼 잊고 싶지 않은 굉장히 소중하고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면 가족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대상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공유하잖아요. 만약에 내 다른 형제가 ‘나는 다 컸어, 나는 기억나지도 않고 중요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아’ 할 정도로 이렇게 멀어져있다면, 버렸다면, 공유가 안됐다면 썩 가족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남편 같은 경우도 아이를 통해 소중한 추억이나 기억을 공유할 수 있거든요, 그럴 때는 남편하고 가족이 되고, 아이도 나와의 어떠한 것들을 통해서 공유가 되고 하면 가족 구성원인데, 언제든지 공유하지 않겠다고 하면은 그때는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폴리

저는 물리적인 건데, 밥을 같이 먹는 행위가 생명을 나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밥을 먹고 밥을 같이 먹거나 챙겨주는 과정들이 가족의 기준이고, 잠만보가 말한 것처럼 기억을 같이 공유하는 것. 그 기억을 통해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 또 그것이 공유가 된다면 가족인 것 같아요. 그 기억이 지난 일이고 별로 소중하지 않다고 하면 가족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물리적인 공간과 정신적인 것이 함께 해야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두 분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느꼈어요.

내가 또 다시 만들어갈 나의 가족은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잠만보

저는 문에 먼저 계셨던 언니들께서 공동체 주택 지어서 같이 살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나중이야 애들은 자라서 자기의 가족을 만들어 갈 거고, ‘나는 내 가족을 만들겠습니다’ 하고 분리가 되겠죠? 그때가 올 것 같고, 남편과의 관계도 공동체 활동을 통해서 못 살았던 자기의 삶의 방향을 가고 싶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땐 서로 또 분리될 수 있을 것 같고요. 나도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구성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때는 활동이라든지, 삶을 살면서 가치관이 잘 맞으면서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가족을 삼아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폴리

저는 얼마 전 친구 얘기를 듣다가 친구 어머니가 아프셔서 같이 살게 된 거예요. 다시 돌아간 거죠, 어떻게 보면. 부모님 아프신 것, 그 생각을 안 할 수 없더라고요. 물론 의무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난 안 할 거야’ 부정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한 공간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내가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난 또 책임을 져야 할수도 있겠구나. ‘나중에 아이들 떠나고 우리 둘이-’ 이런 이상적인 생각도 들면서도 내가 놓지 못하는 연결되어 있는 가족을 책임져야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무겁게 하고 있어요.

써니

저도 이런 부분들이 있긴 한데, 아프시고 책임지는 상황이 짧았으면, 스쳐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그것보다 훨씬 부담스러운 건 남편이 아플까 하는 거예요.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독립할 때쯤 우리도 각자 독립된 선택을 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생각했을 때, 훨씬 더 나이가 들고 여성 노인이 됐을 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성일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여성과 같이 살고, 같이 늙어가고 싶고. 남성하고는 살 것 같진 않아요. 이미 늙어서 그런 생각이 안 들고, 그런 남성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요. 그렇게 서로를 돌보면서 따뜻하게 늙어갈 수 있는 여성을 못 찾는다면 혼자 늙는 게 차라리(하하)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저도 지금은 원 가족이랑 살고 있는데 앞으로 나의 가족이 어떻게 될까? 인터뷰하면서 저도 앞으로의 가족이 기대되고, 인터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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