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

01&91 저 · 북닻 출판

01과 91은 함께 살아요. 부부는 아니에요.
결혼 없이 1년간 함께 살아온 01(男), 91(女)이 전하는 솔직 담백한 ‘동거 일기’

– 독립출판물이었던 이 책을 e-book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이 글을 씁니다.

“책 제목으로 동거라는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았어요. 이 사회에서는 동거라는 말이 마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리거든요. 그 같은 편견들과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길 하는 바람이 들었죠. 또한 동거를 앞둔 커플에게 저희 커플이 동거한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방법들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책을 내게 됐습니다. (01)

“남녀가 함께하는 동거가 여성에게는 더 흠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해는 하지만 도리어 ‘여자가 손해야’라는 그 말 자체가 틀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저의 선택과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 (91)

이들이 말하는 ‘함께 산다는 것’은 “같이 밥을 해먹고, 청소도 하고, 책도 읽고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더 많은 순간을 ‘함께’하는 것. 함께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는 청소를 하고 너는 샤워를 하고, 네가 저녁을 차리면 나는 샤워를 하는 것.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나갈 때보다 설레는 것. 돌아오면 항상 네가 있는 곳. 기다리고 있으면 언제나 네가 돌아오는 곳” 이다.

  • 결혼과 출산이 가족의 기준인 시대가, 느리지만 조금씩 저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용기의 기록을 세상에 내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관심 있는 분들의 독서를 권장합니다!

#별별인터뷰 #외로움과_살아가는_방법 #아타

#처음

  • 이틀
    • ‘가족’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어. 다양한 가족들의 현재 모습,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업인데 평소 내가 아타랑 나누고 싶었던 이야길 나누려고 해.
    • <별일없이산다>에는 공식적인 첫 질문이 있어.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은 몇 명입니까?
  • 아타
    • 와, 이 질문 정말 좋으면서 힘드네. 이 질문을 받으니까 가족이라는 개념이 나한테 확장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면 옛날에 무조건 우리 구성원 5명이었는데 지금은 사실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나는 우리나라의 가족이 너무 폐쇄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고. 폐쇄적이면서 동시에 세습적이어서 나는 그걸 나름 거부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가족이라는 개념이 나한테 폭넓게 작용하는 것 같아. 부모들이 항상 얘기할 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결국엔 가족 찾는다 이러는데 그 말이 맞기도 한 것 같아. 내가 큰일을 겪으면서 가족이라는 개념의 사람이 더 늘었다는 생각은 했어. 그래서 나한테 가족의 명수는 솔직히 한… 딱 몇 명이다 말을 못 할 거 같고, 약 열 명 내외 정도-라고 나는 생각해. 그 안에는 이웃도 포함되고 친구도 포함돼. 나는 가족에 너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거야. 가족이라는 네이밍 안에.
  • 이틀
    • 그치. 우리나라의 가족이라는 개념이 너무 틀에 박혀있는 느낌이라.
  • 아타
    • 고마운 존재들이긴 한데. 나에게 유년 시절을 제공해주고, 내가 자랄 수 있게 계속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주신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하는 마음도 있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걸 빚진 마음으로 가져가서 가족이라고 계속 말하는 건- 나부터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 왜냐면 그렇게 말하면서 집착하려고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내가 싫은 게 그건데 그들한테 그걸 요구하면 내가 너무 모순적이기도 하고. 완벽하게 모순적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니지만.

#두사람

  • 이틀
    • 예전에 어려운 일이 있었을 때 내가 생각난다고 했었잖아. 나에 대한 기대나 집착도 있는 거야? (웃음)
  • 아타
    • 음.. 있지 않을까? (웃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면, 그래도 연락을 했을 때 나를 모른 척하지 않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 마음이 내포돼 있을 것 같아. 아무리 없다고 말한다 해도 사실 그건 좀 거짓말일 것 같고. 그 안에 어떤 지난 세월, 같이 쌓아왔던 우정에 대한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없을 순 없잖아. 근데 만약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못 얻어서 순간 실망한다고 해도 그때 그 사람을 ‘나쁜 사람’ 또는 ‘역시 (진정한) 친구는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 왜냐하면 반대로 생각했을 때 나도 안 되는 상황이 있을 때도 있겠고, 누구에게나 각자의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아.
  • 이틀
    • 알겠어. 나에 대한 집착은 크지 않은 걸로 생각할게. (웃음)
  • 아타
    • 너무 고마운 것들은 항상 있지. 꼭 그 때 그 자리에 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픽- 사라지는 건 아닌 거 같아.

#요가

  • 이틀
    • 나는 네가 요가 수업을 진행한 지 10주년이라는 걸 인스타에서 보고 깜짝 놀랐거든. 요가는 자취하면서 시작한 거야?
  • 아타
    • 아니, 자취보다 요가를 먼저 시작했고, 자취는 요가 시작하고 한 2년 정도 있다가. 그냥 독립해서 혼자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처음에 나온 거라 당시에 머릿속에 엘요가는 아예 없었어. 근데 밖에서 나와 혼자서 살아보니까 너무 힘든 거지. 챙길게 너무 많고, 밥 빨래해 주셨던 엄마 아빠가 없이 혼자 하려니 벅차고. 그러다 보니까 일이 조금 더 나한테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지점에서 나한테 편한 워크 타임이라고 해야 하나, 그 타임을 내가 스스로 결정하면 훨씬 편안하니까 엘요가를 하기로 결정한 거고. 솔직히 엘요가는 내가 하기 싫은 걸 절대로 안 하려고 세운 거야. 엘요가를 너무 하고 싶었다,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어. 하기 싫은 걸 절대 안 하고 싶었지.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조금 알게 됐고.
  • 이틀
    • 왜 요가를 시작하게 됐지? 그 얘기를 못 들은 것 같아.
  • 아타
    • 재활. 10대 때 허리 디스크가 좀 있었는데 그냥 방치해뒀었어. 20대 돼서 자꾸 무릎이랑 허리가 너무 아픈 거야. 앉아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계속 힘들어서 도저히 이대로 안 되겠다 싶었던 거지. 내가 항공학과를 나와서 시험을 보려면 구두를 신고 다리를 붙여야 하는데 골반이 틀어지니까 허벅지에 힘이 없어서 다리를 붙이는 게 너무 힘든 거야. 그래서 처음에는 교정을 하려고 정형외과 다니고 한의원에서 견인치료를 받고 그랬었어. 나을 듯 나을 듯 하는데 그 비용이 꽤 비싼 거지. 근데 그때는 21살 이랬으니까 아르바이트만으로는 그 돈이 감당이 안 되고, 또 그걸로 엄마 아빠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거든. 근데 누군가 나한테 스쳐 가는 말로 ‘요가가 허리랑 골반교정에 그렇게 좋대’ 그래서 시작을 한 거였지. 요가가 좋아서 혹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고, 죽지 않기 위해? 살고 싶어서. 너무 몸이 아프니까 생존 때문에 시작했던 거야. 그때는 요가 강사가 될 생각도 없었지. 재활만 잘 됐으면 좋겠다, 그 생각뿐이었어. 2년 반 정도 꾸준히 했었나. 
  • 이틀
    • 2년 반하고 어디 다녀오지 않았었나? 인도?
  • 아타
    • 자기계발 관련해서 무슨무슨 코스가 있었어. 그땐 돈 벌어서 다 그런데 썼어. 명상하고. 요가하고 몸이 많이 좋아지면서 내 내면을 보게 되니까 내가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게 비단 몸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겠더라고. 자연스럽게 명상이나 자기 마음 챙김 같은 거에 관심이 갔지. 인도를 간 건 아니고 인도에 있는 스승님한테 우연히 가르침을 받았는데 너무 좋은 거야. 안 그래도 그때 내가 불교 철학에 관심이 많았을 땐데 그분의 말이 잘 맞기도 하고. 요가랑 명상을 동시에 같이 시작했지. 같이 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그렇게 꾸준히 병행을 했고 그 결과 다행히 재활이 됐고.
    • 그 당시 요가선생님이 아직도 기억 나. 지금도 한번 뵙고 싶어. 그 선생님이 나한테 한번 슬쩍 얘기했지. 잘 안 빠지고 되게 열심히 나온다고.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어하더니 지금은 동작도 진짜 잘 나온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그 이야길 하시는 거야.

“나중에 관심 있으면 자격증 한 번 따봐요”

아타를 지켜본 선생님이 조심스레 건넨 이야기
  • 아타
    • 나는 막 손사레를 쳤어. 어우,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무슨… 막 이러면서 집에 와선 인터넷을 검색했지. (웃음) <요가 자격증을 따려면>.
    •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은 회사를 계속 다녔어. 근데 맨날 시흥에서 광화문까지 지하철 타고 오는 게 너무 힘든 거지. 정장 입는 것도 안 좋아하고. 다행히 옷을 편하게 입으라고 하는 회사이긴 했지만 그래도 은근 눈치 주거든. 운동화 신고 가면. 그런 거 때문에 너무 불편하고, 그것 때문에 다시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그건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딱히 방법이 없었어.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해서 답이 보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시점에 마침 신종플루에 걸린 거야, 내가. 그때 한동안 격리 됐었는데, 아직도 기억나. 진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러면서 ‘내가 만약에 여기서 살아서 나가면 회사 먼저 그만둔다.’ 그런 생각을 했지.
    • 어떤 한계치에 탁, 왔을 때 사람이 솔직해지더라, 진짜. 그러고 나서 그만뒀어. 한 3주 있다가 바로. 그만두면서 이미 등록한 지 몇 달 된 자격증반에 집중했지. 근데 내가 원래 운동을 했던 몸도 아니고 재활이 됐어도 유연한 건 아니어서 자격증 따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2배 정도 걸렸어. 무용과 친구들이랑 같이 시험 봤는데 완전 좌절. 그때 나는 다리도 안 찢어지고. 지금 생각해보면 요가가 다리 찢고 하는 그런 게 아닌데, 사람이니까 비교가 되는 거야. 그때 잠깐 고민했었지. 중단할까. 이 길을 가지 말까. 그래도 그때 계속 생각했어. 그래,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다, 하면서 책을 위안 삼았지.
    • 그리고 25살에 요가강사를 시작한 거야. 처음엔 알바였어. 오래 할 거란 생각도 없었어. 그냥 회사 안 가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수업할 수 있고, 그러고 돌아오면 산책도 하고 보러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시작한 거였지. 삶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였으니까 철학 수업 들으러 경복궁역까지 가고 그랬어. 모닝페이지라고. 
  • 이틀
    • 아침에 글 쓰는 거였나?
  • 아타
    • 응. 집에서 혼자 하는 100일 프로젝트. 중간에 사람들 만나서 피드백 주고 받고. 그것도 한 6개월 정도 했던 것 같아. 아침에 일기 쓰는 거니까 무의식이 나올 때가 많아서 솔직해지는 거야. 아, 난 이런 거 싫어하는 구나, 이런 거 좋아하는 구나, 아니면 난 이런 거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사실 그때 나는 이런 걸 되게 부끄러워 하는 구나. 그런 게 좋았어. 나에게 솔직해지는 거.
  • 이틀 
    • 아타는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 아니면 몸과 마음에 영향이 오는 것 같아서, 그런 면에서 요가가 잘 맞는 거 같기도 하고.
  • 아타
    • 거짓말이 많아서 그래. (웃음) 내 안에 정직이 쉽지 않아.
  • 이틀
    • 요가를 시작한 계기가 맨 처음에는 몸의 재활 목적, 그 다음에는 마음을 살피는 과정, 그리고 내가 스스로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는데. 1번과 3번은 좀 구체적으로 알겠는데, 2번에서는 어떤 마음의 문제가 있었는지 좀 더 듣고 싶어.
  • 아타
    • 가족이지. 그 당시에는 가족 구성원이 다 싫었어. 유일하게 남동생 빼고는 다 힘들었던 거 같아. 지금은 가족구성원하고 나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 근데 그때는 막 엄청나게 미워해서 다신 안 봐, 이런 건 아닌데 썩 좋은 것도 아닌 그런 관계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오해야. 내 시야가 좁으니까 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만 맞다고 계속 생각한 거지. 그렇게 보니까 아빠도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거고,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원하는 대로 나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그 둘 다 싫었어. 10대 때는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부모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그 관계 안에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였는데, 이제 20대 딱 되니까 느낀 거지. 경제적으로 완벽히 자립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절반의 반항은 할 수 있게 된 거야. 
    • 엄마에 대해서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거 같은데, 아빠가 날 되게 미워한다고 생각했어. 알고 봤더니 엄마가 아빠랑 사이가 안 좋은 거야. 엄마가 아빠 욕을 나한테 하잖아. 엄마는 어쩌면 그냥 이야기한 건데 어린 나에게는 아빠가 되게 나쁜 사람인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잘한 건 없지. 근데 그 당시에는 엄마가 아빠를 욕하면, 내가 엄마를 좀 더 좋아하고 애착 관계가 있으니까 사랑하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가 싫은 거야. 아빠가 말만 하면 삐죽대고 내 옆에 와도 어색하고 싫고. 그게 계속 누적이 되니까 아빠가 어느 순간부터는 되게 불편한 사람이 된 거지.
  • 이틀
    • 그랬구나.
  • 아타
    • 근데 명상하면서 가족에 대해 들여다보는 그런 코스를 하고 나서 내가 깨달았던 건 아빠에 대한 오해가 너무 심했다는 거야. 당시에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아빠한테 편지를 썼어. A4용지 3장에 구구절절. 언제언제 아빠가 나한테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이렇게 느꼈었다. 사실 난 아빠가 싫은건 아닌데 오해를 풀고 싶다. 아빠가 나를 삼 남매 중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 솔직하게 얘기를 했지. 아직도 기억해. 그날 내가 먼저 나가면서 봉투를 책상 위에 두고 갔어. 갔다 왔는데 아빠가 앉아보라는 거야. 아, 아빠가 봤구나. 진짜 떨리는 거야. 근데 아빠가 좀 당황한 느낌으로 말을 하시더라고.

“야, 나는 네가 이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 네 오해야.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 근데 나는 한 번도 너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

아빠의 사과
  • 그날 내가 엄청나게 울었어. 오해가 풀린 거지. 아빠한테 지금도 고마워. 그래도 그렇게 얘기해주셔서. ‘네가 항상 셋 중에 알아서 잘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너를 신경 안 쓴다고 했던 건데 그런 걸 섭섭해했을지 몰랐다. 널 방치한 건 아니다. 나는 너를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 그때 오해를 풀고 아빠랑 사이가 좋아졌어. 그 당시에 그걸 안 풀고 가면 내가 안 되겠더라고. 
  • 이틀
    • 사실 그렇게 안 풀고 계속 오해를 쌓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아타 스타일인 것 같아. 정직하게.
  • 아타
    • (웃음) 근데 문제는 뭔지 알아? 그러고 나니까 아빠가 엄마보다 좋아진 거지. 아빠 편 들어 이제는. 엄마 편 잘 안들어. 아빠한테 뭐라 하지 말라고 하고. 엄마가 언제 한번은 되게 섭섭하다고 하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믿을 구석은 유일하게 아이밖에 없었던 거 같아. 엄마가 가장하는 사랑하면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좀 와전되면 집착일 수도 있고.
  • 이틀
    • 그런 화해의 과정이 있다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요가가 그런 기회를 마련해준 측면도 있는 것 같아.
  • 아타
    • 그치. 그래서 고마워. 그리고 그때의 나한테 고마운 게 있어. 용기를 내줬다는 거. 물론 그 뒤에도 이래저래 풀어야 하는 건 하나씩 생기더라고. 그래도 제일 중대한 건 그때 풀었다고 생각을 했어. 우리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니었구나. 아빠도 그런 걸 배워보지 않았다는 것도 좀 이해를 했어. 아빠도 아빠의 아빠나 엄마한테서 그런 걸 배워 보신 적이 없었던 거야. 그냥 라디오나 방송 같은 데서 본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만 하니까 아빠도 나름 시행착오를 겪었던 거지. 근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나는 왜 이렇게 좀 더 아빠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는 마음도 들고. 아빠와의 관계가 풀리면서 많이 좋아졌어. 그러면서 아빠가 나한테 되게 든든한 사람이 됐지. 아빠도 신경을 쓰시는 건지 더 연락도 자주 하고 용돈도 몰래 좀 더 자주 주시고. 좋은 분이야. (웃음) 아, 나 잠깐 *말콤이 보고 올게.

(*말콤이는 아타가 임시보호 하고 있는 고양이다.)

#고양이

  • 이틀
    • 말콤이 임보한지 정확히 며칠째지?
  • 아타
    • 65일째인가? 65일째, 오늘이.
  • 이틀
    • 보통 임보를 이렇게 오래 하진 않잖아. 비결이 뭐야? (웃음)
  • 아타
    • 아하하. 때 되면 밥 주고 약주고 똥 제깍제깍 치워주고.
  • 이틀
    • 말콤이는 아타한테서 얻는 게 확실하게 있구나. 아타는 말콤이한테서 뭘 얻는 걸까?
  • 아타
    • 나는 말콤이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아, 이런 애도 있구나. 이렇게 지낼 수도 있네. 60일 동안 지내면서 우리 사이에 알게 모르게 약간의 의리가 생긴 거 같아. 그게 느껴져 살짝. 이런 게 나름 또 재밌는 거야. 
  • 이틀
    • 지금까지 아타가 임보한 고양이가 몇 마리야?
  • 아타
    • 처음에 두 마리 한 번에 했었고, 그 다음에 우리 루미가 있었고, 그다음에 말콤이.
  • 이틀
    • 첫 번째 임보했던 친구 중에 내가 아는 그 까만 고양이 있지 않나?
  • 아타
    • 어, 맞아. 까만 색이랑 고등어. 
  • 이틀
    • 그 친구들은 정말 임보였었네. 다른 집으로 갔으니까.
  • 아타
    • 응. 눈이 한쪽이 잘 안보여서.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 이틀
    • 시흥에 살 때도 반려동물이 있었나?
  • 아타
    • 아주 어렸을 때, 7살쯤? 삐뽀라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어. 삐뽀는 내가 지어준 거야. 뽀삐로 부르자고 했는데 너무 흔해서 내가 삐뽀로 하자고 했어. 나중에 삐뽀가 엄마 친구 집으로 갔거든. 근데 1년 안 돼서 떠났지. 너무 관리를 못 받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 남동생이 유독 힘들어했어. 지금도 가끔 그 얘기를 해. 누나, 나는 삐뽀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파, 그러지. 남동생은 그때 심지어 4~5살밖에 안 됐었거든. 엄마가 아무 상의 없이 삐뽀를 친구분 집으로 보낸 거야. 남동생이 완전 자지러졌지. 맨발로 뛰어나갔어, 삐뽀 찾으러. 남동생이 숨을 못 쉴 정도로 울던 기억이 있어. 그 뒤로 남동생은 못 키우겠다고 하더라고. 그 트라우마가 있대. 그 뒤로 몇 번 엄마한테 데리고 오자고 그랬었는데 엄마는 너희가 키울 거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셨지. 여튼 그 이후로는 반려동물과는 함께 살 거라고 생각 안 해봤던 것 같아.
  • 이틀
    • 근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임보로 지냈지?
  • 아타
    • (웃음) 일단, 고양이가 너무 귀엽다는 걸 알고 나서. 사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카페에 고양이가 있었어. 처음에는 고양이 무서워 했거든. 근데 너무 예쁜 거야. 어떻게 이런 애들이 다 있지, 싶었다니까. 그때부터 고양이가 되게 예뻐졌어. 그래서 사실 몇 년 안 됐어, 내가 고양이 예뻐한 지. 자취 시작하고 초반에는 여건이 안 되니까 못 키웠는데, 독립문 오고 나서 임보를 시작한 거야. 어떤 분이 자기 고양이 잠깐 봐줄 수 있냐고 해서, 원래 한 달을 봐주는 거였는데 내가 한 넉 달을 봤지.
    • 그러고 나서 한 석 달 있다가 루미가 오게 된 거야. 내가 몸살이 있어서 한의원에 다녀오던 날이었어.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 다음 주에 방사 대상인 아이가 하나 있는데 혹시 거둘 생각 없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물어봤지. 방사되면 어떻게 되냐고. 그랬더니 ‘빨리 죽겠죠’ 이러는 거야. 나는 그 말이 나는 너무 싫은 거지. 바로 데리고 오겠다고 했어. 사진도 안 봤어. 나중에 보니까 내가 같이 살 거라고 생각했던 고양이는 아니었어. 나는 치즈를 생각했거든. 근데 루미는 젖소잖아. 그래서 처음엔 약간 그랬어. 근데 아직도 기억나. 처음에 한옥 집을 한 바퀴 돌더니 딱 내 무릎에 앉더라. 내 무릎에 앉아서 자는데 너무 귀여운 거야. 
  • 이틀
    • 루미는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구나.
  • 아타
    • 응. 루미는 그랬어. 캣초딩 짓을 많이 해서 나한테 많이 혼났지. 사료며 모래, 장판 다 뜯어놓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미안해. 왜 그렇게 혼을 냈을까? 그냥 뒀어도 됐는데. 이렇게 짧을 줄 알았으면.
  • 이틀
    • 루미의 첫 모습이랑 더 비교되겠다. 말콤이랑. 루미는 이렇게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는데. 그치? 말콤이는 65일째 저기 있으니까. (웃음)
  • 아타
    • 그래서 처음엔 말콤이한테 정이 가진 않았어. 근데 그런 생각도 들더라. 그게 뭐가 중요한가. 쟤가 나한테 마음을 안 열 수도 있는거고, 뭔가에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꼭 예쁜 짓을 해야만 예쁜 아이인가. 모든 아이가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쟤를 보면서 들어.
  • 이틀
    • 처음에 아타가 가족이 몇 명이다, 누구다, 특정할 수 없겠다고 말했잖아.
  • 아타
    • 응, 루미나 말콤이는 케어의 느낌이 있긴 해. 가족이긴 한데, 이것도 범주가 나뉘는 거 같아. 온전히 내가 케어해줄 수밖에 없는 존재-는 거의 유일한 것 같아. 인간은 그러지 않는데 동물이라서 좀 다른 점이 있는? 그래서 인간한테는 그런 마음이 잘 안 드는 것 같기도 해.
  • 이틀
    • 루미와 말콤이한테 느껴지는 감정도 갭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 아타
    • 말콤이는 아직. 말콤이는 사실 가족이라기보다는 보호 대상이라는 생각이 아직은 더 커. 만약에 쟤가… 음… 모르겠다, 말콤이. 아직은 잘 모르겠어. 루미는 죽을 때까지 내가 봐야겠다 결심한 게 된 것도 있었고. 말콤이는 아직은 내가 보호자라는 생각 정도? 그게 좀 다르긴 하다.
  • 이틀
    • 이렇게 같이 지내는데 불편한 게 없고,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 아타
    • 맞아, 불편한 게 없어. 희한하게. 불편할 줄 알았는데. 딱 자기 바운더리 안에서 다니고 침범하면 싫어하고.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과 함께 지내는 느낌이지.

#외로움과함께살아가기

  • 이틀
    • 이렇게 살 수 있는 거 보면 가족이고 아니고가 뭐가 중요한가란 생각도 들고.
  • 아타
    • 맞아. 옛날에 제주도에 있는 요가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같이 사시는 할머니가 계셔. 다들 어머니라고 생각한 거야. 근데 혼자 사시는 할머니래. 그냥 모시고 같이 살게 됐대. 너무 신기하지. 그냥 같이, 공간에서 방 하나씩 해서.
    • 아침에는 요가 수업하러 나오시니까 점심이나 저녁을 꼭 집에 가서 할머니랑 같이 하셔. 회원분들이랑 같이 있다가도 시간 되면 꼭 “난 집에 잠깐 들어갈게. 그래도 할머니가 계시잖아” 이러시더라고. 어쨌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선생님의 방식을 보고 ‘와’ 이랬던 것 같아. 그냥 그렇게도 살 수 있는 거야. 그들에게 우리가 얘기하는 각별한 사랑은 없을지 몰라도 어떤 인간적인 부분? 또는 우정, 또는 의리는 있는 거란 생각이 들어. 할머니가 내가 안 오면 저녁을 차려서 안 드시더라고, 그러면서 집에 가시는 거야. 그걸 누구도 의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냥 그들만의 우정이 있구나, 하는 거지. 그 할머니 지금도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네.
    • 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한테 아직 없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어서 그렇게 느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근데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배워가고 있지. 앞으로는 더 그럴 거라고 생각해. 앞으로의 시대가, 세대가. 물론 그 안에서도 왔다 갔다 해. 그래도 누군가랑 더 복작복작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가끔 들 때 있고. 왔다 갔다 해.
  • 이틀
    • 아타는 어때? 연인이거나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우정을 근간으로 한 누군가와 같이 산다면 그때도 가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 아타
    • 아니. 그냥 그게 가족이 된 거 같아. 그게 서로 잘 맞는 사람. 그러면 더 이상 난 가족에 대해 집착하지도 않을 거 같고. 물론 지금도 많이 안 하려고 노력하고, 안 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정 부분 있기도 하거든. 그게 되는 삶이라. 생각만 해도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거니까 약간 설레는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가족관계에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그거거든.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그런 생각이 우리 가족 안의 폭력으로, 그리고 세뇌가 되어있는 것 같고, 나도 적게라도 경험했던 사람이니까. 물론 섭섭해할 수도 있긴 하지. 하지만 맨날 그 말을 달고 사는 가족, 부부는 별로 건강해 보이지도 않고 그런 삶을 추구하고 싶지도 않고. 다행히 그렇게 안 살고 계시는 주변에 좋은 파트너, 커플도 좀 있어. 그래서 그런 분들하고 자꾸 만나고 싶어 하고 얘기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아.
  • 이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외로운 밤들이 있잖아, 문득 외로운 순간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순간에 기존의 가족은 ‘넌 나의 외로움을 받아줘야 해. 나의 기대를 받아줘야 돼’라고 많이 이용했던 거 같은데.
  • 아타
    • 사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되게 많이 그랬어. 우리 엄마가 너무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나한테 그걸 구구절절 말하는 거야. 근데 다 엄마의 슬픈 과거인 거지. 그게 나한테 좀 세뇌가 된 게 있어.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한 사람이니까 남들이 또는 아빠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싫은 거야. 지금은 엄마한테 많이 벗어나기도 했고, 감사한 건 감사한 거지만 엄마가 그랬던 걸 좀 떨어져서 보게 된 거 같아. 사실 엄마한테는 내가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거지. 근데 그런 건 있어. 엄마, 그러기엔 내가 너무 어렸어. 차라리 그런 얘기를 엄마 친구한테 했으면 좋았겠지만 엄마가 친구가 없었던 것도 이제 이해해. 엄마한테 유일한 친구이자 딸이 나였고. 그렇다 해도 난 이제 더이상 그걸 내 후세에 이어가고 싶지 않아. 물론 그걸 안 하려고 노력한다 해도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각인이 된 채로 살 거고. 아직은 그걸 경험시켜주고 싶지 않아.
  • 이틀
    • 그렇다면 아타의 그 외로움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 어떤 모습으로 해결하는지를 묻는 거라기보다 외로움과 같이 지내는 방식 같은 거 있잖아. 그리고 아타가 온전하게 서 있기 위해서는 그 외로움을 혼자 끌어안을 수는 없잖아. 같이 나누는 어떤 존재들이 필요한데, 어떤 존재들이 있고 그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
  • 아타
    • 친구들, 산책, 맛있는 브런치, 영화, 음악, 좋은 글귀, 요가, 명상, 호흡… 방법이 꽤 많긴 많아. 그런 방법으로 가는 것도 피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었었어. 불법적인 것만 도피는 아닌 거지. 그 이야기를 듣고 ‘아~’ 하긴 했어. 뭐 어떻게 해. 인정한 거지. 그렇게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맨날 요가만 하고 맨날 호흡을 바라보기도, 그리고 이제 그러고 싶지도 않아. 그냥 좋은 영화 있음 거기에 영감받고.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어차피 나도 이 친구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 서로 진심이었다고 생각하니까 그거면 된 거 같아. 예전에는 그 후에도 잔여물에 내가 있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욕심이더라고. 나도 그러지 않으면서 남한테 그런 거 바라는 건 욕심이지 뭐야. 그래서 지금은 친구들 만날 수 있을 때 만나는 게 좋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나오는 영화 보는 게 너무 좋고, 요가 하는 거 당연히 좋고, 가끔 달리기하는 거 좋고 짜릿하고. 또 뭐가 있을까. 산책. 난 산책이 제일 커, 사실. 제일 쉽고 돈 안 들이고 그러면서 가장 사색할 수 있는.
  • 이틀
    • 그게 중요한 거 같아. 도피하는 곳이 많은 거, 나와 연결된 곳이 많은 게. 연결된 곳이 한 군데만 있다면 거기에 대한 기대도 커지잖아. 실망이 커지고, 거기에 내가 좌지우지되는 것도 커지고. 그러면 더 건강해지지 못하는 거 같은데, 아타가 이렇게 많은 곳에서 얻는 기쁨이나 연결감을 느끼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 건강한 것 같고. 만약 아타가 가족에게만 기대와 그런 걸 원했다면 엄마가 결혼하라고 했을 때 크게 휘둘렸을 거 아냐. 지금도 그런 소리 좀 듣잖아.
  • 아타
    • 듣지. 이제는 웃어 그냥.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누군가와 함께 살아보고 싶다. 근데 또 그런 생각도 들지. 내 라이프 스타일 – 저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 각자 있잖아. 비슷한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다르고. 그러면 그냥 각자 집에서 잘 지내면서 한 번씩 만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꼭 같이 살아야 하나? 그런 마음도 있어. 어느 순간부터는 만났을 때 좋은 사람이 좋아. 약간 추상적일 수 있는데, 딱 만났을 때 좋은 사람들하고 계속 만나고 싶은 거? 예전에는 꼭 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게 계속 있었으니까. 근데 꼭은 없더라. 차라리 그때 나를 더 바라보는 게 좋지. 나는 내가 중요했으면 좋겠어. 내가 누굴 사랑해도 내가 중요했으면 좋겠어. 처음으로 든 생각이야. 나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모든 걸 다 바치고 싶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거든. 로맨스물을 보거나 연애할 때 특히 더. 근데 아니야. 아니더라고. 내가 중요한 게 진짜인 거 같아.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 이틀
    • 아타의 그 말은, 가족이나 연인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내가 온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산책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 아타
    • 맞아. 내가 살면서 기쁜 것들이 많아지면 좋아. 내 삶에 있어서 소소하게 좋아지는 것들이 많아지면 너무 감사한 게 그중에 돈 안 들고 할 수 있는 게 꽤 있다는 걸 알게 된 거. 옛날에는 돈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물론 맛있는 브런치는 돈이 들지만, 그것도 매일 먹는 건 아니니까. 그래, 보이차도 있어. 빼먹을 뻔했네. 제일 깊숙하게 있으면서도. 
  • 이틀
    • 앞으로의 아타의 모습도 지금처럼 죽 이어졌으면 좋겠어? 어때?
  • 아타
    • 나는 어제 어떤 선생님이랑 얘기하다가 떠오른 건데 그냥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그 정도. 딱.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나도 아직 있어. 내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런다고 하지만 아직 혈연관계의 가족들한테는 좀 너그럽지 못한 게 여전히 있단 걸 보거든. 근데 그게 좀 너그러워지면 삶이 매끄러워질 것 같아. 삶이 짧을 것 같아.
  • 이틀
    • 아타는 기쁜 것들이 되게 많을 것 같아. 주변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능력. 그게 난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 아타
    • 어, 이 얘기를 되게 오래전에 누군가 나한테 했었던 것 같은데. 누구나 좀 있는 거 같아. 맛있는 커피 마실 때나 햇살이 탁 창가에 잘 비칠 때나 오늘 하루 치 구몬을 끝냈을 때나. 그런 행복이 좀 있지 않아? 이틀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잦아졌으면 하는 게 있어. 그게 사라질 때 힘든 거지. 통째로. 근데 통째로 사라지는 순간들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오는 거 같아. 아,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한테 닥치는 일들이 있구나. 이제 알겠어. 그때도 일상을 많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칠, 몇 주, 몇 달은 그럴 수 있는데, 다 놓으면… 사는 게 아니더라고.
  • 이틀
    • 맞아. 인생은 회전목마 같아서(웃음) 노래 제목이야.
  • 아타
    • 차를 다시 마시고,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다시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 이틀
    • 전혀 다른 스타일이지만, 새로운 고양이랑도 같이 지내고.
  • 아타
    • (웃음) 말콤인 진짜 특이해. 어떻게 65일 동안 저러고 있을까. 지금은 그러려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자, 그러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미한테는 미안한 것도 있고. 이제 말콤이는 당분간 병원에 안 데려가기로 했어. 토를 하든 뭐를 하든 집에서 지켜보기로. 병원 한 번 갔다 오면 트라우마가 며칠 더 가니까. 고양이가 진짜 예민한 거 같아. 나도 그랬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을 수 있음 좋긴 좋겠는데, 그냥 보내다가 갔으면 좋겠다.
  • 이틀
    • 옛날에는 그런 거 상상 못 했는데. 나도 이제 엄마도 그렇고 계속 누군가 왔다 가는 거 같아. 내 인생에서. 정말 큰 것들이 왔다 가는 것도 있고 작은 것들이 왔다 가는 것도 있고. 나도 또 왔다 갈 거고.
  • 아타
    •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 생각했어. 다 왔다 가는구나. 근데 다 언제 갈지는 모르는 거지. 그런 것 같아.

임보중인 고양이 말콤이와의 거리, 유년시절 많은 것을 기대오던 엄마와의 간격, 그날그날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찾는 하루치의 행복. 혈연만이 가족이고 살면서 서로에게 되도록 많은 것을 새기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관계의 제약에서 벗어나, 우리는 모두가 인생에서 왔다 가는 존재라는 것을 점차 수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타의 이야기. 잠시 이 세상으로 소풍왔다 돌아간다던 시인의 말이, 아타가 좋아한다는 산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행사 안내] 그럼에도, 별일없이산다

그러니까 11월 28일, “가족다양성 시대, 현행 법령 개선과제” 토론회가 열렸는데 말입니다.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주관하는 가족다양성 정책관련 포럼에 참석 요청을 받았는데, 여성가족부가 토론자에게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을 빼라”는 요구를 했고, 연구소는 이를 거절해 포럼 참석을 거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미 토론문도 제출하고, 행사포스터에 토론자로도 이름을 올렸는데 참석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연구소의 입장은, 페이스북에 소상히 올라와 있습니다. (링크)

이미 대부분의 시민들은 국가가 강요하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대안들을 찾아나선지 오래이다. 동성파트너쉽을 국가가 부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한부모가족과 다문화가족 등 이미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가족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과 가족이 존중받고 평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감히 선언한다. 다양성은 국가에서 허용하는 한에서 질서를 넓히는 것이 아니다. 가족 다양성은 가족에 대한 차별과 규제에 대항하여 자유롭고 실질적인 가족관계들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을 통해서 추구되어야 한다. 

<“가족다양성 시대, 현행 법령 개선과제” 토론회에 가족구성권연구소가 불참하는 이유에 대한 입장문> 중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편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만들기>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사례들을 모아 책을 발간하는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초대합니다.

결혼과 출산, 그 견고한 가족의 조건에 따르지 않고 살더라도 딱히 별일 없다는 사람들, 그렇지만 정말 좀 별일 없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네 ‘별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야기에 함께 하실 분을 기다립니다.

사전신청 (클릭) *신청마감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넘쳐나는, 오롯이 오신 분들이 서로의 삶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 하루 단순히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고 삶 전체가 유쾌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별일 없이 산다>는 말을 하기가 녹록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우리 각자의 별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12월 3일, 사전 신청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자리가 마련됩니다.

곧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적 가족에게도 평등한 기회를

✅ 참고기사원문 및 전문 보러가기 > 혼인·혈연 아닌 ‘사회적 가족’의 파트너십 인정하라

서울시는 ‘정상가족’ 궤도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2016년에 제정한 ‘서울특별시 사회적 가족도시 구현을 위한 1인 가구 지원 기본 조례’에서 이미 ‘사회적 가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여기서 ‘사회적 가족’이란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 취침 등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뜻한다.

기사 원문 중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 취침 등의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사회적 가족이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원가족이라는 것도 생판 남남이었던 남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뒤 얻는 이름이다. 현재의 제도 안에서 가족의 최소 단위로서 지위를 부여받는 유일한 방법이다. 관계 속에서 고립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혼인, 혈연을 넘어 다양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가족이 등장하고 있는 때에 너무나도 구시대적인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의 주거정책 또한 ‘정상가족’의 구성·유지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최근 행복주택, 청년주택 등 주거지원정책이 확대되었지만 그 대상은 이성애 부부, 청년, 대학생 등 지극히 일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 안전망은 대상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편견을 공고히 하는 제도의 차별적 요소를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 나중은 없다.

#서울청년주간 #신촌 #별별부스

지난 11월 2일, 신촌에서는 올해 청년주간을 맞이해 큰 행사가 열렸다. ‘청년’이 들어간 서울시 사업의 집대성, 청년사업의 공식행사 중 제일 큰 거, 바로 그거.

우리도 야심차게 부스를 신청했다.

이날만큼은 그냥 무조건 즐겁자,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아도 우리가 즐거우면 되는 거 아냐? 그래도 심심할 수 있으니까 각자 할 일을 좀 챙겨오자, 그냥 맛있는 거 먹는 날로 하자, 그래 일단 우리 활동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니까 열심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될 거야…

쫄보들의 대비라는 것이 이렇다.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세부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인터뷰를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픈스테이지라고 해서 ‘가족’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청년주간행사의 부스는 우리에게 더 없이 좋은 오픈스테이지였다. 하지만 과연 이 주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심지어 우리가 누군가. 쫄보 아니던가.

한적했던 초기의 부스 (심지어 지킴이 없고)

진심으로 우리는 몰랐다. 부스에 사람이 (이렇게나) 올 줄은, 꿈에도.

…응?
스태프 한 사람의 몫을 톡톡 해낸 분이시다. 동시 4인 접대중.

우리는 부스의 기둥마다 ‘가족’과 관련된 다양한 문장을 깃발로 만들어 걸어두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깃발에 사람들이 직접 실을 묶게 했다. 이렇게 얽히고 설킨 실들이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문제는 점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실을 묶기 위해서는 매트릭스와 미션임파서블 못지 않은 유연함이 요구되는 미션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한가로이 책을 읽겠다던 야무진 생각은 애저녁에 사라지고, 우리는 한손에는 칼과 가위, 다른 한손에는 털실과 사탕, 눈으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며 귀로는 “실 잘라주세요!” 하는 분들의 외침을 캐치하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사실 부스 좀 해봤다 하는 사람이 봤으면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애초에 부스가 한적할 것을 예상기원하고 가방에 온갖 놀이거리를 챙겨온 한량들이 아니었나. 두 사람이 동시에 참여방법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동공이 바람앞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생각보다 더 진지하게 참여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점점 안정진정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서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되었다.

끈으로 가족에 대한 생각을 엮던, 딸을 데리고 온 한 엄마가 “어, 나 이혼했는데?” 하며 [난 이미 결혼했다] 카드에 실을 엮을 때,

“마음이 아프다…” 하며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다]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분의 촉촉한 눈과 마주쳤을 때,

[가족하고 안 맞아요] 깃발로 돌진하던 수많은 청년들과

[결혼하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 [강아지 고양이도 가족이다]에 당연한 듯 그렇다며 답을 이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사는 건 늘 별일이지만, 그 또한 별 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별 것 아닌 질문카드 사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다양한 색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나의 미션이 더 있었다. 훗날 가족에게 남길 말을 직접 써보는, 일명 <쓰노라>

사실은, 전날 밤에 그렸노라(…)

실엮기가 많이 사랑받는 바람에 <쓰노라> 훗날 자신의 가족에게 한마디 남기고 가시라는 안내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주옥같은 글귀를 남기고 사라진 분들과 사진으로 채 남기지 못한 분들의 이야기까지 기억하고 싶다.

오후 5시, 우리의 오픈 스테이지는 CLOSED

오가는 사람들의 많은 생각과 다양한 길을 보여준 고마웠던 털실을 이만 자르고, 부스 주위의 쓰레기를 치우고 테이블을 접고 현수막을 걷었다.

머물렀던 자리는 흔적 없이.

생사고락(까지야…)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이날을 계기로 마음이 많이 가까워졌다.

우리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가끔 외롭고 종종 힘들며 대체로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래서 때로는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거운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날 우리가 거리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묵묵한 외로움의 한축을 기꺼이 함께 들어준 고마운 분들이었다. 분명히 힘이 됐다. 어떤 분들에게서는 눈빛으로, 손끝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혼인과 출산만이 가족의 당연한 전제인 것처럼 말하는 여전한 사회 분위기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듯한 법 제도가 한시바삐 보완되어, 가까운 미래에는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시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TMI) 또 한번의 오픈스테이지 <그럼에도, 별일 없이 산다>가 12월 3일 (화) 저녁 7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DDP CREA 세미나홀에서 열린다.

#별별인터뷰 #시월 #사랑 #믿음 #가족이라는공동체

소개 /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소하게 나누는 일상 그 순간 느껴지는 따뜻함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 이불 속에서 뒹글 거리기, 음악 듣기, 전시 보는걸 좋아합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기분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족 이야기를 할 때도 주로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고. 그러나 시월의 경우는 좀 다르다. 가족에 대한 불만이나 나쁜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기억에는 그렇다.

  • 원두
    • 내가 가진 너와 너의 가족에 대한 인상은 가족이랑 사이가 엄청 좋고, 가족에 대해서 좋게 생각한다는 이미지가 있어.
  • 시월
    • 맞아, 실제로도 그런 편인 것 같아.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맨날 하시는 이야기가 ‘너는 엄마와 아빠를 만난 게 정말 행운이다.’ (웃음)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고, 나도 가족을 생각했을 때 따뜻한 느낌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해.

원가족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 원두
    • 너의 가족에 대해서 소개해주면 좋을 것 같아. 가족 구성원이랑 그 가족 구성원은 어떤 사람인지.
  • 시월
    • 일단 우리 가족은 핵가족으로 엄마, 아빠, 나 이렇게 3명이야. 엄마 아빠 두 분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시다가 소개를 받아서 만나셨대. 얼굴을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고 하시더라고. 아무튼 연애 결혼을 하셨고,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같은 회사에서 결혼하게 되면 한 명은 퇴사하는 분위기여서 엄마가 전업주부로. 아빠는 계속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고. 나는 거의 바로 결혼하자마자 생겼다고 하셨어. 
  • 원두
    • 어떤 캐릭터이신지도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 시월
    •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따뜻한 느낌이 엄청 큰 것 같아. 엄마가 오랫동안 내 삶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잖아. 그래서 사실은 부딪히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부분들을 다 품어줄 만큼 나한테는 되게 큰 사람이고 영향을 많이 주었던 분이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지혜로운 사람. 내 엄마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되게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나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많이 보여주셔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해. 아무래도 전업주부이시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엄마한테는 큰 책임감으로 다가오셨던 것 같아. 아빠는 계속 회사에서 일하셨는데 야근도 많고 일도 적은 편은 아니었거든. 그렇다 보니까 아빠는 아빠의 역할과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도 있는 것 같고.
    • 아빠는… 어렸을 때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서 가족 여행으로 산 올라갔을 때 목말 태워주시고, 그런 기억들. 그런데 조금 나이가 들고 아빠도 진급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바쁜 이미지가 있었어. 가장으로서 이미지. 그리고 꼼꼼하시고. 아무래도 조직 체계에서 일을 오랫동안 하시다 보니까 정리도 되게 잘하시고. 엄마랑은 또 다른 느낌.
  • 원두
    • 엄마랑 아빠랑 다르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이 달라?
  • 시월
    • 아무래도 ‘시간’이었던 것 같아.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눈 시간들. 특히나 그런 시간이 많았던 중고등학생 때 아빠가 엄청 바쁘셨으니까 대화 비중을 생각했을 때 아빠보다는 엄마와 훨씬 많은 대화를 했었어.
  • 원두
    • 아까 엄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배우고 싶은 점이 많다고 했는데, 특히 어떤 부분을 닮고 싶은지도 궁금했어.
  • 시월
    • 큰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라는 생각(웃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내가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고쳤으면 하는 부분도 있고, 나도 반항심에 대들기도 하고 버릇없이 굴기도 하잖아. 그런 과정에서 모나지 않게 엄마가 중재-라고 말하긴 좀 그런데 잘 이끌어주시는 느낌이 항상 있었고. 내가 봤을 때 엄마는 어디에 속해있더라도 항상 빛나는 분. 잘 화합하고 분위기도 잘 만드셔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되게 상식적이신 분인 것 같아. 우리가 사회 생활하거나 일을 할 때 무슨 일이 있으면 사실 중립적으로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 내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하는 게 있고,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곡해해서 생각하기도 하고. 근데 엄마는 그런 걸 상식적으로 잘 판단하시고 보편적으로 생각하시고. 누구 입장에 치우치지 않게끔. 단단하고 현명하셨던 것 같아. 머리가 좋다고 해야 하나. (웃음) 아무튼 그런 부분들을 닮고 싶지.
  • 원두
    • 통찰력도 있으신 것 같다.
  • 시월
    • 맞아 맞아.
  • 원두
    • 내가 너한테 항상 뿌리 깊다는 얘기를 하잖아. 너는 오그라들어하지만(웃음) 그게 어머니의 단단함을 닮아서 그런 건가 봐.
  • 시월
    • (웃음) 그러게. 닮고 싶은 마음에.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하잖아. 그럴 수도 있겠다.
  • 원두
    •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 가족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엄마 이야기는 엄청 많이 하는데 아빠는 거의 등장을 하지 않잖아. 아까 말했던 것처럼 너무 바쁘셔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꼈을 때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나 영향이 되게 희미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 때문인지 내가 상상하는 너희 아빠의 성격은, 물론 만나 뵌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모르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웃음) 엄마가 주도적으로 탁탁탁 하시면 따라가시는 느낌이 드는 거야.
  • 시월
    • 음(웃음) 아빠가 회사에서 일을 많이 하시다 보니까 대화나 교류를 엄마랑 더 많이 해서 그럴 것 같아. 요새는 아빠가 가족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하시지만, 당시에는 그럴만한 여유도 별로 없었고. 되게 잘해주시는데 나를 잘 모르는 느낌. 아빠는 일단 착한 분이셔. 착한 남자?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하면 다 들어주시려고 하는 착한 분.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센스 있는 분은 아니시거든. (웃음) 진짜 사소한 건데,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엄마랑 나는 서로에 대한 취향을 너무 잘 안단 말이야. 그런데 아빠는 모르시는 거지.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달라고 하면 사다 주시는데,
  • 원두
    • 아무거나 사다 주시는구나.
  • 시월
    • 아니 아무거나도 아니고 싫어하는 거로(웃음) 얼마 전에도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다 달라고, 사 올 때 돼지바 사 오지 말라고 얼핏 얘기하셨다는데 돼지바를 사 오셨다는 거야. (웃음) 그래도 무언가 먹고싶다고 하면 꼭 사다 주시는 착한 분이야.
  • 원두
    • 아빠가 너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을 때, 너도 그래? 너는 어때?
  • 시월
    • 그런 것 같아. 아빠를 더 잘 이해하려고 나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어렸을 때 버릇이 사실 그게 쉽지는 않아. 괜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삐딱하게 나가는 것도 있는 것 같고.
  • 원두
    • 아빠와 엄마는 서로를 잘 아시는 것 같아, 어때? 아이스크림을 그렇게 사 오시는 거 보면 잘 모르시나 싶기도 하고(웃음) 네가 볼 땐 어때, 두 분의 관계는?
  • 시월
    • 어떤 가족이든 다 똑같겠지만, 아빠도 엄마도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 엄마가 조금 더 감성적인 부분이 크다 보니까 그게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가족들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들을 위해 항상 뭔가 해주려고 헌신하시는 분이시긴 한 것 같아. 아무래도 서로 다른 부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거에 있어서 충돌은 항상 있지.
    • 세월이 흐르면서 관계의 변화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 아빠도 곧 은퇴하실 텐데 집에 오래 있으실 테고, 그러면 엄마랑 부딪히는 부분들도 있겠지? 아빠도 어떤 면에서는 되게 가정적인 분이셔서 청소하는 거 좋아하시고 습관화되어 있으시고. 그리고 항상 일찍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인데, 엄마는 또 생활 리듬이 조금씩 다를 수 있잖아. 
    • 그래도 엄마가 그런 이야기는 항상 하시거든.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이 있고 정이 많이 쌓이고 신뢰도 많이 쌓이고. 얼마 전에 아빠가 환갑이셨는데, ‘이제는 함께할 시간이 많지는 않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고 하시더라고.

원가족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 원두
    • 가족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 장면, 추억 그런 게 있으면 말해줘도 좋을 것 같아.
  • 시월
    • 음, 기억이라는 게 단편적이어서 장면 장면들이 떠오르는데. 음… 아, 내가 음식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웃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이 그때는 복도식 아파트였어. 걸어가다 보면 창문을 지나친단 말이야. 집으로 가면 창문이 항상 열려있는데, 쓱 보면 엄마가 항상 요리하고 계시는 거지. 어느 날은 새우튀김을 하고 계셨는데 그 소리가 또 (웃음) 지글지글하는 소리랑 새우튀김 냄새랑 엄마가 그걸 하는 모습이랑 그런 게 가끔씩 떠올라.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아빠가 목말태워주시던 기억들이라든지. 또 가족들이랑 여행을 되게 많이 가는 편이었는데, 자동차를 타고 국내 여행을 할 때 두 분이 앞 좌석에 타시고 내가 뒷좌석에 발라당 누워서 차 옆 창문에 발을 대고 보면 하늘이 지나가고 풍경이 바뀌잖아. 그런 풍경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 원두
    • 근데 여행을 가면, 예의 차리는 친구들이랑도 싸우지는 않더라도 빈정 상하는 게 있는데 가족들이랑은 지이인짜… 그렇지 않아? 나는 그때 가족 여행 갔다 오고 나서 아빠랑은 절대 다시 같이 안 간다고 (웃음) 했었는데, 그런 건 없어? 가족이랑 어떻게 그렇게 자주 같이 갈 수 있는지…
  • 시월
    • 머리 크기 전까지는 자주 가도 괜찮았는데(웃음) 여행의 주도권이 조금씩 바뀌잖아. 어렸을 때는 내가 계획을 짤 수 없으니까 하라는 대로 하고 가라는 대로 가고 하니까 다투거나 그런 건 없었던 거 같고. 그런데 머리가 조금씩 크면서 (웃음) 여행을 우리는 자유여행을 좋아하잖아. 자유여행으로 엄마 아빠를 처음 모시고 갔을 때, 각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생기고 엄마가 계속 뭐라고 하시면서 싸우기도 했는데…
    • 근데 또 의외의 면들도 되게 많이 보기는 했어. 예를 들어 자유여행을 처음 갔을 때가 홍콩이었거든. 내가 대학교 때. 아빠한테 구글 번역 하는 법을 알려드렸는데 길을 모를 때마다 너무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고, 그게 또 되게 재밌으셨나 봐. 계속하시더라고. 아빠한테 보지 못했던 의외의 면인데? 생각도 하고. 왜냐하면 이전까지 아빠는 되게 규칙적이시고 경험했던 것들, 그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행동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기능을 사용하시면서 뭔가를 계속한다는 게.   
  •   원두
    • 나는 우리 아빠 같이 갔을 때. 우리 아빠는 공부도 잘했고, 엄청나게 아는 척하는 것도 좋아해서 영어도 “너 그것도 모르냐” 무시하기도 하는데, 여행 가서는 한~마디도 안 하는 거야. 한번은 서로 찢어져서 자유시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아빠가 말을 하기 싫으니까 밥을 안 먹은 거야. 주문하려면 말을 해야 하니까. 그거 보고 되게 짠하면서도 아니, 그렇게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양반이 영어 써먹는 척을 안 했냐 생각도 들고. 그게 또 되게 의외였어. 작아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 시월
    • 또 의외의 모습들을 볼 때마다 짠하기도 하고.
  • 원두
    • 귀여울 때도 있고, 짠하기도 하고.
  • 시월
    • 맞아.

반대로 원가족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부정적인 에피소드는?

  • 원두
    • 이제까지는 좋은 류의 기억이었는데, 안 좋은 기억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사건 같은 게 있어?
  • 시월
    • 안 좋은 기억이라기보다는 슬픈 기억. 대학교 입시 할 때였는데, 당시 외할머니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셨어. 기관지가 좀 안 좋으셨는데 생명에 문제가 될 만큼은 아니었고, 그래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셔야 하니까 엄마가 항상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었어. 나도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제는 병원에서 며칠 계셨었어. 엄마가 할머니를 모셔다드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러고 나서 전화를 받았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엄마가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그 자리에서 펑펑 우시는 거야. 진짜 ‘펑펑’ 우셨어. 나는 마음이 많이 아프기는 했지만, 엄마가 느끼는 슬픔과는 비견할 수 없는 거잖아. 근데 엄마가 너무 슬퍼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픈 거야. 제발 엄마가 덜 슬펐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었어. 나중에 엄마가 이야기해 주셨는데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드릴 때 되게 느낌이 이상했다는 거야. 뒷모습을 보는데 희끄무리하다고 표현을 하셨나?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는 거야. 내가 입시하고 있을 때니까 제일 중요할 때잖아. 그것만 마무리가 되면 여행도 같이 다니고 정말 잘 모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돌아가시니까 그게 너무 마음이 안 좋으셨나 봐. 그래서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죄송스러운 마음도 크고. 얼마 전에 외할머니 계셨던 데도 갔다 왔는데 지금 계시는 곳에서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오고.
  • 원두
    • 어머님이 펑펑 우셨던 감정이 너한테 엄청 많이 흘러들어왔나 보다.
  • 시월
    • 그냥 그 당시에는 되게 복잡했어.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에 대한 슬픔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엄마가 너무 슬퍼하는 게 마음이 아프고. 그 당시에 그런 생각도 했어.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고, 엄마가 있는 사람이구나.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으니까. 죄송하기도 하고.
  • 원두
    • 지금도 네가 그때를 상기하면 감정이 드러날 정도로 슬펐나 봐.
  • 시월
    • 가족이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아마 처음 봐서 더 그랬던 것 같아. 그게 되게 기억에 남아.

가족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위치에 있는 사람인가요?

  • 원두
    • 네가 생각했을 때 너는 가족에서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 같은지에 대한 질문이야.
  • 시월
    • 이런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부모님한테는 내가 전부인 것 같아. 부모님 삶에 있어서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이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집안 분위기도 달라지고.
  • 원두
    • 외동이어서 받는 기대가 크기도 하고, 감정을 표출하실 데가 너밖에 없어서 더 그런 것도 있겠다.
  • 시월
    • 응,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게 진짜 농담이 아니라(웃음)
  • 원두
    • 그러면 부모님이 매번 사랑을 표출하시겠지만, 아까 말했던 ‘내가 전부인 것 같다’라는 걸 느끼는 순간은 언제야? 어떨 때 특히 그런 걸 느껴?
  • 시월
    •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해주실 때. 내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들을 물심양면으로 다 해주시려고 하는 편이었고, 그런 부분들이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울 때는 내가 엄마 아빠가 기대하는 만큼 충족을 못 시켜 드릴 수도 있겠다 싶을 때.
  • 원두
    • 그런 게 부담스럽지는 않아?
  • 시월
    • 근데 그걸 엄마 아빠가 부담을 쥐여줬던 건 아니니까. 오히려 죄송스럽다는 게 맞는 거지. 미안하고.
  • 원두
    • 너희 부모님이 너를 전부처럼 대하는 태도가 내가 생각하는 태도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 나는 그 얘기를 딱 들었을 때, 그다음에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어봐야지 바로 떠올렸을 정도로 부모님들의 기대라고 하면 이콜(=) 부담이라는 관념이 있잖아. ‘너는 내 자식이니까 내가 널 위해 이만큼 했으니까 넌 이 정도는 해야 해.’ 나쁘다기보다는 그 세대 부모님들이 다 그랬었으니까. 자기가 했던 게 당연했고, 그래서 자식이 하는 것도 당연하니까 하라고 하고, 근데 안 할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렇게 되는 거지. 그래서 네가 그 얘기를 할 때 너희 부모님도 그러셨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부담은 아니었다는 게 되게 다른 점이었어. 그래서 너가 아까 말했듯이 엄마가 되게 상식적이라고 느꼈었을 수 있겠다 싶어.
  • 시월
    • 그런 부분이랑도 연결이 되고, 가장 처음에 얘기했었던 (웃음) “너는 정말 부모를 잘 만났다.” 그런데 난 어쨌든 첫째고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까 내가 좀 더 잘해서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 부분에 있어서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서.
  • 원두
    • 구체적으로는 어떤 걸 더 해드리고 싶어?
  • 시월
    • 일단 첫 번째로는 엄마 아빠가 내 걱정 안 할 정도로 내가 잘되고, 내 한 몸 잘 건사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나가고 싶은데. 내 돈으로 호강도 시켜드리고 여행도 여러 곳 보내드리고 싶은데.
  • 원두
    • 난 대놓고 말해. 난 엄마 아빠보다 못 벌거라고(웃음)
  • 시월
    • 나도 얘기해. (웃음)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근데 엄마가 그래도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얘기해 (웃음) 버리면 안 된다고.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의 가족은 몇 명인가요? 누가 포함되나요?

  • 원두
    • 원 가족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한 것 같으니까. 만약에 네가 전지전능한 힘이 있어서 가족 구성원을 처음부터 세팅할 수 있다고 한다면 떠오르는 가족은 몇 명이야?
  • 시월
    • 그게 어느 정도 범주까지 해당되는 거야?
  • 원두
    • 범주 일단 없이 얘기했으면 좋겠어. 
  • 시월
    • (고민 중)
  • 원두
    • 근데 어려우면, 이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OX퀴즈를 몇 개 내볼게.
  • 시월
    • 좋아 좋아.
  • 원두
    • 어렸을 때 날 버리고 간 엄마가 한 번도 얼굴을 안 내비치다가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돌아왔다. 그 엄마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가족이다.
  • 원두
    • 왜? 혈연이기 때문에?
  • 시월
    • 날 낳아준 부모님이니까.
  • 원두
    • 그러면 그 버리고 간 엄마를 대신해서 새언니가 날 계속 키워준 거야. 그 새언니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가족이다.
  • 원두
    • 새언니는 혈연은 아니잖아. 법적인 관계 때문이야, 키워줬기 때문이야?
  • 시월
    • 키워줬기 때문에. 부모님의 역할을 해주신 분이니까.
  • 원두
    •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친할아버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셨어. 그 친할아버지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가족이다.
  • 원두
    • 너는 어쨌든 혈연관계가 중요한 거네?
  • 시월
    • 혈연관계가 일단 중요하고, 내가 가족이 아니라고 판단할만한 근거는 없으니까. 날 낳아주신 엄마도 가족이라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기도 해. 엄마가 왜 나를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 수 있는 거고. 
  • 원두
    • 엄청 관대하다(웃음) 어떻게 날 버리고 갈 수 있어? 부들부들 이럴 것 같은데. (웃음) 그러면 매주 금요일마다 나에게 부침개를 구워주시는 하숙집 아줌마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고민하다) 중간.
  • 원두
    • 왜? 어떤 부분이 고민돼?
  • 시월
    • 그분을 내가 지금 실제로 만난 게 아니잖아.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하는 가정인 거잖아. 내가 이분한테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 원두
    • 그럼 어떤 영향을 받았을 때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 시월
    • 일단은 시간. 함께한 시간이 중요할 것 같아. 사람이 어떤 사람을 볼 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사람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고, 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시간들이 많이 쌓이고, 그만큼의 이야기들이 쌓였을 때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원두
    • 마지막은, 엄마가 병상에 계셔서 그 힘든 시기를 항상 내 옆을 지켜주면서 위로를 해준 피카츄인형은 (웃음)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피카츄인형은 가족이 아니다. (단호)
  • 원두
    • 왜? 무생물이기 때문에?
  • 시월
    • 어, 감정을 같이 교류한 사이가 아니잖아.
  • 원두
    • 무생물에는 내가 감정을 쏟아부을 수는 있지만, 오는 건 없으니까?
  • 시월
    • 그렇지.
  • 원두
    • 근데 내가 위로를 받을 수는 있잖아.
  • 시월
    • 어…그치. 위로는 받을 수 있지. 근데 그게 내 마음에서 기인한 거잖아. 무생물이 아니라 강아지처럼 생물이었다면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형은 좀.
  • 원두
    • 들으면서 느낀 건, 혈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함께한 시간과 그 시간에 따른 연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상호 교류가 되는가 안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 걸 좀 떠올리면서 내가 가족을 다시 구성한다면 몇 명이 가족이야?
  • 시월
    • (난처한 듯 웃으며) 아, 반드시 그걸 가족으로 구성해야해?
  • 원두
    • 가족을 만든다면 누구누구를 가족에 넣을 건지 한 번 생각해봐.
  • 시월
    • 이거를 꼭 이야기를 해야 해?
  • 원두
    • 왜, 어떤 게 어려워? 너무 많아서 아니면 너무 없어서?
  • 시월
    • 음, 좀 어려운 것 같아. 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거든. 나는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편인데, 특히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주변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나중에 나이 들어서 옛날 향(鄕)처럼 마을을 만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요즘에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 하잖아. 거기서 옹산 마을이 나오는데, 드라마 중반에 동백이가 사는 옹산 마을에 대한 묘사가 나와. 이웃인데 가족 같고, 츤데레같이 밥 먹을 때 밥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같이 밥 먹고, 서로 모르는 게 없고, 은근하게 챙겨주고. 그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그게 어떻게 보면 큰 범주 안에서 가족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일단 내가 지금 엄마 아빠라는 가족이 나에게 의미가 크니까.
  • 원두
    • 그럼 오히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기 때문에 누구는 넣고 빼기는 어려워서 이 대답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되나?
  • 시월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일단 지금은 엄마 아빠 이 원 가족이 나한테 있어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왔고 그만큼 감정적인 교류를 많이 했었던 가족인 건데. 그 외에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라든지 직장동료 등을 가족이라고 포함하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나의 마음 상태가 또 조금씩 다른 거잖아. 
  • 원두
    • 마음 상태가 다르다는 거는 원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마음?
  • 시월
    • 가족이라는 하나의 어떤 거로 이야기하기에는 다 너무 다르다는 느낌이어서.
  • 원두
    • 아아, 그럼 너가 떠올리는 가족은 딱 지금의 원가족이 제일 큰거네?
  • 시월
    • 응 그치. 나는 원 가족에 대한 의미가 큰 것 같아. 친구랑 가족은 또 조금 다른 느낌. 만약에 친구가 가족처럼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환경이라면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원두
    • 주거를 공유한다던가 함께하는 시간이 가족처럼 많다던가 이렇게 되면?
  • 시월
    • 응.
  • 원두
    •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 원 가족 외에는.
  • 시월
    • 응응
  • 원두
    • 그럼 가족은 원 가족이라고 이야기했으니까, 아까 말했던 향, 마을을 만든다면 누가누가 들어가? 누구누구까지 말하기 어려우면 몇 명 정도를 생각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고.
  • 시월
    • 한 10명에서 15명?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까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났던 소중한 사람들.
  • 원두
    • 원 가족 포함해서 10에서 15명?
  • 시월
    • 응.

이후에 가족을 꾸린다면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나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 원두
    • 나중에 네가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할 수도 있잖아. 애를 낳을 수도 있고 안 낳을 수도 있지만. 그랬을 때 어떤 가족을 만들고 싶은지? 지금의 가족에게서 특히 어떤 영향을 받아서 다음 가족을 꾸릴 때 ‘이렇게 되고 싶다’는 부분이 있는지.
  • 시월
    • 일단 가족을 꾸릴 때 제일 중요한 건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한 사랑인 것 같아. 서로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과 가족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지금 상황에서는 가족 구성원에 있어서 애를 낳고 싶지는 않아. 소위 말하는 딩크족이 되고 싶은데 그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건데, 애를 낳았을 때 여자한테 주어지는 가혹한 상황들이 좀 많은 것 같아서. 가능하다면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데 사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랑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 것들은 서로 이야기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는 해. 아예 “안돼”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고.
    • 그리고 엄마랑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감정을 교류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에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감정적인 부분들이 잘 교류 될 수 있는 사람과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게 취향이 될 수도 있겠고, 함께 하는 시간이  자연스러운 가족을 만들고 싶다.
  • 원두
    • 부모님이 너에게 많은 대화와 세밀한 감정 교류라는 영향을 줬다면 반대로 네가 부모님에게 영향 준 건 뭐가 있을 것 같아? 영향을 주고받는다 해서, 어떤 게 있을지?
  • 시월
    • 나 자체가 (웃음)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아.
  • 원두
    • 너의 존재 자체가?
  • 시월
    • 내가 어떻게 감정을 느끼고 또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지내냐에 따라서 되게 많이 엄마 아빠의 감정 상태도 많이 달라지고.
  • 원두
    • 포커스를 확실히 많이 맞춰주고 계시는 구나. 그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너한테.
  • 시월
    • 응. 근데 그게 반드시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 원두
    • 근데 그렇게 가족 내에서 누구 위주로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내가 생각했을 때는 권력 관계가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너희 집에서는 네가 최고봉이야?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 또 너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동등하게 잘 지내는 것 같단 말이야. 내가 느낀 게 맞나?
  • 시월
    • 응, 그런 역할을 엄마가 잘해주시는 것 같아.

가족을 떠올렸을 때 무슨 색이 떠오르나요?

  • 원두
    • 마지막 질문인데, 지금 가족을 색으로 치환했을 때? 가족 하면 떠오르는 색이 있다면 무슨 색이 떠올라?
  • 시월
    • 가족 전체를?
  • 원두
    • 지금의 원 가족을
  • 시월
    • 초록색. 심신의 안정과 평온함을 느낄 때 우리가 많이 떠올리는 색깔 중 하나잖아. 나한테 가족이 약간 그런 이미지라서. 나는 위로를 받아야 하는 순간에 가족에게 기대는 편인 것 같아.

소소하게 먹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부터 내가 힘든 것, 당신이 힘든 것까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그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가족, 그런 시월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혼인신고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만들기>라는 거대한 주제가 2019년의 내 삶의 무게를 표현해준다는 데에는 검찰의 거짓말 탐지기도 일말의 의심없이 침묵을 지킬 것이라며 이 프로젝트에 대한 큰 부담감을 친구에게 토로했을 때, 친구는 말없이 이 기사를 보내왔다.

“39년 함께 산 남편이 있는데 무연고 장례라니”

2019-10-13 06:00 연합뉴스

잠시 말이 없던 친구는 일단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찾으라고 했다.
뭘 찾냐는 말에 다 찾게 되어 있다는 말을 남기고 자러 간 친구를 향해서 나는.

얘는 왜 또 장례식 타령이래, 지금. 결혼제도에 쏟아지는 이야기만 해도 마감을 못하게 생겼는데.

하다가 기사를 탐독하고 말았다.

39년을 같이 살았던 두 사람. 재혼이라 굳이 혼인신고까지는 하지 않고. 그런데 아내가 죽고 나니, 사실혼 관계로 살아온 이 씨는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망진단서를 끊을 수도, 장례 절차를 결정할 수도 없단다. 이걸 정해둔 법을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줄여서 장사법이라고 한단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 2조 16항에서 정한 ‘연고자’의 범위(를 내손으로 직접 찾고 있었고)

수소문 끝에 장례를 치를 방법이라고 찾은 것이 무연고 장례라고 했다.

무연고 장례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시신 인수와 장례 권한을 포기한 사망자에 대해 지자체가 도움을 주어 치르는 장례이다. 일생을 함께 하고도 법에서 규정하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내는 연고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가족구성권에 대해서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 내용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죽음에까지 전통적인 가족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제약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죽음 역시 가족구성권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문제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을 법이 제대로, 제때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해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비혼주의자로 삶을 살다보면, 우리는 누구나 높은 비율로 죽음 앞에 무연고자가 될 확률을 가지고 있다.

내가 무연고자라니…

하지만!

부부 간이 아닌 인간 관계에 사랑이 없나? 이성 관계 말고는 연애하는 이가 없나? 비혼주의자에게 정녕 인생 친구가 없나?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그 사랑의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혼인과 혈연의 개인적인 사정과 무관하게 스스로 가족을 구성하고 내 삶의 동반자를 지정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마땅할 일이다.

사실, 혼인신고서를 쓰지 않고 40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아내의 장례를 치러줄 수 없었던 사람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장사법에 따른다면 장례식장에 사실혼 배우자, 친밀한 관계의 친구, 공동체 가족 구성원의 자리는 없다.

얼마 전에, 가까운 친구들의 결혼 발표 자리에 가지 못해 무척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 심지어 그 자리에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친구들이 증인이 되어주었다고 해서 나 역시 증인으로 친구의 앞날을 축복해주지 못한 아쉬움을 말했다가, 한 친구의 비웃음을 샀다.

미혼이라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줄 자격도 없는 자가 되었다.

그렇다. 결혼적령기를 넘겨서 미혼의 상태에 있는 나는 대체로 이런 취급을 받는 것에 꽤 오랜시간 익숙해져 있었다. 애써 농담을 잘 받는 척, 쿨한 척해봤지만 나는 그런 시간 내내 상처받고 아팠다는 걸 시간이 좀 지나서야 알았다.

아무튼.

저 대화 이후 “담보잡을 남정네라도 하나 끌고 오라”는 대사가 이어졌다. 나는 문제의 발언에 인격모독감을 느낀다고 의사를 표현했지만, 상대는 “멘탈이 유리알 같을 때 병원 가면 훨씬 낫다”는 말로 기어이 나를 굴복시키려 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대화들이 오갔을 뿐이다.

결혼을 앞둔 그는, 재미있게도, 아내 될 사람에게 한번도 반말을 써 본 적이 없다고, 존대가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를 존중하고 언제나 로맨틱한 태도를 잃지 않는, 누가 봐도 유머러스하고 좋은 사람이다. 내 인격은 10인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처참하게 짓밟혔지만, 나를 짓밟은 사람은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될 것이)다. 그는 사회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수용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런 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사람 역시 기득권층이다. 마음 먹으면 결혼을 할 수 있고, 혼인신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것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유도 다양하다.

사회제도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회가 공정해야 하고 혜택은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성에 대한 대비도,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도 모두 부족하다. 공정과 공평을 바란다면 일단 현재의 제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 제도의 장점을 알고 이용했든 모르고 손해를 보았든 그것은 개인의 역량과 선택에 전적으로 맡겨진다.

나는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혼인신고는 지금 이 시대에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역시 이제부터 알아야 한다. 그 중요한 것을 모두가 할 수 있게 되려면, 타인의 행복을 빌어줄 자격을 갖추려면, 더 폭넓은 의미의 가족에 대한 재정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2019. 10. 23)

[EBS NEWS] 기획뉴스 ‘가족의 탄생’

혈연과 결혼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과 다른 형태의 가족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가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좋은 때에 EBS뉴스에서 연중기획으로 ‘가족의 탄생 –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편성해서 연속보도하고 있는데요. 전과 달라지고 있는 현재의 가족 형태의 다양성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EBS NEWS 기획 <가족의 탄생>을 함께 보고 가족구성권에 대해서도 이야기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아래의 목록에서 제목을 클릭하시면 EBS NEWS 사이트의 해당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1편 “다양한 형태 가족 인정해야” 높아지는 목소리
2편 “우리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3편 흔해진 ‘동거부부’ 인식 좋아졌지만‥차별은 ‘여전’
4편 혈연·혼인관계만 가족?‥”가족 범위 확장돼야”
5편 생활동반자’ 인정하는 나라 늘지만‥우리는 아직
6편 ‘공유주택’‥기쁨 슬픔도 공유하는 ‘가족’의 탄생
7편 다양한 ‘비혼 공동체’‥’결혼 안해도 괜찮아’
8편 늘어나는 ‘1인 가구’‥정책에선 여전히 ‘소외’
9편 ‘사회적 가족’ 지원 조례안 발의된다
10편 ‘1인 가구’ 다양한 모습 조망한 ‘영화제’‥다음 달 첫선
11편 차별 받는 미혼부모들 “우리도 똑같은 엄마,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