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터뷰 #외로움과_살아가는_방법 #아타

#처음

  • 이틀
    • ‘가족’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어. 다양한 가족들의 현재 모습,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업인데 평소 내가 아타랑 나누고 싶었던 이야길 나누려고 해.
    • <별일없이산다>에는 공식적인 첫 질문이 있어.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은 몇 명입니까?
  • 아타
    • 와, 이 질문 정말 좋으면서 힘드네. 이 질문을 받으니까 가족이라는 개념이 나한테 확장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면 옛날에 무조건 우리 구성원 5명이었는데 지금은 사실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나는 우리나라의 가족이 너무 폐쇄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고. 폐쇄적이면서 동시에 세습적이어서 나는 그걸 나름 거부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가족이라는 개념이 나한테 폭넓게 작용하는 것 같아. 부모들이 항상 얘기할 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결국엔 가족 찾는다 이러는데 그 말이 맞기도 한 것 같아. 내가 큰일을 겪으면서 가족이라는 개념의 사람이 더 늘었다는 생각은 했어. 그래서 나한테 가족의 명수는 솔직히 한… 딱 몇 명이다 말을 못 할 거 같고, 약 열 명 내외 정도-라고 나는 생각해. 그 안에는 이웃도 포함되고 친구도 포함돼. 나는 가족에 너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거야. 가족이라는 네이밍 안에.
  • 이틀
    • 그치. 우리나라의 가족이라는 개념이 너무 틀에 박혀있는 느낌이라.
  • 아타
    • 고마운 존재들이긴 한데. 나에게 유년 시절을 제공해주고, 내가 자랄 수 있게 계속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주신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하는 마음도 있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걸 빚진 마음으로 가져가서 가족이라고 계속 말하는 건- 나부터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 왜냐면 그렇게 말하면서 집착하려고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내가 싫은 게 그건데 그들한테 그걸 요구하면 내가 너무 모순적이기도 하고. 완벽하게 모순적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니지만.

#두사람

  • 이틀
    • 예전에 어려운 일이 있었을 때 내가 생각난다고 했었잖아. 나에 대한 기대나 집착도 있는 거야? (웃음)
  • 아타
    • 음.. 있지 않을까? (웃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면, 그래도 연락을 했을 때 나를 모른 척하지 않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 마음이 내포돼 있을 것 같아. 아무리 없다고 말한다 해도 사실 그건 좀 거짓말일 것 같고. 그 안에 어떤 지난 세월, 같이 쌓아왔던 우정에 대한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없을 순 없잖아. 근데 만약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못 얻어서 순간 실망한다고 해도 그때 그 사람을 ‘나쁜 사람’ 또는 ‘역시 (진정한) 친구는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 왜냐하면 반대로 생각했을 때 나도 안 되는 상황이 있을 때도 있겠고, 누구에게나 각자의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아.
  • 이틀
    • 알겠어. 나에 대한 집착은 크지 않은 걸로 생각할게. (웃음)
  • 아타
    • 너무 고마운 것들은 항상 있지. 꼭 그 때 그 자리에 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픽- 사라지는 건 아닌 거 같아.

#요가

  • 이틀
    • 나는 네가 요가 수업을 진행한 지 10주년이라는 걸 인스타에서 보고 깜짝 놀랐거든. 요가는 자취하면서 시작한 거야?
  • 아타
    • 아니, 자취보다 요가를 먼저 시작했고, 자취는 요가 시작하고 한 2년 정도 있다가. 그냥 독립해서 혼자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처음에 나온 거라 당시에 머릿속에 엘요가는 아예 없었어. 근데 밖에서 나와 혼자서 살아보니까 너무 힘든 거지. 챙길게 너무 많고, 밥 빨래해 주셨던 엄마 아빠가 없이 혼자 하려니 벅차고. 그러다 보니까 일이 조금 더 나한테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지점에서 나한테 편한 워크 타임이라고 해야 하나, 그 타임을 내가 스스로 결정하면 훨씬 편안하니까 엘요가를 하기로 결정한 거고. 솔직히 엘요가는 내가 하기 싫은 걸 절대로 안 하려고 세운 거야. 엘요가를 너무 하고 싶었다,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어. 하기 싫은 걸 절대 안 하고 싶었지.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조금 알게 됐고.
  • 이틀
    • 왜 요가를 시작하게 됐지? 그 얘기를 못 들은 것 같아.
  • 아타
    • 재활. 10대 때 허리 디스크가 좀 있었는데 그냥 방치해뒀었어. 20대 돼서 자꾸 무릎이랑 허리가 너무 아픈 거야. 앉아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계속 힘들어서 도저히 이대로 안 되겠다 싶었던 거지. 내가 항공학과를 나와서 시험을 보려면 구두를 신고 다리를 붙여야 하는데 골반이 틀어지니까 허벅지에 힘이 없어서 다리를 붙이는 게 너무 힘든 거야. 그래서 처음에는 교정을 하려고 정형외과 다니고 한의원에서 견인치료를 받고 그랬었어. 나을 듯 나을 듯 하는데 그 비용이 꽤 비싼 거지. 근데 그때는 21살 이랬으니까 아르바이트만으로는 그 돈이 감당이 안 되고, 또 그걸로 엄마 아빠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거든. 근데 누군가 나한테 스쳐 가는 말로 ‘요가가 허리랑 골반교정에 그렇게 좋대’ 그래서 시작을 한 거였지. 요가가 좋아서 혹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고, 죽지 않기 위해? 살고 싶어서. 너무 몸이 아프니까 생존 때문에 시작했던 거야. 그때는 요가 강사가 될 생각도 없었지. 재활만 잘 됐으면 좋겠다, 그 생각뿐이었어. 2년 반 정도 꾸준히 했었나. 
  • 이틀
    • 2년 반하고 어디 다녀오지 않았었나? 인도?
  • 아타
    • 자기계발 관련해서 무슨무슨 코스가 있었어. 그땐 돈 벌어서 다 그런데 썼어. 명상하고. 요가하고 몸이 많이 좋아지면서 내 내면을 보게 되니까 내가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게 비단 몸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겠더라고. 자연스럽게 명상이나 자기 마음 챙김 같은 거에 관심이 갔지. 인도를 간 건 아니고 인도에 있는 스승님한테 우연히 가르침을 받았는데 너무 좋은 거야. 안 그래도 그때 내가 불교 철학에 관심이 많았을 땐데 그분의 말이 잘 맞기도 하고. 요가랑 명상을 동시에 같이 시작했지. 같이 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그렇게 꾸준히 병행을 했고 그 결과 다행히 재활이 됐고.
    • 그 당시 요가선생님이 아직도 기억 나. 지금도 한번 뵙고 싶어. 그 선생님이 나한테 한번 슬쩍 얘기했지. 잘 안 빠지고 되게 열심히 나온다고.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어하더니 지금은 동작도 진짜 잘 나온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그 이야길 하시는 거야.

“나중에 관심 있으면 자격증 한 번 따봐요”

아타를 지켜본 선생님이 조심스레 건넨 이야기
  • 아타
    • 나는 막 손사레를 쳤어. 어우,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무슨… 막 이러면서 집에 와선 인터넷을 검색했지. (웃음) <요가 자격증을 따려면>.
    •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은 회사를 계속 다녔어. 근데 맨날 시흥에서 광화문까지 지하철 타고 오는 게 너무 힘든 거지. 정장 입는 것도 안 좋아하고. 다행히 옷을 편하게 입으라고 하는 회사이긴 했지만 그래도 은근 눈치 주거든. 운동화 신고 가면. 그런 거 때문에 너무 불편하고, 그것 때문에 다시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그건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딱히 방법이 없었어.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해서 답이 보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시점에 마침 신종플루에 걸린 거야, 내가. 그때 한동안 격리 됐었는데, 아직도 기억나. 진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러면서 ‘내가 만약에 여기서 살아서 나가면 회사 먼저 그만둔다.’ 그런 생각을 했지.
    • 어떤 한계치에 탁, 왔을 때 사람이 솔직해지더라, 진짜. 그러고 나서 그만뒀어. 한 3주 있다가 바로. 그만두면서 이미 등록한 지 몇 달 된 자격증반에 집중했지. 근데 내가 원래 운동을 했던 몸도 아니고 재활이 됐어도 유연한 건 아니어서 자격증 따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2배 정도 걸렸어. 무용과 친구들이랑 같이 시험 봤는데 완전 좌절. 그때 나는 다리도 안 찢어지고. 지금 생각해보면 요가가 다리 찢고 하는 그런 게 아닌데, 사람이니까 비교가 되는 거야. 그때 잠깐 고민했었지. 중단할까. 이 길을 가지 말까. 그래도 그때 계속 생각했어. 그래,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다, 하면서 책을 위안 삼았지.
    • 그리고 25살에 요가강사를 시작한 거야. 처음엔 알바였어. 오래 할 거란 생각도 없었어. 그냥 회사 안 가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수업할 수 있고, 그러고 돌아오면 산책도 하고 보러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시작한 거였지. 삶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였으니까 철학 수업 들으러 경복궁역까지 가고 그랬어. 모닝페이지라고. 
  • 이틀
    • 아침에 글 쓰는 거였나?
  • 아타
    • 응. 집에서 혼자 하는 100일 프로젝트. 중간에 사람들 만나서 피드백 주고 받고. 그것도 한 6개월 정도 했던 것 같아. 아침에 일기 쓰는 거니까 무의식이 나올 때가 많아서 솔직해지는 거야. 아, 난 이런 거 싫어하는 구나, 이런 거 좋아하는 구나, 아니면 난 이런 거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사실 그때 나는 이런 걸 되게 부끄러워 하는 구나. 그런 게 좋았어. 나에게 솔직해지는 거.
  • 이틀 
    • 아타는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 아니면 몸과 마음에 영향이 오는 것 같아서, 그런 면에서 요가가 잘 맞는 거 같기도 하고.
  • 아타
    • 거짓말이 많아서 그래. (웃음) 내 안에 정직이 쉽지 않아.
  • 이틀
    • 요가를 시작한 계기가 맨 처음에는 몸의 재활 목적, 그 다음에는 마음을 살피는 과정, 그리고 내가 스스로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는데. 1번과 3번은 좀 구체적으로 알겠는데, 2번에서는 어떤 마음의 문제가 있었는지 좀 더 듣고 싶어.
  • 아타
    • 가족이지. 그 당시에는 가족 구성원이 다 싫었어. 유일하게 남동생 빼고는 다 힘들었던 거 같아. 지금은 가족구성원하고 나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 근데 그때는 막 엄청나게 미워해서 다신 안 봐, 이런 건 아닌데 썩 좋은 것도 아닌 그런 관계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오해야. 내 시야가 좁으니까 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만 맞다고 계속 생각한 거지. 그렇게 보니까 아빠도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거고,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원하는 대로 나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그 둘 다 싫었어. 10대 때는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부모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그 관계 안에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였는데, 이제 20대 딱 되니까 느낀 거지. 경제적으로 완벽히 자립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절반의 반항은 할 수 있게 된 거야. 
    • 엄마에 대해서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거 같은데, 아빠가 날 되게 미워한다고 생각했어. 알고 봤더니 엄마가 아빠랑 사이가 안 좋은 거야. 엄마가 아빠 욕을 나한테 하잖아. 엄마는 어쩌면 그냥 이야기한 건데 어린 나에게는 아빠가 되게 나쁜 사람인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잘한 건 없지. 근데 그 당시에는 엄마가 아빠를 욕하면, 내가 엄마를 좀 더 좋아하고 애착 관계가 있으니까 사랑하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가 싫은 거야. 아빠가 말만 하면 삐죽대고 내 옆에 와도 어색하고 싫고. 그게 계속 누적이 되니까 아빠가 어느 순간부터는 되게 불편한 사람이 된 거지.
  • 이틀
    • 그랬구나.
  • 아타
    • 근데 명상하면서 가족에 대해 들여다보는 그런 코스를 하고 나서 내가 깨달았던 건 아빠에 대한 오해가 너무 심했다는 거야. 당시에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아빠한테 편지를 썼어. A4용지 3장에 구구절절. 언제언제 아빠가 나한테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이렇게 느꼈었다. 사실 난 아빠가 싫은건 아닌데 오해를 풀고 싶다. 아빠가 나를 삼 남매 중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 솔직하게 얘기를 했지. 아직도 기억해. 그날 내가 먼저 나가면서 봉투를 책상 위에 두고 갔어. 갔다 왔는데 아빠가 앉아보라는 거야. 아, 아빠가 봤구나. 진짜 떨리는 거야. 근데 아빠가 좀 당황한 느낌으로 말을 하시더라고.

“야, 나는 네가 이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 네 오해야.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 근데 나는 한 번도 너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

아빠의 사과
  • 그날 내가 엄청나게 울었어. 오해가 풀린 거지. 아빠한테 지금도 고마워. 그래도 그렇게 얘기해주셔서. ‘네가 항상 셋 중에 알아서 잘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너를 신경 안 쓴다고 했던 건데 그런 걸 섭섭해했을지 몰랐다. 널 방치한 건 아니다. 나는 너를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 그때 오해를 풀고 아빠랑 사이가 좋아졌어. 그 당시에 그걸 안 풀고 가면 내가 안 되겠더라고. 
  • 이틀
    • 사실 그렇게 안 풀고 계속 오해를 쌓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아타 스타일인 것 같아. 정직하게.
  • 아타
    • (웃음) 근데 문제는 뭔지 알아? 그러고 나니까 아빠가 엄마보다 좋아진 거지. 아빠 편 들어 이제는. 엄마 편 잘 안들어. 아빠한테 뭐라 하지 말라고 하고. 엄마가 언제 한번은 되게 섭섭하다고 하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믿을 구석은 유일하게 아이밖에 없었던 거 같아. 엄마가 가장하는 사랑하면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좀 와전되면 집착일 수도 있고.
  • 이틀
    • 그런 화해의 과정이 있다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요가가 그런 기회를 마련해준 측면도 있는 것 같아.
  • 아타
    • 그치. 그래서 고마워. 그리고 그때의 나한테 고마운 게 있어. 용기를 내줬다는 거. 물론 그 뒤에도 이래저래 풀어야 하는 건 하나씩 생기더라고. 그래도 제일 중대한 건 그때 풀었다고 생각을 했어. 우리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니었구나. 아빠도 그런 걸 배워보지 않았다는 것도 좀 이해를 했어. 아빠도 아빠의 아빠나 엄마한테서 그런 걸 배워 보신 적이 없었던 거야. 그냥 라디오나 방송 같은 데서 본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만 하니까 아빠도 나름 시행착오를 겪었던 거지. 근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나는 왜 이렇게 좀 더 아빠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는 마음도 들고. 아빠와의 관계가 풀리면서 많이 좋아졌어. 그러면서 아빠가 나한테 되게 든든한 사람이 됐지. 아빠도 신경을 쓰시는 건지 더 연락도 자주 하고 용돈도 몰래 좀 더 자주 주시고. 좋은 분이야. (웃음) 아, 나 잠깐 *말콤이 보고 올게.

(*말콤이는 아타가 임시보호 하고 있는 고양이다.)

#고양이

  • 이틀
    • 말콤이 임보한지 정확히 며칠째지?
  • 아타
    • 65일째인가? 65일째, 오늘이.
  • 이틀
    • 보통 임보를 이렇게 오래 하진 않잖아. 비결이 뭐야? (웃음)
  • 아타
    • 아하하. 때 되면 밥 주고 약주고 똥 제깍제깍 치워주고.
  • 이틀
    • 말콤이는 아타한테서 얻는 게 확실하게 있구나. 아타는 말콤이한테서 뭘 얻는 걸까?
  • 아타
    • 나는 말콤이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아, 이런 애도 있구나. 이렇게 지낼 수도 있네. 60일 동안 지내면서 우리 사이에 알게 모르게 약간의 의리가 생긴 거 같아. 그게 느껴져 살짝. 이런 게 나름 또 재밌는 거야. 
  • 이틀
    • 지금까지 아타가 임보한 고양이가 몇 마리야?
  • 아타
    • 처음에 두 마리 한 번에 했었고, 그 다음에 우리 루미가 있었고, 그다음에 말콤이.
  • 이틀
    • 첫 번째 임보했던 친구 중에 내가 아는 그 까만 고양이 있지 않나?
  • 아타
    • 어, 맞아. 까만 색이랑 고등어. 
  • 이틀
    • 그 친구들은 정말 임보였었네. 다른 집으로 갔으니까.
  • 아타
    • 응. 눈이 한쪽이 잘 안보여서.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 이틀
    • 시흥에 살 때도 반려동물이 있었나?
  • 아타
    • 아주 어렸을 때, 7살쯤? 삐뽀라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어. 삐뽀는 내가 지어준 거야. 뽀삐로 부르자고 했는데 너무 흔해서 내가 삐뽀로 하자고 했어. 나중에 삐뽀가 엄마 친구 집으로 갔거든. 근데 1년 안 돼서 떠났지. 너무 관리를 못 받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 남동생이 유독 힘들어했어. 지금도 가끔 그 얘기를 해. 누나, 나는 삐뽀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파, 그러지. 남동생은 그때 심지어 4~5살밖에 안 됐었거든. 엄마가 아무 상의 없이 삐뽀를 친구분 집으로 보낸 거야. 남동생이 완전 자지러졌지. 맨발로 뛰어나갔어, 삐뽀 찾으러. 남동생이 숨을 못 쉴 정도로 울던 기억이 있어. 그 뒤로 남동생은 못 키우겠다고 하더라고. 그 트라우마가 있대. 그 뒤로 몇 번 엄마한테 데리고 오자고 그랬었는데 엄마는 너희가 키울 거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셨지. 여튼 그 이후로는 반려동물과는 함께 살 거라고 생각 안 해봤던 것 같아.
  • 이틀
    • 근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임보로 지냈지?
  • 아타
    • (웃음) 일단, 고양이가 너무 귀엽다는 걸 알고 나서. 사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카페에 고양이가 있었어. 처음에는 고양이 무서워 했거든. 근데 너무 예쁜 거야. 어떻게 이런 애들이 다 있지, 싶었다니까. 그때부터 고양이가 되게 예뻐졌어. 그래서 사실 몇 년 안 됐어, 내가 고양이 예뻐한 지. 자취 시작하고 초반에는 여건이 안 되니까 못 키웠는데, 독립문 오고 나서 임보를 시작한 거야. 어떤 분이 자기 고양이 잠깐 봐줄 수 있냐고 해서, 원래 한 달을 봐주는 거였는데 내가 한 넉 달을 봤지.
    • 그러고 나서 한 석 달 있다가 루미가 오게 된 거야. 내가 몸살이 있어서 한의원에 다녀오던 날이었어.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 다음 주에 방사 대상인 아이가 하나 있는데 혹시 거둘 생각 없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물어봤지. 방사되면 어떻게 되냐고. 그랬더니 ‘빨리 죽겠죠’ 이러는 거야. 나는 그 말이 나는 너무 싫은 거지. 바로 데리고 오겠다고 했어. 사진도 안 봤어. 나중에 보니까 내가 같이 살 거라고 생각했던 고양이는 아니었어. 나는 치즈를 생각했거든. 근데 루미는 젖소잖아. 그래서 처음엔 약간 그랬어. 근데 아직도 기억나. 처음에 한옥 집을 한 바퀴 돌더니 딱 내 무릎에 앉더라. 내 무릎에 앉아서 자는데 너무 귀여운 거야. 
  • 이틀
    • 루미는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구나.
  • 아타
    • 응. 루미는 그랬어. 캣초딩 짓을 많이 해서 나한테 많이 혼났지. 사료며 모래, 장판 다 뜯어놓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미안해. 왜 그렇게 혼을 냈을까? 그냥 뒀어도 됐는데. 이렇게 짧을 줄 알았으면.
  • 이틀
    • 루미의 첫 모습이랑 더 비교되겠다. 말콤이랑. 루미는 이렇게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는데. 그치? 말콤이는 65일째 저기 있으니까. (웃음)
  • 아타
    • 그래서 처음엔 말콤이한테 정이 가진 않았어. 근데 그런 생각도 들더라. 그게 뭐가 중요한가. 쟤가 나한테 마음을 안 열 수도 있는거고, 뭔가에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꼭 예쁜 짓을 해야만 예쁜 아이인가. 모든 아이가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쟤를 보면서 들어.
  • 이틀
    • 처음에 아타가 가족이 몇 명이다, 누구다, 특정할 수 없겠다고 말했잖아.
  • 아타
    • 응, 루미나 말콤이는 케어의 느낌이 있긴 해. 가족이긴 한데, 이것도 범주가 나뉘는 거 같아. 온전히 내가 케어해줄 수밖에 없는 존재-는 거의 유일한 것 같아. 인간은 그러지 않는데 동물이라서 좀 다른 점이 있는? 그래서 인간한테는 그런 마음이 잘 안 드는 것 같기도 해.
  • 이틀
    • 루미와 말콤이한테 느껴지는 감정도 갭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 아타
    • 말콤이는 아직. 말콤이는 사실 가족이라기보다는 보호 대상이라는 생각이 아직은 더 커. 만약에 쟤가… 음… 모르겠다, 말콤이. 아직은 잘 모르겠어. 루미는 죽을 때까지 내가 봐야겠다 결심한 게 된 것도 있었고. 말콤이는 아직은 내가 보호자라는 생각 정도? 그게 좀 다르긴 하다.
  • 이틀
    • 이렇게 같이 지내는데 불편한 게 없고,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 아타
    • 맞아, 불편한 게 없어. 희한하게. 불편할 줄 알았는데. 딱 자기 바운더리 안에서 다니고 침범하면 싫어하고.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과 함께 지내는 느낌이지.

#외로움과함께살아가기

  • 이틀
    • 이렇게 살 수 있는 거 보면 가족이고 아니고가 뭐가 중요한가란 생각도 들고.
  • 아타
    • 맞아. 옛날에 제주도에 있는 요가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같이 사시는 할머니가 계셔. 다들 어머니라고 생각한 거야. 근데 혼자 사시는 할머니래. 그냥 모시고 같이 살게 됐대. 너무 신기하지. 그냥 같이, 공간에서 방 하나씩 해서.
    • 아침에는 요가 수업하러 나오시니까 점심이나 저녁을 꼭 집에 가서 할머니랑 같이 하셔. 회원분들이랑 같이 있다가도 시간 되면 꼭 “난 집에 잠깐 들어갈게. 그래도 할머니가 계시잖아” 이러시더라고. 어쨌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선생님의 방식을 보고 ‘와’ 이랬던 것 같아. 그냥 그렇게도 살 수 있는 거야. 그들에게 우리가 얘기하는 각별한 사랑은 없을지 몰라도 어떤 인간적인 부분? 또는 우정, 또는 의리는 있는 거란 생각이 들어. 할머니가 내가 안 오면 저녁을 차려서 안 드시더라고, 그러면서 집에 가시는 거야. 그걸 누구도 의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냥 그들만의 우정이 있구나, 하는 거지. 그 할머니 지금도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네.
    • 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한테 아직 없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어서 그렇게 느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근데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배워가고 있지. 앞으로는 더 그럴 거라고 생각해. 앞으로의 시대가, 세대가. 물론 그 안에서도 왔다 갔다 해. 그래도 누군가랑 더 복작복작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가끔 들 때 있고. 왔다 갔다 해.
  • 이틀
    • 아타는 어때? 연인이거나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우정을 근간으로 한 누군가와 같이 산다면 그때도 가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 아타
    • 아니. 그냥 그게 가족이 된 거 같아. 그게 서로 잘 맞는 사람. 그러면 더 이상 난 가족에 대해 집착하지도 않을 거 같고. 물론 지금도 많이 안 하려고 노력하고, 안 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정 부분 있기도 하거든. 그게 되는 삶이라. 생각만 해도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거니까 약간 설레는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가족관계에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그거거든.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그런 생각이 우리 가족 안의 폭력으로, 그리고 세뇌가 되어있는 것 같고, 나도 적게라도 경험했던 사람이니까. 물론 섭섭해할 수도 있긴 하지. 하지만 맨날 그 말을 달고 사는 가족, 부부는 별로 건강해 보이지도 않고 그런 삶을 추구하고 싶지도 않고. 다행히 그렇게 안 살고 계시는 주변에 좋은 파트너, 커플도 좀 있어. 그래서 그런 분들하고 자꾸 만나고 싶어 하고 얘기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아.
  • 이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외로운 밤들이 있잖아, 문득 외로운 순간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순간에 기존의 가족은 ‘넌 나의 외로움을 받아줘야 해. 나의 기대를 받아줘야 돼’라고 많이 이용했던 거 같은데.
  • 아타
    • 사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되게 많이 그랬어. 우리 엄마가 너무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나한테 그걸 구구절절 말하는 거야. 근데 다 엄마의 슬픈 과거인 거지. 그게 나한테 좀 세뇌가 된 게 있어.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한 사람이니까 남들이 또는 아빠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싫은 거야. 지금은 엄마한테 많이 벗어나기도 했고, 감사한 건 감사한 거지만 엄마가 그랬던 걸 좀 떨어져서 보게 된 거 같아. 사실 엄마한테는 내가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거지. 근데 그런 건 있어. 엄마, 그러기엔 내가 너무 어렸어. 차라리 그런 얘기를 엄마 친구한테 했으면 좋았겠지만 엄마가 친구가 없었던 것도 이제 이해해. 엄마한테 유일한 친구이자 딸이 나였고. 그렇다 해도 난 이제 더이상 그걸 내 후세에 이어가고 싶지 않아. 물론 그걸 안 하려고 노력한다 해도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각인이 된 채로 살 거고. 아직은 그걸 경험시켜주고 싶지 않아.
  • 이틀
    • 그렇다면 아타의 그 외로움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 어떤 모습으로 해결하는지를 묻는 거라기보다 외로움과 같이 지내는 방식 같은 거 있잖아. 그리고 아타가 온전하게 서 있기 위해서는 그 외로움을 혼자 끌어안을 수는 없잖아. 같이 나누는 어떤 존재들이 필요한데, 어떤 존재들이 있고 그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
  • 아타
    • 친구들, 산책, 맛있는 브런치, 영화, 음악, 좋은 글귀, 요가, 명상, 호흡… 방법이 꽤 많긴 많아. 그런 방법으로 가는 것도 피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었었어. 불법적인 것만 도피는 아닌 거지. 그 이야기를 듣고 ‘아~’ 하긴 했어. 뭐 어떻게 해. 인정한 거지. 그렇게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맨날 요가만 하고 맨날 호흡을 바라보기도, 그리고 이제 그러고 싶지도 않아. 그냥 좋은 영화 있음 거기에 영감받고.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어차피 나도 이 친구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 서로 진심이었다고 생각하니까 그거면 된 거 같아. 예전에는 그 후에도 잔여물에 내가 있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욕심이더라고. 나도 그러지 않으면서 남한테 그런 거 바라는 건 욕심이지 뭐야. 그래서 지금은 친구들 만날 수 있을 때 만나는 게 좋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나오는 영화 보는 게 너무 좋고, 요가 하는 거 당연히 좋고, 가끔 달리기하는 거 좋고 짜릿하고. 또 뭐가 있을까. 산책. 난 산책이 제일 커, 사실. 제일 쉽고 돈 안 들이고 그러면서 가장 사색할 수 있는.
  • 이틀
    • 그게 중요한 거 같아. 도피하는 곳이 많은 거, 나와 연결된 곳이 많은 게. 연결된 곳이 한 군데만 있다면 거기에 대한 기대도 커지잖아. 실망이 커지고, 거기에 내가 좌지우지되는 것도 커지고. 그러면 더 건강해지지 못하는 거 같은데, 아타가 이렇게 많은 곳에서 얻는 기쁨이나 연결감을 느끼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 건강한 것 같고. 만약 아타가 가족에게만 기대와 그런 걸 원했다면 엄마가 결혼하라고 했을 때 크게 휘둘렸을 거 아냐. 지금도 그런 소리 좀 듣잖아.
  • 아타
    • 듣지. 이제는 웃어 그냥.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누군가와 함께 살아보고 싶다. 근데 또 그런 생각도 들지. 내 라이프 스타일 – 저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 각자 있잖아. 비슷한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다르고. 그러면 그냥 각자 집에서 잘 지내면서 한 번씩 만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꼭 같이 살아야 하나? 그런 마음도 있어. 어느 순간부터는 만났을 때 좋은 사람이 좋아. 약간 추상적일 수 있는데, 딱 만났을 때 좋은 사람들하고 계속 만나고 싶은 거? 예전에는 꼭 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게 계속 있었으니까. 근데 꼭은 없더라. 차라리 그때 나를 더 바라보는 게 좋지. 나는 내가 중요했으면 좋겠어. 내가 누굴 사랑해도 내가 중요했으면 좋겠어. 처음으로 든 생각이야. 나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모든 걸 다 바치고 싶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거든. 로맨스물을 보거나 연애할 때 특히 더. 근데 아니야. 아니더라고. 내가 중요한 게 진짜인 거 같아.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 이틀
    • 아타의 그 말은, 가족이나 연인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내가 온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산책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 아타
    • 맞아. 내가 살면서 기쁜 것들이 많아지면 좋아. 내 삶에 있어서 소소하게 좋아지는 것들이 많아지면 너무 감사한 게 그중에 돈 안 들고 할 수 있는 게 꽤 있다는 걸 알게 된 거. 옛날에는 돈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물론 맛있는 브런치는 돈이 들지만, 그것도 매일 먹는 건 아니니까. 그래, 보이차도 있어. 빼먹을 뻔했네. 제일 깊숙하게 있으면서도. 
  • 이틀
    • 앞으로의 아타의 모습도 지금처럼 죽 이어졌으면 좋겠어? 어때?
  • 아타
    • 나는 어제 어떤 선생님이랑 얘기하다가 떠오른 건데 그냥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그 정도. 딱.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나도 아직 있어. 내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런다고 하지만 아직 혈연관계의 가족들한테는 좀 너그럽지 못한 게 여전히 있단 걸 보거든. 근데 그게 좀 너그러워지면 삶이 매끄러워질 것 같아. 삶이 짧을 것 같아.
  • 이틀
    • 아타는 기쁜 것들이 되게 많을 것 같아. 주변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능력. 그게 난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 아타
    • 어, 이 얘기를 되게 오래전에 누군가 나한테 했었던 것 같은데. 누구나 좀 있는 거 같아. 맛있는 커피 마실 때나 햇살이 탁 창가에 잘 비칠 때나 오늘 하루 치 구몬을 끝냈을 때나. 그런 행복이 좀 있지 않아? 이틀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잦아졌으면 하는 게 있어. 그게 사라질 때 힘든 거지. 통째로. 근데 통째로 사라지는 순간들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오는 거 같아. 아,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한테 닥치는 일들이 있구나. 이제 알겠어. 그때도 일상을 많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칠, 몇 주, 몇 달은 그럴 수 있는데, 다 놓으면… 사는 게 아니더라고.
  • 이틀
    • 맞아. 인생은 회전목마 같아서(웃음) 노래 제목이야.
  • 아타
    • 차를 다시 마시고,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다시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 이틀
    • 전혀 다른 스타일이지만, 새로운 고양이랑도 같이 지내고.
  • 아타
    • (웃음) 말콤인 진짜 특이해. 어떻게 65일 동안 저러고 있을까. 지금은 그러려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자, 그러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미한테는 미안한 것도 있고. 이제 말콤이는 당분간 병원에 안 데려가기로 했어. 토를 하든 뭐를 하든 집에서 지켜보기로. 병원 한 번 갔다 오면 트라우마가 며칠 더 가니까. 고양이가 진짜 예민한 거 같아. 나도 그랬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을 수 있음 좋긴 좋겠는데, 그냥 보내다가 갔으면 좋겠다.
  • 이틀
    • 옛날에는 그런 거 상상 못 했는데. 나도 이제 엄마도 그렇고 계속 누군가 왔다 가는 거 같아. 내 인생에서. 정말 큰 것들이 왔다 가는 것도 있고 작은 것들이 왔다 가는 것도 있고. 나도 또 왔다 갈 거고.
  • 아타
    •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 생각했어. 다 왔다 가는구나. 근데 다 언제 갈지는 모르는 거지. 그런 것 같아.

임보중인 고양이 말콤이와의 거리, 유년시절 많은 것을 기대오던 엄마와의 간격, 그날그날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찾는 하루치의 행복. 혈연만이 가족이고 살면서 서로에게 되도록 많은 것을 새기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관계의 제약에서 벗어나, 우리는 모두가 인생에서 왔다 가는 존재라는 것을 점차 수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타의 이야기. 잠시 이 세상으로 소풍왔다 돌아간다던 시인의 말이, 아타가 좋아한다는 산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별별인터뷰 #레이!루이!

레이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게 된 것은 어쩌면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만난 모임에는 누구나 한번씩 꼭 하게 되는, 구성원들에게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날은 레이의 차례가 아니었지만 사정이 생긴 멤버 대신 레이가 예정된 순서보다 빨리 이야기를 하게 된 날이었다.

생각해 온 이야기가 있는 듯 메모해 온 내용을 천천히 눈으로 읽어내려간 다음, 차분히 자신을 소개하는 레이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10년지기 친구와의 사랑, 생각보다 조금 먼저 찾아온 아이, 가족의 반대, 그리고 출산 전에 찾아온 이별까지.

미혼모에서 5살 아이의 엄마로 살게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정갈한 말투와 단단한 눈빛으로 해나가던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모임에 처음 나왔던 날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어색한 자리에서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애꿎은 메모만 끄적거리던 나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괜찮아요’ 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준, 비슷한 또래의 레이를 만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잔뜩 위축되었던 나는 그 다음 주부터 모임에 나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살뜰한 손길로 처음 온 사람을 챙기는 레이 덕분에 초반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그렇게 매주 수요일 저녁에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하는 사이가 되면서 이내 거리감을 좁혀갔다. 그야말로 ‘괜찮아’지고 있었다.

레이의 삶에 대해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인터뷰를 결심했다. 그리고 며칠 후, 조심스럽게 건넨 간곡한 요청에 레이가 응답해 주었다.

#별별인터뷰 #레이!루이!

좋다. 보기만 해도.

별) 먼저, 두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레이, 아이는 루이라고 불러주세요. 레이와 루이는 저희 모자의 영어이름인데요, 뭔가 파이팅이 필요할 때 둘이 같이 주먹을 쥐고 팔을 크로스하며 “레이!” “루이!” 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힘이 생겨요.

루이가 자기 이름을 알기 시작한 나이부터는 부모님께서 기사나 인터뷰 등의 자료에 아이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반대하셔요. 나중에 성인이 되어 루이가 알게 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조심스럽다고 하시더라구요. 사실 저는 괜찮은데… 아무래도 루이 출산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거쳐오면서 어른들 말씀에 더 귀기울이게 되네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웃음)

별)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볼까 합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40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39세 워킹맘 레이라고 합니다.

별) 오늘은 비오는 일요일이었어요. 저는 쉬는 날이면 밀린 빨래와 청소, 그리고 요리.. 이런 것들을 하거든요. 근데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와서 그런지 부지런히 움직이기보다는, 빗소리 들으면서 원고 정리도 하고 괜히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레이의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일과를 이야기해주신다면?

워킹맘이라서 주말마다 아이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주기 위해서 나들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하는데,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는 예보에 교회에서 하는 추수감사축제에 참석하고 일찍 귀가해서 홈놀이에 홀릭했답니다. 뒹굴뒹굴 놀이, 댄스 파티, 블록 놀이, 책 놀이 등… 그리고 빗소리를 들으며 맛난 립을 먹었네요. 오가는 길에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멋진 풍경도 구경하고요.

별) 그랬군요. 레이의 가족도 궁금해요. 가족이 어떻게 되세요? 간단히 소개도 곁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와 5살 루이,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 집에서 부르는 곰 네 마리 노래가 있어요. 할아버지 곰은 뚱뚱해, 엄마랑 할머니 곰은 날씬해, 아기 곰은 너무 귀여워~

별) 아, 그렇게 네 가족이군요. 레이는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일까요? 저의 경우, 아직도 엄마에겐 ‘우리 아기’로 불리우고요. 동생이 보는 저는 음, 엄마보다 무서운 누나? 거든요.

루이가 바라보는 저는 아마도, 슈퍼 히어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준다는 이유죠. 그렇지만 제게 짧은 바지나 치마, 조금 파진 옷은 절대 못 입게 하는 걸 보면 루이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고 싶은 것 같기도 해요. 정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면에 부모님께서 보는 저는 아직도 지켜줘야 하는 존재, 보호해야 하는 존재, 도움이 필요한 존재?!

별) 그런가 봐요. 부모님은 제가 몇 살이 되더라도 여전히 아이같이 느끼시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벌써부터 엄마를 보호하려는 든든한 루이가 있다는 점이 저와는 좀 다르군요. (웃음)

이 자그마한 발이 지금은 세상을 딛고 선 루이의 발이다.

루이를 낳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10년지기 친구였던 루이 아빠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을 때, 레이는 출산을 앞둔 시기였잖아요. 레이가 스스로를, 또 뱃속의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한 힘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레이를 루이 엄마로서의 삶으로 인도하고 그 결심을 용기내어 실천할 수 있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루이를 임신했을 때는 교회를 다닌 지 10년이 되었을 때였고, 뱃속의 아이와 결혼 생활을 잘 지켜내고 싶어서 교회에서 결혼을 했어요. 아이의 태명도 믿음이라고 지었지요. 물론 이후에 아이 아빠와 헤어지게 되었지만 루이가 저에게 온 것도. 제가 루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것도 모두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고, 힘들 때는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의 고난을 주신다’는 성경 말씀을 붙들면서, 루이 엄마로서의 삶을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별) 지금 레이의 어머니께서 루이를 함께 돌봐주시잖아요. 가끔 어머니와 그때 이야기를 하시나요? 처음 레이가 루이를 가졌을 때, 또 루이를 낳은 상황에 대해서 알렸을 때 말이에요. 어머니는 그때를 어떻게 회상하시는지 혹시 이야기나눠보신 적 있으신지 궁금해요.

어머니께서는 제가 40세가 넘어서 결혼하기를 바라셨어요. 여자는 결혼하면 자기계발에 한계가 있으니 사회 생활을 마음껏 하고 아주 늦게 결혼해도 괜찮다고 하셨죠.

루이를 임신하게 되어 결혼을 서둘러야 했을 때, 일단은 임신한 딸에 대한 노여움이 크셨고요. 루이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혼자 루이를 낳았다는 사실과 앞으로 모든 책임을 저 혼자 져야한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는 루이 아빠에 대한 노여움이 크셨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그때 할머니 입장에서 루이를 먼저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아직까지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 하세요. 물론 여전히, 가끔 그때의 노여움을 살짝 드러내실 때도 있어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요.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며 많이 나아지셨다고는 해도, 그때 그 감정을 잊기는 어려우신 듯해요.

별) 말씀을 들어보면, 어머니께서 누구보다 레이를 많이 이해해주시고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 혹시 이전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레이가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무용을 전공했어요. 외동딸로 귀하게 자랐지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해도 부모님이 제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철이 없고 이기적인 생각이었죠. 제가 루이의 밝은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엄마가 얼마나 힘든 역할인지 느끼고 있습니다. 루이를 임신하고 결혼을 준비할 때 사실 서운한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때는 이해가 안 됐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때 어머니의 말씀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난 루이보다 내 딸의 삶이 더 중요해. 하나밖에 없는 딸이 지금까지 노력해 온 모든 것을 버리고 산다는 데 어떤 부모가 박수치고 좋다고 하겠니?!!”

아마 저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루이 엄마가 된 후, 그리고 40세를 바라보며 이제 좀 철이 들려나 봅니다. 이제는 루이 아빠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도 이해해 보려고 해요. “내 아들이 싫다고 하는데 부모가 무슨 힘이 있겠니? 미안하다…”

별) 우리 사회는 결혼과 혈연 관계를 필수조건으로 하는, 엄마-아빠-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기본값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잖아요.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나보신 적이 있으세요? 피가 안 섞여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끼리도, 부모자식간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다양한 사례를 접해보지 않아서.. 직접 본 경우 안에서만 말씀드린다면 입양 가족이 있겠고요, 이 경우는 당연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루이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부모님께 면목도 없고 부담을 드리기도 죄송해 미혼모자 보호시설에서 출산과 산후조리를 했어요. 그곳에서는 미혼모가 입양과 양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저처럼 양육을 선택하는 경우는 사실 매우 드물어요. 대부분 입양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친부모가 얼마나 힘든 마음으로 아이의 입양을 선택하는지, 또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입양이 되는지를 보면서, 입양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답니다.

힘들게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 분들은 저를 많이 부러워했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는 양육 미혼모의 삶이 더 힘들다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그분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니까요. 그 애틋한 마음까지 함께 지켜내고자 루이를 더욱 잘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별) 우리 사회에서 ‘가족’을 이야기할 때 레이가 가장 불편을 느끼는 지점은 어느 부분일까요?

엄마, 아빠, 아이 – 이런 구성원의 가족이 아니면 뭔가 특이한, 뭔가 문제가 있는 가족으로 보는 시각이 저에게는 조금 불편한 부분이에요, 아이에게는 어쩌면 상처가 될 수도 있어서 더 안타까워요. 모자 가정이라 솔직히 엄마의 부담이 배가 되긴 하지만, 또 어찌보면 전혀 불편함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죠. 사회에서 아웃사이더 가족으로 보는 시각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별) 우리 사회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교육과 캠페인 그리고 정책이 병행되어야 하구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함께 모든 가족이 사회 정책 안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과 고민이 조금은 해소될 것 같습니다. 유아교육을 비롯하여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이런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는 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별)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요. 최근, 레이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부모님께서 루이를 데리고 외출해 놀아주시는 동안, 친정에서 아무 생각 없이 TV 보다가 낮잠을 잤던 2시간이요. 루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와 함께 있으면 매순간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별) 저는 그날 – 레이가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던 날이요.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들었지만 그런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어요. 이렇게 단단하고 강한 엄마로서의 레이의 마음 속에는 매일매일 해야할 일과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그리고 루이를 생각하면 절대 아프거나 힘들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서른아홉의 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맞아요. 물론 이제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저는 루이에게 아빠 역할까지 해야하는 만능 엄마로서 할 일도 많고 절대 아프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어요. 출산 전에는 노는 것도 좋아하고 나름 저의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은 다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지요.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제 저에게 사치가 되었어요. 제 삶의 중심이 루이라서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요. 나중에 루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루이가 결혼하면 허무함이 클 수도 있다… 그렇게요.

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슬럼프, 우울한 시기, 무기력한 날들.. 레이에게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나요? 한 사람으로서의 레이는 지금 별일 없으신가요?

엄마가 되기 전에는 때로는 제 감정을 앞세워 화도 내보고 마음껏 우울해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된 이후에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조금 더 성숙한 태도로 살게 된 것 같아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발급받고 취업 준비를 하는데 생각처럼 막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도 계속 생각했죠.

“괜찮아, 좋은 곳을 곧 만나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일을 하면서도 마음 다치는 일을 겪거나 억울한 상황에 놓일 때 제일 먼저 심호흡을 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합니다.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아이는 엄마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살아간다.”

어쩌면 우울해질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삶을 살고 있어서 다행히도 큰 슬럼프 없이 5년을 잘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레이는, 다행히 별일 없이 행복하고 감사하게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 사실 5살 사춘기 루이의 땡깡에 가끔 무너지기는 합니다. (웃음)

너무도 사랑스러운 루이(현재 5살, 사춘기)

별) 2020년, 레이에게, 또 레이의 가족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특별한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 번째, 우리 가족 네 식구 모두 건강하고 사이좋게 하루하루 잘 지냈으면 좋겠다!

두 번째,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무사히 재계약 되었으면 좋겠다!!

세 번째, 괌 가족 여행 지원에 선정되었으면 좋겠다!! (루이의 첫 해외여행이 될지도!)

별) 레이의 세 가지 소원에 저도 기도를 보탤게요. 꼭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말로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으로 사는 것이 별일이 아닌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다양한 모습의 가족 모두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서 겪는 많은 일들로 마음에 상처를 받아도 가족의 품에서 따뜻하게 위로받고 힐링할 수 있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다한 인터뷰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레이.

우리 모두가 별일없이산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아요, 우리.

사랑합니다. 두 사람.

#별별인터뷰 #김선호 #꼬미 #느루 #해방

얼마 전, 공동체주택으로 입주한 선호에게 근황과 함께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꼬미는 선호에게 유일한 가족이자 선호의 힘든 시기를 지킨 고마운 생명체이다. 매력적인 마스크의 꼬미, 그리고 지난 11월, 별일없이산다 부스에 홀연히 나타나 “2천만원이 없어서 원가족이랑 산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고 간 선호는 이제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오키] 꼬미는 적응을 잘하고 있어요? 발치에서 자던 꼬미가 선호 님 곁에 꼭 붙어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사 후 꼬미의 안위를 걱정했어요.

[선호]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라 아무래도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긴 해요. 집근처 수의사분에게 어제 이사왔다고 하니까 한숨을 푹 쉬시더라고요. 며칠 옆에 붙어서 자더니 이제는 침대 옆 스크래쳐에서 자고 있어요. (참고설명: 기분 좋은 표정임)

[오키] 오, 그래도 이사한 지 며칠 안 된 것 치고는 무척 고무적이군요. 총 몇 분이 거주하시는 거예요? 꼭 사람만 말하는 건 아니구요. 함께 사는 생명체..?

[선호] 인간 네 명에 고양이 두 마리입니다. 

[오키] 이사는 무사히 마친 거예요?

[선호] 오늘까지 해서 짐을 다 옮겼어요. 수납공간이 모자라서 선반이나 책장을 더 구입할까 싶어요.

[오키] 어때요? 구성원들과는요?

[선호] 동거인이 제가 입주한 조합의 활동가인데요. 다음 주에 환영회 같은 걸 하려나 봐요. 정기회의도 있다고 하고요.

[오키] 오, 회의? 정기적으로 뭐가 있나보네요. 공동체주택.. 어쨌거나 굉장히 빠르게 결정하고 이사하신 케이스라 아직까지는 뭔가 그 입주 전후의 느낌을 이야기하긴 좀 그렇겠어요. 원가족으로부터의 분리를 실천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선호] 평생동안 집에서 느끼는 이 불안함에 대해서 고민해 왔어요. 공간 분리는 십대때부터 해오던 거지만 짐을 꾸리는게 기분이 좋지는 않죠. 남들은 흔히 안 하는 이동을 해야하는거 같아서. 그래도 제가 2016년에 잠깐 혼자 살때가 있었는데 그때보다는 훨씬 안정적이예요. 그때는 혼자 있어도 외롭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걸 나누고 또 스스로 보듬을 힘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집안일도 그때보다 잘 하기도 하고.

[오키] 부모님은 별 말씀 없으셨어요? 이렇게 갑자기 나가서 살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  

[선호] 여름쯤에 가정폭력 생존자로 기금에 선정되서 독립하게 될 거라고 모부 두 분께 직접 얘기드린 적이 있어요. 아버지는 제가 너무 고통받고 살았다는 걸 아시고 제가 잘못되는 걸 가장 걱정하는 분이라 알았다고 그렇게 하라고 하셨구요. 어머니는 왜 또 나가냐고, 그래 너는 너 편한대로 살라고 계속 투덜거리시고 하라 마라 얘기가 없으셨어요. 사실 어머니는 저한테 의지하는 게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긴 해요. 집에서 말 통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오키] 마음이 편하진 않았겠네요.

[선호] 사실 이번에 이사 나오면서 얘기를 제대로 안 했어요. 이사 일정이 급하기도 했고, 말한다고해도 어떻게 반응을 하실지 아니까 또 그 상황을 대면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집이 비어있는 시간에 이동했어요. 솔직히 아직 분리한 느낌은 안 들어요. 모부가 지어준 이름이 아직 실명으로 쓰이고 있어서.

[오키] 공동체주거라고 해도 본가에 살던 때에 비해서 이제 주거비용이 더 지출되겠어요.

[선호] 현재까지는 청년수당으로 생활비를 그럭저럭 충당했는데 그게 2월이면 종료되니까요. 그전에 일을 구해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네요. 동시에 청소년 상담사 자격 준비 중인데 정말 죽겠네요.

[오키] 그와중에 공부라니. 근데 저는 힘들어도 꼭 완주하시기를 추천드려요. 참, 동네는 어때요? 적이 없는 곳이라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그랬는데. 분위기는요?

[선호] 제가 길치라 길을 많이 헤매다보니 벌써 집 주변을 거의 돌아봤는데, 여긴 초등학교 근처라 좀더 사람사는 동네 같아요. 본가는 청년은 많아도 온통 술집 뿐이거든요. 여기가 본가인 서울 고척돔 근처예요.

[오키] 개명계획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정말 하실 예정?

[선호] 개명은 10대 때부터 생각하던 거였어요. 누가 부르는 제 이름을 들을 때마다 저는 그게 정말 제 이름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개명은 한글로 할 거라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데 그냥 좀 고민하고 있어요.

[오키] 아. 뜻을 고민하시는 구나. 김선호, 제 생각엔 선우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건 정말 그냥 제 생각. 

[선호] 아, 그냥 어감으로 지었어요. 여러 후보군이 있었는데 선호로. 이제 언제 개명할지를 결정하면 될 거 같아요. 받침이 많은 이름으로 살았어서.

[오키] 선호 좋아요. 그 이름이 이제 익숙해서 저는.

[선호] 저도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오키] 이름이 바뀐다는 건 좀 더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는 분도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어서 개명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준다는 것. 뭔가 큰 의미가 있어보여요, 삶에. 인생에. 이제 선호라는 이름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선호] 귀엽고 재밌는 사람으로 살고싶다고 생각해요. 단어의 느낌이 생동감이 있잖아요. 가끔 너무 힘들땐 무생물이 된 느낌이 들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싶고 움직이고 싶지도 않고. 오늘이 그랬는데, 움직이니까 나아지더라고요. 움직이면서 사람들도 모으고, 너무 들어주지만 말고 내 이야기도 좀 하고,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요. 일상을 되찾고 싶어요. 너무 오래 생각하고 풍경을 쳐다만 보지 않고 참여하고 바꾸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오키] 우리, 느루라는 친구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두 분은 어떻게 처음 알게 된 거예요?

[선호] 예전부터 알던 친구는 아니고, 페이스북에 탈가정 이야기를 공개로 올리던 분이었는데 제가 궁금해서 친추를 했어요.

[선호] 느루랑 주고 받았던 페북 메시지네요. 2017년 11월. 저렇게 저도 탈가정 했다 어쨌다 얘기를 나누고 보니 행사에서 자꾸 마주치더라고요. 그러다 차별금지법연대에서 12월에 행진을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만난 거죠. 그날 밥 먹고 카페 가서 이야기하면서 같이 활동하자고 했어요.

[오키] 아, 두 분 같이 활동하신 거군요. 어느 단체에서 활동하셨어요?

[선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트랜스인권팀 공동팀장이었어요. 둘이.

[오키] 아하.

[선호] 팀이 TF체제로 시작하는 단계라 팀장을 정해야 했는데, 저는 직장인이기도 했고 부담이 되서 느루한테 같이 하자고 했죠. 이미 10대 때부터 앰네스티에서 활동해왔고 3개 국어가 되던 친구였어요. 주도적이고 발이 넓어 활동단체가 많았어요. 작년엔 매달 만났고요.

[오키] 이야기가 힘들 땐 언제든 멈추셔도 돼요.

[선호] 느루는 후천적인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다녔어요. 지난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때 혐오세력의 폭력상황들로 너무 안 좋아서, 조직위도 아니었는데 안전 감시를 하느라 느루를 챙겨주지 못했는데 그 난리통에 휠체어로 행진을 완주했더라고요. 비장애인도 힘든 상황이었던 터라 저는 느루가 당연히 어디서 쉴 줄로만 알았는데…  행진 완주하고 지쳐서 집에 가는데 느루가 하는 전화를 못 받았어요. 두고두고 후회가 돼요. 느루 얘기는 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오키] 친구의 의미를 다시 알게 해 준 친구였겠어요.

[선호] 크리스도 느루도 둘다 너무 착한 사람들이라. 미화하는 게 아니라 참 다정한 사람들이어서요, 오래 가네요. 올해 인천퀴퍼 조직위원회의 부탁을 받아서 추모사를 읽었는데요, 이제와서 추모사의 무게를 실감하고 못 이겨하고 있어요.

[오키] 추모 부스 운영도 하셨었죠?

[선호] 네. 인천퀴퍼에서 부스 열기 전 주에 용기 내서 느루와 어머니를 뵈었어요. 올해 어딘가 참여하거나 담당해야 할때마다 느루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친구 볼때마다 신경쓰였던 게 저와 주어진 조건이 너무 비슷했거든요. 청소년기에 탈가정했고, 논바이너리에, 해방촌에서 십대를 보내고 있다는 게 특히 더 그렇게 느끼게 했어요. 느루가 해방촌 빈집(주거공동체)에 산다는 건 느루가 떠나기 몇 달 전에 안 거였어요. 장례가 끝나고 곧 추석이었는데 그 동네 다시 가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혼자 해방촌 가서 동네 구경을 했어요. 제가 자살 시도를 세번 하고, 친구가 두 명 떠나고, 활동도 여러 사정으로 그만두고나니 괴롭더라도 저에게 집중해야만 되겠더라고요.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오키] 한창 선호님이 카톡 탈퇴와 재가입을 반복하던 즈음에는 정말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선호 님의 자립이 지속적인 삶으로 안착하기를 기대하고 바라요. 꼬미도 그 집에서 평안하면 좋겠구요.

앞으로 선호님이 이루게 될 가족에 대해, 로망을 듬뿍듬뿍 잔뜩잔뜩 담아서 그려 보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선호] 가족단위는 언제나 꼬미와 저 둘일것 같고 여유 공간에 대한 생각을 늘 하는데, 십대때부터도 늘 방 하나 정도 더 있어서 누구든 와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늘 떠나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충족되지 못했으니까.) 

이제는 그 여유 공간에 비인간과 인간을 함께 생각하고 있고, 유기동물 몇 마리 더 입양하고 싶어요. 특히 장애를 가지거나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입양이 잘 안 되니까 그런 아이들. 현재 공간에 입주하면서 여기 조합 활동가에게 저도 이런 주거 공동체 꾸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했어요. 제가 심리검사 척도에도 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나오더라고요. 혼자로도 살아보고, 내 의사와 상관 없이 외롭게 지낸 기간도 기니까, 이제는 퀴어이거나 페미니스트이거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과 느슨하게 공동체를 맺고 싶어요. 엄청 북적한 관계망이 아니라, 어울릴 중간 지대가 있으면서도 퍼스널이 존중되는 대안적 한국문화를 지향해요. 최종적으로는 퀴어랑 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성별은 상관없이 배려심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오키] 그렇군요.

[선호] 저는 장기기증을 늘 생각하는데, 이게 원가족의 최종 승인이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아플 때나 의식이 없을 때 대신할 친구들이 대리인이 되어주면 좋겠다 생각해요. 그러니까 단순히 친밀한 게 아니라 저의 생애를 알고 저와 지속적으로 관계맺는 친구들에게 제도상으로 지원을 해주거나 비상시 결정 권한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중장년기에는 계절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천천히 늙어가고 싶고요.

[오키] 그렇게 될 거예요.

10월, 해방촌,김선호 ⓒ오키

사실 김선호와는 인터뷰를 위해 이미 한 차례 만났었다. 그때 우리는 해방촌 인근의 한 비건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해방촌은 김선호가 처음으로 탈가정해 한동안 머물렀던 곳일뿐만 아니라 느루가 살던 빈집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꼬미와 꼭 닮은 고양이 인형을 보여준 김선호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인형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정작 그날 우리는 느루의 이야기도, 가족의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12월 3일 행사 이후에 다시 나눈 이야기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은, 그제서야 우리가 사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좀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나절에 걸쳐 진행됐던 해방촌에서의 첫 인터뷰는 사진으로만 남았지만, 그것도 괜찮다. 김선호는 그날 내가 찍은 사진을 꽤 마음에 들어했다. 나도 선호라는 이름이 꽤 익숙해졌다. 우리는 꽤 괜찮다. 지금. 

#별별인터뷰 #지지고볶고 #유나

190918 @회기역 오리

원두 says

‘가족’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4명의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맛난 밥을 먹고, 하하호호하며 그 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공익광고가 주입한 이미지일 뿐,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휴. 오히려 공익광고가 주입한 이미지는 찰나의 순간만일지도. 하지만 그 또한 가족, 아니 그것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지만 답답하고 밉고, 그치만 가족이라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는 유나의 지지고 볶는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유나 소개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서로의 심리적/물리적 거리의 존중과 따듯함이 유지되는 관계에서 가족이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산책을 좋아합니다.

OX퀴즈

원두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본인이 생각하는 가족은 어떤 형태인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아이스브레이킹이 있어. OX로 3초 안에 대답해야 돼. 해볼게.

나를 어렸을 적에 버리고 간 엄마, 근데 내가 20살 되던 해에 나타났다. 그 엄마는 가족인가, 아닌가?

유나

X

원두

왜 X야?

유나

낳기만 하면 가족인가

원두

그럼 그 엄마를 대신해서 나를 계속 키워준 새언니-

유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패널 듦) O

원두

(웃음) 엄청 빠르네. 키워 주었기 때문에 가족이야?

유나

난 약간 그런 거 같애*. 혈연보다는 정이나 그 안에 있는 공동체성 같은 것에 기반하는 느낌? 사실 생물학적으로 낳아주는 거는, 그것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혈연적인 건 가족의 시작이 되는 거고 가족은 관계를 하면서 같이 만들어나가는 거지, 딱 정해져 있는 게 될 수 없다는 느낌?

*화자의 말투와 습관을 살려 적은 부분입니다.

원두

그다음 질문도 조금 비슷하긴 한데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할아버지, 가족인가 아닌가?

유나

음….약간 어렵다. 중간.

원두

어 근데 의왼데? 나는 네가 엄마 질문에서 바로 X라고 해서 친할아버지도 아무 유대가 없으니까…

유나

유대가 없긴 없는데, 오히려 그러니까 더 어려운 것 같아. 싫은 감정도 없으니까. 뭔가 나한테 책임감을 묻거나 할 소지조차 없으니까.

대답하다 보니까 내 안에 가족에 대한 바운더리가 생물학적인 가족이 있고, 그거 외에 다른 가족이 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생물학적인 것만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이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가족들이 있을 수 있다고 열어놓고 있는? 그런 상태 인 것 같은…

원두

매주 금요일마다 나에게 파전을 구워주는 이웃집 아줌마, 가족인가 아닌가?

유나

이거는 내가 그 아줌마를  얼마나 친밀하게 느끼는지에 따라 다른 거 같아.

원두

만약에 친밀하게 느낀다면 가족에도 넣을 수 있다?

유나

그니까 그 사람이 나에게 파전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랑 나랑 파전을 나눠 먹는 시간 동안 어떤 교류가 있고 얘기가 있고 그걸로 어느 정도 이상의 유대감이 있는 상태면은 나는 가족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원두

마지막은 더 파격적이야.

엄마가 아플 동안 그 유년 시절 항상 나랑 함께하며 항상 나를 위로해준 피카츄 인형(웃음) 가족인가, 아닌가?

유나

나는 가족인 것 같은데(웃음)

원두

아, 가족인 것 같아? 나 실제로 있었거든. 피카츄 인형이 있었어(웃음)

유나

으응~

원두

오히려 가족이다?

유나

(웃음) 피카츄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느낄 수 있지.

당신의 가족은 몇명입니까?

원두

그러면 인터뷰하기에 앞서, 지금 상태의 유나가 생각하는 유나의 가족은 몇 명입니까?

유나

(고민) 흠. 한 8명 되는 것 같은데?

원두

오, 누구누구 들어가는지 물어봐도 돼?

유나

그냥 우리 가족에, 내 고양이에, 남자친구와 친구를 포함한 명수. 친구도 다는 아니고.

원두

동네 오랜 유년시절을 함께했던…

유나

오랜 유년시절이라기보다는 그냥, 기간이라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대감이 더 가깝다고 느끼는?

원 가족에 대해 간단한 소개 해주세요.

원두

내가 선택할 수없이 이미 태어나서 정해진 가족을 원 가족이라고 하더라? 초반에는 바운더리를 좁혀서 원 가족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어.

가족 소개하면서 생각나는 이것저것.

유나

아무렇게나?

원두

어어, 나한테 이야기 들려주듯이?

유나

우리 가족은 코인이(고양이) 포함 5명인데. 나는 항상 느끼는 게 우리 가족의 성향이 당연히 비슷한 듯 다르고, 근데 그 기본적인 성향이 서로 살갑거나 이렇다기보다 무뚝뚝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가족이라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이들도 날 잘 모르고 나도 이들을 잘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으면서도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가깝기 때문에 또 어쩔 때는 다 안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역설적인… 집단 같은? 느낌이 좀 들고. 아빠 같은 경우는 딱 전형적인 가부장제, 유교사상을 답습한. (웃음) 얼마 전에 내 동생이 절을 하는데 오른손이 위에 갔다느니 왼손이 위에 갔다느니 이런 거를 따지고 있고, 본인이 죽을 때까지 아들이 제사를 지내줬으면 좋겠다는?(웃음)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서…

원두

어, 그런데 본인의 제사를 해주길 바라는구나.

유나

아빠만 그래.

원두

아, 아빠만.

유나

엄마는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라고. (웃음) 아들 고생 시킬 거냐고,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라고. 

원두

그럼 엄마는?

유나

엄마는 헌신하는 엄마상. 그리고 아빠는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억압하는 스타일인데, 그 억압을 뭔가 폭력적이고 폭군적인 방식으로 한다기보다는 모른척하거나 회피하는 식으로 일관하고. 엄마는 아빠가 그런 타입이기 때문에 더 눈치를 보고, 아빠보다 더 빨리 움직여서 아빠가 회피하는 문제들을 본인이 해결한다거나 헌신하면서 가족의 문제들을 봉합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그 과정에서 또 엄마가 받는 스트레스나 감정적인 분출을 할 데가 없으니까 그런 것들이 자식이나 남편한테 갈 때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어.

동생은… 동생이랑 어렸을 때는 되게 싸우면서 자라다가 대학교 지나고 나서부터 집 상황이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공유하면서 거기서 유대를 느낄 때도 있고. 자식으로서 공유하는 어떤 부모의 문제라던가 집안의 분위기라던가 이런 게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성인이 돼서는 묘하게 유대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음- 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리 아빠가 강하게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엄마도 안 그런 편이긴 하지만 그런 태도가 비칠 때도 있기 때문에 나는 내 동생을 편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가 ‘아들’이기 때문에 받는 어떤 것들이 느껴지기도 하고. 가족이라고 했을 때 그 안에 엄청 다양한 알력들이 있는? 개개인의 캐릭터와 이들 한 명 한 명의 위치가 사회적으로서 받는 역할에 대한 중압감 같은 것들이 있잖아. 플러스 나이, 성별 이런 것들 다 복합적으로 섞여가지고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없어지고 유폐되고 이런 느낌?

원두

우리 집처럼 남자라는 사람이 기대치를 바닥에 쳐야 남자, 여자 그런 게 없는데 (웃음)

유나

우리 아빠는 내 동생이 수능 막 못 본 것도 아닌데, 어느 정도 봤었어. 근데 아빠의 기대만큼 못 봤단 말이야. 나는 그 때 우리 아빠 우는 걸 처음 봤어. 본인이 생각한 본인의 아들에 대한 뭔가… 나한텐 그런 게 없거든(웃음) 

원가족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그 이유는?

원두

그럼 가족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유나

나는 명절. 가까운 직계 가족들이야 일상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자주 보는데, 명절 때 보는 가족들은 그렇지는 않잖아. 아빠 포함 친가 가족들이 엄청나게 경직된 분위기에서 유교적인 사상과 가부장적인 거를 몸에 체화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게 너무 쎄기 때문에 만나는 게 힘들었어. 약간 단적으로 말하면 그거야. 나랑 내 동생 어렸을 적 명절 때 갔다가 집에 올라가는 길이잖아? 과일 하나만 싸주면서 가는 길에 우리 아빠 먹이라고. 우리 아빠’만’ 먹이라고, 그런 식? 그 정도로 본인 아들밖에 모르는..

원두

근데 손자, 남자 동생도 있었잖아. 그런 거 상관 없이?

유나

본인 아들이 1위고, 그다음이 내 동생이고, 엄마랑 나는 아예 밖에..

명절이 생각나는 게, 지금 내가 커서는 그들이 분노의 대상이라도 되는데, 어렸을 때는 나랑 그들이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여있으면은 내가 이들을 미워해서도 안된다는 그런 게 은연 중에 있으니까 내가 이 사람들을 미워하는 거 자체가 잘못을 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이 사람이 너무 밉고 무서워도 생각해보면 ‘이 사람은 우리 아빠의 가족인데 내가 아빠의 가족을 미워해도 돼?’ 약간 이런 생각이 어렸을 때 드는 거야. 

그들 중에도 나에게 더 적대적인 사람이 있고, 신경 안쓰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그중에서도 잘해줬- 잘해준다기보다는 그래도 살갑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쨌든 간에 그들 모두가 다 우리 엄마한테 명절 때 가면은 일 시키고 안 좋게 대하는 걸 보니까 우리 엄마한테 안 좋게 대하는 사람을 내가 왜 좋아하겠어. 그러니까 같이 있기 싫으니까 거의 쪽방에만 있고. 다른 친구들은 어렸을 때 명절 쉰다고 좋아하고 할머니 집에 간다고 좋아하는데 나는 그런 게 너무 이해가 안 되고 신기했어. ‘명절이 좋을 수가 있구나.’ 그런 거? 이름으로만 가족이라고 얽힌 거지. 그 가족이라는 게 나한테는 어렸을 때 되게 족쇄처럼 느껴졌었어. 왜냐면은 사람들은 ‘가족’ 하면은 방송에서 다루는 딱 이상적인 상들이 있잖아. 화목하게 지내고, 잘 정돈된 식탁에서 항상 저녁을 먹으면서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그 범주에 벗어나 있다고 느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이상적인 가족의 상을 지켜야 한다거나 혹은 그거를 욕하면 안 된다고 나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 같애.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는 거 자체도 마음이 되게 불편했었던?

원두

괜히 자책하게 되고.

유나

어어. 내가 가족을 미워해도 돼? 내가 가족을 왜 미워하고 있지? 이런 생각들 때문에 어렸을 때는 좀 힘들었었던 거 같애. 지금은 뭐, 그냥 화를 내고 말지 (웃음)

원두

그럼 족쇄같이 느꼈던 느낌을 벗어나게 된 시기는 언제쯤이야?

유나

성인이 되면서 점차 그랬던 거 같애. 어렸을 때는 내가 가고 싶건 말건 부모님 따라 무조건 가야 하고, 그 공간의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하니까 어렸을 때는 ‘무섭다’ 이런 거였고. 그게 중고등학생 되면서 ‘화’랑 비슷한 감정으로 바뀌었고. 그 감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신기한 감정이었어. 어쨌든 명절이라 해봤자 2번에서 많으면 3-4번 이렇게밖에 안 만나는 사람들한테 그런 감정을 가진다는 거 자체도. 그렇게 답답했으면은 집을 뛰쳐나와서 다른 데 있었으면 됐는데, 그때는 그 생각도 못 했어. 그리고 우리 엄마가 집에 혼자 있을 생각을 하면은 더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거야. 

고모가 우리 엄마를 내가 항상 너무 이해 안 되는 걸로 못살게 구는데, 어떤 명절에는 한 번 약간 도를 넘었었어. 뭔지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래서 우리 엄마가 꾹 참고 서 있는 게 보이는 거야. 내가 그걸 보고 너무 열이 받는 거야. 엄마 왜 듣고 서있냐고, 엄마가 바보냐고, 나랑 지금 나가자고 나가서 내려가자고. 여기서 왜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대꾸도 안 하고 가만히 서있는 거야. 고모들은 놀라서 나를 쳐다보고. 열이 받아가지고 가방을 싸서 나만 나왔어. 근데 난 좀 놀랐던 게, 엄마가 그때 가만히 있어서 아무도 나를 쫓아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열받아서 혼자 집에 가려고 짐을 싸 들고 나온 건데 엄마랑 아빠가 짐을 싸 들고 나를 쫓아오는 거야. (웃음) 버스 정류장에서 서있다가 되게 당황스러웠고. 나는 엄마는 나와도 아빠는 안 나올 줄 알았거든? 근데 아빠도 되게 뻘쭘하게 “올라가자” 이러는 거야. 그렇게 올라온 이후로 엄마한테 직접적으로 전화를 해서 뭐라고 한다거나 이런 건 끊겼어. 그 날이 족쇄를 벗어나게 된 계기였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크면서 내가 그들을 마음속에서 가족으로 안 생각했어. 분리시켰어. 어렸을 때는 그래도 내가 우리 아빠 가족이고 내 가족이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괴로워했었는데 지금은 마음에서 아예 단절을 시켰단 말야. 나는 그런 관계는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내가 남보다 못한 사람들한테 그리고 남보다 못하게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한테 왜 가족으로서의 도리라는 허상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야. 클수록 점점 그런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원두

제일 무섭고 그런 기억이 떠올랐으니까 반대로 좋거나 긍정적인 기억은 있어?

유나

근데 좋은 거는 딱히 확 어떤 장면이 떠오르진 않는 거 같애. 없다기보다는 좋은 거는 생각보다 되게 소소한 것들? 그런 것 있잖아. 생일이라고 해서 밥 다 같이 먹고 오면서 서로 농담 따먹기 한다던가, 내가 어딜 가자 해서 우연하게 들른 데가 좋아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지나간다던가 그런 일들? 일상적인 것들에서 잠깐잠깐씩.

원두

나한테 같은 질문을 했다 해도 나도 뭐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를 거 같긴 해. 왜 항상 안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오를까?

유나

안 좋은 기억은 뭔가 강렬하고. (웃음)

원두

맞아. 그리고 방금 얘기하면서 떠올랐는데 가족이 그런 존재이기도 한 것 같애. 그러니까 좋으려고 있던 게 아니고, 원래 있었고, 당연한 건 아니지만 당연하게 느껴지고 일상적이고 하다 보니까 좋은 기억은 그냥 흘려보내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해. 

유나

이벤트처럼 좋은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그들까지 내 일상의 영역이잖아. 일상은 뭔가 특별하게 좋다고 느끼기가 어려우니까.

원두

난 들으면서 그것도 좀 새롭긴 했어. ‘무섭다’라는 감정이. 나는 원래 겁이 많아서 무서움을 잘 느끼는데도 친척이든 가족이든 무서웠던 적은 딱히 없거든. 어렸을 때 있었을 순 있지만 지금까지 생각날 정도의 강렬한 무서움은 없는데, 너는 얘기할 때 무서웠다고 얘기하니까 혈연, 가족이라고 하는 사람들한테서 무서움을 느낀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새롭긴 했어.

유나

왜냐면은 친가 가족들 중에서 고모 다섯에 아들이 아빠 하나인데, 집안의 지원이라던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아빠한테 다 쏟아부었지. 그래서 고모들도 보면 아빠에 대한 애증이 있어. 부모들이 자기 동생을 대하는 걸 봤기 때문에 그들도 그걸 답습해서 집안에 아들이 없으면 큰일 나고 무시당하고, 아들은 큰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아빠를 그런 식으로 대하긴 해. 애지중지 대한 다기보다 그래도 아들이니까 이런 게 있어. 어쨌든 그런 걸 내면화 한 사람들이니까 엄마와 나에게는 기본적으로 싸늘하게 대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싸늘하게 대했던 고모는 거의 나를 싫어한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인 것 같아. 나를 보는 눈빛에서 기본적으로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안 좋아하는지는 느낄 수 있잖아? 나를 항상 봤을 때 싸늘하게 봤었고, 나에게 말을 걸 때도 면박을 주는 식의 말밖에 안 했어. 너는 이런 것도 안 하니? 너는 인사성도 없네? 그러니까 나는 그냥 항상 그 집에 가면 그 사람을 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 너무 피하다 보니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한 거야. 내가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어떤 날은 그 사람이 방에서 화장을 하고 있는데 내가 들여다봤어.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됐던 것 같아. 맨날 내가 너무 피해 다녀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궁금해가지고 봤다? 아직도 생각이 나. 그 화장하는 거울 안으로 눈이 탁 마주친 거야. 근데 나는 원래 무서워했으니까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도망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 도망을 갔어. 도망을 가다가 옥상의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막 뛰어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쫓아왔어. 화장하다 말고. 진짜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때렸어. 쳐다봤다고 열이 받았나 봐, 본인은. 나는 엉엉 울고. 젤 많이 운 거는 우리 엄마였지. 그때 나는 어려서 상황을 잘 이해 못하고 운 건데, 엄마는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겠어. 솔직히 그 어린애가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건 진짜 싫어하기 때문에 한 거잖아. 그때는 그런 거를 ‘무섭다’ 이렇게 생각했어.

원두

참 신기하다. 그렇게 미워할 수 있다는 게.

유나

어렸을 때는 진짜 그게 억울했다. 그 감정의 기저에 그것도 있었던 것 같애. 그걸 이해해보려고 했기 때문에? 어렸었던 내가 뭐가 그렇게 싫었을까? 이거를 내가 계속 생각을 해보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자체도 안 하고 그런 생각에 감정을 낭비하는 것도 너무 아깝고.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느라 감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걸 겪으면서 내 안에서 그런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에 대해서 스스로 가지치기를 했던 거 같애. 

원두

참 친가는, 우리 나이, 우리 아빠 세대 때는 다 그런가 봐. 갑자기 친할머니가 우리 언니 뺨 때렸었다고 들었던 얘기가 생각나. 나는 보진 않았는데. 언니가 초등학생 때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거야. 그거 때문에 막 아프고 놀래가지고 난리를 치면서 운 거야. 근데 시끄럽다고 조용하라고 뺨 때렸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엄청 속상해하면서 ‘애가 그럴 수도 있지.’ 했었던 기억이 나.

근데 나는 최근에서야 ‘아, 할머니가 잘못했었네.’ 깨달았어. 비슷하게 어렸을 때 아빠한테 우리 가족은 화목하다고 세뇌를 많이 당했다는 걸 커서 깨달았어.

유나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거기서 벗어난 생각을 못 했지? 그게 왜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지?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걸 가까이 보고 생활하고, 나랑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관계에 있으니까 나한테 있어서는 당연한 거잖아. 

원두

왜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서 가정 설문조사? 하잖아. 아빠 무슨 직업인지, 이런 거 조사하는 거.

유나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 그런 걸 자기들이 알아서 뭐 하게.

원두

(웃음) 맞아. 근데 아마 그게 주관식 문항이 있었을걸? 가족 분위기 어떤지 쓰라고? 그러면 나는 항상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가 싸우지도 않고 화목하다.’라고 써서 냈던 기억이 있어. 떠올려보면 우리 아빠는 그 당시에도 툭 하면 엄마한테 화를 내고 우리한테 소리 지르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 썼다는 게 너무 놀라운 거야. 근데 그때 항상 아빠가 ‘우린 싸우지도 않고 얼마나 화목하냐’ 이런 말을 많이 했었거든. 그래서 ‘아 그렇구나, 우리 가족은’ 이러면서 썼는데, 커서 생각해보니까 ‘왜 그런 아빠를 보고 화목하다고 생각했지?’ 의문이 들었어. 그때는 엄마는 항상 참고, 아빠가 일방적으로 화내서 싸움이 안되니까 싸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나봐. 참 신기하지. 어렸을 때 화목하다고 생각한 게 세뇌당한 거였구나.

유나

어렸을 때는 가족이라는 단어 때문에 뭐가 있는 거 같아.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 가정은 화목해야 하고, 할머니 하면 전형적으로 느껴지는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여야 하고.

원두

어렸을 때는 가족이 더 절대적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벗어나서 살 수가 없으니까.

유나

그런 것도 있는 거 같애.

원가족 내에서 가장 편한/불편한 사람과 그 이유는?

원두

그러면 원 가족 내에서, 적절한 단어를 잘 모르겠는데, 가장 친하다고 해야 할지 편하다고 해야 할지 그런 사람은 누구야?

유나

네코 (고양이 이름)

원두

(웃음) 원 가족 내에서

유나

아, 그래? (웃음) 동생?

원두

왜?

유나

친한 편이라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 동생도 나도 성격이 약간 친해도 서로 공유하는 선이 막역한 게 아니라 ‘누나랑 나는 친하지만 여기까지’ 그런 게 있어. 기본적으로 서로 ‘뭘 하든지 알아서 하겠지’ 약간 이런 게 있는 편이라서 그런 면이 젤 편한 거 같애. 서로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게. 나이도 비슷하고.

원두

그럼 반대로 제일…

유나

(말도 끝나기 전에) 아빠. 아빠.

원두

아빠(웃음). 이유는?

유나

일단 어느 순간부터 아빠랑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애. 너무 자기가 아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을 해서 상대방이 반박을 하거나 말이 안된다고 얘기를 했을 때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고. 기본적으로 반응이 열려있어야지 오고 가면서 이해를 하는데, 너는 모른다고 치부를 하거나 갑자기 화를 낸다거나 이런 식이 되니까. 

어느 날인가 가족들이 외식을 하러 가는데 나랑 아빠랑 같이 걷게 된 거야. 같이 걷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너무 모르겠는 거야. 그런 어색함을 느끼고 나서 ‘아, 아빠랑 있는데도 이렇게 어색한 사이가 됐구나.’를 그때 체감했던 거 같애.

이전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잘 맞지 않았지만 가족을 이해하게 된 순간/측면이 있다면?

원두

그러면 가족임에도 진짜 이해 안 가, 왜 그러지? 이런 부분 있잖아.

유나

예를 들어?

원두

나 같으면, 우리 아빠의 ‘나누는 걸 싫어하는 행동’이 너무 이해가 안 되고 싫었어. 어떤 식이냐면 집에 포도를 엄청 많이 사놓은 거야. 아빠는 쿠팡 세일로 쇼핑하는 거 좋아하니까. 너무 많기도 하고 하나 정도 회사 사람들이랑 나눠먹고 싶으니까 ‘나 이거 회사 가져간다’라고 하면 엄청 화를 내는 거야. 집에 거를 왜 가져가냐면서.

유나

네가 가져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가져가서 다른 사람들 주는 게 싫은 거야?

원두

그런 거 같애. 집에서 먹으면 아빠도 같이 먹을 수 있는데, 그걸 왜…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많은데, 바로 떠오르는 게 이거네.

유나

우리 아빠는 버럭 해, 버럭. ‘이러이러해서 저렇다’ 설명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나는 그가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인지도 모르다가 버럭하는 걸 듣는 거지. 예를 들어 별것도 아니야. 화장실에 팬을 켜 놓고 나왔어. 평상시에 나는 샤워를 하고 그걸 보통 켜놓고 나오고, 내가 새벽에 화장실 자주 가니까 갔다와서 자기 전에 끈단 말이야. 근데 이제 아빠가 그 타이밍에 깨있었던 거지. 그게 못마땅했던 거야. “너는 저거 밤새도록 켜놓으려고 그러냐!!” 갑자기 이러는 거야. “방금 켰는데.” 이러면 들은 척도 안 해. 이런 면은 엄마 아빠 다 해당되는 건데, 특히 자식들한테는 그들 기분에 따라서 확 표출하는 거? 

원두

그러면 예전에는 진짜 이해가 안 갔는데, 나이가 들거나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해가 갔던 측면이나 순간 같은 게 있어?

유나

딱히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엄마들 뭐 살려고 그러면은 지나치게 가성비 따지고 성분 따지고, 본인들은 안 좋은 거 먹고, 게다가 내가 쓰는 것도 막 못 쓰게 하고 그러잖아. 그게 옛날에는 너무 답답했어. 그런데 지금 보면은, 우리 아빠가 그런 거에 있어서 다부지지 못한 편이고, 그걸 항상 엄마가 수습해왔던 게 본인에게 너무 내면화된 거지. 아껴야지 갑자기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점점 그런 사람이 되고. 우리 엄마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을 텐데. 엊그저께인가 명절 연휴 중에 하루, 같이 나가서 밥먹고 종각에 <반쥴> 카페 있잖아, 거기 갔는데, 거기 고가구들이 되게 많잖아. 근데 엄마가 거기 장식장 안에 향수들을 한참 보는 거야. 우리 집에도 향수 되게 많단 말이야. 집 새로 이사 가면 이런 거 꾸미고 싶고, 자기 이런 거 되게 좋아했고, 인테리어도 되게 좋아해서 우리 집 처음 이사 왔을 때 막 잡지에 있는 인테리어 하는 업체 불러서 가구 맞추고 그랬대. 아빠 몰래. (웃음) 우리 엄마 옛날에 꽃꽂이도 하고 이랬었거든. 그랬는데 그런 것도 다 까먹고. 아무튼 가구들 보면서 “나 어렸을 때 내 친구들이 나 이렇다고 했는데…” 이런 얘길 막 하는 거야. 그런 거 보니까 나는 우리 집안에 있는 우리 엄마로서의 모습만 보는 거지. ‘엄마의 모습을 잘 모르는 거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 

원두

그래서 더 가족인데 서로를 잘 모르나 봐. 그치.

유나

그런 거 같애. 나는 약간 스스로를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니까, 특히 가족들한테는 더 그러니까. 뭐 문제없는 것처럼 항상 굴고. 뭐 물어보면 다 잘되고 있다, 괜찮다,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할게’라는 말 되게 많이 한단 말야. 내가 그러니까 가족들도 나만큼이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애.

가족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위치에 있는 사람인가요?

원두

지금까지는 가족에 대해서만 물었고, 그 원 가족 속에서 너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애? 어떤 사람이라는 게 너무 폭이 넓어서 어려울 수 있는데.

유나

뭔가, 가족들이 보는 나의 모습?

원두

근데 가족들이 보는 너의 모습은 가족들한테 물어봐야 하니까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네가 생각했을 때 너는 가족에서 어떤 역할? 어떤 포지셔닝?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최약체야, 우리 가족에서. (웃음) 왜냐면 많이 말했지만, 언니가 제일 서열 1위이고 그다음이 아빤데. 아빠는 원래 자신의 감정을 엄마한테 풀다가 엄마가 아픈 뒤로는 못 풀고, 근데 동생한테 풀자니 동생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 그러니까 나밖에 없는 거야. 근데 내가 그걸 잘 받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생각하게 됐어. 나는 오히려 사춘기 때는 되게 조용하게 지냈는데 사회 초년생 때 아빠랑 제일 많이 부딪혔어. 근데 엄마나 언니나 그런 불화가 있을 때마다 아빠한테는 참으라고는 자기들도 말 못 하니까 항상 나한테 참으라고 했어. 근데 참으라고 하는 게 아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참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너는 뭘 또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했어. 그래서 실제로 내가 예민할 수 있는데 예민하다는 걸 인정하기가 싫은 거야. 그런 식으로 예민하다고 규정졌어서. 그래서 가족이 별문제가 없어도 별로 안 좋아. 나는 그런 위치였던 거 같애, 내가 생각했을 때. 권력구조의 최약체였어. (웃음)

유나

나는 나만 ‘우리 가족에서 특별히 어떤 위치다.’ 그런 것보다도, 약간 우리 가족은 다들 섬처럼 조금씩 떨어져 있는 느낌인데 내가 좀 더 그런 느낌? 더 거리두기하고 있는 느낌?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나를 보면서 되게 무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애. 가족들 사이에서 나를 보면 약간 냉소적으로 보면 관찰자 같은 느낌도 들기도 하고. 나 스스로가 다 그냥 뭔가 누군가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편이니까.

원두

경험 때문에 점점 그렇게 변한 걸 수도 있고 그게 너한테 또 편한 거지? 어때?

유나

편한 것도 있고, 또 내심으로는 신경 쓰이는 게 있기도 하다? 일이나 트러블이나 가족들 사이에서 많을 수밖에 없기도 하잖아. 조율해야 될 게 그렇게 많은 관계니까. 그럴 때마다 내가 개입을 하는 게 나도 어느 순간 버겁고 힘든 게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은 그냥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애.

가족이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은 무엇인가요?

원두

그럼 원 가족을 넘어서서 네가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가족이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은 뭐가 있어? 이런 조건 정도는 충족해야 가족이 될 수 있다. 이런 거.

유나

결국에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애. 나랑 되게 다를 수 있고 안 맞을 수 있는데, 그거를 서로 어느 정도까지 노력을 해서 맞춰보려하고 서로의 모습을 인정해주려고 하는지?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기본적으로 서로 억압 하지 않으면서, 나는 나고 너는 너인 상태로 있으면서 서로 의지가 잘 될 수 있는 상태가 제일 건강한 거 같다고 느껴지는데. 그렇게 하려면은 서로 애초부터 비슷한 사람이면 그런 과정이 편하게 될 순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거는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얼마나 잘 인정해 줄 수 있고, 그거에 대해 열린 태도를 들을 수 있는지? 그런 것도 중요할 것 같고. 가치관 이런 것도 중요할 것 같고.

원두

물론 딱 맞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열린 태도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 성향? 이런 게 비슷한 사람은 아예 없다곤 할 수 없잖아. 근데 그런 사람을 다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하면 그건 아니잖아. 아, 다 가족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 사람이면?

유나

음…..(생각 중) 모….르겠네? 가족 했을 때 드는 생각?은, 물론 가족도 다 크면 서로 따로 살고 그런 것도 있지만, 약간 주거나 생활을 공유하는 느낌? 이 큰 것 같애. 기본적으로 그런 태도를 지니되 약간 나의 삶의 반경에서 가깝게 있는 사람이 가족으로 느껴질 거 같은? 가족 하면 일상의 범주에 드는 느낌이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그런 태도나 예의를 잘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서로 그런 생활이나 일상의 범주를 잘 공유하고 삶을 같이 나누는? 그런 사람들이 가족으로 느껴질 거 같은?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원가족은 여전히 당신의 가족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원두

그러면 너만의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이 생겼다고 했을 때, 지금의 원 가족은 그 가족에 들어가, 안 들어가?

유나

들어갈 것 같애

원두

3명 전부 다?

유나

뭐랄까 ,약간… 애증의 관계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고르라고 하면 내가 빼지는 못할 것 같은?

원두

그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봐 온 연민이나 이런 게 작용하는 거야, 아니면 혈연이 그래도 중요하다 이런 거야?

유나

혈연이 중요하다는 건 아닌데. 지금의 가족들은 물론 지지고 볶고 안 좋을 때도 있고, 그런 모습들 중에 여전히 이해 안 되고 나로서는 아마 계속 이해 안 될 모습들도 있긴 하지만, 그게 뭔가 내 마음속에서 가지를 쳐버릴 정도의 타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애증이 존재하는 것 같애. 특히 부모님한테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써는 나한테 애정을 줬고, 그런 걸 봤을 때 이들이 나한테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럴 수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가족을 재구성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를 빼지는 못할 거 같은? 그런 생각? 근데 내가 아예 처음부터 우리 부모님들도 다 타인으로서 만났으면 또 모르지. 어렸을 때부터 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게 큰 것 같애.

원두

그러면 그런 구성권이 있을 때, 원 가족이랑 네코 빼고 3명이 더 있는 거잖아. 가족이 몇 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8명이라고 대답했으니까. 거기에 3명을 더 가족이라고 넣은 거잖아. 남자친구랑 친한 친구 2명이랑. 그럼 그 이유는 뭐야? 가족으로서 생각하게 된 요인?

유나

아까 말한 상호 간의 열린 태도와 애정과 일상의 공유 이런 게 중요하다고 얘기했지만. 그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나의 일상적인 수준에서 감정의 공유나 이런 건 가족보다 더 의지를 많이 하는 거 같애. 슬플 때 부모님 앞에서는 안 울어도 네코 안고 막 울고(웃음) 그런 것처럼. 어떻게 보면 가족이라는 게 오히려 나다울 수 없는 면들도 있잖아. 근데 친구나 네코 같은 경우에는 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고민이 앞서기보다, 더 나를 잘 보여줄 수 있고 내가 나다운 모습 그대로여도 괜찮다는 신뢰를 어느 정도 상호 간에 쌓아온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친구 관계가 어떻게 생각해보면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관계잖아. 그런 것들이 오랜 시간 서로한테 신뢰나 그런 걸로서 쌓여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느낌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그런 것 같애.

원두

궁금한 게 2가지 있는데, 내가 본 너는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일상의 공유를 잘 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꽤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전부 가족인 건 아니잖아. 그중에서 가족만큼 느끼는 친구가 있는 거잖아. 그 차이점은 뭐야?

유나

그들과 같이 지내오면서 형성된 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시간들도 무시는 못 하지만,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내는 거랑 더 많이 이해하고 서로 공유하는 거랑은 또 좀 다른 느낌? 그렇게 따지면 가족들도 엄청 오랫동안 가까이서 본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게 잘 되는 가족이 있고 아닌 가족이 있잖아. 그런 것처럼 나랑 가까운 바운더리 안에서 관계가 무너지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사람이어도 서로 이 정도의 선만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정말 깊이 공유하면서 나누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정말 어렸을 때 알았던 서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잘 지내는 사람이 있고. 그거는 사람마다 다른 거 같아서. 시간보다는 조금 더 깊이나 나다움을 숨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런 게 더 주였던 것 같애.

원두

나머지 질문은 지금 남자친구가 엄청 오래된 건 아닌데도 가족의 범주에 어떻게 들어갔냐 묻고 싶었는데, 방금 말한 거랑 이어지게 꼭 시간이라기보다는 서로 인정하고 나다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거지?

유나

그런 것 같애. 사실 절대적인 시간이 오래된 건 아닌데, 물리적인 환경이 너무 가깝다 보니까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있고. 내가 어떤 거에 대해서 문제를 느끼고 서운함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거에 대해서 바로 인정, 인정이 바로 안돼도 인정하려고 생각해. 내가 “서운하고 기분이 우울해”라고 했을 때, 본인은 억울할 수 있지만 우울한 건 없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인 거잖아.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부정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은 그 감정을 인정한 다음에 그래서 ‘왜 그렇게 느꼈고, 어떻게 하면 될까?’에 대해 되게 진지하게 짚고, 논의하려는 태도를 서로 지키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애. 둘 다. 그게 안되면 서로한테 얘기를 하고. ‘네가 지금 이런 상태인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안 될까?’라는 얘기를 서로 잘 하고. 어쨌든 간에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잘 존중해주려고 하는 편이고, 맞춰가려는 의지가 많이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가까워질 가능성이 더 높게? 있는…

원두

아까 원 가족 얘기하느라 빠졌던 네코에 대해 소개해주면서 너한테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애.

유나

네코는 말을 할 수 없지만, 네코가 나를 선택한 게 아니지만(웃음) 내가 네코를 선택했지만. 네코를 키우면서 항상 그 생각이 드는 것 같애. ‘얘가 없으면은 나는 어떡하지?’ 사실 네코가 당장 병이 든 것도 아니고, 고양이 수명대로라면 그래도 한 십 년 가까이 더 살 수 있을 텐데, 벌써부터 얘가 없는 상황이 아쉽고 걱정이 되고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고 얘가 나한테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내 선택으로 데려온 애지만, 내가 얘한테 많이 의지하고 감정적으로도 많이 위로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애. 

원두

의지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행동을 고양이한테 취할 순 없잖아. 그런데도 의지가 되잖아. 어떤 부분이 의지가 되는 것 같애? 

유나

그 의지라는 건 솔직히 내 일방적인 의지지. 얘는 항상 내가 어떤 상태든 그 상태로 그 자리에 있잖아. 나의 상태에 동요하지 않고, 내가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평상시보다 기분이 유달리 이렇다고 나를 다르게 대하지 않잖아. 그런 거에서 느껴지는 묘한 안정감? 같은 게 있는 것 같애. 고양이도 나를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되게 따뜻할 때도 있고. 

원두

맞아. 그래서 나는 우리집 고양이가 내 앞에서만 나오고 발라당하고 하는 게 되게 뿌듯하면서도 이 귀여움을 아무도 못 본다니 이게 되게 아까워.

유나

나도 나 퇴근하고 오면 네코가 방에서 나온단 말이야. 엄마가 ‘얘 오늘 방에서 처음 나온다’고. 출근하기 전에 아침을 먹이거든? 그러고 나서 나 퇴근하기 전까지 방에서 한 번도 안 나온 거야. 퇴근하면은 이제 오는 거야. 그런 거 보거나, 그냥 고양이들이 편할 때 하는 행동들이 있잖아. 갑자기 앞에서 털썩 눕고. 사소하지만 얘랑 나 사이에 만든 그런 것들 있잖아. 예를 들어서 내가 이불을 들춰서 이렇게 만들어줬을 때 얘는 들어가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던가 그런 것들이 있을 때. 바깥에 놀러나갔다가 다른 고양이한테 쫓겨들어와서 나 볼 때 (웃음)

원두

하하하 귀여워. 지원군 부르는 거잖아.

유나

응(웃음)

원두

어쨌든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원 가족은 뺄 수 없고, 처음에 말했던 8명이 네가 생각하는 가족인 거네.

유나

#별별인터뷰 #시월 #사랑 #믿음 #가족이라는공동체

소개 /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소하게 나누는 일상 그 순간 느껴지는 따뜻함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 이불 속에서 뒹글 거리기, 음악 듣기, 전시 보는걸 좋아합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기분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족 이야기를 할 때도 주로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고. 그러나 시월의 경우는 좀 다르다. 가족에 대한 불만이나 나쁜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기억에는 그렇다.

  • 원두
    • 내가 가진 너와 너의 가족에 대한 인상은 가족이랑 사이가 엄청 좋고, 가족에 대해서 좋게 생각한다는 이미지가 있어.
  • 시월
    • 맞아, 실제로도 그런 편인 것 같아.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맨날 하시는 이야기가 ‘너는 엄마와 아빠를 만난 게 정말 행운이다.’ (웃음)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고, 나도 가족을 생각했을 때 따뜻한 느낌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해.

원가족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 원두
    • 너의 가족에 대해서 소개해주면 좋을 것 같아. 가족 구성원이랑 그 가족 구성원은 어떤 사람인지.
  • 시월
    • 일단 우리 가족은 핵가족으로 엄마, 아빠, 나 이렇게 3명이야. 엄마 아빠 두 분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시다가 소개를 받아서 만나셨대. 얼굴을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고 하시더라고. 아무튼 연애 결혼을 하셨고,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같은 회사에서 결혼하게 되면 한 명은 퇴사하는 분위기여서 엄마가 전업주부로. 아빠는 계속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고. 나는 거의 바로 결혼하자마자 생겼다고 하셨어. 
  • 원두
    • 어떤 캐릭터이신지도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 시월
    •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따뜻한 느낌이 엄청 큰 것 같아. 엄마가 오랫동안 내 삶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잖아. 그래서 사실은 부딪히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부분들을 다 품어줄 만큼 나한테는 되게 큰 사람이고 영향을 많이 주었던 분이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지혜로운 사람. 내 엄마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되게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나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많이 보여주셔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해. 아무래도 전업주부이시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엄마한테는 큰 책임감으로 다가오셨던 것 같아. 아빠는 계속 회사에서 일하셨는데 야근도 많고 일도 적은 편은 아니었거든. 그렇다 보니까 아빠는 아빠의 역할과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도 있는 것 같고.
    • 아빠는… 어렸을 때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서 가족 여행으로 산 올라갔을 때 목말 태워주시고, 그런 기억들. 그런데 조금 나이가 들고 아빠도 진급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바쁜 이미지가 있었어. 가장으로서 이미지. 그리고 꼼꼼하시고. 아무래도 조직 체계에서 일을 오랫동안 하시다 보니까 정리도 되게 잘하시고. 엄마랑은 또 다른 느낌.
  • 원두
    • 엄마랑 아빠랑 다르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이 달라?
  • 시월
    • 아무래도 ‘시간’이었던 것 같아.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눈 시간들. 특히나 그런 시간이 많았던 중고등학생 때 아빠가 엄청 바쁘셨으니까 대화 비중을 생각했을 때 아빠보다는 엄마와 훨씬 많은 대화를 했었어.
  • 원두
    • 아까 엄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배우고 싶은 점이 많다고 했는데, 특히 어떤 부분을 닮고 싶은지도 궁금했어.
  • 시월
    • 큰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라는 생각(웃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내가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고쳤으면 하는 부분도 있고, 나도 반항심에 대들기도 하고 버릇없이 굴기도 하잖아. 그런 과정에서 모나지 않게 엄마가 중재-라고 말하긴 좀 그런데 잘 이끌어주시는 느낌이 항상 있었고. 내가 봤을 때 엄마는 어디에 속해있더라도 항상 빛나는 분. 잘 화합하고 분위기도 잘 만드셔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되게 상식적이신 분인 것 같아. 우리가 사회 생활하거나 일을 할 때 무슨 일이 있으면 사실 중립적으로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 내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하는 게 있고,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곡해해서 생각하기도 하고. 근데 엄마는 그런 걸 상식적으로 잘 판단하시고 보편적으로 생각하시고. 누구 입장에 치우치지 않게끔. 단단하고 현명하셨던 것 같아. 머리가 좋다고 해야 하나. (웃음) 아무튼 그런 부분들을 닮고 싶지.
  • 원두
    • 통찰력도 있으신 것 같다.
  • 시월
    • 맞아 맞아.
  • 원두
    • 내가 너한테 항상 뿌리 깊다는 얘기를 하잖아. 너는 오그라들어하지만(웃음) 그게 어머니의 단단함을 닮아서 그런 건가 봐.
  • 시월
    • (웃음) 그러게. 닮고 싶은 마음에.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하잖아. 그럴 수도 있겠다.
  • 원두
    •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 가족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엄마 이야기는 엄청 많이 하는데 아빠는 거의 등장을 하지 않잖아. 아까 말했던 것처럼 너무 바쁘셔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꼈을 때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나 영향이 되게 희미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 때문인지 내가 상상하는 너희 아빠의 성격은, 물론 만나 뵌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모르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웃음) 엄마가 주도적으로 탁탁탁 하시면 따라가시는 느낌이 드는 거야.
  • 시월
    • 음(웃음) 아빠가 회사에서 일을 많이 하시다 보니까 대화나 교류를 엄마랑 더 많이 해서 그럴 것 같아. 요새는 아빠가 가족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하시지만, 당시에는 그럴만한 여유도 별로 없었고. 되게 잘해주시는데 나를 잘 모르는 느낌. 아빠는 일단 착한 분이셔. 착한 남자?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하면 다 들어주시려고 하는 착한 분.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센스 있는 분은 아니시거든. (웃음) 진짜 사소한 건데,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엄마랑 나는 서로에 대한 취향을 너무 잘 안단 말이야. 그런데 아빠는 모르시는 거지.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달라고 하면 사다 주시는데,
  • 원두
    • 아무거나 사다 주시는구나.
  • 시월
    • 아니 아무거나도 아니고 싫어하는 거로(웃음) 얼마 전에도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다 달라고, 사 올 때 돼지바 사 오지 말라고 얼핏 얘기하셨다는데 돼지바를 사 오셨다는 거야. (웃음) 그래도 무언가 먹고싶다고 하면 꼭 사다 주시는 착한 분이야.
  • 원두
    • 아빠가 너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을 때, 너도 그래? 너는 어때?
  • 시월
    • 그런 것 같아. 아빠를 더 잘 이해하려고 나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어렸을 때 버릇이 사실 그게 쉽지는 않아. 괜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삐딱하게 나가는 것도 있는 것 같고.
  • 원두
    • 아빠와 엄마는 서로를 잘 아시는 것 같아, 어때? 아이스크림을 그렇게 사 오시는 거 보면 잘 모르시나 싶기도 하고(웃음) 네가 볼 땐 어때, 두 분의 관계는?
  • 시월
    • 어떤 가족이든 다 똑같겠지만, 아빠도 엄마도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 엄마가 조금 더 감성적인 부분이 크다 보니까 그게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가족들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들을 위해 항상 뭔가 해주려고 헌신하시는 분이시긴 한 것 같아. 아무래도 서로 다른 부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거에 있어서 충돌은 항상 있지.
    • 세월이 흐르면서 관계의 변화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 아빠도 곧 은퇴하실 텐데 집에 오래 있으실 테고, 그러면 엄마랑 부딪히는 부분들도 있겠지? 아빠도 어떤 면에서는 되게 가정적인 분이셔서 청소하는 거 좋아하시고 습관화되어 있으시고. 그리고 항상 일찍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인데, 엄마는 또 생활 리듬이 조금씩 다를 수 있잖아. 
    • 그래도 엄마가 그런 이야기는 항상 하시거든.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이 있고 정이 많이 쌓이고 신뢰도 많이 쌓이고. 얼마 전에 아빠가 환갑이셨는데, ‘이제는 함께할 시간이 많지는 않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고 하시더라고.

원가족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 원두
    • 가족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 장면, 추억 그런 게 있으면 말해줘도 좋을 것 같아.
  • 시월
    • 음, 기억이라는 게 단편적이어서 장면 장면들이 떠오르는데. 음… 아, 내가 음식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웃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이 그때는 복도식 아파트였어. 걸어가다 보면 창문을 지나친단 말이야. 집으로 가면 창문이 항상 열려있는데, 쓱 보면 엄마가 항상 요리하고 계시는 거지. 어느 날은 새우튀김을 하고 계셨는데 그 소리가 또 (웃음) 지글지글하는 소리랑 새우튀김 냄새랑 엄마가 그걸 하는 모습이랑 그런 게 가끔씩 떠올라.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아빠가 목말태워주시던 기억들이라든지. 또 가족들이랑 여행을 되게 많이 가는 편이었는데, 자동차를 타고 국내 여행을 할 때 두 분이 앞 좌석에 타시고 내가 뒷좌석에 발라당 누워서 차 옆 창문에 발을 대고 보면 하늘이 지나가고 풍경이 바뀌잖아. 그런 풍경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 원두
    • 근데 여행을 가면, 예의 차리는 친구들이랑도 싸우지는 않더라도 빈정 상하는 게 있는데 가족들이랑은 지이인짜… 그렇지 않아? 나는 그때 가족 여행 갔다 오고 나서 아빠랑은 절대 다시 같이 안 간다고 (웃음) 했었는데, 그런 건 없어? 가족이랑 어떻게 그렇게 자주 같이 갈 수 있는지…
  • 시월
    • 머리 크기 전까지는 자주 가도 괜찮았는데(웃음) 여행의 주도권이 조금씩 바뀌잖아. 어렸을 때는 내가 계획을 짤 수 없으니까 하라는 대로 하고 가라는 대로 가고 하니까 다투거나 그런 건 없었던 거 같고. 그런데 머리가 조금씩 크면서 (웃음) 여행을 우리는 자유여행을 좋아하잖아. 자유여행으로 엄마 아빠를 처음 모시고 갔을 때, 각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생기고 엄마가 계속 뭐라고 하시면서 싸우기도 했는데…
    • 근데 또 의외의 면들도 되게 많이 보기는 했어. 예를 들어 자유여행을 처음 갔을 때가 홍콩이었거든. 내가 대학교 때. 아빠한테 구글 번역 하는 법을 알려드렸는데 길을 모를 때마다 너무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고, 그게 또 되게 재밌으셨나 봐. 계속하시더라고. 아빠한테 보지 못했던 의외의 면인데? 생각도 하고. 왜냐하면 이전까지 아빠는 되게 규칙적이시고 경험했던 것들, 그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행동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기능을 사용하시면서 뭔가를 계속한다는 게.   
  •   원두
    • 나는 우리 아빠 같이 갔을 때. 우리 아빠는 공부도 잘했고, 엄청나게 아는 척하는 것도 좋아해서 영어도 “너 그것도 모르냐” 무시하기도 하는데, 여행 가서는 한~마디도 안 하는 거야. 한번은 서로 찢어져서 자유시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아빠가 말을 하기 싫으니까 밥을 안 먹은 거야. 주문하려면 말을 해야 하니까. 그거 보고 되게 짠하면서도 아니, 그렇게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양반이 영어 써먹는 척을 안 했냐 생각도 들고. 그게 또 되게 의외였어. 작아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 시월
    • 또 의외의 모습들을 볼 때마다 짠하기도 하고.
  • 원두
    • 귀여울 때도 있고, 짠하기도 하고.
  • 시월
    • 맞아.

반대로 원가족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부정적인 에피소드는?

  • 원두
    • 이제까지는 좋은 류의 기억이었는데, 안 좋은 기억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사건 같은 게 있어?
  • 시월
    • 안 좋은 기억이라기보다는 슬픈 기억. 대학교 입시 할 때였는데, 당시 외할머니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셨어. 기관지가 좀 안 좋으셨는데 생명에 문제가 될 만큼은 아니었고, 그래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셔야 하니까 엄마가 항상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었어. 나도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제는 병원에서 며칠 계셨었어. 엄마가 할머니를 모셔다드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러고 나서 전화를 받았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엄마가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그 자리에서 펑펑 우시는 거야. 진짜 ‘펑펑’ 우셨어. 나는 마음이 많이 아프기는 했지만, 엄마가 느끼는 슬픔과는 비견할 수 없는 거잖아. 근데 엄마가 너무 슬퍼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픈 거야. 제발 엄마가 덜 슬펐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었어. 나중에 엄마가 이야기해 주셨는데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드릴 때 되게 느낌이 이상했다는 거야. 뒷모습을 보는데 희끄무리하다고 표현을 하셨나?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는 거야. 내가 입시하고 있을 때니까 제일 중요할 때잖아. 그것만 마무리가 되면 여행도 같이 다니고 정말 잘 모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돌아가시니까 그게 너무 마음이 안 좋으셨나 봐. 그래서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죄송스러운 마음도 크고. 얼마 전에 외할머니 계셨던 데도 갔다 왔는데 지금 계시는 곳에서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오고.
  • 원두
    • 어머님이 펑펑 우셨던 감정이 너한테 엄청 많이 흘러들어왔나 보다.
  • 시월
    • 그냥 그 당시에는 되게 복잡했어.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에 대한 슬픔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엄마가 너무 슬퍼하는 게 마음이 아프고. 그 당시에 그런 생각도 했어.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고, 엄마가 있는 사람이구나.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으니까. 죄송하기도 하고.
  • 원두
    • 지금도 네가 그때를 상기하면 감정이 드러날 정도로 슬펐나 봐.
  • 시월
    • 가족이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아마 처음 봐서 더 그랬던 것 같아. 그게 되게 기억에 남아.

가족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위치에 있는 사람인가요?

  • 원두
    • 네가 생각했을 때 너는 가족에서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 같은지에 대한 질문이야.
  • 시월
    • 이런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부모님한테는 내가 전부인 것 같아. 부모님 삶에 있어서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이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집안 분위기도 달라지고.
  • 원두
    • 외동이어서 받는 기대가 크기도 하고, 감정을 표출하실 데가 너밖에 없어서 더 그런 것도 있겠다.
  • 시월
    • 응,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게 진짜 농담이 아니라(웃음)
  • 원두
    • 그러면 부모님이 매번 사랑을 표출하시겠지만, 아까 말했던 ‘내가 전부인 것 같다’라는 걸 느끼는 순간은 언제야? 어떨 때 특히 그런 걸 느껴?
  • 시월
    •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해주실 때. 내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들을 물심양면으로 다 해주시려고 하는 편이었고, 그런 부분들이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울 때는 내가 엄마 아빠가 기대하는 만큼 충족을 못 시켜 드릴 수도 있겠다 싶을 때.
  • 원두
    • 그런 게 부담스럽지는 않아?
  • 시월
    • 근데 그걸 엄마 아빠가 부담을 쥐여줬던 건 아니니까. 오히려 죄송스럽다는 게 맞는 거지. 미안하고.
  • 원두
    • 너희 부모님이 너를 전부처럼 대하는 태도가 내가 생각하는 태도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 나는 그 얘기를 딱 들었을 때, 그다음에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어봐야지 바로 떠올렸을 정도로 부모님들의 기대라고 하면 이콜(=) 부담이라는 관념이 있잖아. ‘너는 내 자식이니까 내가 널 위해 이만큼 했으니까 넌 이 정도는 해야 해.’ 나쁘다기보다는 그 세대 부모님들이 다 그랬었으니까. 자기가 했던 게 당연했고, 그래서 자식이 하는 것도 당연하니까 하라고 하고, 근데 안 할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렇게 되는 거지. 그래서 네가 그 얘기를 할 때 너희 부모님도 그러셨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부담은 아니었다는 게 되게 다른 점이었어. 그래서 너가 아까 말했듯이 엄마가 되게 상식적이라고 느꼈었을 수 있겠다 싶어.
  • 시월
    • 그런 부분이랑도 연결이 되고, 가장 처음에 얘기했었던 (웃음) “너는 정말 부모를 잘 만났다.” 그런데 난 어쨌든 첫째고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까 내가 좀 더 잘해서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 부분에 있어서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서.
  • 원두
    • 구체적으로는 어떤 걸 더 해드리고 싶어?
  • 시월
    • 일단 첫 번째로는 엄마 아빠가 내 걱정 안 할 정도로 내가 잘되고, 내 한 몸 잘 건사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나가고 싶은데. 내 돈으로 호강도 시켜드리고 여행도 여러 곳 보내드리고 싶은데.
  • 원두
    • 난 대놓고 말해. 난 엄마 아빠보다 못 벌거라고(웃음)
  • 시월
    • 나도 얘기해. (웃음)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근데 엄마가 그래도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얘기해 (웃음) 버리면 안 된다고.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의 가족은 몇 명인가요? 누가 포함되나요?

  • 원두
    • 원 가족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한 것 같으니까. 만약에 네가 전지전능한 힘이 있어서 가족 구성원을 처음부터 세팅할 수 있다고 한다면 떠오르는 가족은 몇 명이야?
  • 시월
    • 그게 어느 정도 범주까지 해당되는 거야?
  • 원두
    • 범주 일단 없이 얘기했으면 좋겠어. 
  • 시월
    • (고민 중)
  • 원두
    • 근데 어려우면, 이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OX퀴즈를 몇 개 내볼게.
  • 시월
    • 좋아 좋아.
  • 원두
    • 어렸을 때 날 버리고 간 엄마가 한 번도 얼굴을 안 내비치다가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돌아왔다. 그 엄마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가족이다.
  • 원두
    • 왜? 혈연이기 때문에?
  • 시월
    • 날 낳아준 부모님이니까.
  • 원두
    • 그러면 그 버리고 간 엄마를 대신해서 새언니가 날 계속 키워준 거야. 그 새언니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가족이다.
  • 원두
    • 새언니는 혈연은 아니잖아. 법적인 관계 때문이야, 키워줬기 때문이야?
  • 시월
    • 키워줬기 때문에. 부모님의 역할을 해주신 분이니까.
  • 원두
    •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친할아버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셨어. 그 친할아버지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가족이다.
  • 원두
    • 너는 어쨌든 혈연관계가 중요한 거네?
  • 시월
    • 혈연관계가 일단 중요하고, 내가 가족이 아니라고 판단할만한 근거는 없으니까. 날 낳아주신 엄마도 가족이라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기도 해. 엄마가 왜 나를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 수 있는 거고. 
  • 원두
    • 엄청 관대하다(웃음) 어떻게 날 버리고 갈 수 있어? 부들부들 이럴 것 같은데. (웃음) 그러면 매주 금요일마다 나에게 부침개를 구워주시는 하숙집 아줌마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고민하다) 중간.
  • 원두
    • 왜? 어떤 부분이 고민돼?
  • 시월
    • 그분을 내가 지금 실제로 만난 게 아니잖아.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하는 가정인 거잖아. 내가 이분한테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 원두
    • 그럼 어떤 영향을 받았을 때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 시월
    • 일단은 시간. 함께한 시간이 중요할 것 같아. 사람이 어떤 사람을 볼 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사람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고, 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시간들이 많이 쌓이고, 그만큼의 이야기들이 쌓였을 때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원두
    • 마지막은, 엄마가 병상에 계셔서 그 힘든 시기를 항상 내 옆을 지켜주면서 위로를 해준 피카츄인형은 (웃음)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피카츄인형은 가족이 아니다. (단호)
  • 원두
    • 왜? 무생물이기 때문에?
  • 시월
    • 어, 감정을 같이 교류한 사이가 아니잖아.
  • 원두
    • 무생물에는 내가 감정을 쏟아부을 수는 있지만, 오는 건 없으니까?
  • 시월
    • 그렇지.
  • 원두
    • 근데 내가 위로를 받을 수는 있잖아.
  • 시월
    • 어…그치. 위로는 받을 수 있지. 근데 그게 내 마음에서 기인한 거잖아. 무생물이 아니라 강아지처럼 생물이었다면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형은 좀.
  • 원두
    • 들으면서 느낀 건, 혈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함께한 시간과 그 시간에 따른 연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상호 교류가 되는가 안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 걸 좀 떠올리면서 내가 가족을 다시 구성한다면 몇 명이 가족이야?
  • 시월
    • (난처한 듯 웃으며) 아, 반드시 그걸 가족으로 구성해야해?
  • 원두
    • 가족을 만든다면 누구누구를 가족에 넣을 건지 한 번 생각해봐.
  • 시월
    • 이거를 꼭 이야기를 해야 해?
  • 원두
    • 왜, 어떤 게 어려워? 너무 많아서 아니면 너무 없어서?
  • 시월
    • 음, 좀 어려운 것 같아. 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거든. 나는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편인데, 특히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주변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나중에 나이 들어서 옛날 향(鄕)처럼 마을을 만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요즘에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 하잖아. 거기서 옹산 마을이 나오는데, 드라마 중반에 동백이가 사는 옹산 마을에 대한 묘사가 나와. 이웃인데 가족 같고, 츤데레같이 밥 먹을 때 밥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같이 밥 먹고, 서로 모르는 게 없고, 은근하게 챙겨주고. 그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그게 어떻게 보면 큰 범주 안에서 가족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일단 내가 지금 엄마 아빠라는 가족이 나에게 의미가 크니까.
  • 원두
    • 그럼 오히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기 때문에 누구는 넣고 빼기는 어려워서 이 대답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되나?
  • 시월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일단 지금은 엄마 아빠 이 원 가족이 나한테 있어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왔고 그만큼 감정적인 교류를 많이 했었던 가족인 건데. 그 외에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라든지 직장동료 등을 가족이라고 포함하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나의 마음 상태가 또 조금씩 다른 거잖아. 
  • 원두
    • 마음 상태가 다르다는 거는 원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마음?
  • 시월
    • 가족이라는 하나의 어떤 거로 이야기하기에는 다 너무 다르다는 느낌이어서.
  • 원두
    • 아아, 그럼 너가 떠올리는 가족은 딱 지금의 원가족이 제일 큰거네?
  • 시월
    • 응 그치. 나는 원 가족에 대한 의미가 큰 것 같아. 친구랑 가족은 또 조금 다른 느낌. 만약에 친구가 가족처럼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환경이라면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원두
    • 주거를 공유한다던가 함께하는 시간이 가족처럼 많다던가 이렇게 되면?
  • 시월
    • 응.
  • 원두
    •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 원 가족 외에는.
  • 시월
    • 응응
  • 원두
    • 그럼 가족은 원 가족이라고 이야기했으니까, 아까 말했던 향, 마을을 만든다면 누가누가 들어가? 누구누구까지 말하기 어려우면 몇 명 정도를 생각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고.
  • 시월
    • 한 10명에서 15명?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까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났던 소중한 사람들.
  • 원두
    • 원 가족 포함해서 10에서 15명?
  • 시월
    • 응.

이후에 가족을 꾸린다면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나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 원두
    • 나중에 네가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할 수도 있잖아. 애를 낳을 수도 있고 안 낳을 수도 있지만. 그랬을 때 어떤 가족을 만들고 싶은지? 지금의 가족에게서 특히 어떤 영향을 받아서 다음 가족을 꾸릴 때 ‘이렇게 되고 싶다’는 부분이 있는지.
  • 시월
    • 일단 가족을 꾸릴 때 제일 중요한 건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한 사랑인 것 같아. 서로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과 가족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지금 상황에서는 가족 구성원에 있어서 애를 낳고 싶지는 않아. 소위 말하는 딩크족이 되고 싶은데 그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건데, 애를 낳았을 때 여자한테 주어지는 가혹한 상황들이 좀 많은 것 같아서. 가능하다면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데 사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랑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 것들은 서로 이야기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는 해. 아예 “안돼”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고.
    • 그리고 엄마랑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감정을 교류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에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감정적인 부분들이 잘 교류 될 수 있는 사람과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게 취향이 될 수도 있겠고, 함께 하는 시간이  자연스러운 가족을 만들고 싶다.
  • 원두
    • 부모님이 너에게 많은 대화와 세밀한 감정 교류라는 영향을 줬다면 반대로 네가 부모님에게 영향 준 건 뭐가 있을 것 같아? 영향을 주고받는다 해서, 어떤 게 있을지?
  • 시월
    • 나 자체가 (웃음)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아.
  • 원두
    • 너의 존재 자체가?
  • 시월
    • 내가 어떻게 감정을 느끼고 또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지내냐에 따라서 되게 많이 엄마 아빠의 감정 상태도 많이 달라지고.
  • 원두
    • 포커스를 확실히 많이 맞춰주고 계시는 구나. 그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너한테.
  • 시월
    • 응. 근데 그게 반드시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 원두
    • 근데 그렇게 가족 내에서 누구 위주로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내가 생각했을 때는 권력 관계가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너희 집에서는 네가 최고봉이야?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 또 너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동등하게 잘 지내는 것 같단 말이야. 내가 느낀 게 맞나?
  • 시월
    • 응, 그런 역할을 엄마가 잘해주시는 것 같아.

가족을 떠올렸을 때 무슨 색이 떠오르나요?

  • 원두
    • 마지막 질문인데, 지금 가족을 색으로 치환했을 때? 가족 하면 떠오르는 색이 있다면 무슨 색이 떠올라?
  • 시월
    • 가족 전체를?
  • 원두
    • 지금의 원 가족을
  • 시월
    • 초록색. 심신의 안정과 평온함을 느낄 때 우리가 많이 떠올리는 색깔 중 하나잖아. 나한테 가족이 약간 그런 이미지라서. 나는 위로를 받아야 하는 순간에 가족에게 기대는 편인 것 같아.

소소하게 먹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부터 내가 힘든 것, 당신이 힘든 것까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그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가족, 그런 시월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