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터뷰 #레이!루이!

레이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게 된 것은 어쩌면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만난 모임에는 누구나 한번씩 꼭 하게 되는, 구성원들에게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날은 레이의 차례가 아니었지만 사정이 생긴 멤버 대신 레이가 예정된 순서보다 빨리 이야기를 하게 된 날이었다.

생각해 온 이야기가 있는 듯 메모해 온 내용을 천천히 눈으로 읽어내려간 다음, 차분히 자신을 소개하는 레이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10년지기 친구와의 사랑, 생각보다 조금 먼저 찾아온 아이, 가족의 반대, 그리고 출산 전에 찾아온 이별까지.

미혼모에서 5살 아이의 엄마로 살게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정갈한 말투와 단단한 눈빛으로 해나가던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모임에 처음 나왔던 날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어색한 자리에서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애꿎은 메모만 끄적거리던 나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괜찮아요’ 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준, 비슷한 또래의 레이를 만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잔뜩 위축되었던 나는 그 다음 주부터 모임에 나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살뜰한 손길로 처음 온 사람을 챙기는 레이 덕분에 초반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그렇게 매주 수요일 저녁에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하는 사이가 되면서 이내 거리감을 좁혀갔다. 그야말로 ‘괜찮아’지고 있었다.

레이의 삶에 대해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인터뷰를 결심했다. 그리고 며칠 후, 조심스럽게 건넨 간곡한 요청에 레이가 응답해 주었다.

#별별인터뷰 #레이!루이!

좋다. 보기만 해도.

별) 먼저, 두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레이, 아이는 루이라고 불러주세요. 레이와 루이는 저희 모자의 영어이름인데요, 뭔가 파이팅이 필요할 때 둘이 같이 주먹을 쥐고 팔을 크로스하며 “레이!” “루이!” 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힘이 생겨요.

루이가 자기 이름을 알기 시작한 나이부터는 부모님께서 기사나 인터뷰 등의 자료에 아이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반대하셔요. 나중에 성인이 되어 루이가 알게 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조심스럽다고 하시더라구요. 사실 저는 괜찮은데… 아무래도 루이 출산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거쳐오면서 어른들 말씀에 더 귀기울이게 되네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웃음)

별)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볼까 합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40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39세 워킹맘 레이라고 합니다.

별) 오늘은 비오는 일요일이었어요. 저는 쉬는 날이면 밀린 빨래와 청소, 그리고 요리.. 이런 것들을 하거든요. 근데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와서 그런지 부지런히 움직이기보다는, 빗소리 들으면서 원고 정리도 하고 괜히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레이의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일과를 이야기해주신다면?

워킹맘이라서 주말마다 아이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주기 위해서 나들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하는데,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는 예보에 교회에서 하는 추수감사축제에 참석하고 일찍 귀가해서 홈놀이에 홀릭했답니다. 뒹굴뒹굴 놀이, 댄스 파티, 블록 놀이, 책 놀이 등… 그리고 빗소리를 들으며 맛난 립을 먹었네요. 오가는 길에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멋진 풍경도 구경하고요.

별) 그랬군요. 레이의 가족도 궁금해요. 가족이 어떻게 되세요? 간단히 소개도 곁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와 5살 루이,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 집에서 부르는 곰 네 마리 노래가 있어요. 할아버지 곰은 뚱뚱해, 엄마랑 할머니 곰은 날씬해, 아기 곰은 너무 귀여워~

별) 아, 그렇게 네 가족이군요. 레이는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일까요? 저의 경우, 아직도 엄마에겐 ‘우리 아기’로 불리우고요. 동생이 보는 저는 음, 엄마보다 무서운 누나? 거든요.

루이가 바라보는 저는 아마도, 슈퍼 히어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준다는 이유죠. 그렇지만 제게 짧은 바지나 치마, 조금 파진 옷은 절대 못 입게 하는 걸 보면 루이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고 싶은 것 같기도 해요. 정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면에 부모님께서 보는 저는 아직도 지켜줘야 하는 존재, 보호해야 하는 존재, 도움이 필요한 존재?!

별) 그런가 봐요. 부모님은 제가 몇 살이 되더라도 여전히 아이같이 느끼시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벌써부터 엄마를 보호하려는 든든한 루이가 있다는 점이 저와는 좀 다르군요. (웃음)

이 자그마한 발이 지금은 세상을 딛고 선 루이의 발이다.

루이를 낳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10년지기 친구였던 루이 아빠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을 때, 레이는 출산을 앞둔 시기였잖아요. 레이가 스스로를, 또 뱃속의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한 힘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레이를 루이 엄마로서의 삶으로 인도하고 그 결심을 용기내어 실천할 수 있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루이를 임신했을 때는 교회를 다닌 지 10년이 되었을 때였고, 뱃속의 아이와 결혼 생활을 잘 지켜내고 싶어서 교회에서 결혼을 했어요. 아이의 태명도 믿음이라고 지었지요. 물론 이후에 아이 아빠와 헤어지게 되었지만 루이가 저에게 온 것도. 제가 루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것도 모두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고, 힘들 때는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의 고난을 주신다’는 성경 말씀을 붙들면서, 루이 엄마로서의 삶을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별) 지금 레이의 어머니께서 루이를 함께 돌봐주시잖아요. 가끔 어머니와 그때 이야기를 하시나요? 처음 레이가 루이를 가졌을 때, 또 루이를 낳은 상황에 대해서 알렸을 때 말이에요. 어머니는 그때를 어떻게 회상하시는지 혹시 이야기나눠보신 적 있으신지 궁금해요.

어머니께서는 제가 40세가 넘어서 결혼하기를 바라셨어요. 여자는 결혼하면 자기계발에 한계가 있으니 사회 생활을 마음껏 하고 아주 늦게 결혼해도 괜찮다고 하셨죠.

루이를 임신하게 되어 결혼을 서둘러야 했을 때, 일단은 임신한 딸에 대한 노여움이 크셨고요. 루이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혼자 루이를 낳았다는 사실과 앞으로 모든 책임을 저 혼자 져야한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는 루이 아빠에 대한 노여움이 크셨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그때 할머니 입장에서 루이를 먼저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아직까지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 하세요. 물론 여전히, 가끔 그때의 노여움을 살짝 드러내실 때도 있어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요.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며 많이 나아지셨다고는 해도, 그때 그 감정을 잊기는 어려우신 듯해요.

별) 말씀을 들어보면, 어머니께서 누구보다 레이를 많이 이해해주시고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 혹시 이전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레이가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무용을 전공했어요. 외동딸로 귀하게 자랐지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해도 부모님이 제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철이 없고 이기적인 생각이었죠. 제가 루이의 밝은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엄마가 얼마나 힘든 역할인지 느끼고 있습니다. 루이를 임신하고 결혼을 준비할 때 사실 서운한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때는 이해가 안 됐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때 어머니의 말씀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난 루이보다 내 딸의 삶이 더 중요해. 하나밖에 없는 딸이 지금까지 노력해 온 모든 것을 버리고 산다는 데 어떤 부모가 박수치고 좋다고 하겠니?!!”

아마 저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루이 엄마가 된 후, 그리고 40세를 바라보며 이제 좀 철이 들려나 봅니다. 이제는 루이 아빠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도 이해해 보려고 해요. “내 아들이 싫다고 하는데 부모가 무슨 힘이 있겠니? 미안하다…”

별) 우리 사회는 결혼과 혈연 관계를 필수조건으로 하는, 엄마-아빠-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기본값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잖아요.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나보신 적이 있으세요? 피가 안 섞여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끼리도, 부모자식간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다양한 사례를 접해보지 않아서.. 직접 본 경우 안에서만 말씀드린다면 입양 가족이 있겠고요, 이 경우는 당연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루이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부모님께 면목도 없고 부담을 드리기도 죄송해 미혼모자 보호시설에서 출산과 산후조리를 했어요. 그곳에서는 미혼모가 입양과 양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저처럼 양육을 선택하는 경우는 사실 매우 드물어요. 대부분 입양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친부모가 얼마나 힘든 마음으로 아이의 입양을 선택하는지, 또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입양이 되는지를 보면서, 입양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답니다.

힘들게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 분들은 저를 많이 부러워했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는 양육 미혼모의 삶이 더 힘들다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그분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니까요. 그 애틋한 마음까지 함께 지켜내고자 루이를 더욱 잘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별) 우리 사회에서 ‘가족’을 이야기할 때 레이가 가장 불편을 느끼는 지점은 어느 부분일까요?

엄마, 아빠, 아이 – 이런 구성원의 가족이 아니면 뭔가 특이한, 뭔가 문제가 있는 가족으로 보는 시각이 저에게는 조금 불편한 부분이에요, 아이에게는 어쩌면 상처가 될 수도 있어서 더 안타까워요. 모자 가정이라 솔직히 엄마의 부담이 배가 되긴 하지만, 또 어찌보면 전혀 불편함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죠. 사회에서 아웃사이더 가족으로 보는 시각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별) 우리 사회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교육과 캠페인 그리고 정책이 병행되어야 하구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함께 모든 가족이 사회 정책 안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과 고민이 조금은 해소될 것 같습니다. 유아교육을 비롯하여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이런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는 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별)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요. 최근, 레이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부모님께서 루이를 데리고 외출해 놀아주시는 동안, 친정에서 아무 생각 없이 TV 보다가 낮잠을 잤던 2시간이요. 루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와 함께 있으면 매순간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별) 저는 그날 – 레이가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던 날이요.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들었지만 그런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어요. 이렇게 단단하고 강한 엄마로서의 레이의 마음 속에는 매일매일 해야할 일과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그리고 루이를 생각하면 절대 아프거나 힘들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서른아홉의 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맞아요. 물론 이제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저는 루이에게 아빠 역할까지 해야하는 만능 엄마로서 할 일도 많고 절대 아프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어요. 출산 전에는 노는 것도 좋아하고 나름 저의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은 다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지요.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제 저에게 사치가 되었어요. 제 삶의 중심이 루이라서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요. 나중에 루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루이가 결혼하면 허무함이 클 수도 있다… 그렇게요.

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슬럼프, 우울한 시기, 무기력한 날들.. 레이에게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나요? 한 사람으로서의 레이는 지금 별일 없으신가요?

엄마가 되기 전에는 때로는 제 감정을 앞세워 화도 내보고 마음껏 우울해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된 이후에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조금 더 성숙한 태도로 살게 된 것 같아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발급받고 취업 준비를 하는데 생각처럼 막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도 계속 생각했죠.

“괜찮아, 좋은 곳을 곧 만나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일을 하면서도 마음 다치는 일을 겪거나 억울한 상황에 놓일 때 제일 먼저 심호흡을 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합니다.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아이는 엄마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살아간다.”

어쩌면 우울해질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삶을 살고 있어서 다행히도 큰 슬럼프 없이 5년을 잘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레이는, 다행히 별일 없이 행복하고 감사하게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 사실 5살 사춘기 루이의 땡깡에 가끔 무너지기는 합니다. (웃음)

너무도 사랑스러운 루이(현재 5살, 사춘기)

별) 2020년, 레이에게, 또 레이의 가족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특별한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 번째, 우리 가족 네 식구 모두 건강하고 사이좋게 하루하루 잘 지냈으면 좋겠다!

두 번째,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무사히 재계약 되었으면 좋겠다!!

세 번째, 괌 가족 여행 지원에 선정되었으면 좋겠다!! (루이의 첫 해외여행이 될지도!)

별) 레이의 세 가지 소원에 저도 기도를 보탤게요. 꼭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말로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으로 사는 것이 별일이 아닌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다양한 모습의 가족 모두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서 겪는 많은 일들로 마음에 상처를 받아도 가족의 품에서 따뜻하게 위로받고 힐링할 수 있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다한 인터뷰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레이.

우리 모두가 별일없이산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아요, 우리.

사랑합니다.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