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터뷰 #김선호 #꼬미 #느루 #해방

얼마 전, 공동체주택으로 입주한 선호에게 근황과 함께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꼬미는 선호에게 유일한 가족이자 선호의 힘든 시기를 지킨 고마운 생명체이다. 매력적인 마스크의 꼬미, 그리고 지난 11월, 별일없이산다 부스에 홀연히 나타나 “2천만원이 없어서 원가족이랑 산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고 간 선호는 이제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오키] 꼬미는 적응을 잘하고 있어요? 발치에서 자던 꼬미가 선호 님 곁에 꼭 붙어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사 후 꼬미의 안위를 걱정했어요.

[선호]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라 아무래도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긴 해요. 집근처 수의사분에게 어제 이사왔다고 하니까 한숨을 푹 쉬시더라고요. 며칠 옆에 붙어서 자더니 이제는 침대 옆 스크래쳐에서 자고 있어요. (참고설명: 기분 좋은 표정임)

[오키] 오, 그래도 이사한 지 며칠 안 된 것 치고는 무척 고무적이군요. 총 몇 분이 거주하시는 거예요? 꼭 사람만 말하는 건 아니구요. 함께 사는 생명체..?

[선호] 인간 네 명에 고양이 두 마리입니다. 

[오키] 이사는 무사히 마친 거예요?

[선호] 오늘까지 해서 짐을 다 옮겼어요. 수납공간이 모자라서 선반이나 책장을 더 구입할까 싶어요.

[오키] 어때요? 구성원들과는요?

[선호] 동거인이 제가 입주한 조합의 활동가인데요. 다음 주에 환영회 같은 걸 하려나 봐요. 정기회의도 있다고 하고요.

[오키] 오, 회의? 정기적으로 뭐가 있나보네요. 공동체주택.. 어쨌거나 굉장히 빠르게 결정하고 이사하신 케이스라 아직까지는 뭔가 그 입주 전후의 느낌을 이야기하긴 좀 그렇겠어요. 원가족으로부터의 분리를 실천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선호] 평생동안 집에서 느끼는 이 불안함에 대해서 고민해 왔어요. 공간 분리는 십대때부터 해오던 거지만 짐을 꾸리는게 기분이 좋지는 않죠. 남들은 흔히 안 하는 이동을 해야하는거 같아서. 그래도 제가 2016년에 잠깐 혼자 살때가 있었는데 그때보다는 훨씬 안정적이예요. 그때는 혼자 있어도 외롭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걸 나누고 또 스스로 보듬을 힘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집안일도 그때보다 잘 하기도 하고.

[오키] 부모님은 별 말씀 없으셨어요? 이렇게 갑자기 나가서 살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  

[선호] 여름쯤에 가정폭력 생존자로 기금에 선정되서 독립하게 될 거라고 모부 두 분께 직접 얘기드린 적이 있어요. 아버지는 제가 너무 고통받고 살았다는 걸 아시고 제가 잘못되는 걸 가장 걱정하는 분이라 알았다고 그렇게 하라고 하셨구요. 어머니는 왜 또 나가냐고, 그래 너는 너 편한대로 살라고 계속 투덜거리시고 하라 마라 얘기가 없으셨어요. 사실 어머니는 저한테 의지하는 게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긴 해요. 집에서 말 통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오키] 마음이 편하진 않았겠네요.

[선호] 사실 이번에 이사 나오면서 얘기를 제대로 안 했어요. 이사 일정이 급하기도 했고, 말한다고해도 어떻게 반응을 하실지 아니까 또 그 상황을 대면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집이 비어있는 시간에 이동했어요. 솔직히 아직 분리한 느낌은 안 들어요. 모부가 지어준 이름이 아직 실명으로 쓰이고 있어서.

[오키] 공동체주거라고 해도 본가에 살던 때에 비해서 이제 주거비용이 더 지출되겠어요.

[선호] 현재까지는 청년수당으로 생활비를 그럭저럭 충당했는데 그게 2월이면 종료되니까요. 그전에 일을 구해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네요. 동시에 청소년 상담사 자격 준비 중인데 정말 죽겠네요.

[오키] 그와중에 공부라니. 근데 저는 힘들어도 꼭 완주하시기를 추천드려요. 참, 동네는 어때요? 적이 없는 곳이라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그랬는데. 분위기는요?

[선호] 제가 길치라 길을 많이 헤매다보니 벌써 집 주변을 거의 돌아봤는데, 여긴 초등학교 근처라 좀더 사람사는 동네 같아요. 본가는 청년은 많아도 온통 술집 뿐이거든요. 여기가 본가인 서울 고척돔 근처예요.

[오키] 개명계획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정말 하실 예정?

[선호] 개명은 10대 때부터 생각하던 거였어요. 누가 부르는 제 이름을 들을 때마다 저는 그게 정말 제 이름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개명은 한글로 할 거라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데 그냥 좀 고민하고 있어요.

[오키] 아. 뜻을 고민하시는 구나. 김선호, 제 생각엔 선우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건 정말 그냥 제 생각. 

[선호] 아, 그냥 어감으로 지었어요. 여러 후보군이 있었는데 선호로. 이제 언제 개명할지를 결정하면 될 거 같아요. 받침이 많은 이름으로 살았어서.

[오키] 선호 좋아요. 그 이름이 이제 익숙해서 저는.

[선호] 저도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오키] 이름이 바뀐다는 건 좀 더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는 분도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어서 개명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준다는 것. 뭔가 큰 의미가 있어보여요, 삶에. 인생에. 이제 선호라는 이름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선호] 귀엽고 재밌는 사람으로 살고싶다고 생각해요. 단어의 느낌이 생동감이 있잖아요. 가끔 너무 힘들땐 무생물이 된 느낌이 들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싶고 움직이고 싶지도 않고. 오늘이 그랬는데, 움직이니까 나아지더라고요. 움직이면서 사람들도 모으고, 너무 들어주지만 말고 내 이야기도 좀 하고,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요. 일상을 되찾고 싶어요. 너무 오래 생각하고 풍경을 쳐다만 보지 않고 참여하고 바꾸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오키] 우리, 느루라는 친구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두 분은 어떻게 처음 알게 된 거예요?

[선호] 예전부터 알던 친구는 아니고, 페이스북에 탈가정 이야기를 공개로 올리던 분이었는데 제가 궁금해서 친추를 했어요.

[선호] 느루랑 주고 받았던 페북 메시지네요. 2017년 11월. 저렇게 저도 탈가정 했다 어쨌다 얘기를 나누고 보니 행사에서 자꾸 마주치더라고요. 그러다 차별금지법연대에서 12월에 행진을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만난 거죠. 그날 밥 먹고 카페 가서 이야기하면서 같이 활동하자고 했어요.

[오키] 아, 두 분 같이 활동하신 거군요. 어느 단체에서 활동하셨어요?

[선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트랜스인권팀 공동팀장이었어요. 둘이.

[오키] 아하.

[선호] 팀이 TF체제로 시작하는 단계라 팀장을 정해야 했는데, 저는 직장인이기도 했고 부담이 되서 느루한테 같이 하자고 했죠. 이미 10대 때부터 앰네스티에서 활동해왔고 3개 국어가 되던 친구였어요. 주도적이고 발이 넓어 활동단체가 많았어요. 작년엔 매달 만났고요.

[오키] 이야기가 힘들 땐 언제든 멈추셔도 돼요.

[선호] 느루는 후천적인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다녔어요. 지난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때 혐오세력의 폭력상황들로 너무 안 좋아서, 조직위도 아니었는데 안전 감시를 하느라 느루를 챙겨주지 못했는데 그 난리통에 휠체어로 행진을 완주했더라고요. 비장애인도 힘든 상황이었던 터라 저는 느루가 당연히 어디서 쉴 줄로만 알았는데…  행진 완주하고 지쳐서 집에 가는데 느루가 하는 전화를 못 받았어요. 두고두고 후회가 돼요. 느루 얘기는 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오키] 친구의 의미를 다시 알게 해 준 친구였겠어요.

[선호] 크리스도 느루도 둘다 너무 착한 사람들이라. 미화하는 게 아니라 참 다정한 사람들이어서요, 오래 가네요. 올해 인천퀴퍼 조직위원회의 부탁을 받아서 추모사를 읽었는데요, 이제와서 추모사의 무게를 실감하고 못 이겨하고 있어요.

[오키] 추모 부스 운영도 하셨었죠?

[선호] 네. 인천퀴퍼에서 부스 열기 전 주에 용기 내서 느루와 어머니를 뵈었어요. 올해 어딘가 참여하거나 담당해야 할때마다 느루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친구 볼때마다 신경쓰였던 게 저와 주어진 조건이 너무 비슷했거든요. 청소년기에 탈가정했고, 논바이너리에, 해방촌에서 십대를 보내고 있다는 게 특히 더 그렇게 느끼게 했어요. 느루가 해방촌 빈집(주거공동체)에 산다는 건 느루가 떠나기 몇 달 전에 안 거였어요. 장례가 끝나고 곧 추석이었는데 그 동네 다시 가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혼자 해방촌 가서 동네 구경을 했어요. 제가 자살 시도를 세번 하고, 친구가 두 명 떠나고, 활동도 여러 사정으로 그만두고나니 괴롭더라도 저에게 집중해야만 되겠더라고요.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오키] 한창 선호님이 카톡 탈퇴와 재가입을 반복하던 즈음에는 정말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선호 님의 자립이 지속적인 삶으로 안착하기를 기대하고 바라요. 꼬미도 그 집에서 평안하면 좋겠구요.

앞으로 선호님이 이루게 될 가족에 대해, 로망을 듬뿍듬뿍 잔뜩잔뜩 담아서 그려 보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선호] 가족단위는 언제나 꼬미와 저 둘일것 같고 여유 공간에 대한 생각을 늘 하는데, 십대때부터도 늘 방 하나 정도 더 있어서 누구든 와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늘 떠나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충족되지 못했으니까.) 

이제는 그 여유 공간에 비인간과 인간을 함께 생각하고 있고, 유기동물 몇 마리 더 입양하고 싶어요. 특히 장애를 가지거나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입양이 잘 안 되니까 그런 아이들. 현재 공간에 입주하면서 여기 조합 활동가에게 저도 이런 주거 공동체 꾸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했어요. 제가 심리검사 척도에도 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나오더라고요. 혼자로도 살아보고, 내 의사와 상관 없이 외롭게 지낸 기간도 기니까, 이제는 퀴어이거나 페미니스트이거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과 느슨하게 공동체를 맺고 싶어요. 엄청 북적한 관계망이 아니라, 어울릴 중간 지대가 있으면서도 퍼스널이 존중되는 대안적 한국문화를 지향해요. 최종적으로는 퀴어랑 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성별은 상관없이 배려심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오키] 그렇군요.

[선호] 저는 장기기증을 늘 생각하는데, 이게 원가족의 최종 승인이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아플 때나 의식이 없을 때 대신할 친구들이 대리인이 되어주면 좋겠다 생각해요. 그러니까 단순히 친밀한 게 아니라 저의 생애를 알고 저와 지속적으로 관계맺는 친구들에게 제도상으로 지원을 해주거나 비상시 결정 권한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중장년기에는 계절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천천히 늙어가고 싶고요.

[오키] 그렇게 될 거예요.

10월, 해방촌,김선호 ⓒ오키

사실 김선호와는 인터뷰를 위해 이미 한 차례 만났었다. 그때 우리는 해방촌 인근의 한 비건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해방촌은 김선호가 처음으로 탈가정해 한동안 머물렀던 곳일뿐만 아니라 느루가 살던 빈집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꼬미와 꼭 닮은 고양이 인형을 보여준 김선호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인형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정작 그날 우리는 느루의 이야기도, 가족의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12월 3일 행사 이후에 다시 나눈 이야기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은, 그제서야 우리가 사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좀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나절에 걸쳐 진행됐던 해방촌에서의 첫 인터뷰는 사진으로만 남았지만, 그것도 괜찮다. 김선호는 그날 내가 찍은 사진을 꽤 마음에 들어했다. 나도 선호라는 이름이 꽤 익숙해졌다. 우리는 꽤 괜찮다. 지금. 

탈(脫)시설보다 어려운 것들

✅ 참고기사원문 및 전문 보러가기 > 탈(脫)시설 운동, 모든 ‘시설화된 삶’의 자립을 꿈꾸다

장애인의 자립이 대한 사회의 관심도는 매우 낮다. 최근 들어 비장애인의 주거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부 언론에서 일회성으로 취재를 나선 정도이다. 자립에 있어서 주거의 문제는 장애의 유무를 따지지 않더라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립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 이야기되는 경제적, 제도적인 문제 외에도 장애인의 자립 미션을 임파서블하게 만드는 것이 참 많다. (*위 참고기사에서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보다 폭넓은 대상을 함께 이야기한다.)

장애인 IL(자립생활, Independent Living) 운동은 대체로 시설을 나와 독립된 삶을 살게 하는 ‘탈시설’ 운동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운동은 주거의 독립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시설 밖으로 나와 자립 생활을 시작하더라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온전히 편입되기까지 또 문턱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

‘일다’의 기사를 읽고 나는, 작년 겨울 어느날 바쁜 틈을 비집고 만난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의 서기현 소장에게 실제 사례를 전해 듣고 할 말 없는 입술이 되어 우두커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날을 떠올렸다. 생활보조인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서 소장이 2019년 3월 드디어 자립생활에 돌입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올해 자립을 했어요. 직접 부동산을 돌아다니면서 집을 구하고 대출을 받고 이사하고 가구와 집기를 사넣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직접 하면서 정말 고생이 많았죠. 집만 한 30곳 넘게 봤을 거예요. 전동휠체어가 들고 나야 하니까 건물 입구에 계단이 있거나 집안에 문턱이 있으면 일단 후보에서 탈락이죠. 집 있느냐고 물어보러 부동산에 들어서는데 제가 입도 떼기 전에 업자가 나가라고 손을 휘휘 저은 적도 있어요. 어찌 저찌 보게 된 집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건물주가 입주를 거부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서기현 소장의 말

그렇다. 장애인이 자립을 시도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자체부터 걸림돌이다. (이게 이해시키고 이해받아야 할 문제라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지만.) 부동산 입구에서부터 거부당하고 손사레 치는 사람 앞에서 돌아서는 서 소장의 모습을 상상하니 한숨이 쏟아졌다. 물론 이 정도에서 놀라기는 일렀다.

“부동산업자나 건물주 이전에, 탈시설자립생활을 누가 제일 반대하는데요. 가족 설득이 제일 힘들어요.”

서 소장과 함께 일하는 최정희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장애인이 자립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의 걸림돌은 의외로 가족이라는 것이다. 자립생활주택 지원제도나 탈시설지원사업 등에 대해 안내하고 체험홈 시도를 권했을 때 막상 당사자의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가족의 반대가 더 만만하지 않다고 한다.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으세요. 시설에 있으면 사고가 나도 책임을 지는데, 탈시설이니 자립이니 하면서 괜히 바람넣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책임질 수 있느냐고. 그리고 일단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오면 가족의 부양부담이 커진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고 정확하게 인식시키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폭력적인 반응도 많고요.”

최정희 활동가

최 활동가는 이것이 무지함에서 오는 반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좋은 사례를 충분히 보여드리고 지원체계에 대해서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이날 나눈 짧은 대화만으로도 이것은 시간을 갖고 후속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안이 무거웠다.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는 가족구성권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나누기로 하였지만 이는 역시 주거권을 떼어놓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이 자립의지를 가지고 지역사회로 자유롭게 들고 날 수 있으려면, 장애의 경중에 관계 없이 자립생활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려면, 그리고 그것이 제도적 지원의 영역 안에 있으려면, 혼인과 출산을 전제로 하는 현재의 가족에 대한 정의가 더 넓어져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자기자신의 인권을 수호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가족 단위의 주거 형태만을 정상으로 규범하는 현재의 제도는 많은 부분에서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