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청년주간 #신촌 #별별부스

지난 11월 2일, 신촌에서는 올해 청년주간을 맞이해 큰 행사가 열렸다. ‘청년’이 들어간 서울시 사업의 집대성, 청년사업의 공식행사 중 제일 큰 거, 바로 그거.

우리도 야심차게 부스를 신청했다.

이날만큼은 그냥 무조건 즐겁자,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아도 우리가 즐거우면 되는 거 아냐? 그래도 심심할 수 있으니까 각자 할 일을 좀 챙겨오자, 그냥 맛있는 거 먹는 날로 하자, 그래 일단 우리 활동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니까 열심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될 거야…

쫄보들의 대비라는 것이 이렇다.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세부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인터뷰를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픈스테이지라고 해서 ‘가족’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청년주간행사의 부스는 우리에게 더 없이 좋은 오픈스테이지였다. 하지만 과연 이 주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심지어 우리가 누군가. 쫄보 아니던가.

한적했던 초기의 부스 (심지어 지킴이 없고)

진심으로 우리는 몰랐다. 부스에 사람이 (이렇게나) 올 줄은, 꿈에도.

…응?
스태프 한 사람의 몫을 톡톡 해낸 분이시다. 동시 4인 접대중.

우리는 부스의 기둥마다 ‘가족’과 관련된 다양한 문장을 깃발로 만들어 걸어두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깃발에 사람들이 직접 실을 묶게 했다. 이렇게 얽히고 설킨 실들이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문제는 점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실을 묶기 위해서는 매트릭스와 미션임파서블 못지 않은 유연함이 요구되는 미션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한가로이 책을 읽겠다던 야무진 생각은 애저녁에 사라지고, 우리는 한손에는 칼과 가위, 다른 한손에는 털실과 사탕, 눈으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며 귀로는 “실 잘라주세요!” 하는 분들의 외침을 캐치하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사실 부스 좀 해봤다 하는 사람이 봤으면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애초에 부스가 한적할 것을 예상기원하고 가방에 온갖 놀이거리를 챙겨온 한량들이 아니었나. 두 사람이 동시에 참여방법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동공이 바람앞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생각보다 더 진지하게 참여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점점 안정진정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서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되었다.

끈으로 가족에 대한 생각을 엮던, 딸을 데리고 온 한 엄마가 “어, 나 이혼했는데?” 하며 [난 이미 결혼했다] 카드에 실을 엮을 때,

“마음이 아프다…” 하며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다]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분의 촉촉한 눈과 마주쳤을 때,

[가족하고 안 맞아요] 깃발로 돌진하던 수많은 청년들과

[결혼하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 [강아지 고양이도 가족이다]에 당연한 듯 그렇다며 답을 이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사는 건 늘 별일이지만, 그 또한 별 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별 것 아닌 질문카드 사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다양한 색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나의 미션이 더 있었다. 훗날 가족에게 남길 말을 직접 써보는, 일명 <쓰노라>

사실은, 전날 밤에 그렸노라(…)

실엮기가 많이 사랑받는 바람에 <쓰노라> 훗날 자신의 가족에게 한마디 남기고 가시라는 안내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주옥같은 글귀를 남기고 사라진 분들과 사진으로 채 남기지 못한 분들의 이야기까지 기억하고 싶다.

오후 5시, 우리의 오픈 스테이지는 CLOSED

오가는 사람들의 많은 생각과 다양한 길을 보여준 고마웠던 털실을 이만 자르고, 부스 주위의 쓰레기를 치우고 테이블을 접고 현수막을 걷었다.

머물렀던 자리는 흔적 없이.

생사고락(까지야…)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이날을 계기로 마음이 많이 가까워졌다.

우리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가끔 외롭고 종종 힘들며 대체로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래서 때로는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거운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날 우리가 거리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묵묵한 외로움의 한축을 기꺼이 함께 들어준 고마운 분들이었다. 분명히 힘이 됐다. 어떤 분들에게서는 눈빛으로, 손끝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혼인과 출산만이 가족의 당연한 전제인 것처럼 말하는 여전한 사회 분위기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듯한 법 제도가 한시바삐 보완되어, 가까운 미래에는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시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TMI) 또 한번의 오픈스테이지 <그럼에도, 별일 없이 산다>가 12월 3일 (화) 저녁 7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DDP CREA 세미나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