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터뷰 #신혼부부가_되었지만 #우리도_신혼부부_혜택_받고싶어요

2019.10.10 @성신여대앞 카페

저는 서울에 사는 성북구민 권유나 입니다. 곧 결혼식을 올릴 준비를 하느라 한창 바쁘고 있습니다. (인터뷰 당일 기준 결혼식을 2주 앞둔 상태)

당신의 가족은 몇명인가요?

5명입니다. 엄마, 친언니, 형부, 내 남편, 바라(고양이)

처음 이 인터뷰를 제안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셨나요?

취지 자체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저 또한 그 현 체제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결혼한 사람이기 때문에, 물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이 있었어요. 저는 동거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이사를 가게 되면서 대출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게 되어서 지금 혜택의 대상에 속하는 신혼부부니까.

신혼부부 대출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 결혼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만약 신혼부부 혜택이 없었더라도 혼인신고를 했을 것 같아요?

하더라도 결혼식을 한 후에 혼인신고를 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연애 초 때부터 결혼에 대해서 긍정적인 대화를 많이 했었고, 저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연애의 결실이 결혼식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저도 이런 부분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데, 집을 구하느라 급하게 대출 조건을 알아보는데 혼인신고를 해야지만 승인이 되거나 아니면 결혼할 예정이라는 걸 증명해야지만 대출이 된다고 해서 굉장히 불편했어요.

정부에서 지원하는 신혼부부 제도나 청약은 어떤가요?

신혼부부 제도는 우리처럼 신혼부부이기만 해도 대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도 분명히 있지만, 집을 구하는 모든 신혼부부 혜택, 청약은 다 아이가 있는 기준으로 산정이 되더라고요. 저는 임신 계획은 있지만, 임신으로 인해 혼인신고를 한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희망타운청약을 2차례 떨어지고,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느끼는 건데, 저는 계획되지 않은, 감당할 수 없는 임신과 육아에 불편해하는 사람인데, 우리처럼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은 기회조차 없더라고요.

희망 타운은 가점제인데, 예를 들어 12점 만점이면 3점짜리 4가지 항목이 있다고 하면 자녀가 없으면 0점, 자녀가 한 명이면 1명 자녀가 2명 이상이면 2점 이런 식으로 책정이 되고, 무주택 기간이 길수록 점수가 높은데, 그것도 만 30살부터 인정되더라고요. 저는 25살이니까 턱도 없고, 청약통장 주인인 남편은 신청 기준으론 만 31세라서 가점이 의미가 없는 수준이에요. 이게 어느 정도냐면 일단, 당첨자들은 12점 만점자가 대부분이고 11점도 운이 좋다고 해요. 카페에서 정보 공유를 하는데, 거의 만점자들의 싸움이더라고요. 그리고 말 그대로 신혼부부를 지원하는 아파트이다 보니까 작은 평형인데, 카페 공유하는 내용 보면, 아이가 셋인데 작은 평형으로 당첨됐다는 사람이 있어요. 정책이 실거주 목적인 사람들만 거르기 위해서 아예 당첨되자마자 되팔 수 없게 되어있어서 전세도 바로 못내놓는데, 희망 타운이 10년 정도 거주한다는 가정 하에 신청해야 하는 제도인데, 이미 애가 셋인 사람들이, 총 다섯 명이 18평에서 10년 동안 살아야 돼, 걔네가 10년 뒤면 고등학생이 될 수 있잖아요. 저는 이게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신혼부부를 위한 혜택인데 막상 우리 같은 신혼부부는 집을 구할 수가 없어요.

신혼부부 청약이 신혼부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네요. 

제 친구는 작년에 결혼을 했는데, 딩크족이에요. 임신을 안 한다고해서 남편이 정관수술도 했어요. 그런데 친구도 우리랑 비슷한 수준에서 전세에 살고 있는데, 둘 다 같이 계속 지원하는데, 둘 다 똑같이 떨어져요. 똑같이 떨어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확률을 보면서 지원하는 거죠. 

저는 배려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조금 있는 게, 태아도 인정해주고 입양 아이도 인정해준다는 항목이 있기는 해요. 그런데 임신조차 안한 사람은? 난임부부는? 딩크족이면? 우리처럼 계획 임신 예정이라 청약신청 당시에 당장 아이가 없으면? 노답인 거죠. 이게 신청할 때는 검수를 안하고 당첨이 되면 사실 여부를 확인해요. 그래서 일단 신청해놓고 그 사이에 열심히 만들어서 임신 중이었다고 거짓말이라도 칠까? 하는 농담도 했어요. 그런데 무슨 의미인가요, 당장 낳을 수 있는 여건도 아닌데. 

현재의 가족과 어떠한 계기로 같이 살게 되었나요?

연애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되었어요. 처음 동거한 계기는 데이트하고 밥을 사 먹고 하는 비용이 너무너무 비쌌는데, 요리를 잘하는 남자친구를 놀리지 말고 주방을 만들어주자, 또 더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기에 같이 살자는 생각을 했었어요. 금전적인 생각과 사랑해서.(하하)

원 가족에 벗어나서 현재 가족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남자친구와 동거가 목적이 아니었고, 그냥 독립을 하고 싶었어요. 혼자 살던 룸메이트랑 살던, 친구랑 살던, 집을 나가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지금은 엄마랑 사이가 좋은데 같이 살 때는 그러지 못했어요. 엄마랑 딸이니까 사랑하는 사이이긴 하지만 성격이 안 맞는 부분이 많아서 자주 싸우고, 연애하는 사이처럼 하나하나가 안 맞아서 스트레스를 받고,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표현 방법이 달라서 사소한 걸로 싸우다 보니까 엄마도 항상 너 20살 되면 너 혼자 살아보라고 얘기했고 저도 엄마랑 떨어져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찰나에 연애를 시작했었고, ( ) 엄마는 제가 나가서 살았으면 하는데 또 혼자는 걱정되니까 친구랑 나가서 살면 허락해주겠다는 전제가 있었는데 그걸 남자친구로 바꿔서 내가 허락을 받았어요. ‘엄마 내가 분가한다고 했잖아? 나 남자친구랑 동거해보고 싶어’ 이렇게요.(하하)

언니가 나보다 8살이 많은데, 언니도 동거를 하다가 결혼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엄마는 8년 전에 이걸 겪었던 거예요. 또 엄마 스스로도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허락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인생이 휘둘리는 실수만 하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만 아니라면 그냥 최대한 존중해주는 편이었죠. 단, 최소한의 거쳐가는 과정이 동거 허락 자리가 아니었나 싶어요.

엄마와 언니의 얘기가 흥미롭게 느껴지네요,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원가족의 영향이 컸나요?

아마도? 저는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본인의 선택으로 가족을 나눴고, 나 또한 거기에 익숙해있어서 엄마의 선택을 존중했어요. 엄마는 딸들에게 아빠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도 본인이 같이 살 수 없으면 이혼해야 하는게 정답이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한테 항상 했던 말이 너하고 아빠와 관계가 끊어진 건 아니기 때문에 너가 연락하고 싶으면 연락하고 만나. 그래신 나하고 그사람이랑 엮지 않으면 된다’. 한, 10살 때 부터 엄마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살고싶은 사람과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을요.

‘내가 살고싶은 사람과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네요. 그렇다면 혹시 ‘이런 가족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 당시 떠올렸던 가족에 대한 상이 있었나요? 

어릴 땐, 그냥 같이 사는 사람이었어요. 왜냐하면 아빠랑 10살 때부터 떨어져 살았는데 그때부터 가족이 아니게 되었거든요. 아빠는 가족이었는데 가족이 아니게 됐죠. 가족상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이런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건 있었어요. 내 자식에게 이런 영향을 줘야지 하는. 존중해주는. 자식의 원하는 바도 들어봐주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바라는 것도 넓게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하기 전에 보여줬던 동성, 혼자 살 거라든지, 회사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친구에게_처음으로_청첩장을_받았다.

앞으로 이 주 후면 주변인들에게 부부가 됨을 선언하는 날이잖아요, 기분이 좀 남다를 것 같은데.

‘결혼기념일을 언제라고 생각하느냐’는 주제로 대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혼인신고를 이미 했기 때문에. 저는 모든 날이 특별해서 다 챙기고 싶지만 굳이 따지자면 결혼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저는 남들을 의식했던 것 같아요. 오빠 입장에선 서운할 수 있겠지만, 혼인신고 숨기고 결혼식을 중요시하는 걸 암묵적으로 받았나 봐요. 오빠 말이 틀린 말은 아니더라고요, 남들에게 보여주는 행위 자체가 기념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명쾌한 해답은 언니한테 있었어요. 언니도 결혼을 일찍 한 편인데, 해외에서 결혼식을 해서 혼인신고 한 날이랑 결혼식을 한 날이랑 달라요. 언니한테 물어봤더니 처음 사귄 날, 혼인신고한 날, 결혼식 한 날을 다 챙긴데요.(하하)

어머 스윗해라, 그래 그게 정답이었네요. 처음 진행할 때 ‘당신의 가족이 몇명일까요’라는 질문 이후 약 한 시간 정도 인터뷰 진행했어요. 그 질문을 다시 했을 때. 그대로인가요?

네 그대로입니다.

인터뷰 어땠나요?

생각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해 좀 자세히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당연한 거니까. 가족이라는 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건데. 

혹시 모르죠, 지금은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부모가 5년 뒤에는 손가락에 꼽힐 수 있고.(하하) 고생하셨습니다.

#별별인터뷰 #지지고볶고 #유나

190918 @회기역 오리

원두 says

‘가족’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4명의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맛난 밥을 먹고, 하하호호하며 그 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공익광고가 주입한 이미지일 뿐,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휴. 오히려 공익광고가 주입한 이미지는 찰나의 순간만일지도. 하지만 그 또한 가족, 아니 그것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지만 답답하고 밉고, 그치만 가족이라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는 유나의 지지고 볶는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유나 소개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서로의 심리적/물리적 거리의 존중과 따듯함이 유지되는 관계에서 가족이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산책을 좋아합니다.

OX퀴즈

원두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본인이 생각하는 가족은 어떤 형태인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아이스브레이킹이 있어. OX로 3초 안에 대답해야 돼. 해볼게.

나를 어렸을 적에 버리고 간 엄마, 근데 내가 20살 되던 해에 나타났다. 그 엄마는 가족인가, 아닌가?

유나

X

원두

왜 X야?

유나

낳기만 하면 가족인가

원두

그럼 그 엄마를 대신해서 나를 계속 키워준 새언니-

유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패널 듦) O

원두

(웃음) 엄청 빠르네. 키워 주었기 때문에 가족이야?

유나

난 약간 그런 거 같애*. 혈연보다는 정이나 그 안에 있는 공동체성 같은 것에 기반하는 느낌? 사실 생물학적으로 낳아주는 거는, 그것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혈연적인 건 가족의 시작이 되는 거고 가족은 관계를 하면서 같이 만들어나가는 거지, 딱 정해져 있는 게 될 수 없다는 느낌?

*화자의 말투와 습관을 살려 적은 부분입니다.

원두

그다음 질문도 조금 비슷하긴 한데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할아버지, 가족인가 아닌가?

유나

음….약간 어렵다. 중간.

원두

어 근데 의왼데? 나는 네가 엄마 질문에서 바로 X라고 해서 친할아버지도 아무 유대가 없으니까…

유나

유대가 없긴 없는데, 오히려 그러니까 더 어려운 것 같아. 싫은 감정도 없으니까. 뭔가 나한테 책임감을 묻거나 할 소지조차 없으니까.

대답하다 보니까 내 안에 가족에 대한 바운더리가 생물학적인 가족이 있고, 그거 외에 다른 가족이 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생물학적인 것만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이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가족들이 있을 수 있다고 열어놓고 있는? 그런 상태 인 것 같은…

원두

매주 금요일마다 나에게 파전을 구워주는 이웃집 아줌마, 가족인가 아닌가?

유나

이거는 내가 그 아줌마를  얼마나 친밀하게 느끼는지에 따라 다른 거 같아.

원두

만약에 친밀하게 느낀다면 가족에도 넣을 수 있다?

유나

그니까 그 사람이 나에게 파전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랑 나랑 파전을 나눠 먹는 시간 동안 어떤 교류가 있고 얘기가 있고 그걸로 어느 정도 이상의 유대감이 있는 상태면은 나는 가족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원두

마지막은 더 파격적이야.

엄마가 아플 동안 그 유년 시절 항상 나랑 함께하며 항상 나를 위로해준 피카츄 인형(웃음) 가족인가, 아닌가?

유나

나는 가족인 것 같은데(웃음)

원두

아, 가족인 것 같아? 나 실제로 있었거든. 피카츄 인형이 있었어(웃음)

유나

으응~

원두

오히려 가족이다?

유나

(웃음) 피카츄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느낄 수 있지.

당신의 가족은 몇명입니까?

원두

그러면 인터뷰하기에 앞서, 지금 상태의 유나가 생각하는 유나의 가족은 몇 명입니까?

유나

(고민) 흠. 한 8명 되는 것 같은데?

원두

오, 누구누구 들어가는지 물어봐도 돼?

유나

그냥 우리 가족에, 내 고양이에, 남자친구와 친구를 포함한 명수. 친구도 다는 아니고.

원두

동네 오랜 유년시절을 함께했던…

유나

오랜 유년시절이라기보다는 그냥, 기간이라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대감이 더 가깝다고 느끼는?

원 가족에 대해 간단한 소개 해주세요.

원두

내가 선택할 수없이 이미 태어나서 정해진 가족을 원 가족이라고 하더라? 초반에는 바운더리를 좁혀서 원 가족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어.

가족 소개하면서 생각나는 이것저것.

유나

아무렇게나?

원두

어어, 나한테 이야기 들려주듯이?

유나

우리 가족은 코인이(고양이) 포함 5명인데. 나는 항상 느끼는 게 우리 가족의 성향이 당연히 비슷한 듯 다르고, 근데 그 기본적인 성향이 서로 살갑거나 이렇다기보다 무뚝뚝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가족이라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이들도 날 잘 모르고 나도 이들을 잘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으면서도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가깝기 때문에 또 어쩔 때는 다 안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역설적인… 집단 같은? 느낌이 좀 들고. 아빠 같은 경우는 딱 전형적인 가부장제, 유교사상을 답습한. (웃음) 얼마 전에 내 동생이 절을 하는데 오른손이 위에 갔다느니 왼손이 위에 갔다느니 이런 거를 따지고 있고, 본인이 죽을 때까지 아들이 제사를 지내줬으면 좋겠다는?(웃음)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서…

원두

어, 그런데 본인의 제사를 해주길 바라는구나.

유나

아빠만 그래.

원두

아, 아빠만.

유나

엄마는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라고. (웃음) 아들 고생 시킬 거냐고,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라고. 

원두

그럼 엄마는?

유나

엄마는 헌신하는 엄마상. 그리고 아빠는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억압하는 스타일인데, 그 억압을 뭔가 폭력적이고 폭군적인 방식으로 한다기보다는 모른척하거나 회피하는 식으로 일관하고. 엄마는 아빠가 그런 타입이기 때문에 더 눈치를 보고, 아빠보다 더 빨리 움직여서 아빠가 회피하는 문제들을 본인이 해결한다거나 헌신하면서 가족의 문제들을 봉합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그 과정에서 또 엄마가 받는 스트레스나 감정적인 분출을 할 데가 없으니까 그런 것들이 자식이나 남편한테 갈 때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어.

동생은… 동생이랑 어렸을 때는 되게 싸우면서 자라다가 대학교 지나고 나서부터 집 상황이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공유하면서 거기서 유대를 느낄 때도 있고. 자식으로서 공유하는 어떤 부모의 문제라던가 집안의 분위기라던가 이런 게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성인이 돼서는 묘하게 유대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음- 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리 아빠가 강하게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엄마도 안 그런 편이긴 하지만 그런 태도가 비칠 때도 있기 때문에 나는 내 동생을 편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가 ‘아들’이기 때문에 받는 어떤 것들이 느껴지기도 하고. 가족이라고 했을 때 그 안에 엄청 다양한 알력들이 있는? 개개인의 캐릭터와 이들 한 명 한 명의 위치가 사회적으로서 받는 역할에 대한 중압감 같은 것들이 있잖아. 플러스 나이, 성별 이런 것들 다 복합적으로 섞여가지고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없어지고 유폐되고 이런 느낌?

원두

우리 집처럼 남자라는 사람이 기대치를 바닥에 쳐야 남자, 여자 그런 게 없는데 (웃음)

유나

우리 아빠는 내 동생이 수능 막 못 본 것도 아닌데, 어느 정도 봤었어. 근데 아빠의 기대만큼 못 봤단 말이야. 나는 그 때 우리 아빠 우는 걸 처음 봤어. 본인이 생각한 본인의 아들에 대한 뭔가… 나한텐 그런 게 없거든(웃음) 

원가족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그 이유는?

원두

그럼 가족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유나

나는 명절. 가까운 직계 가족들이야 일상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자주 보는데, 명절 때 보는 가족들은 그렇지는 않잖아. 아빠 포함 친가 가족들이 엄청나게 경직된 분위기에서 유교적인 사상과 가부장적인 거를 몸에 체화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게 너무 쎄기 때문에 만나는 게 힘들었어. 약간 단적으로 말하면 그거야. 나랑 내 동생 어렸을 적 명절 때 갔다가 집에 올라가는 길이잖아? 과일 하나만 싸주면서 가는 길에 우리 아빠 먹이라고. 우리 아빠’만’ 먹이라고, 그런 식? 그 정도로 본인 아들밖에 모르는..

원두

근데 손자, 남자 동생도 있었잖아. 그런 거 상관 없이?

유나

본인 아들이 1위고, 그다음이 내 동생이고, 엄마랑 나는 아예 밖에..

명절이 생각나는 게, 지금 내가 커서는 그들이 분노의 대상이라도 되는데, 어렸을 때는 나랑 그들이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여있으면은 내가 이들을 미워해서도 안된다는 그런 게 은연 중에 있으니까 내가 이 사람들을 미워하는 거 자체가 잘못을 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이 사람이 너무 밉고 무서워도 생각해보면 ‘이 사람은 우리 아빠의 가족인데 내가 아빠의 가족을 미워해도 돼?’ 약간 이런 생각이 어렸을 때 드는 거야. 

그들 중에도 나에게 더 적대적인 사람이 있고, 신경 안쓰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그중에서도 잘해줬- 잘해준다기보다는 그래도 살갑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쨌든 간에 그들 모두가 다 우리 엄마한테 명절 때 가면은 일 시키고 안 좋게 대하는 걸 보니까 우리 엄마한테 안 좋게 대하는 사람을 내가 왜 좋아하겠어. 그러니까 같이 있기 싫으니까 거의 쪽방에만 있고. 다른 친구들은 어렸을 때 명절 쉰다고 좋아하고 할머니 집에 간다고 좋아하는데 나는 그런 게 너무 이해가 안 되고 신기했어. ‘명절이 좋을 수가 있구나.’ 그런 거? 이름으로만 가족이라고 얽힌 거지. 그 가족이라는 게 나한테는 어렸을 때 되게 족쇄처럼 느껴졌었어. 왜냐면은 사람들은 ‘가족’ 하면은 방송에서 다루는 딱 이상적인 상들이 있잖아. 화목하게 지내고, 잘 정돈된 식탁에서 항상 저녁을 먹으면서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그 범주에 벗어나 있다고 느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이상적인 가족의 상을 지켜야 한다거나 혹은 그거를 욕하면 안 된다고 나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 같애.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는 거 자체도 마음이 되게 불편했었던?

원두

괜히 자책하게 되고.

유나

어어. 내가 가족을 미워해도 돼? 내가 가족을 왜 미워하고 있지? 이런 생각들 때문에 어렸을 때는 좀 힘들었었던 거 같애. 지금은 뭐, 그냥 화를 내고 말지 (웃음)

원두

그럼 족쇄같이 느꼈던 느낌을 벗어나게 된 시기는 언제쯤이야?

유나

성인이 되면서 점차 그랬던 거 같애. 어렸을 때는 내가 가고 싶건 말건 부모님 따라 무조건 가야 하고, 그 공간의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하니까 어렸을 때는 ‘무섭다’ 이런 거였고. 그게 중고등학생 되면서 ‘화’랑 비슷한 감정으로 바뀌었고. 그 감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신기한 감정이었어. 어쨌든 명절이라 해봤자 2번에서 많으면 3-4번 이렇게밖에 안 만나는 사람들한테 그런 감정을 가진다는 거 자체도. 그렇게 답답했으면은 집을 뛰쳐나와서 다른 데 있었으면 됐는데, 그때는 그 생각도 못 했어. 그리고 우리 엄마가 집에 혼자 있을 생각을 하면은 더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거야. 

고모가 우리 엄마를 내가 항상 너무 이해 안 되는 걸로 못살게 구는데, 어떤 명절에는 한 번 약간 도를 넘었었어. 뭔지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래서 우리 엄마가 꾹 참고 서 있는 게 보이는 거야. 내가 그걸 보고 너무 열이 받는 거야. 엄마 왜 듣고 서있냐고, 엄마가 바보냐고, 나랑 지금 나가자고 나가서 내려가자고. 여기서 왜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대꾸도 안 하고 가만히 서있는 거야. 고모들은 놀라서 나를 쳐다보고. 열이 받아가지고 가방을 싸서 나만 나왔어. 근데 난 좀 놀랐던 게, 엄마가 그때 가만히 있어서 아무도 나를 쫓아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열받아서 혼자 집에 가려고 짐을 싸 들고 나온 건데 엄마랑 아빠가 짐을 싸 들고 나를 쫓아오는 거야. (웃음) 버스 정류장에서 서있다가 되게 당황스러웠고. 나는 엄마는 나와도 아빠는 안 나올 줄 알았거든? 근데 아빠도 되게 뻘쭘하게 “올라가자” 이러는 거야. 그렇게 올라온 이후로 엄마한테 직접적으로 전화를 해서 뭐라고 한다거나 이런 건 끊겼어. 그 날이 족쇄를 벗어나게 된 계기였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크면서 내가 그들을 마음속에서 가족으로 안 생각했어. 분리시켰어. 어렸을 때는 그래도 내가 우리 아빠 가족이고 내 가족이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괴로워했었는데 지금은 마음에서 아예 단절을 시켰단 말야. 나는 그런 관계는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내가 남보다 못한 사람들한테 그리고 남보다 못하게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한테 왜 가족으로서의 도리라는 허상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야. 클수록 점점 그런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원두

제일 무섭고 그런 기억이 떠올랐으니까 반대로 좋거나 긍정적인 기억은 있어?

유나

근데 좋은 거는 딱히 확 어떤 장면이 떠오르진 않는 거 같애. 없다기보다는 좋은 거는 생각보다 되게 소소한 것들? 그런 것 있잖아. 생일이라고 해서 밥 다 같이 먹고 오면서 서로 농담 따먹기 한다던가, 내가 어딜 가자 해서 우연하게 들른 데가 좋아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지나간다던가 그런 일들? 일상적인 것들에서 잠깐잠깐씩.

원두

나한테 같은 질문을 했다 해도 나도 뭐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를 거 같긴 해. 왜 항상 안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오를까?

유나

안 좋은 기억은 뭔가 강렬하고. (웃음)

원두

맞아. 그리고 방금 얘기하면서 떠올랐는데 가족이 그런 존재이기도 한 것 같애. 그러니까 좋으려고 있던 게 아니고, 원래 있었고, 당연한 건 아니지만 당연하게 느껴지고 일상적이고 하다 보니까 좋은 기억은 그냥 흘려보내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해. 

유나

이벤트처럼 좋은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그들까지 내 일상의 영역이잖아. 일상은 뭔가 특별하게 좋다고 느끼기가 어려우니까.

원두

난 들으면서 그것도 좀 새롭긴 했어. ‘무섭다’라는 감정이. 나는 원래 겁이 많아서 무서움을 잘 느끼는데도 친척이든 가족이든 무서웠던 적은 딱히 없거든. 어렸을 때 있었을 순 있지만 지금까지 생각날 정도의 강렬한 무서움은 없는데, 너는 얘기할 때 무서웠다고 얘기하니까 혈연, 가족이라고 하는 사람들한테서 무서움을 느낀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새롭긴 했어.

유나

왜냐면은 친가 가족들 중에서 고모 다섯에 아들이 아빠 하나인데, 집안의 지원이라던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아빠한테 다 쏟아부었지. 그래서 고모들도 보면 아빠에 대한 애증이 있어. 부모들이 자기 동생을 대하는 걸 봤기 때문에 그들도 그걸 답습해서 집안에 아들이 없으면 큰일 나고 무시당하고, 아들은 큰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아빠를 그런 식으로 대하긴 해. 애지중지 대한 다기보다 그래도 아들이니까 이런 게 있어. 어쨌든 그런 걸 내면화 한 사람들이니까 엄마와 나에게는 기본적으로 싸늘하게 대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싸늘하게 대했던 고모는 거의 나를 싫어한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인 것 같아. 나를 보는 눈빛에서 기본적으로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안 좋아하는지는 느낄 수 있잖아? 나를 항상 봤을 때 싸늘하게 봤었고, 나에게 말을 걸 때도 면박을 주는 식의 말밖에 안 했어. 너는 이런 것도 안 하니? 너는 인사성도 없네? 그러니까 나는 그냥 항상 그 집에 가면 그 사람을 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 너무 피하다 보니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한 거야. 내가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어떤 날은 그 사람이 방에서 화장을 하고 있는데 내가 들여다봤어.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됐던 것 같아. 맨날 내가 너무 피해 다녀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궁금해가지고 봤다? 아직도 생각이 나. 그 화장하는 거울 안으로 눈이 탁 마주친 거야. 근데 나는 원래 무서워했으니까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도망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 도망을 갔어. 도망을 가다가 옥상의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막 뛰어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쫓아왔어. 화장하다 말고. 진짜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때렸어. 쳐다봤다고 열이 받았나 봐, 본인은. 나는 엉엉 울고. 젤 많이 운 거는 우리 엄마였지. 그때 나는 어려서 상황을 잘 이해 못하고 운 건데, 엄마는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겠어. 솔직히 그 어린애가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건 진짜 싫어하기 때문에 한 거잖아. 그때는 그런 거를 ‘무섭다’ 이렇게 생각했어.

원두

참 신기하다. 그렇게 미워할 수 있다는 게.

유나

어렸을 때는 진짜 그게 억울했다. 그 감정의 기저에 그것도 있었던 것 같애. 그걸 이해해보려고 했기 때문에? 어렸었던 내가 뭐가 그렇게 싫었을까? 이거를 내가 계속 생각을 해보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자체도 안 하고 그런 생각에 감정을 낭비하는 것도 너무 아깝고.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느라 감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걸 겪으면서 내 안에서 그런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에 대해서 스스로 가지치기를 했던 거 같애. 

원두

참 친가는, 우리 나이, 우리 아빠 세대 때는 다 그런가 봐. 갑자기 친할머니가 우리 언니 뺨 때렸었다고 들었던 얘기가 생각나. 나는 보진 않았는데. 언니가 초등학생 때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거야. 그거 때문에 막 아프고 놀래가지고 난리를 치면서 운 거야. 근데 시끄럽다고 조용하라고 뺨 때렸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엄청 속상해하면서 ‘애가 그럴 수도 있지.’ 했었던 기억이 나.

근데 나는 최근에서야 ‘아, 할머니가 잘못했었네.’ 깨달았어. 비슷하게 어렸을 때 아빠한테 우리 가족은 화목하다고 세뇌를 많이 당했다는 걸 커서 깨달았어.

유나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거기서 벗어난 생각을 못 했지? 그게 왜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지?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걸 가까이 보고 생활하고, 나랑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관계에 있으니까 나한테 있어서는 당연한 거잖아. 

원두

왜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서 가정 설문조사? 하잖아. 아빠 무슨 직업인지, 이런 거 조사하는 거.

유나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 그런 걸 자기들이 알아서 뭐 하게.

원두

(웃음) 맞아. 근데 아마 그게 주관식 문항이 있었을걸? 가족 분위기 어떤지 쓰라고? 그러면 나는 항상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가 싸우지도 않고 화목하다.’라고 써서 냈던 기억이 있어. 떠올려보면 우리 아빠는 그 당시에도 툭 하면 엄마한테 화를 내고 우리한테 소리 지르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 썼다는 게 너무 놀라운 거야. 근데 그때 항상 아빠가 ‘우린 싸우지도 않고 얼마나 화목하냐’ 이런 말을 많이 했었거든. 그래서 ‘아 그렇구나, 우리 가족은’ 이러면서 썼는데, 커서 생각해보니까 ‘왜 그런 아빠를 보고 화목하다고 생각했지?’ 의문이 들었어. 그때는 엄마는 항상 참고, 아빠가 일방적으로 화내서 싸움이 안되니까 싸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나봐. 참 신기하지. 어렸을 때 화목하다고 생각한 게 세뇌당한 거였구나.

유나

어렸을 때는 가족이라는 단어 때문에 뭐가 있는 거 같아.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 가정은 화목해야 하고, 할머니 하면 전형적으로 느껴지는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여야 하고.

원두

어렸을 때는 가족이 더 절대적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벗어나서 살 수가 없으니까.

유나

그런 것도 있는 거 같애.

원가족 내에서 가장 편한/불편한 사람과 그 이유는?

원두

그러면 원 가족 내에서, 적절한 단어를 잘 모르겠는데, 가장 친하다고 해야 할지 편하다고 해야 할지 그런 사람은 누구야?

유나

네코 (고양이 이름)

원두

(웃음) 원 가족 내에서

유나

아, 그래? (웃음) 동생?

원두

왜?

유나

친한 편이라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 동생도 나도 성격이 약간 친해도 서로 공유하는 선이 막역한 게 아니라 ‘누나랑 나는 친하지만 여기까지’ 그런 게 있어. 기본적으로 서로 ‘뭘 하든지 알아서 하겠지’ 약간 이런 게 있는 편이라서 그런 면이 젤 편한 거 같애. 서로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게. 나이도 비슷하고.

원두

그럼 반대로 제일…

유나

(말도 끝나기 전에) 아빠. 아빠.

원두

아빠(웃음). 이유는?

유나

일단 어느 순간부터 아빠랑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애. 너무 자기가 아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을 해서 상대방이 반박을 하거나 말이 안된다고 얘기를 했을 때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고. 기본적으로 반응이 열려있어야지 오고 가면서 이해를 하는데, 너는 모른다고 치부를 하거나 갑자기 화를 낸다거나 이런 식이 되니까. 

어느 날인가 가족들이 외식을 하러 가는데 나랑 아빠랑 같이 걷게 된 거야. 같이 걷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너무 모르겠는 거야. 그런 어색함을 느끼고 나서 ‘아, 아빠랑 있는데도 이렇게 어색한 사이가 됐구나.’를 그때 체감했던 거 같애.

이전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잘 맞지 않았지만 가족을 이해하게 된 순간/측면이 있다면?

원두

그러면 가족임에도 진짜 이해 안 가, 왜 그러지? 이런 부분 있잖아.

유나

예를 들어?

원두

나 같으면, 우리 아빠의 ‘나누는 걸 싫어하는 행동’이 너무 이해가 안 되고 싫었어. 어떤 식이냐면 집에 포도를 엄청 많이 사놓은 거야. 아빠는 쿠팡 세일로 쇼핑하는 거 좋아하니까. 너무 많기도 하고 하나 정도 회사 사람들이랑 나눠먹고 싶으니까 ‘나 이거 회사 가져간다’라고 하면 엄청 화를 내는 거야. 집에 거를 왜 가져가냐면서.

유나

네가 가져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가져가서 다른 사람들 주는 게 싫은 거야?

원두

그런 거 같애. 집에서 먹으면 아빠도 같이 먹을 수 있는데, 그걸 왜…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많은데, 바로 떠오르는 게 이거네.

유나

우리 아빠는 버럭 해, 버럭. ‘이러이러해서 저렇다’ 설명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나는 그가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인지도 모르다가 버럭하는 걸 듣는 거지. 예를 들어 별것도 아니야. 화장실에 팬을 켜 놓고 나왔어. 평상시에 나는 샤워를 하고 그걸 보통 켜놓고 나오고, 내가 새벽에 화장실 자주 가니까 갔다와서 자기 전에 끈단 말이야. 근데 이제 아빠가 그 타이밍에 깨있었던 거지. 그게 못마땅했던 거야. “너는 저거 밤새도록 켜놓으려고 그러냐!!” 갑자기 이러는 거야. “방금 켰는데.” 이러면 들은 척도 안 해. 이런 면은 엄마 아빠 다 해당되는 건데, 특히 자식들한테는 그들 기분에 따라서 확 표출하는 거? 

원두

그러면 예전에는 진짜 이해가 안 갔는데, 나이가 들거나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해가 갔던 측면이나 순간 같은 게 있어?

유나

딱히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엄마들 뭐 살려고 그러면은 지나치게 가성비 따지고 성분 따지고, 본인들은 안 좋은 거 먹고, 게다가 내가 쓰는 것도 막 못 쓰게 하고 그러잖아. 그게 옛날에는 너무 답답했어. 그런데 지금 보면은, 우리 아빠가 그런 거에 있어서 다부지지 못한 편이고, 그걸 항상 엄마가 수습해왔던 게 본인에게 너무 내면화된 거지. 아껴야지 갑자기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점점 그런 사람이 되고. 우리 엄마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을 텐데. 엊그저께인가 명절 연휴 중에 하루, 같이 나가서 밥먹고 종각에 <반쥴> 카페 있잖아, 거기 갔는데, 거기 고가구들이 되게 많잖아. 근데 엄마가 거기 장식장 안에 향수들을 한참 보는 거야. 우리 집에도 향수 되게 많단 말이야. 집 새로 이사 가면 이런 거 꾸미고 싶고, 자기 이런 거 되게 좋아했고, 인테리어도 되게 좋아해서 우리 집 처음 이사 왔을 때 막 잡지에 있는 인테리어 하는 업체 불러서 가구 맞추고 그랬대. 아빠 몰래. (웃음) 우리 엄마 옛날에 꽃꽂이도 하고 이랬었거든. 그랬는데 그런 것도 다 까먹고. 아무튼 가구들 보면서 “나 어렸을 때 내 친구들이 나 이렇다고 했는데…” 이런 얘길 막 하는 거야. 그런 거 보니까 나는 우리 집안에 있는 우리 엄마로서의 모습만 보는 거지. ‘엄마의 모습을 잘 모르는 거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 

원두

그래서 더 가족인데 서로를 잘 모르나 봐. 그치.

유나

그런 거 같애. 나는 약간 스스로를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니까, 특히 가족들한테는 더 그러니까. 뭐 문제없는 것처럼 항상 굴고. 뭐 물어보면 다 잘되고 있다, 괜찮다,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할게’라는 말 되게 많이 한단 말야. 내가 그러니까 가족들도 나만큼이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애.

가족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위치에 있는 사람인가요?

원두

지금까지는 가족에 대해서만 물었고, 그 원 가족 속에서 너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애? 어떤 사람이라는 게 너무 폭이 넓어서 어려울 수 있는데.

유나

뭔가, 가족들이 보는 나의 모습?

원두

근데 가족들이 보는 너의 모습은 가족들한테 물어봐야 하니까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네가 생각했을 때 너는 가족에서 어떤 역할? 어떤 포지셔닝?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최약체야, 우리 가족에서. (웃음) 왜냐면 많이 말했지만, 언니가 제일 서열 1위이고 그다음이 아빤데. 아빠는 원래 자신의 감정을 엄마한테 풀다가 엄마가 아픈 뒤로는 못 풀고, 근데 동생한테 풀자니 동생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 그러니까 나밖에 없는 거야. 근데 내가 그걸 잘 받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생각하게 됐어. 나는 오히려 사춘기 때는 되게 조용하게 지냈는데 사회 초년생 때 아빠랑 제일 많이 부딪혔어. 근데 엄마나 언니나 그런 불화가 있을 때마다 아빠한테는 참으라고는 자기들도 말 못 하니까 항상 나한테 참으라고 했어. 근데 참으라고 하는 게 아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참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너는 뭘 또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했어. 그래서 실제로 내가 예민할 수 있는데 예민하다는 걸 인정하기가 싫은 거야. 그런 식으로 예민하다고 규정졌어서. 그래서 가족이 별문제가 없어도 별로 안 좋아. 나는 그런 위치였던 거 같애, 내가 생각했을 때. 권력구조의 최약체였어. (웃음)

유나

나는 나만 ‘우리 가족에서 특별히 어떤 위치다.’ 그런 것보다도, 약간 우리 가족은 다들 섬처럼 조금씩 떨어져 있는 느낌인데 내가 좀 더 그런 느낌? 더 거리두기하고 있는 느낌?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나를 보면서 되게 무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애. 가족들 사이에서 나를 보면 약간 냉소적으로 보면 관찰자 같은 느낌도 들기도 하고. 나 스스로가 다 그냥 뭔가 누군가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편이니까.

원두

경험 때문에 점점 그렇게 변한 걸 수도 있고 그게 너한테 또 편한 거지? 어때?

유나

편한 것도 있고, 또 내심으로는 신경 쓰이는 게 있기도 하다? 일이나 트러블이나 가족들 사이에서 많을 수밖에 없기도 하잖아. 조율해야 될 게 그렇게 많은 관계니까. 그럴 때마다 내가 개입을 하는 게 나도 어느 순간 버겁고 힘든 게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은 그냥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애.

가족이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은 무엇인가요?

원두

그럼 원 가족을 넘어서서 네가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가족이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은 뭐가 있어? 이런 조건 정도는 충족해야 가족이 될 수 있다. 이런 거.

유나

결국에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애. 나랑 되게 다를 수 있고 안 맞을 수 있는데, 그거를 서로 어느 정도까지 노력을 해서 맞춰보려하고 서로의 모습을 인정해주려고 하는지?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기본적으로 서로 억압 하지 않으면서, 나는 나고 너는 너인 상태로 있으면서 서로 의지가 잘 될 수 있는 상태가 제일 건강한 거 같다고 느껴지는데. 그렇게 하려면은 서로 애초부터 비슷한 사람이면 그런 과정이 편하게 될 순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거는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얼마나 잘 인정해 줄 수 있고, 그거에 대해 열린 태도를 들을 수 있는지? 그런 것도 중요할 것 같고. 가치관 이런 것도 중요할 것 같고.

원두

물론 딱 맞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열린 태도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 성향? 이런 게 비슷한 사람은 아예 없다곤 할 수 없잖아. 근데 그런 사람을 다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하면 그건 아니잖아. 아, 다 가족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 사람이면?

유나

음…..(생각 중) 모….르겠네? 가족 했을 때 드는 생각?은, 물론 가족도 다 크면 서로 따로 살고 그런 것도 있지만, 약간 주거나 생활을 공유하는 느낌? 이 큰 것 같애. 기본적으로 그런 태도를 지니되 약간 나의 삶의 반경에서 가깝게 있는 사람이 가족으로 느껴질 거 같은? 가족 하면 일상의 범주에 드는 느낌이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그런 태도나 예의를 잘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서로 그런 생활이나 일상의 범주를 잘 공유하고 삶을 같이 나누는? 그런 사람들이 가족으로 느껴질 거 같은?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원가족은 여전히 당신의 가족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원두

그러면 너만의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이 생겼다고 했을 때, 지금의 원 가족은 그 가족에 들어가, 안 들어가?

유나

들어갈 것 같애

원두

3명 전부 다?

유나

뭐랄까 ,약간… 애증의 관계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고르라고 하면 내가 빼지는 못할 것 같은?

원두

그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봐 온 연민이나 이런 게 작용하는 거야, 아니면 혈연이 그래도 중요하다 이런 거야?

유나

혈연이 중요하다는 건 아닌데. 지금의 가족들은 물론 지지고 볶고 안 좋을 때도 있고, 그런 모습들 중에 여전히 이해 안 되고 나로서는 아마 계속 이해 안 될 모습들도 있긴 하지만, 그게 뭔가 내 마음속에서 가지를 쳐버릴 정도의 타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애증이 존재하는 것 같애. 특히 부모님한테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써는 나한테 애정을 줬고, 그런 걸 봤을 때 이들이 나한테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럴 수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가족을 재구성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를 빼지는 못할 거 같은? 그런 생각? 근데 내가 아예 처음부터 우리 부모님들도 다 타인으로서 만났으면 또 모르지. 어렸을 때부터 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게 큰 것 같애.

원두

그러면 그런 구성권이 있을 때, 원 가족이랑 네코 빼고 3명이 더 있는 거잖아. 가족이 몇 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8명이라고 대답했으니까. 거기에 3명을 더 가족이라고 넣은 거잖아. 남자친구랑 친한 친구 2명이랑. 그럼 그 이유는 뭐야? 가족으로서 생각하게 된 요인?

유나

아까 말한 상호 간의 열린 태도와 애정과 일상의 공유 이런 게 중요하다고 얘기했지만. 그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나의 일상적인 수준에서 감정의 공유나 이런 건 가족보다 더 의지를 많이 하는 거 같애. 슬플 때 부모님 앞에서는 안 울어도 네코 안고 막 울고(웃음) 그런 것처럼. 어떻게 보면 가족이라는 게 오히려 나다울 수 없는 면들도 있잖아. 근데 친구나 네코 같은 경우에는 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고민이 앞서기보다, 더 나를 잘 보여줄 수 있고 내가 나다운 모습 그대로여도 괜찮다는 신뢰를 어느 정도 상호 간에 쌓아온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친구 관계가 어떻게 생각해보면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관계잖아. 그런 것들이 오랜 시간 서로한테 신뢰나 그런 걸로서 쌓여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느낌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그런 것 같애.

원두

궁금한 게 2가지 있는데, 내가 본 너는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일상의 공유를 잘 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꽤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전부 가족인 건 아니잖아. 그중에서 가족만큼 느끼는 친구가 있는 거잖아. 그 차이점은 뭐야?

유나

그들과 같이 지내오면서 형성된 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시간들도 무시는 못 하지만,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내는 거랑 더 많이 이해하고 서로 공유하는 거랑은 또 좀 다른 느낌? 그렇게 따지면 가족들도 엄청 오랫동안 가까이서 본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게 잘 되는 가족이 있고 아닌 가족이 있잖아. 그런 것처럼 나랑 가까운 바운더리 안에서 관계가 무너지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사람이어도 서로 이 정도의 선만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정말 깊이 공유하면서 나누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정말 어렸을 때 알았던 서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잘 지내는 사람이 있고. 그거는 사람마다 다른 거 같아서. 시간보다는 조금 더 깊이나 나다움을 숨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런 게 더 주였던 것 같애.

원두

나머지 질문은 지금 남자친구가 엄청 오래된 건 아닌데도 가족의 범주에 어떻게 들어갔냐 묻고 싶었는데, 방금 말한 거랑 이어지게 꼭 시간이라기보다는 서로 인정하고 나다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거지?

유나

그런 것 같애. 사실 절대적인 시간이 오래된 건 아닌데, 물리적인 환경이 너무 가깝다 보니까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있고. 내가 어떤 거에 대해서 문제를 느끼고 서운함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거에 대해서 바로 인정, 인정이 바로 안돼도 인정하려고 생각해. 내가 “서운하고 기분이 우울해”라고 했을 때, 본인은 억울할 수 있지만 우울한 건 없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인 거잖아.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부정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은 그 감정을 인정한 다음에 그래서 ‘왜 그렇게 느꼈고, 어떻게 하면 될까?’에 대해 되게 진지하게 짚고, 논의하려는 태도를 서로 지키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애. 둘 다. 그게 안되면 서로한테 얘기를 하고. ‘네가 지금 이런 상태인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안 될까?’라는 얘기를 서로 잘 하고. 어쨌든 간에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잘 존중해주려고 하는 편이고, 맞춰가려는 의지가 많이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가까워질 가능성이 더 높게? 있는…

원두

아까 원 가족 얘기하느라 빠졌던 네코에 대해 소개해주면서 너한테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애.

유나

네코는 말을 할 수 없지만, 네코가 나를 선택한 게 아니지만(웃음) 내가 네코를 선택했지만. 네코를 키우면서 항상 그 생각이 드는 것 같애. ‘얘가 없으면은 나는 어떡하지?’ 사실 네코가 당장 병이 든 것도 아니고, 고양이 수명대로라면 그래도 한 십 년 가까이 더 살 수 있을 텐데, 벌써부터 얘가 없는 상황이 아쉽고 걱정이 되고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고 얘가 나한테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내 선택으로 데려온 애지만, 내가 얘한테 많이 의지하고 감정적으로도 많이 위로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애. 

원두

의지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행동을 고양이한테 취할 순 없잖아. 그런데도 의지가 되잖아. 어떤 부분이 의지가 되는 것 같애? 

유나

그 의지라는 건 솔직히 내 일방적인 의지지. 얘는 항상 내가 어떤 상태든 그 상태로 그 자리에 있잖아. 나의 상태에 동요하지 않고, 내가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평상시보다 기분이 유달리 이렇다고 나를 다르게 대하지 않잖아. 그런 거에서 느껴지는 묘한 안정감? 같은 게 있는 것 같애. 고양이도 나를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되게 따뜻할 때도 있고. 

원두

맞아. 그래서 나는 우리집 고양이가 내 앞에서만 나오고 발라당하고 하는 게 되게 뿌듯하면서도 이 귀여움을 아무도 못 본다니 이게 되게 아까워.

유나

나도 나 퇴근하고 오면 네코가 방에서 나온단 말이야. 엄마가 ‘얘 오늘 방에서 처음 나온다’고. 출근하기 전에 아침을 먹이거든? 그러고 나서 나 퇴근하기 전까지 방에서 한 번도 안 나온 거야. 퇴근하면은 이제 오는 거야. 그런 거 보거나, 그냥 고양이들이 편할 때 하는 행동들이 있잖아. 갑자기 앞에서 털썩 눕고. 사소하지만 얘랑 나 사이에 만든 그런 것들 있잖아. 예를 들어서 내가 이불을 들춰서 이렇게 만들어줬을 때 얘는 들어가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던가 그런 것들이 있을 때. 바깥에 놀러나갔다가 다른 고양이한테 쫓겨들어와서 나 볼 때 (웃음)

원두

하하하 귀여워. 지원군 부르는 거잖아.

유나

응(웃음)

원두

어쨌든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원 가족은 뺄 수 없고, 처음에 말했던 8명이 네가 생각하는 가족인 거네.

유나

지치지 말기로 하자

이전에, 함께 39년을 살았지만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를 무연고사망자로 장례를 치른 한 할아버지의 사연에 대해 포스팅했었다. (▷참고)

이렇게 되면 우리는 아마도 연고자 (緣故者)의 뜻이 궁금할 것이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연고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연고자 (緣故者)
[명사] 혈통, 정분, 법률 따위로 맺어진 관계나 인연이 있는 사람.

그나마도, ‘따위‘라는 말따위에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기대고 위로받는 사람이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이유로 평생을, 혹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산 사람을 외롭게 떠나보내거나 홀로 남겨두고 가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회가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지. 씁쓸한 사례들을 만날수록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카톡이 울렸다. 고등학교 후배 S였다. (우리는 얼마 전에 마주 앉아 비혼 상태의 30대 후반 여성으로서 느끼는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앞에 언급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우리 대화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 바가 있다.)

그러게. 우리가 오랜만에 만난 날은 계절이 바뀌었구나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드는, 근래들어 가장 쌀쌀했던 날이었다. 혜화역에서 만나 근처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학림다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찬바람이 불면 부드러우면서도 따땃한 비엔나 커피가 생각난다고 S에게 이미 말해두기도 했고 그날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진한 커피 향이 가득찬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운좋게 차지한 학림다방의 창가 자리, 가을비가 내렸다.

이날의 이슈는 처음에는 우리의 과거사였다. 시골 한 여고의 편집부에서 10대 중반에 인연을 맺었던 우리는 이제 각자의 원가족과 직장에서 마흔을 목전에 둔 비혼의 여전사로 남아 연명하는 중이었다. 세상이 말하는 혼기를 한참 넘긴 독거노청년 둘이 이름마저도 ‘다방’인 곳에 마주 앉아 세상 모든 일이 다 진지하게만 느껴지던 사춘기 시절 이야기를 마치 어제인 양 하고 있던 그날의 모양새는 처음에는 어쩐지 더 없이 좋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친구들과 우리를 놀라게 했던 사건, 그 모든 것들의 과거와 현재, 심지어는 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 분이 지금 계신 학교까지 찾아내 언제 그 선생님을 찾아가 놀라게 해드릴 것인지, 차편은 어떤 것이 좀 더 나은지 같은 것들을 말하며 행복에 젖었다.

하지만 내내 과거의 영광만 이야기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이들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고향에 가서 살 생각은 있는지, 서울은 언제까지를 마지노선으로 보는지, 지금의 직장에서 벗어나게 되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특별한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일상적이고도 중요한 화제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아니 그 전에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된 때나 혼자 있을 때 들이닥친 불의의 사고 같은 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S에게 얼마 전에 본 기사 이야기(▷참고)를 꺼냈다. 요약하면 우리는 연애를 하더라도 결혼은 하지 않을 것 같고 혼인 신고는 더더욱 하지 않을 생각인데 기사 속의 이야기대로라면 원가족 중에서 가장 오래 살게 될 때 우리의 마지막은,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하더라도 모두가 벌써부터 측은하게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독거노인의 쓸쓸한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실로 걱정이었다.

결혼만이, 출산만이, 내가 가족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니. 아직도 사람들은 우리에게 나이를 묻고, 남편은 뭐하는지를 묻고, 남편이 없다고 하면 왜 없냐고 묻고, 언제 결혼해서 애 낳아 키울 거냐고 묻고, 그걸 안 할 거라고 하면 왜 안 하냐고 묻고, 당연히 해야지 왜 그러고 있냐고 묻고, 오마이갓. 그 와중에 쉬지 않고 연애를 하는 것이 신기하다는 S의 말을 듣고서야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날의 자리가 어떻게 파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엔나커피는 늘 그렇듯 맛있었고 우리는 비가 내려 더 차가워진 밤공기를 지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대신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을 만나러 갈 생각에 조금 들뜬 채로 각자 버스를 타러 갔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 S는 내게 [ㅎㅎㅎ] 메시지와 함께 아래 기사링크를 띡 보내왔다. 나도 같이 [ㅎㅎㅎ] 하고 웃었다. 세상은 점점 변하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무척 더딘 것 같은데 좀 떨어져서 보면 분명히 생각보다 괜찮은 속도로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물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

S야. 우리 지치지 말자. 그러기로 하자.

11월4일자 [연합뉴스] 무연고사망자 장례, 동거인·친구가 치를 수 있게 한다

#서울청년주간 #신촌 #별별부스

지난 11월 2일, 신촌에서는 올해 청년주간을 맞이해 큰 행사가 열렸다. ‘청년’이 들어간 서울시 사업의 집대성, 청년사업의 공식행사 중 제일 큰 거, 바로 그거.

우리도 야심차게 부스를 신청했다.

이날만큼은 그냥 무조건 즐겁자,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아도 우리가 즐거우면 되는 거 아냐? 그래도 심심할 수 있으니까 각자 할 일을 좀 챙겨오자, 그냥 맛있는 거 먹는 날로 하자, 그래 일단 우리 활동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니까 열심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될 거야…

쫄보들의 대비라는 것이 이렇다.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세부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인터뷰를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픈스테이지라고 해서 ‘가족’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청년주간행사의 부스는 우리에게 더 없이 좋은 오픈스테이지였다. 하지만 과연 이 주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심지어 우리가 누군가. 쫄보 아니던가.

한적했던 초기의 부스 (심지어 지킴이 없고)

진심으로 우리는 몰랐다. 부스에 사람이 (이렇게나) 올 줄은, 꿈에도.

…응?
스태프 한 사람의 몫을 톡톡 해낸 분이시다. 동시 4인 접대중.

우리는 부스의 기둥마다 ‘가족’과 관련된 다양한 문장을 깃발로 만들어 걸어두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깃발에 사람들이 직접 실을 묶게 했다. 이렇게 얽히고 설킨 실들이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문제는 점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실을 묶기 위해서는 매트릭스와 미션임파서블 못지 않은 유연함이 요구되는 미션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한가로이 책을 읽겠다던 야무진 생각은 애저녁에 사라지고, 우리는 한손에는 칼과 가위, 다른 한손에는 털실과 사탕, 눈으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며 귀로는 “실 잘라주세요!” 하는 분들의 외침을 캐치하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사실 부스 좀 해봤다 하는 사람이 봤으면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애초에 부스가 한적할 것을 예상기원하고 가방에 온갖 놀이거리를 챙겨온 한량들이 아니었나. 두 사람이 동시에 참여방법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동공이 바람앞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생각보다 더 진지하게 참여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점점 안정진정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서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되었다.

끈으로 가족에 대한 생각을 엮던, 딸을 데리고 온 한 엄마가 “어, 나 이혼했는데?” 하며 [난 이미 결혼했다] 카드에 실을 엮을 때,

“마음이 아프다…” 하며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다]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분의 촉촉한 눈과 마주쳤을 때,

[가족하고 안 맞아요] 깃발로 돌진하던 수많은 청년들과

[결혼하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 [강아지 고양이도 가족이다]에 당연한 듯 그렇다며 답을 이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사는 건 늘 별일이지만, 그 또한 별 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별 것 아닌 질문카드 사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다양한 색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나의 미션이 더 있었다. 훗날 가족에게 남길 말을 직접 써보는, 일명 <쓰노라>

사실은, 전날 밤에 그렸노라(…)

실엮기가 많이 사랑받는 바람에 <쓰노라> 훗날 자신의 가족에게 한마디 남기고 가시라는 안내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주옥같은 글귀를 남기고 사라진 분들과 사진으로 채 남기지 못한 분들의 이야기까지 기억하고 싶다.

오후 5시, 우리의 오픈 스테이지는 CLOSED

오가는 사람들의 많은 생각과 다양한 길을 보여준 고마웠던 털실을 이만 자르고, 부스 주위의 쓰레기를 치우고 테이블을 접고 현수막을 걷었다.

머물렀던 자리는 흔적 없이.

생사고락(까지야…)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이날을 계기로 마음이 많이 가까워졌다.

우리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가끔 외롭고 종종 힘들며 대체로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래서 때로는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거운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날 우리가 거리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묵묵한 외로움의 한축을 기꺼이 함께 들어준 고마운 분들이었다. 분명히 힘이 됐다. 어떤 분들에게서는 눈빛으로, 손끝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혼인과 출산만이 가족의 당연한 전제인 것처럼 말하는 여전한 사회 분위기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듯한 법 제도가 한시바삐 보완되어, 가까운 미래에는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시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TMI) 또 한번의 오픈스테이지 <그럼에도, 별일 없이 산다>가 12월 3일 (화) 저녁 7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DDP CREA 세미나홀에서 열린다.

#별별인터뷰 #시월 #사랑 #믿음 #가족이라는공동체

소개 /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소하게 나누는 일상 그 순간 느껴지는 따뜻함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 이불 속에서 뒹글 거리기, 음악 듣기, 전시 보는걸 좋아합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기분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족 이야기를 할 때도 주로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고. 그러나 시월의 경우는 좀 다르다. 가족에 대한 불만이나 나쁜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기억에는 그렇다.

  • 원두
    • 내가 가진 너와 너의 가족에 대한 인상은 가족이랑 사이가 엄청 좋고, 가족에 대해서 좋게 생각한다는 이미지가 있어.
  • 시월
    • 맞아, 실제로도 그런 편인 것 같아.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맨날 하시는 이야기가 ‘너는 엄마와 아빠를 만난 게 정말 행운이다.’ (웃음)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고, 나도 가족을 생각했을 때 따뜻한 느낌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해.

원가족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 원두
    • 너의 가족에 대해서 소개해주면 좋을 것 같아. 가족 구성원이랑 그 가족 구성원은 어떤 사람인지.
  • 시월
    • 일단 우리 가족은 핵가족으로 엄마, 아빠, 나 이렇게 3명이야. 엄마 아빠 두 분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시다가 소개를 받아서 만나셨대. 얼굴을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고 하시더라고. 아무튼 연애 결혼을 하셨고,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같은 회사에서 결혼하게 되면 한 명은 퇴사하는 분위기여서 엄마가 전업주부로. 아빠는 계속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고. 나는 거의 바로 결혼하자마자 생겼다고 하셨어. 
  • 원두
    • 어떤 캐릭터이신지도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 시월
    •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따뜻한 느낌이 엄청 큰 것 같아. 엄마가 오랫동안 내 삶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잖아. 그래서 사실은 부딪히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부분들을 다 품어줄 만큼 나한테는 되게 큰 사람이고 영향을 많이 주었던 분이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지혜로운 사람. 내 엄마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되게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나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많이 보여주셔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해. 아무래도 전업주부이시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엄마한테는 큰 책임감으로 다가오셨던 것 같아. 아빠는 계속 회사에서 일하셨는데 야근도 많고 일도 적은 편은 아니었거든. 그렇다 보니까 아빠는 아빠의 역할과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도 있는 것 같고.
    • 아빠는… 어렸을 때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서 가족 여행으로 산 올라갔을 때 목말 태워주시고, 그런 기억들. 그런데 조금 나이가 들고 아빠도 진급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바쁜 이미지가 있었어. 가장으로서 이미지. 그리고 꼼꼼하시고. 아무래도 조직 체계에서 일을 오랫동안 하시다 보니까 정리도 되게 잘하시고. 엄마랑은 또 다른 느낌.
  • 원두
    • 엄마랑 아빠랑 다르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이 달라?
  • 시월
    • 아무래도 ‘시간’이었던 것 같아.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눈 시간들. 특히나 그런 시간이 많았던 중고등학생 때 아빠가 엄청 바쁘셨으니까 대화 비중을 생각했을 때 아빠보다는 엄마와 훨씬 많은 대화를 했었어.
  • 원두
    • 아까 엄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배우고 싶은 점이 많다고 했는데, 특히 어떤 부분을 닮고 싶은지도 궁금했어.
  • 시월
    • 큰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라는 생각(웃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내가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고쳤으면 하는 부분도 있고, 나도 반항심에 대들기도 하고 버릇없이 굴기도 하잖아. 그런 과정에서 모나지 않게 엄마가 중재-라고 말하긴 좀 그런데 잘 이끌어주시는 느낌이 항상 있었고. 내가 봤을 때 엄마는 어디에 속해있더라도 항상 빛나는 분. 잘 화합하고 분위기도 잘 만드셔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되게 상식적이신 분인 것 같아. 우리가 사회 생활하거나 일을 할 때 무슨 일이 있으면 사실 중립적으로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 내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하는 게 있고,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곡해해서 생각하기도 하고. 근데 엄마는 그런 걸 상식적으로 잘 판단하시고 보편적으로 생각하시고. 누구 입장에 치우치지 않게끔. 단단하고 현명하셨던 것 같아. 머리가 좋다고 해야 하나. (웃음) 아무튼 그런 부분들을 닮고 싶지.
  • 원두
    • 통찰력도 있으신 것 같다.
  • 시월
    • 맞아 맞아.
  • 원두
    • 내가 너한테 항상 뿌리 깊다는 얘기를 하잖아. 너는 오그라들어하지만(웃음) 그게 어머니의 단단함을 닮아서 그런 건가 봐.
  • 시월
    • (웃음) 그러게. 닮고 싶은 마음에.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하잖아. 그럴 수도 있겠다.
  • 원두
    •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 가족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엄마 이야기는 엄청 많이 하는데 아빠는 거의 등장을 하지 않잖아. 아까 말했던 것처럼 너무 바쁘셔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꼈을 때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나 영향이 되게 희미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 때문인지 내가 상상하는 너희 아빠의 성격은, 물론 만나 뵌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모르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웃음) 엄마가 주도적으로 탁탁탁 하시면 따라가시는 느낌이 드는 거야.
  • 시월
    • 음(웃음) 아빠가 회사에서 일을 많이 하시다 보니까 대화나 교류를 엄마랑 더 많이 해서 그럴 것 같아. 요새는 아빠가 가족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하시지만, 당시에는 그럴만한 여유도 별로 없었고. 되게 잘해주시는데 나를 잘 모르는 느낌. 아빠는 일단 착한 분이셔. 착한 남자?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하면 다 들어주시려고 하는 착한 분.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센스 있는 분은 아니시거든. (웃음) 진짜 사소한 건데,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엄마랑 나는 서로에 대한 취향을 너무 잘 안단 말이야. 그런데 아빠는 모르시는 거지.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달라고 하면 사다 주시는데,
  • 원두
    • 아무거나 사다 주시는구나.
  • 시월
    • 아니 아무거나도 아니고 싫어하는 거로(웃음) 얼마 전에도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다 달라고, 사 올 때 돼지바 사 오지 말라고 얼핏 얘기하셨다는데 돼지바를 사 오셨다는 거야. (웃음) 그래도 무언가 먹고싶다고 하면 꼭 사다 주시는 착한 분이야.
  • 원두
    • 아빠가 너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을 때, 너도 그래? 너는 어때?
  • 시월
    • 그런 것 같아. 아빠를 더 잘 이해하려고 나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어렸을 때 버릇이 사실 그게 쉽지는 않아. 괜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삐딱하게 나가는 것도 있는 것 같고.
  • 원두
    • 아빠와 엄마는 서로를 잘 아시는 것 같아, 어때? 아이스크림을 그렇게 사 오시는 거 보면 잘 모르시나 싶기도 하고(웃음) 네가 볼 땐 어때, 두 분의 관계는?
  • 시월
    • 어떤 가족이든 다 똑같겠지만, 아빠도 엄마도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 엄마가 조금 더 감성적인 부분이 크다 보니까 그게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가족들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들을 위해 항상 뭔가 해주려고 헌신하시는 분이시긴 한 것 같아. 아무래도 서로 다른 부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거에 있어서 충돌은 항상 있지.
    • 세월이 흐르면서 관계의 변화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 아빠도 곧 은퇴하실 텐데 집에 오래 있으실 테고, 그러면 엄마랑 부딪히는 부분들도 있겠지? 아빠도 어떤 면에서는 되게 가정적인 분이셔서 청소하는 거 좋아하시고 습관화되어 있으시고. 그리고 항상 일찍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인데, 엄마는 또 생활 리듬이 조금씩 다를 수 있잖아. 
    • 그래도 엄마가 그런 이야기는 항상 하시거든.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이 있고 정이 많이 쌓이고 신뢰도 많이 쌓이고. 얼마 전에 아빠가 환갑이셨는데, ‘이제는 함께할 시간이 많지는 않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고 하시더라고.

원가족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 원두
    • 가족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 장면, 추억 그런 게 있으면 말해줘도 좋을 것 같아.
  • 시월
    • 음, 기억이라는 게 단편적이어서 장면 장면들이 떠오르는데. 음… 아, 내가 음식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웃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이 그때는 복도식 아파트였어. 걸어가다 보면 창문을 지나친단 말이야. 집으로 가면 창문이 항상 열려있는데, 쓱 보면 엄마가 항상 요리하고 계시는 거지. 어느 날은 새우튀김을 하고 계셨는데 그 소리가 또 (웃음) 지글지글하는 소리랑 새우튀김 냄새랑 엄마가 그걸 하는 모습이랑 그런 게 가끔씩 떠올라.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아빠가 목말태워주시던 기억들이라든지. 또 가족들이랑 여행을 되게 많이 가는 편이었는데, 자동차를 타고 국내 여행을 할 때 두 분이 앞 좌석에 타시고 내가 뒷좌석에 발라당 누워서 차 옆 창문에 발을 대고 보면 하늘이 지나가고 풍경이 바뀌잖아. 그런 풍경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 원두
    • 근데 여행을 가면, 예의 차리는 친구들이랑도 싸우지는 않더라도 빈정 상하는 게 있는데 가족들이랑은 지이인짜… 그렇지 않아? 나는 그때 가족 여행 갔다 오고 나서 아빠랑은 절대 다시 같이 안 간다고 (웃음) 했었는데, 그런 건 없어? 가족이랑 어떻게 그렇게 자주 같이 갈 수 있는지…
  • 시월
    • 머리 크기 전까지는 자주 가도 괜찮았는데(웃음) 여행의 주도권이 조금씩 바뀌잖아. 어렸을 때는 내가 계획을 짤 수 없으니까 하라는 대로 하고 가라는 대로 가고 하니까 다투거나 그런 건 없었던 거 같고. 그런데 머리가 조금씩 크면서 (웃음) 여행을 우리는 자유여행을 좋아하잖아. 자유여행으로 엄마 아빠를 처음 모시고 갔을 때, 각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생기고 엄마가 계속 뭐라고 하시면서 싸우기도 했는데…
    • 근데 또 의외의 면들도 되게 많이 보기는 했어. 예를 들어 자유여행을 처음 갔을 때가 홍콩이었거든. 내가 대학교 때. 아빠한테 구글 번역 하는 법을 알려드렸는데 길을 모를 때마다 너무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고, 그게 또 되게 재밌으셨나 봐. 계속하시더라고. 아빠한테 보지 못했던 의외의 면인데? 생각도 하고. 왜냐하면 이전까지 아빠는 되게 규칙적이시고 경험했던 것들, 그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행동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기능을 사용하시면서 뭔가를 계속한다는 게.   
  •   원두
    • 나는 우리 아빠 같이 갔을 때. 우리 아빠는 공부도 잘했고, 엄청나게 아는 척하는 것도 좋아해서 영어도 “너 그것도 모르냐” 무시하기도 하는데, 여행 가서는 한~마디도 안 하는 거야. 한번은 서로 찢어져서 자유시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아빠가 말을 하기 싫으니까 밥을 안 먹은 거야. 주문하려면 말을 해야 하니까. 그거 보고 되게 짠하면서도 아니, 그렇게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양반이 영어 써먹는 척을 안 했냐 생각도 들고. 그게 또 되게 의외였어. 작아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 시월
    • 또 의외의 모습들을 볼 때마다 짠하기도 하고.
  • 원두
    • 귀여울 때도 있고, 짠하기도 하고.
  • 시월
    • 맞아.

반대로 원가족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부정적인 에피소드는?

  • 원두
    • 이제까지는 좋은 류의 기억이었는데, 안 좋은 기억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사건 같은 게 있어?
  • 시월
    • 안 좋은 기억이라기보다는 슬픈 기억. 대학교 입시 할 때였는데, 당시 외할머니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셨어. 기관지가 좀 안 좋으셨는데 생명에 문제가 될 만큼은 아니었고, 그래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셔야 하니까 엄마가 항상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었어. 나도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제는 병원에서 며칠 계셨었어. 엄마가 할머니를 모셔다드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러고 나서 전화를 받았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엄마가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그 자리에서 펑펑 우시는 거야. 진짜 ‘펑펑’ 우셨어. 나는 마음이 많이 아프기는 했지만, 엄마가 느끼는 슬픔과는 비견할 수 없는 거잖아. 근데 엄마가 너무 슬퍼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픈 거야. 제발 엄마가 덜 슬펐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었어. 나중에 엄마가 이야기해 주셨는데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드릴 때 되게 느낌이 이상했다는 거야. 뒷모습을 보는데 희끄무리하다고 표현을 하셨나?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는 거야. 내가 입시하고 있을 때니까 제일 중요할 때잖아. 그것만 마무리가 되면 여행도 같이 다니고 정말 잘 모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돌아가시니까 그게 너무 마음이 안 좋으셨나 봐. 그래서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죄송스러운 마음도 크고. 얼마 전에 외할머니 계셨던 데도 갔다 왔는데 지금 계시는 곳에서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오고.
  • 원두
    • 어머님이 펑펑 우셨던 감정이 너한테 엄청 많이 흘러들어왔나 보다.
  • 시월
    • 그냥 그 당시에는 되게 복잡했어.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에 대한 슬픔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엄마가 너무 슬퍼하는 게 마음이 아프고. 그 당시에 그런 생각도 했어.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고, 엄마가 있는 사람이구나.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으니까. 죄송하기도 하고.
  • 원두
    • 지금도 네가 그때를 상기하면 감정이 드러날 정도로 슬펐나 봐.
  • 시월
    • 가족이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아마 처음 봐서 더 그랬던 것 같아. 그게 되게 기억에 남아.

가족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위치에 있는 사람인가요?

  • 원두
    • 네가 생각했을 때 너는 가족에서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 같은지에 대한 질문이야.
  • 시월
    • 이런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부모님한테는 내가 전부인 것 같아. 부모님 삶에 있어서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이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집안 분위기도 달라지고.
  • 원두
    • 외동이어서 받는 기대가 크기도 하고, 감정을 표출하실 데가 너밖에 없어서 더 그런 것도 있겠다.
  • 시월
    • 응,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게 진짜 농담이 아니라(웃음)
  • 원두
    • 그러면 부모님이 매번 사랑을 표출하시겠지만, 아까 말했던 ‘내가 전부인 것 같다’라는 걸 느끼는 순간은 언제야? 어떨 때 특히 그런 걸 느껴?
  • 시월
    •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해주실 때. 내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들을 물심양면으로 다 해주시려고 하는 편이었고, 그런 부분들이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울 때는 내가 엄마 아빠가 기대하는 만큼 충족을 못 시켜 드릴 수도 있겠다 싶을 때.
  • 원두
    • 그런 게 부담스럽지는 않아?
  • 시월
    • 근데 그걸 엄마 아빠가 부담을 쥐여줬던 건 아니니까. 오히려 죄송스럽다는 게 맞는 거지. 미안하고.
  • 원두
    • 너희 부모님이 너를 전부처럼 대하는 태도가 내가 생각하는 태도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 나는 그 얘기를 딱 들었을 때, 그다음에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어봐야지 바로 떠올렸을 정도로 부모님들의 기대라고 하면 이콜(=) 부담이라는 관념이 있잖아. ‘너는 내 자식이니까 내가 널 위해 이만큼 했으니까 넌 이 정도는 해야 해.’ 나쁘다기보다는 그 세대 부모님들이 다 그랬었으니까. 자기가 했던 게 당연했고, 그래서 자식이 하는 것도 당연하니까 하라고 하고, 근데 안 할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렇게 되는 거지. 그래서 네가 그 얘기를 할 때 너희 부모님도 그러셨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부담은 아니었다는 게 되게 다른 점이었어. 그래서 너가 아까 말했듯이 엄마가 되게 상식적이라고 느꼈었을 수 있겠다 싶어.
  • 시월
    • 그런 부분이랑도 연결이 되고, 가장 처음에 얘기했었던 (웃음) “너는 정말 부모를 잘 만났다.” 그런데 난 어쨌든 첫째고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까 내가 좀 더 잘해서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 부분에 있어서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서.
  • 원두
    • 구체적으로는 어떤 걸 더 해드리고 싶어?
  • 시월
    • 일단 첫 번째로는 엄마 아빠가 내 걱정 안 할 정도로 내가 잘되고, 내 한 몸 잘 건사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나가고 싶은데. 내 돈으로 호강도 시켜드리고 여행도 여러 곳 보내드리고 싶은데.
  • 원두
    • 난 대놓고 말해. 난 엄마 아빠보다 못 벌거라고(웃음)
  • 시월
    • 나도 얘기해. (웃음)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근데 엄마가 그래도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얘기해 (웃음) 버리면 안 된다고.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의 가족은 몇 명인가요? 누가 포함되나요?

  • 원두
    • 원 가족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한 것 같으니까. 만약에 네가 전지전능한 힘이 있어서 가족 구성원을 처음부터 세팅할 수 있다고 한다면 떠오르는 가족은 몇 명이야?
  • 시월
    • 그게 어느 정도 범주까지 해당되는 거야?
  • 원두
    • 범주 일단 없이 얘기했으면 좋겠어. 
  • 시월
    • (고민 중)
  • 원두
    • 근데 어려우면, 이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OX퀴즈를 몇 개 내볼게.
  • 시월
    • 좋아 좋아.
  • 원두
    • 어렸을 때 날 버리고 간 엄마가 한 번도 얼굴을 안 내비치다가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돌아왔다. 그 엄마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가족이다.
  • 원두
    • 왜? 혈연이기 때문에?
  • 시월
    • 날 낳아준 부모님이니까.
  • 원두
    • 그러면 그 버리고 간 엄마를 대신해서 새언니가 날 계속 키워준 거야. 그 새언니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가족이다.
  • 원두
    • 새언니는 혈연은 아니잖아. 법적인 관계 때문이야, 키워줬기 때문이야?
  • 시월
    • 키워줬기 때문에. 부모님의 역할을 해주신 분이니까.
  • 원두
    •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친할아버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셨어. 그 친할아버지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가족이다.
  • 원두
    • 너는 어쨌든 혈연관계가 중요한 거네?
  • 시월
    • 혈연관계가 일단 중요하고, 내가 가족이 아니라고 판단할만한 근거는 없으니까. 날 낳아주신 엄마도 가족이라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기도 해. 엄마가 왜 나를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 수 있는 거고. 
  • 원두
    • 엄청 관대하다(웃음) 어떻게 날 버리고 갈 수 있어? 부들부들 이럴 것 같은데. (웃음) 그러면 매주 금요일마다 나에게 부침개를 구워주시는 하숙집 아줌마는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고민하다) 중간.
  • 원두
    • 왜? 어떤 부분이 고민돼?
  • 시월
    • 그분을 내가 지금 실제로 만난 게 아니잖아.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하는 가정인 거잖아. 내가 이분한테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 원두
    • 그럼 어떤 영향을 받았을 때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 시월
    • 일단은 시간. 함께한 시간이 중요할 것 같아. 사람이 어떤 사람을 볼 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사람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고, 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시간들이 많이 쌓이고, 그만큼의 이야기들이 쌓였을 때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원두
    • 마지막은, 엄마가 병상에 계셔서 그 힘든 시기를 항상 내 옆을 지켜주면서 위로를 해준 피카츄인형은 (웃음) 가족이다, 아니다?
  • 시월
    • 피카츄인형은 가족이 아니다. (단호)
  • 원두
    • 왜? 무생물이기 때문에?
  • 시월
    • 어, 감정을 같이 교류한 사이가 아니잖아.
  • 원두
    • 무생물에는 내가 감정을 쏟아부을 수는 있지만, 오는 건 없으니까?
  • 시월
    • 그렇지.
  • 원두
    • 근데 내가 위로를 받을 수는 있잖아.
  • 시월
    • 어…그치. 위로는 받을 수 있지. 근데 그게 내 마음에서 기인한 거잖아. 무생물이 아니라 강아지처럼 생물이었다면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형은 좀.
  • 원두
    • 들으면서 느낀 건, 혈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함께한 시간과 그 시간에 따른 연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상호 교류가 되는가 안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 걸 좀 떠올리면서 내가 가족을 다시 구성한다면 몇 명이 가족이야?
  • 시월
    • (난처한 듯 웃으며) 아, 반드시 그걸 가족으로 구성해야해?
  • 원두
    • 가족을 만든다면 누구누구를 가족에 넣을 건지 한 번 생각해봐.
  • 시월
    • 이거를 꼭 이야기를 해야 해?
  • 원두
    • 왜, 어떤 게 어려워? 너무 많아서 아니면 너무 없어서?
  • 시월
    • 음, 좀 어려운 것 같아. 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거든. 나는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편인데, 특히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주변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나중에 나이 들어서 옛날 향(鄕)처럼 마을을 만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요즘에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 하잖아. 거기서 옹산 마을이 나오는데, 드라마 중반에 동백이가 사는 옹산 마을에 대한 묘사가 나와. 이웃인데 가족 같고, 츤데레같이 밥 먹을 때 밥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같이 밥 먹고, 서로 모르는 게 없고, 은근하게 챙겨주고. 그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그게 어떻게 보면 큰 범주 안에서 가족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일단 내가 지금 엄마 아빠라는 가족이 나에게 의미가 크니까.
  • 원두
    • 그럼 오히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기 때문에 누구는 넣고 빼기는 어려워서 이 대답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되나?
  • 시월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일단 지금은 엄마 아빠 이 원 가족이 나한테 있어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왔고 그만큼 감정적인 교류를 많이 했었던 가족인 건데. 그 외에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라든지 직장동료 등을 가족이라고 포함하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나의 마음 상태가 또 조금씩 다른 거잖아. 
  • 원두
    • 마음 상태가 다르다는 거는 원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마음?
  • 시월
    • 가족이라는 하나의 어떤 거로 이야기하기에는 다 너무 다르다는 느낌이어서.
  • 원두
    • 아아, 그럼 너가 떠올리는 가족은 딱 지금의 원가족이 제일 큰거네?
  • 시월
    • 응 그치. 나는 원 가족에 대한 의미가 큰 것 같아. 친구랑 가족은 또 조금 다른 느낌. 만약에 친구가 가족처럼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환경이라면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원두
    • 주거를 공유한다던가 함께하는 시간이 가족처럼 많다던가 이렇게 되면?
  • 시월
    • 응.
  • 원두
    •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 원 가족 외에는.
  • 시월
    • 응응
  • 원두
    • 그럼 가족은 원 가족이라고 이야기했으니까, 아까 말했던 향, 마을을 만든다면 누가누가 들어가? 누구누구까지 말하기 어려우면 몇 명 정도를 생각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고.
  • 시월
    • 한 10명에서 15명?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까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났던 소중한 사람들.
  • 원두
    • 원 가족 포함해서 10에서 15명?
  • 시월
    • 응.

이후에 가족을 꾸린다면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나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 원두
    • 나중에 네가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할 수도 있잖아. 애를 낳을 수도 있고 안 낳을 수도 있지만. 그랬을 때 어떤 가족을 만들고 싶은지? 지금의 가족에게서 특히 어떤 영향을 받아서 다음 가족을 꾸릴 때 ‘이렇게 되고 싶다’는 부분이 있는지.
  • 시월
    • 일단 가족을 꾸릴 때 제일 중요한 건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한 사랑인 것 같아. 서로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과 가족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지금 상황에서는 가족 구성원에 있어서 애를 낳고 싶지는 않아. 소위 말하는 딩크족이 되고 싶은데 그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건데, 애를 낳았을 때 여자한테 주어지는 가혹한 상황들이 좀 많은 것 같아서. 가능하다면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데 사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랑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 것들은 서로 이야기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는 해. 아예 “안돼”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고.
    • 그리고 엄마랑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감정을 교류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에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감정적인 부분들이 잘 교류 될 수 있는 사람과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게 취향이 될 수도 있겠고, 함께 하는 시간이  자연스러운 가족을 만들고 싶다.
  • 원두
    • 부모님이 너에게 많은 대화와 세밀한 감정 교류라는 영향을 줬다면 반대로 네가 부모님에게 영향 준 건 뭐가 있을 것 같아? 영향을 주고받는다 해서, 어떤 게 있을지?
  • 시월
    • 나 자체가 (웃음)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아.
  • 원두
    • 너의 존재 자체가?
  • 시월
    • 내가 어떻게 감정을 느끼고 또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지내냐에 따라서 되게 많이 엄마 아빠의 감정 상태도 많이 달라지고.
  • 원두
    • 포커스를 확실히 많이 맞춰주고 계시는 구나. 그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너한테.
  • 시월
    • 응. 근데 그게 반드시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 원두
    • 근데 그렇게 가족 내에서 누구 위주로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내가 생각했을 때는 권력 관계가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너희 집에서는 네가 최고봉이야?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 또 너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동등하게 잘 지내는 것 같단 말이야. 내가 느낀 게 맞나?
  • 시월
    • 응, 그런 역할을 엄마가 잘해주시는 것 같아.

가족을 떠올렸을 때 무슨 색이 떠오르나요?

  • 원두
    • 마지막 질문인데, 지금 가족을 색으로 치환했을 때? 가족 하면 떠오르는 색이 있다면 무슨 색이 떠올라?
  • 시월
    • 가족 전체를?
  • 원두
    • 지금의 원 가족을
  • 시월
    • 초록색. 심신의 안정과 평온함을 느낄 때 우리가 많이 떠올리는 색깔 중 하나잖아. 나한테 가족이 약간 그런 이미지라서. 나는 위로를 받아야 하는 순간에 가족에게 기대는 편인 것 같아.

소소하게 먹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부터 내가 힘든 것, 당신이 힘든 것까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그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가족, 그런 시월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혼인신고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만들기>라는 거대한 주제가 2019년의 내 삶의 무게를 표현해준다는 데에는 검찰의 거짓말 탐지기도 일말의 의심없이 침묵을 지킬 것이라며 이 프로젝트에 대한 큰 부담감을 친구에게 토로했을 때, 친구는 말없이 이 기사를 보내왔다.

“39년 함께 산 남편이 있는데 무연고 장례라니”

2019-10-13 06:00 연합뉴스

잠시 말이 없던 친구는 일단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찾으라고 했다.
뭘 찾냐는 말에 다 찾게 되어 있다는 말을 남기고 자러 간 친구를 향해서 나는.

얘는 왜 또 장례식 타령이래, 지금. 결혼제도에 쏟아지는 이야기만 해도 마감을 못하게 생겼는데.

하다가 기사를 탐독하고 말았다.

39년을 같이 살았던 두 사람. 재혼이라 굳이 혼인신고까지는 하지 않고. 그런데 아내가 죽고 나니, 사실혼 관계로 살아온 이 씨는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망진단서를 끊을 수도, 장례 절차를 결정할 수도 없단다. 이걸 정해둔 법을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줄여서 장사법이라고 한단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 2조 16항에서 정한 ‘연고자’의 범위(를 내손으로 직접 찾고 있었고)

수소문 끝에 장례를 치를 방법이라고 찾은 것이 무연고 장례라고 했다.

무연고 장례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시신 인수와 장례 권한을 포기한 사망자에 대해 지자체가 도움을 주어 치르는 장례이다. 일생을 함께 하고도 법에서 규정하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내는 연고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가족구성권에 대해서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 내용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죽음에까지 전통적인 가족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제약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죽음 역시 가족구성권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문제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을 법이 제대로, 제때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해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비혼주의자로 삶을 살다보면, 우리는 누구나 높은 비율로 죽음 앞에 무연고자가 될 확률을 가지고 있다.

내가 무연고자라니…

하지만!

부부 간이 아닌 인간 관계에 사랑이 없나? 이성 관계 말고는 연애하는 이가 없나? 비혼주의자에게 정녕 인생 친구가 없나?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그 사랑의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혼인과 혈연의 개인적인 사정과 무관하게 스스로 가족을 구성하고 내 삶의 동반자를 지정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마땅할 일이다.

사실, 혼인신고서를 쓰지 않고 40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아내의 장례를 치러줄 수 없었던 사람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장사법에 따른다면 장례식장에 사실혼 배우자, 친밀한 관계의 친구, 공동체 가족 구성원의 자리는 없다.

얼마 전에, 가까운 친구들의 결혼 발표 자리에 가지 못해 무척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 심지어 그 자리에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친구들이 증인이 되어주었다고 해서 나 역시 증인으로 친구의 앞날을 축복해주지 못한 아쉬움을 말했다가, 한 친구의 비웃음을 샀다.

미혼이라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줄 자격도 없는 자가 되었다.

그렇다. 결혼적령기를 넘겨서 미혼의 상태에 있는 나는 대체로 이런 취급을 받는 것에 꽤 오랜시간 익숙해져 있었다. 애써 농담을 잘 받는 척, 쿨한 척해봤지만 나는 그런 시간 내내 상처받고 아팠다는 걸 시간이 좀 지나서야 알았다.

아무튼.

저 대화 이후 “담보잡을 남정네라도 하나 끌고 오라”는 대사가 이어졌다. 나는 문제의 발언에 인격모독감을 느낀다고 의사를 표현했지만, 상대는 “멘탈이 유리알 같을 때 병원 가면 훨씬 낫다”는 말로 기어이 나를 굴복시키려 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대화들이 오갔을 뿐이다.

결혼을 앞둔 그는, 재미있게도, 아내 될 사람에게 한번도 반말을 써 본 적이 없다고, 존대가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를 존중하고 언제나 로맨틱한 태도를 잃지 않는, 누가 봐도 유머러스하고 좋은 사람이다. 내 인격은 10인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처참하게 짓밟혔지만, 나를 짓밟은 사람은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될 것이)다. 그는 사회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수용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런 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사람 역시 기득권층이다. 마음 먹으면 결혼을 할 수 있고, 혼인신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것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유도 다양하다.

사회제도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회가 공정해야 하고 혜택은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성에 대한 대비도,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도 모두 부족하다. 공정과 공평을 바란다면 일단 현재의 제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 제도의 장점을 알고 이용했든 모르고 손해를 보았든 그것은 개인의 역량과 선택에 전적으로 맡겨진다.

나는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혼인신고는 지금 이 시대에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역시 이제부터 알아야 한다. 그 중요한 것을 모두가 할 수 있게 되려면, 타인의 행복을 빌어줄 자격을 갖추려면, 더 폭넓은 의미의 가족에 대한 재정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2019. 10. 23)

[EBS NEWS] 기획뉴스 ‘가족의 탄생’

혈연과 결혼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과 다른 형태의 가족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가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좋은 때에 EBS뉴스에서 연중기획으로 ‘가족의 탄생 –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편성해서 연속보도하고 있는데요. 전과 달라지고 있는 현재의 가족 형태의 다양성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EBS NEWS 기획 <가족의 탄생>을 함께 보고 가족구성권에 대해서도 이야기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아래의 목록에서 제목을 클릭하시면 EBS NEWS 사이트의 해당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1편 “다양한 형태 가족 인정해야” 높아지는 목소리
2편 “우리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3편 흔해진 ‘동거부부’ 인식 좋아졌지만‥차별은 ‘여전’
4편 혈연·혼인관계만 가족?‥”가족 범위 확장돼야”
5편 생활동반자’ 인정하는 나라 늘지만‥우리는 아직
6편 ‘공유주택’‥기쁨 슬픔도 공유하는 ‘가족’의 탄생
7편 다양한 ‘비혼 공동체’‥’결혼 안해도 괜찮아’
8편 늘어나는 ‘1인 가구’‥정책에선 여전히 ‘소외’
9편 ‘사회적 가족’ 지원 조례안 발의된다
10편 ‘1인 가구’ 다양한 모습 조망한 ‘영화제’‥다음 달 첫선
11편 차별 받는 미혼부모들 “우리도 똑같은 엄마, 아빠입니다”

다르다, 고유함으로 존재한다

“넌 고유해.”

이 말을 건네는 것을 좋아하던 소녀는 자라서 제가 됩니다(…)

각자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태도가 모여, 다양성을 수용할 줄 아는 사회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2019 세대균형프로젝트에 지원할 때 <다양한 가족을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만들기>를 주제로 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나날이 사회로부터 소외되기 좋은 조건을 하나씩 획득하고 있는 스스로를 강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30대 후반, 미혼, 비혼, 여성, 예술, 공연, 작품, 프리랜서, 기타소득자 등등… 저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되는 키워드들은 날이 지날수록 사회적 약자에 가까운 범위로 저를 몰아가는 것 같았거든요.

다양하다는 말 안에는 다수도, 소수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수결, 객관, 공익 등과 같이 쪽수로 힘을 과시하는 데에 익숙한 시대에 태어나는 바람에 고유한 것, 작은 것, 낯선 것, 개인적인 것들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지요. 소수는 무가 아닌데도요.

어쨌거나 이런 생의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면서도 각자의 고유까지 지지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요, 특별한 것은 소수인데도 대우를 받는 아이러니가 만연한 세상입니다. 가장 특별해야만 고유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눈에 띄는 알만 고유한 것은 아닙니다. 알고보면 똑같은 알은 하나도 없지요. 대충 같아 보일 뿐.

각자에게 주어진 1인분의 삶, 경중을 따질 수 없고 정상비정상을 가를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고유색에 대해 이 사회는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 – 그리고 대부분의 개인이 처음 만나는 사회적 공동체 (원)가족 – 개인이 자의적으로 선택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까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로서의 지위를 평등하게 인정받기를 소망합니다. (2019.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