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

01&91 저 · 북닻 출판

01과 91은 함께 살아요. 부부는 아니에요.
결혼 없이 1년간 함께 살아온 01(男), 91(女)이 전하는 솔직 담백한 ‘동거 일기’

– 독립출판물이었던 이 책을 e-book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이 글을 씁니다.

“책 제목으로 동거라는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았어요. 이 사회에서는 동거라는 말이 마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리거든요. 그 같은 편견들과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길 하는 바람이 들었죠. 또한 동거를 앞둔 커플에게 저희 커플이 동거한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방법들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책을 내게 됐습니다. (01)

“남녀가 함께하는 동거가 여성에게는 더 흠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해는 하지만 도리어 ‘여자가 손해야’라는 그 말 자체가 틀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저의 선택과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 (91)

이들이 말하는 ‘함께 산다는 것’은 “같이 밥을 해먹고, 청소도 하고, 책도 읽고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더 많은 순간을 ‘함께’하는 것. 함께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는 청소를 하고 너는 샤워를 하고, 네가 저녁을 차리면 나는 샤워를 하는 것.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나갈 때보다 설레는 것. 돌아오면 항상 네가 있는 곳. 기다리고 있으면 언제나 네가 돌아오는 곳” 이다.

  • 결혼과 출산이 가족의 기준인 시대가, 느리지만 조금씩 저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용기의 기록을 세상에 내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관심 있는 분들의 독서를 권장합니다!

[정보 공유] 책자 신청 : 제도가 □ 하지 못할 때 –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민우회의 <제도가 □ 하지 못할 때> 소책자 배포가 시작되었습니다.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와 비슷한 콘셉트의 집담회와 인터뷰여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오늘 소식을 듣고 여러분들과 공유해 봅니다.

🌟소책자 무료배포🌟

가족이 아니라서, 1인 가구여서 제도를 이용할 수 없거나 차별 받았던 경험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소책자 <제도가 □ 하지 못할 때> 신청해 주세요!

“경제적인 자립, 건강 고민을 많이 하는데 어른들이나
심지어 친구들도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가족이 그 모든 걸 해결한다고 생각하잖아요.”
– 소책자 인터뷰 내용 중에서-

민우회가 만난 가족들의 모습은?
22년째 동성친구와 가족으로 살고 있는 희진, 결혼 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는 정은과 남자친구, 동성 배우자와 고양이 네 마리와 5년째 살고 있는 다현, 16동안 비혼 공동체로 함께하고 있는 영지 등 다양한 형태로 동거 ‘가족’을 꾸려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이 책자는 2019년 법적가족(혼인, 혈연, 입양)이 아닌 동거 ‘가족’을 꾸려 살고 있는 여성 10명의 복지제도 경험 이야기와 4회의 복지제도 경험 집담회 <제도가 □ 하지 못할 때>에 참여했던 비혼 여성 12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신청방법 📌
택배비 3,500원 입금 후, 구글 링크 신청서를 작성해 주세요!
(소책자는 무료이며, 택배는 주 1회 일괄 배송됩니다.)

신청링크 https://forms.gle/JASm8Fm7gJnKRQsr9

입금계좌
우리은행 1005-402-645055 (예금주_한국여성민우회)
문의 02-737-5763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내용보기
http://www.womenlink.or.kr/notices/22637

[행사 안내] “확장하는 가족: 안과 밖”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가족커뮤니티사업단 2019 국내학술대회] “확장하는 가족: 안과 밖”

12월 20일(금), 전남대학교 김남주기념홀에서 “확장하는 가족: 안과 밖”이란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됩니다. 가족구성권과 관련한 제도 법제화에 있어서 이론적, 학술적 접근은 필수적일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행사 안내] 그럼에도, 별일없이산다

그러니까 11월 28일, “가족다양성 시대, 현행 법령 개선과제” 토론회가 열렸는데 말입니다.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주관하는 가족다양성 정책관련 포럼에 참석 요청을 받았는데, 여성가족부가 토론자에게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을 빼라”는 요구를 했고, 연구소는 이를 거절해 포럼 참석을 거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미 토론문도 제출하고, 행사포스터에 토론자로도 이름을 올렸는데 참석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연구소의 입장은, 페이스북에 소상히 올라와 있습니다. (링크)

이미 대부분의 시민들은 국가가 강요하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대안들을 찾아나선지 오래이다. 동성파트너쉽을 국가가 부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한부모가족과 다문화가족 등 이미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가족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과 가족이 존중받고 평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감히 선언한다. 다양성은 국가에서 허용하는 한에서 질서를 넓히는 것이 아니다. 가족 다양성은 가족에 대한 차별과 규제에 대항하여 자유롭고 실질적인 가족관계들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을 통해서 추구되어야 한다. 

<“가족다양성 시대, 현행 법령 개선과제” 토론회에 가족구성권연구소가 불참하는 이유에 대한 입장문> 중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편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만들기>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사례들을 모아 책을 발간하는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초대합니다.

결혼과 출산, 그 견고한 가족의 조건에 따르지 않고 살더라도 딱히 별일 없다는 사람들, 그렇지만 정말 좀 별일 없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네 ‘별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야기에 함께 하실 분을 기다립니다.

사전신청 (클릭) *신청마감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넘쳐나는, 오롯이 오신 분들이 서로의 삶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 하루 단순히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고 삶 전체가 유쾌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별일 없이 산다>는 말을 하기가 녹록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우리 각자의 별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12월 3일, 사전 신청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자리가 마련됩니다.

곧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탈(脫)시설보다 어려운 것들

✅ 참고기사원문 및 전문 보러가기 > 탈(脫)시설 운동, 모든 ‘시설화된 삶’의 자립을 꿈꾸다

장애인의 자립이 대한 사회의 관심도는 매우 낮다. 최근 들어 비장애인의 주거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부 언론에서 일회성으로 취재를 나선 정도이다. 자립에 있어서 주거의 문제는 장애의 유무를 따지지 않더라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립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 이야기되는 경제적, 제도적인 문제 외에도 장애인의 자립 미션을 임파서블하게 만드는 것이 참 많다. (*위 참고기사에서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보다 폭넓은 대상을 함께 이야기한다.)

장애인 IL(자립생활, Independent Living) 운동은 대체로 시설을 나와 독립된 삶을 살게 하는 ‘탈시설’ 운동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운동은 주거의 독립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시설 밖으로 나와 자립 생활을 시작하더라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온전히 편입되기까지 또 문턱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

‘일다’의 기사를 읽고 나는, 작년 겨울 어느날 바쁜 틈을 비집고 만난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의 서기현 소장에게 실제 사례를 전해 듣고 할 말 없는 입술이 되어 우두커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날을 떠올렸다. 생활보조인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서 소장이 2019년 3월 드디어 자립생활에 돌입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올해 자립을 했어요. 직접 부동산을 돌아다니면서 집을 구하고 대출을 받고 이사하고 가구와 집기를 사넣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직접 하면서 정말 고생이 많았죠. 집만 한 30곳 넘게 봤을 거예요. 전동휠체어가 들고 나야 하니까 건물 입구에 계단이 있거나 집안에 문턱이 있으면 일단 후보에서 탈락이죠. 집 있느냐고 물어보러 부동산에 들어서는데 제가 입도 떼기 전에 업자가 나가라고 손을 휘휘 저은 적도 있어요. 어찌 저찌 보게 된 집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건물주가 입주를 거부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서기현 소장의 말

그렇다. 장애인이 자립을 시도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자체부터 걸림돌이다. (이게 이해시키고 이해받아야 할 문제라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지만.) 부동산 입구에서부터 거부당하고 손사레 치는 사람 앞에서 돌아서는 서 소장의 모습을 상상하니 한숨이 쏟아졌다. 물론 이 정도에서 놀라기는 일렀다.

“부동산업자나 건물주 이전에, 탈시설자립생활을 누가 제일 반대하는데요. 가족 설득이 제일 힘들어요.”

서 소장과 함께 일하는 최정희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장애인이 자립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의 걸림돌은 의외로 가족이라는 것이다. 자립생활주택 지원제도나 탈시설지원사업 등에 대해 안내하고 체험홈 시도를 권했을 때 막상 당사자의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가족의 반대가 더 만만하지 않다고 한다.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으세요. 시설에 있으면 사고가 나도 책임을 지는데, 탈시설이니 자립이니 하면서 괜히 바람넣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책임질 수 있느냐고. 그리고 일단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오면 가족의 부양부담이 커진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고 정확하게 인식시키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폭력적인 반응도 많고요.”

최정희 활동가

최 활동가는 이것이 무지함에서 오는 반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좋은 사례를 충분히 보여드리고 지원체계에 대해서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이날 나눈 짧은 대화만으로도 이것은 시간을 갖고 후속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안이 무거웠다.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는 가족구성권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나누기로 하였지만 이는 역시 주거권을 떼어놓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이 자립의지를 가지고 지역사회로 자유롭게 들고 날 수 있으려면, 장애의 경중에 관계 없이 자립생활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려면, 그리고 그것이 제도적 지원의 영역 안에 있으려면, 혼인과 출산을 전제로 하는 현재의 가족에 대한 정의가 더 넓어져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자기자신의 인권을 수호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가족 단위의 주거 형태만을 정상으로 규범하는 현재의 제도는 많은 부분에서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사회적 가족에게도 평등한 기회를

✅ 참고기사원문 및 전문 보러가기 > 혼인·혈연 아닌 ‘사회적 가족’의 파트너십 인정하라

서울시는 ‘정상가족’ 궤도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2016년에 제정한 ‘서울특별시 사회적 가족도시 구현을 위한 1인 가구 지원 기본 조례’에서 이미 ‘사회적 가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여기서 ‘사회적 가족’이란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 취침 등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뜻한다.

기사 원문 중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 취침 등의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사회적 가족이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원가족이라는 것도 생판 남남이었던 남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뒤 얻는 이름이다. 현재의 제도 안에서 가족의 최소 단위로서 지위를 부여받는 유일한 방법이다. 관계 속에서 고립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혼인, 혈연을 넘어 다양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가족이 등장하고 있는 때에 너무나도 구시대적인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의 주거정책 또한 ‘정상가족’의 구성·유지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최근 행복주택, 청년주택 등 주거지원정책이 확대되었지만 그 대상은 이성애 부부, 청년, 대학생 등 지극히 일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 안전망은 대상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편견을 공고히 하는 제도의 차별적 요소를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 나중은 없다.

지치지 말기로 하자

이전에, 함께 39년을 살았지만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를 무연고사망자로 장례를 치른 한 할아버지의 사연에 대해 포스팅했었다. (▷참고)

이렇게 되면 우리는 아마도 연고자 (緣故者)의 뜻이 궁금할 것이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연고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연고자 (緣故者)
[명사] 혈통, 정분, 법률 따위로 맺어진 관계나 인연이 있는 사람.

그나마도, ‘따위‘라는 말따위에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기대고 위로받는 사람이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이유로 평생을, 혹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산 사람을 외롭게 떠나보내거나 홀로 남겨두고 가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회가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지. 씁쓸한 사례들을 만날수록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카톡이 울렸다. 고등학교 후배 S였다. (우리는 얼마 전에 마주 앉아 비혼 상태의 30대 후반 여성으로서 느끼는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앞에 언급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우리 대화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 바가 있다.)

그러게. 우리가 오랜만에 만난 날은 계절이 바뀌었구나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드는, 근래들어 가장 쌀쌀했던 날이었다. 혜화역에서 만나 근처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학림다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찬바람이 불면 부드러우면서도 따땃한 비엔나 커피가 생각난다고 S에게 이미 말해두기도 했고 그날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진한 커피 향이 가득찬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운좋게 차지한 학림다방의 창가 자리, 가을비가 내렸다.

이날의 이슈는 처음에는 우리의 과거사였다. 시골 한 여고의 편집부에서 10대 중반에 인연을 맺었던 우리는 이제 각자의 원가족과 직장에서 마흔을 목전에 둔 비혼의 여전사로 남아 연명하는 중이었다. 세상이 말하는 혼기를 한참 넘긴 독거노청년 둘이 이름마저도 ‘다방’인 곳에 마주 앉아 세상 모든 일이 다 진지하게만 느껴지던 사춘기 시절 이야기를 마치 어제인 양 하고 있던 그날의 모양새는 처음에는 어쩐지 더 없이 좋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친구들과 우리를 놀라게 했던 사건, 그 모든 것들의 과거와 현재, 심지어는 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 분이 지금 계신 학교까지 찾아내 언제 그 선생님을 찾아가 놀라게 해드릴 것인지, 차편은 어떤 것이 좀 더 나은지 같은 것들을 말하며 행복에 젖었다.

하지만 내내 과거의 영광만 이야기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이들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고향에 가서 살 생각은 있는지, 서울은 언제까지를 마지노선으로 보는지, 지금의 직장에서 벗어나게 되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특별한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일상적이고도 중요한 화제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아니 그 전에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된 때나 혼자 있을 때 들이닥친 불의의 사고 같은 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S에게 얼마 전에 본 기사 이야기(▷참고)를 꺼냈다. 요약하면 우리는 연애를 하더라도 결혼은 하지 않을 것 같고 혼인 신고는 더더욱 하지 않을 생각인데 기사 속의 이야기대로라면 원가족 중에서 가장 오래 살게 될 때 우리의 마지막은,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하더라도 모두가 벌써부터 측은하게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독거노인의 쓸쓸한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실로 걱정이었다.

결혼만이, 출산만이, 내가 가족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니. 아직도 사람들은 우리에게 나이를 묻고, 남편은 뭐하는지를 묻고, 남편이 없다고 하면 왜 없냐고 묻고, 언제 결혼해서 애 낳아 키울 거냐고 묻고, 그걸 안 할 거라고 하면 왜 안 하냐고 묻고, 당연히 해야지 왜 그러고 있냐고 묻고, 오마이갓. 그 와중에 쉬지 않고 연애를 하는 것이 신기하다는 S의 말을 듣고서야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날의 자리가 어떻게 파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엔나커피는 늘 그렇듯 맛있었고 우리는 비가 내려 더 차가워진 밤공기를 지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대신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을 만나러 갈 생각에 조금 들뜬 채로 각자 버스를 타러 갔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 S는 내게 [ㅎㅎㅎ] 메시지와 함께 아래 기사링크를 띡 보내왔다. 나도 같이 [ㅎㅎㅎ] 하고 웃었다. 세상은 점점 변하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무척 더딘 것 같은데 좀 떨어져서 보면 분명히 생각보다 괜찮은 속도로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물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

S야. 우리 지치지 말자. 그러기로 하자.

11월4일자 [연합뉴스] 무연고사망자 장례, 동거인·친구가 치를 수 있게 한다

#서울청년주간 #신촌 #별별부스

지난 11월 2일, 신촌에서는 올해 청년주간을 맞이해 큰 행사가 열렸다. ‘청년’이 들어간 서울시 사업의 집대성, 청년사업의 공식행사 중 제일 큰 거, 바로 그거.

우리도 야심차게 부스를 신청했다.

이날만큼은 그냥 무조건 즐겁자,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아도 우리가 즐거우면 되는 거 아냐? 그래도 심심할 수 있으니까 각자 할 일을 좀 챙겨오자, 그냥 맛있는 거 먹는 날로 하자, 그래 일단 우리 활동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니까 열심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될 거야…

쫄보들의 대비라는 것이 이렇다.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세부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인터뷰를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픈스테이지라고 해서 ‘가족’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청년주간행사의 부스는 우리에게 더 없이 좋은 오픈스테이지였다. 하지만 과연 이 주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심지어 우리가 누군가. 쫄보 아니던가.

한적했던 초기의 부스 (심지어 지킴이 없고)

진심으로 우리는 몰랐다. 부스에 사람이 (이렇게나) 올 줄은, 꿈에도.

…응?
스태프 한 사람의 몫을 톡톡 해낸 분이시다. 동시 4인 접대중.

우리는 부스의 기둥마다 ‘가족’과 관련된 다양한 문장을 깃발로 만들어 걸어두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깃발에 사람들이 직접 실을 묶게 했다. 이렇게 얽히고 설킨 실들이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문제는 점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실을 묶기 위해서는 매트릭스와 미션임파서블 못지 않은 유연함이 요구되는 미션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한가로이 책을 읽겠다던 야무진 생각은 애저녁에 사라지고, 우리는 한손에는 칼과 가위, 다른 한손에는 털실과 사탕, 눈으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며 귀로는 “실 잘라주세요!” 하는 분들의 외침을 캐치하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사실 부스 좀 해봤다 하는 사람이 봤으면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애초에 부스가 한적할 것을 예상기원하고 가방에 온갖 놀이거리를 챙겨온 한량들이 아니었나. 두 사람이 동시에 참여방법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동공이 바람앞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생각보다 더 진지하게 참여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점점 안정진정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서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되었다.

끈으로 가족에 대한 생각을 엮던, 딸을 데리고 온 한 엄마가 “어, 나 이혼했는데?” 하며 [난 이미 결혼했다] 카드에 실을 엮을 때,

“마음이 아프다…” 하며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다]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분의 촉촉한 눈과 마주쳤을 때,

[가족하고 안 맞아요] 깃발로 돌진하던 수많은 청년들과

[결혼하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 [강아지 고양이도 가족이다]에 당연한 듯 그렇다며 답을 이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사는 건 늘 별일이지만, 그 또한 별 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별 것 아닌 질문카드 사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다양한 색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나의 미션이 더 있었다. 훗날 가족에게 남길 말을 직접 써보는, 일명 <쓰노라>

사실은, 전날 밤에 그렸노라(…)

실엮기가 많이 사랑받는 바람에 <쓰노라> 훗날 자신의 가족에게 한마디 남기고 가시라는 안내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주옥같은 글귀를 남기고 사라진 분들과 사진으로 채 남기지 못한 분들의 이야기까지 기억하고 싶다.

오후 5시, 우리의 오픈 스테이지는 CLOSED

오가는 사람들의 많은 생각과 다양한 길을 보여준 고마웠던 털실을 이만 자르고, 부스 주위의 쓰레기를 치우고 테이블을 접고 현수막을 걷었다.

머물렀던 자리는 흔적 없이.

생사고락(까지야…)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이날을 계기로 마음이 많이 가까워졌다.

우리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가끔 외롭고 종종 힘들며 대체로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래서 때로는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거운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날 우리가 거리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묵묵한 외로움의 한축을 기꺼이 함께 들어준 고마운 분들이었다. 분명히 힘이 됐다. 어떤 분들에게서는 눈빛으로, 손끝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혼인과 출산만이 가족의 당연한 전제인 것처럼 말하는 여전한 사회 분위기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듯한 법 제도가 한시바삐 보완되어, 가까운 미래에는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시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TMI) 또 한번의 오픈스테이지 <그럼에도, 별일 없이 산다>가 12월 3일 (화) 저녁 7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DDP CREA 세미나홀에서 열린다.

혼인신고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만들기>라는 거대한 주제가 2019년의 내 삶의 무게를 표현해준다는 데에는 검찰의 거짓말 탐지기도 일말의 의심없이 침묵을 지킬 것이라며 이 프로젝트에 대한 큰 부담감을 친구에게 토로했을 때, 친구는 말없이 이 기사를 보내왔다.

“39년 함께 산 남편이 있는데 무연고 장례라니”

2019-10-13 06:00 연합뉴스

잠시 말이 없던 친구는 일단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찾으라고 했다.
뭘 찾냐는 말에 다 찾게 되어 있다는 말을 남기고 자러 간 친구를 향해서 나는.

얘는 왜 또 장례식 타령이래, 지금. 결혼제도에 쏟아지는 이야기만 해도 마감을 못하게 생겼는데.

하다가 기사를 탐독하고 말았다.

39년을 같이 살았던 두 사람. 재혼이라 굳이 혼인신고까지는 하지 않고. 그런데 아내가 죽고 나니, 사실혼 관계로 살아온 이 씨는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망진단서를 끊을 수도, 장례 절차를 결정할 수도 없단다. 이걸 정해둔 법을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줄여서 장사법이라고 한단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 2조 16항에서 정한 ‘연고자’의 범위(를 내손으로 직접 찾고 있었고)

수소문 끝에 장례를 치를 방법이라고 찾은 것이 무연고 장례라고 했다.

무연고 장례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시신 인수와 장례 권한을 포기한 사망자에 대해 지자체가 도움을 주어 치르는 장례이다. 일생을 함께 하고도 법에서 규정하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내는 연고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가족구성권에 대해서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 내용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죽음에까지 전통적인 가족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제약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죽음 역시 가족구성권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문제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을 법이 제대로, 제때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해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비혼주의자로 삶을 살다보면, 우리는 누구나 높은 비율로 죽음 앞에 무연고자가 될 확률을 가지고 있다.

내가 무연고자라니…

하지만!

부부 간이 아닌 인간 관계에 사랑이 없나? 이성 관계 말고는 연애하는 이가 없나? 비혼주의자에게 정녕 인생 친구가 없나?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그 사랑의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혼인과 혈연의 개인적인 사정과 무관하게 스스로 가족을 구성하고 내 삶의 동반자를 지정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마땅할 일이다.

사실, 혼인신고서를 쓰지 않고 40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아내의 장례를 치러줄 수 없었던 사람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장사법에 따른다면 장례식장에 사실혼 배우자, 친밀한 관계의 친구, 공동체 가족 구성원의 자리는 없다.

얼마 전에, 가까운 친구들의 결혼 발표 자리에 가지 못해 무척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 심지어 그 자리에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친구들이 증인이 되어주었다고 해서 나 역시 증인으로 친구의 앞날을 축복해주지 못한 아쉬움을 말했다가, 한 친구의 비웃음을 샀다.

미혼이라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줄 자격도 없는 자가 되었다.

그렇다. 결혼적령기를 넘겨서 미혼의 상태에 있는 나는 대체로 이런 취급을 받는 것에 꽤 오랜시간 익숙해져 있었다. 애써 농담을 잘 받는 척, 쿨한 척해봤지만 나는 그런 시간 내내 상처받고 아팠다는 걸 시간이 좀 지나서야 알았다.

아무튼.

저 대화 이후 “담보잡을 남정네라도 하나 끌고 오라”는 대사가 이어졌다. 나는 문제의 발언에 인격모독감을 느낀다고 의사를 표현했지만, 상대는 “멘탈이 유리알 같을 때 병원 가면 훨씬 낫다”는 말로 기어이 나를 굴복시키려 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대화들이 오갔을 뿐이다.

결혼을 앞둔 그는, 재미있게도, 아내 될 사람에게 한번도 반말을 써 본 적이 없다고, 존대가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를 존중하고 언제나 로맨틱한 태도를 잃지 않는, 누가 봐도 유머러스하고 좋은 사람이다. 내 인격은 10인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처참하게 짓밟혔지만, 나를 짓밟은 사람은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될 것이)다. 그는 사회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수용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런 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사람 역시 기득권층이다. 마음 먹으면 결혼을 할 수 있고, 혼인신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것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유도 다양하다.

사회제도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회가 공정해야 하고 혜택은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성에 대한 대비도,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도 모두 부족하다. 공정과 공평을 바란다면 일단 현재의 제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 제도의 장점을 알고 이용했든 모르고 손해를 보았든 그것은 개인의 역량과 선택에 전적으로 맡겨진다.

나는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혼인신고는 지금 이 시대에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역시 이제부터 알아야 한다. 그 중요한 것을 모두가 할 수 있게 되려면, 타인의 행복을 빌어줄 자격을 갖추려면, 더 폭넓은 의미의 가족에 대한 재정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2019. 10. 23)

[EBS NEWS] 기획뉴스 ‘가족의 탄생’

혈연과 결혼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과 다른 형태의 가족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가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좋은 때에 EBS뉴스에서 연중기획으로 ‘가족의 탄생 –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편성해서 연속보도하고 있는데요. 전과 달라지고 있는 현재의 가족 형태의 다양성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EBS NEWS 기획 <가족의 탄생>을 함께 보고 가족구성권에 대해서도 이야기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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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다양한 형태 가족 인정해야” 높아지는 목소리
2편 “우리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3편 흔해진 ‘동거부부’ 인식 좋아졌지만‥차별은 ‘여전’
4편 혈연·혼인관계만 가족?‥”가족 범위 확장돼야”
5편 생활동반자’ 인정하는 나라 늘지만‥우리는 아직
6편 ‘공유주택’‥기쁨 슬픔도 공유하는 ‘가족’의 탄생
7편 다양한 ‘비혼 공동체’‥’결혼 안해도 괜찮아’
8편 늘어나는 ‘1인 가구’‥정책에선 여전히 ‘소외’
9편 ‘사회적 가족’ 지원 조례안 발의된다
10편 ‘1인 가구’ 다양한 모습 조망한 ‘영화제’‥다음 달 첫선
11편 차별 받는 미혼부모들 “우리도 똑같은 엄마,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