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

01&91 저 · 북닻 출판

01과 91은 함께 살아요. 부부는 아니에요.
결혼 없이 1년간 함께 살아온 01(男), 91(女)이 전하는 솔직 담백한 ‘동거 일기’

– 독립출판물이었던 이 책을 e-book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이 글을 씁니다.

“책 제목으로 동거라는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았어요. 이 사회에서는 동거라는 말이 마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리거든요. 그 같은 편견들과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길 하는 바람이 들었죠. 또한 동거를 앞둔 커플에게 저희 커플이 동거한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방법들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책을 내게 됐습니다. (01)

“남녀가 함께하는 동거가 여성에게는 더 흠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해는 하지만 도리어 ‘여자가 손해야’라는 그 말 자체가 틀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저의 선택과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 (91)

이들이 말하는 ‘함께 산다는 것’은 “같이 밥을 해먹고, 청소도 하고, 책도 읽고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더 많은 순간을 ‘함께’하는 것. 함께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는 청소를 하고 너는 샤워를 하고, 네가 저녁을 차리면 나는 샤워를 하는 것.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나갈 때보다 설레는 것. 돌아오면 항상 네가 있는 곳. 기다리고 있으면 언제나 네가 돌아오는 곳” 이다.

  • 결혼과 출산이 가족의 기준인 시대가, 느리지만 조금씩 저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용기의 기록을 세상에 내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관심 있는 분들의 독서를 권장합니다!

[정보 공유] 책자 신청 : 제도가 □ 하지 못할 때 –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민우회의 <제도가 □ 하지 못할 때> 소책자 배포가 시작되었습니다.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와 비슷한 콘셉트의 집담회와 인터뷰여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오늘 소식을 듣고 여러분들과 공유해 봅니다.

🌟소책자 무료배포🌟

가족이 아니라서, 1인 가구여서 제도를 이용할 수 없거나 차별 받았던 경험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소책자 <제도가 □ 하지 못할 때> 신청해 주세요!

“경제적인 자립, 건강 고민을 많이 하는데 어른들이나
심지어 친구들도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가족이 그 모든 걸 해결한다고 생각하잖아요.”
– 소책자 인터뷰 내용 중에서-

민우회가 만난 가족들의 모습은?
22년째 동성친구와 가족으로 살고 있는 희진, 결혼 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는 정은과 남자친구, 동성 배우자와 고양이 네 마리와 5년째 살고 있는 다현, 16동안 비혼 공동체로 함께하고 있는 영지 등 다양한 형태로 동거 ‘가족’을 꾸려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이 책자는 2019년 법적가족(혼인, 혈연, 입양)이 아닌 동거 ‘가족’을 꾸려 살고 있는 여성 10명의 복지제도 경험 이야기와 4회의 복지제도 경험 집담회 <제도가 □ 하지 못할 때>에 참여했던 비혼 여성 12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신청방법 📌
택배비 3,500원 입금 후, 구글 링크 신청서를 작성해 주세요!
(소책자는 무료이며, 택배는 주 1회 일괄 배송됩니다.)

신청링크 https://forms.gle/JASm8Fm7gJnKRQsr9

입금계좌
우리은행 1005-402-645055 (예금주_한국여성민우회)
문의 02-737-5763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내용보기
http://www.womenlink.or.kr/notices/22637

#별별인터뷰 #외로움과_살아가는_방법 #아타

#처음

  • 이틀
    • ‘가족’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어. 다양한 가족들의 현재 모습,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업인데 평소 내가 아타랑 나누고 싶었던 이야길 나누려고 해.
    • <별일없이산다>에는 공식적인 첫 질문이 있어.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은 몇 명입니까?
  • 아타
    • 와, 이 질문 정말 좋으면서 힘드네. 이 질문을 받으니까 가족이라는 개념이 나한테 확장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면 옛날에 무조건 우리 구성원 5명이었는데 지금은 사실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나는 우리나라의 가족이 너무 폐쇄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고. 폐쇄적이면서 동시에 세습적이어서 나는 그걸 나름 거부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가족이라는 개념이 나한테 폭넓게 작용하는 것 같아. 부모들이 항상 얘기할 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결국엔 가족 찾는다 이러는데 그 말이 맞기도 한 것 같아. 내가 큰일을 겪으면서 가족이라는 개념의 사람이 더 늘었다는 생각은 했어. 그래서 나한테 가족의 명수는 솔직히 한… 딱 몇 명이다 말을 못 할 거 같고, 약 열 명 내외 정도-라고 나는 생각해. 그 안에는 이웃도 포함되고 친구도 포함돼. 나는 가족에 너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거야. 가족이라는 네이밍 안에.
  • 이틀
    • 그치. 우리나라의 가족이라는 개념이 너무 틀에 박혀있는 느낌이라.
  • 아타
    • 고마운 존재들이긴 한데. 나에게 유년 시절을 제공해주고, 내가 자랄 수 있게 계속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주신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하는 마음도 있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걸 빚진 마음으로 가져가서 가족이라고 계속 말하는 건- 나부터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 왜냐면 그렇게 말하면서 집착하려고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내가 싫은 게 그건데 그들한테 그걸 요구하면 내가 너무 모순적이기도 하고. 완벽하게 모순적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니지만.

#두사람

  • 이틀
    • 예전에 어려운 일이 있었을 때 내가 생각난다고 했었잖아. 나에 대한 기대나 집착도 있는 거야? (웃음)
  • 아타
    • 음.. 있지 않을까? (웃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면, 그래도 연락을 했을 때 나를 모른 척하지 않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 마음이 내포돼 있을 것 같아. 아무리 없다고 말한다 해도 사실 그건 좀 거짓말일 것 같고. 그 안에 어떤 지난 세월, 같이 쌓아왔던 우정에 대한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없을 순 없잖아. 근데 만약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못 얻어서 순간 실망한다고 해도 그때 그 사람을 ‘나쁜 사람’ 또는 ‘역시 (진정한) 친구는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 왜냐하면 반대로 생각했을 때 나도 안 되는 상황이 있을 때도 있겠고, 누구에게나 각자의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아.
  • 이틀
    • 알겠어. 나에 대한 집착은 크지 않은 걸로 생각할게. (웃음)
  • 아타
    • 너무 고마운 것들은 항상 있지. 꼭 그 때 그 자리에 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픽- 사라지는 건 아닌 거 같아.

#요가

  • 이틀
    • 나는 네가 요가 수업을 진행한 지 10주년이라는 걸 인스타에서 보고 깜짝 놀랐거든. 요가는 자취하면서 시작한 거야?
  • 아타
    • 아니, 자취보다 요가를 먼저 시작했고, 자취는 요가 시작하고 한 2년 정도 있다가. 그냥 독립해서 혼자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처음에 나온 거라 당시에 머릿속에 엘요가는 아예 없었어. 근데 밖에서 나와 혼자서 살아보니까 너무 힘든 거지. 챙길게 너무 많고, 밥 빨래해 주셨던 엄마 아빠가 없이 혼자 하려니 벅차고. 그러다 보니까 일이 조금 더 나한테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지점에서 나한테 편한 워크 타임이라고 해야 하나, 그 타임을 내가 스스로 결정하면 훨씬 편안하니까 엘요가를 하기로 결정한 거고. 솔직히 엘요가는 내가 하기 싫은 걸 절대로 안 하려고 세운 거야. 엘요가를 너무 하고 싶었다,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어. 하기 싫은 걸 절대 안 하고 싶었지.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조금 알게 됐고.
  • 이틀
    • 왜 요가를 시작하게 됐지? 그 얘기를 못 들은 것 같아.
  • 아타
    • 재활. 10대 때 허리 디스크가 좀 있었는데 그냥 방치해뒀었어. 20대 돼서 자꾸 무릎이랑 허리가 너무 아픈 거야. 앉아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계속 힘들어서 도저히 이대로 안 되겠다 싶었던 거지. 내가 항공학과를 나와서 시험을 보려면 구두를 신고 다리를 붙여야 하는데 골반이 틀어지니까 허벅지에 힘이 없어서 다리를 붙이는 게 너무 힘든 거야. 그래서 처음에는 교정을 하려고 정형외과 다니고 한의원에서 견인치료를 받고 그랬었어. 나을 듯 나을 듯 하는데 그 비용이 꽤 비싼 거지. 근데 그때는 21살 이랬으니까 아르바이트만으로는 그 돈이 감당이 안 되고, 또 그걸로 엄마 아빠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거든. 근데 누군가 나한테 스쳐 가는 말로 ‘요가가 허리랑 골반교정에 그렇게 좋대’ 그래서 시작을 한 거였지. 요가가 좋아서 혹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고, 죽지 않기 위해? 살고 싶어서. 너무 몸이 아프니까 생존 때문에 시작했던 거야. 그때는 요가 강사가 될 생각도 없었지. 재활만 잘 됐으면 좋겠다, 그 생각뿐이었어. 2년 반 정도 꾸준히 했었나. 
  • 이틀
    • 2년 반하고 어디 다녀오지 않았었나? 인도?
  • 아타
    • 자기계발 관련해서 무슨무슨 코스가 있었어. 그땐 돈 벌어서 다 그런데 썼어. 명상하고. 요가하고 몸이 많이 좋아지면서 내 내면을 보게 되니까 내가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게 비단 몸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겠더라고. 자연스럽게 명상이나 자기 마음 챙김 같은 거에 관심이 갔지. 인도를 간 건 아니고 인도에 있는 스승님한테 우연히 가르침을 받았는데 너무 좋은 거야. 안 그래도 그때 내가 불교 철학에 관심이 많았을 땐데 그분의 말이 잘 맞기도 하고. 요가랑 명상을 동시에 같이 시작했지. 같이 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그렇게 꾸준히 병행을 했고 그 결과 다행히 재활이 됐고.
    • 그 당시 요가선생님이 아직도 기억 나. 지금도 한번 뵙고 싶어. 그 선생님이 나한테 한번 슬쩍 얘기했지. 잘 안 빠지고 되게 열심히 나온다고.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어하더니 지금은 동작도 진짜 잘 나온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그 이야길 하시는 거야.

“나중에 관심 있으면 자격증 한 번 따봐요”

아타를 지켜본 선생님이 조심스레 건넨 이야기
  • 아타
    • 나는 막 손사레를 쳤어. 어우,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무슨… 막 이러면서 집에 와선 인터넷을 검색했지. (웃음) <요가 자격증을 따려면>.
    •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은 회사를 계속 다녔어. 근데 맨날 시흥에서 광화문까지 지하철 타고 오는 게 너무 힘든 거지. 정장 입는 것도 안 좋아하고. 다행히 옷을 편하게 입으라고 하는 회사이긴 했지만 그래도 은근 눈치 주거든. 운동화 신고 가면. 그런 거 때문에 너무 불편하고, 그것 때문에 다시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그건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딱히 방법이 없었어.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해서 답이 보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시점에 마침 신종플루에 걸린 거야, 내가. 그때 한동안 격리 됐었는데, 아직도 기억나. 진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러면서 ‘내가 만약에 여기서 살아서 나가면 회사 먼저 그만둔다.’ 그런 생각을 했지.
    • 어떤 한계치에 탁, 왔을 때 사람이 솔직해지더라, 진짜. 그러고 나서 그만뒀어. 한 3주 있다가 바로. 그만두면서 이미 등록한 지 몇 달 된 자격증반에 집중했지. 근데 내가 원래 운동을 했던 몸도 아니고 재활이 됐어도 유연한 건 아니어서 자격증 따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2배 정도 걸렸어. 무용과 친구들이랑 같이 시험 봤는데 완전 좌절. 그때 나는 다리도 안 찢어지고. 지금 생각해보면 요가가 다리 찢고 하는 그런 게 아닌데, 사람이니까 비교가 되는 거야. 그때 잠깐 고민했었지. 중단할까. 이 길을 가지 말까. 그래도 그때 계속 생각했어. 그래,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다, 하면서 책을 위안 삼았지.
    • 그리고 25살에 요가강사를 시작한 거야. 처음엔 알바였어. 오래 할 거란 생각도 없었어. 그냥 회사 안 가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수업할 수 있고, 그러고 돌아오면 산책도 하고 보러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시작한 거였지. 삶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였으니까 철학 수업 들으러 경복궁역까지 가고 그랬어. 모닝페이지라고. 
  • 이틀
    • 아침에 글 쓰는 거였나?
  • 아타
    • 응. 집에서 혼자 하는 100일 프로젝트. 중간에 사람들 만나서 피드백 주고 받고. 그것도 한 6개월 정도 했던 것 같아. 아침에 일기 쓰는 거니까 무의식이 나올 때가 많아서 솔직해지는 거야. 아, 난 이런 거 싫어하는 구나, 이런 거 좋아하는 구나, 아니면 난 이런 거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사실 그때 나는 이런 걸 되게 부끄러워 하는 구나. 그런 게 좋았어. 나에게 솔직해지는 거.
  • 이틀 
    • 아타는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 아니면 몸과 마음에 영향이 오는 것 같아서, 그런 면에서 요가가 잘 맞는 거 같기도 하고.
  • 아타
    • 거짓말이 많아서 그래. (웃음) 내 안에 정직이 쉽지 않아.
  • 이틀
    • 요가를 시작한 계기가 맨 처음에는 몸의 재활 목적, 그 다음에는 마음을 살피는 과정, 그리고 내가 스스로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는데. 1번과 3번은 좀 구체적으로 알겠는데, 2번에서는 어떤 마음의 문제가 있었는지 좀 더 듣고 싶어.
  • 아타
    • 가족이지. 그 당시에는 가족 구성원이 다 싫었어. 유일하게 남동생 빼고는 다 힘들었던 거 같아. 지금은 가족구성원하고 나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 근데 그때는 막 엄청나게 미워해서 다신 안 봐, 이런 건 아닌데 썩 좋은 것도 아닌 그런 관계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오해야. 내 시야가 좁으니까 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만 맞다고 계속 생각한 거지. 그렇게 보니까 아빠도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거고,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원하는 대로 나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그 둘 다 싫었어. 10대 때는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부모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그 관계 안에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였는데, 이제 20대 딱 되니까 느낀 거지. 경제적으로 완벽히 자립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절반의 반항은 할 수 있게 된 거야. 
    • 엄마에 대해서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거 같은데, 아빠가 날 되게 미워한다고 생각했어. 알고 봤더니 엄마가 아빠랑 사이가 안 좋은 거야. 엄마가 아빠 욕을 나한테 하잖아. 엄마는 어쩌면 그냥 이야기한 건데 어린 나에게는 아빠가 되게 나쁜 사람인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잘한 건 없지. 근데 그 당시에는 엄마가 아빠를 욕하면, 내가 엄마를 좀 더 좋아하고 애착 관계가 있으니까 사랑하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가 싫은 거야. 아빠가 말만 하면 삐죽대고 내 옆에 와도 어색하고 싫고. 그게 계속 누적이 되니까 아빠가 어느 순간부터는 되게 불편한 사람이 된 거지.
  • 이틀
    • 그랬구나.
  • 아타
    • 근데 명상하면서 가족에 대해 들여다보는 그런 코스를 하고 나서 내가 깨달았던 건 아빠에 대한 오해가 너무 심했다는 거야. 당시에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아빠한테 편지를 썼어. A4용지 3장에 구구절절. 언제언제 아빠가 나한테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이렇게 느꼈었다. 사실 난 아빠가 싫은건 아닌데 오해를 풀고 싶다. 아빠가 나를 삼 남매 중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 솔직하게 얘기를 했지. 아직도 기억해. 그날 내가 먼저 나가면서 봉투를 책상 위에 두고 갔어. 갔다 왔는데 아빠가 앉아보라는 거야. 아, 아빠가 봤구나. 진짜 떨리는 거야. 근데 아빠가 좀 당황한 느낌으로 말을 하시더라고.

“야, 나는 네가 이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 네 오해야.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 근데 나는 한 번도 너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

아빠의 사과
  • 그날 내가 엄청나게 울었어. 오해가 풀린 거지. 아빠한테 지금도 고마워. 그래도 그렇게 얘기해주셔서. ‘네가 항상 셋 중에 알아서 잘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너를 신경 안 쓴다고 했던 건데 그런 걸 섭섭해했을지 몰랐다. 널 방치한 건 아니다. 나는 너를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 그때 오해를 풀고 아빠랑 사이가 좋아졌어. 그 당시에 그걸 안 풀고 가면 내가 안 되겠더라고. 
  • 이틀
    • 사실 그렇게 안 풀고 계속 오해를 쌓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아타 스타일인 것 같아. 정직하게.
  • 아타
    • (웃음) 근데 문제는 뭔지 알아? 그러고 나니까 아빠가 엄마보다 좋아진 거지. 아빠 편 들어 이제는. 엄마 편 잘 안들어. 아빠한테 뭐라 하지 말라고 하고. 엄마가 언제 한번은 되게 섭섭하다고 하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믿을 구석은 유일하게 아이밖에 없었던 거 같아. 엄마가 가장하는 사랑하면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좀 와전되면 집착일 수도 있고.
  • 이틀
    • 그런 화해의 과정이 있다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요가가 그런 기회를 마련해준 측면도 있는 것 같아.
  • 아타
    • 그치. 그래서 고마워. 그리고 그때의 나한테 고마운 게 있어. 용기를 내줬다는 거. 물론 그 뒤에도 이래저래 풀어야 하는 건 하나씩 생기더라고. 그래도 제일 중대한 건 그때 풀었다고 생각을 했어. 우리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니었구나. 아빠도 그런 걸 배워보지 않았다는 것도 좀 이해를 했어. 아빠도 아빠의 아빠나 엄마한테서 그런 걸 배워 보신 적이 없었던 거야. 그냥 라디오나 방송 같은 데서 본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만 하니까 아빠도 나름 시행착오를 겪었던 거지. 근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나는 왜 이렇게 좀 더 아빠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는 마음도 들고. 아빠와의 관계가 풀리면서 많이 좋아졌어. 그러면서 아빠가 나한테 되게 든든한 사람이 됐지. 아빠도 신경을 쓰시는 건지 더 연락도 자주 하고 용돈도 몰래 좀 더 자주 주시고. 좋은 분이야. (웃음) 아, 나 잠깐 *말콤이 보고 올게.

(*말콤이는 아타가 임시보호 하고 있는 고양이다.)

#고양이

  • 이틀
    • 말콤이 임보한지 정확히 며칠째지?
  • 아타
    • 65일째인가? 65일째, 오늘이.
  • 이틀
    • 보통 임보를 이렇게 오래 하진 않잖아. 비결이 뭐야? (웃음)
  • 아타
    • 아하하. 때 되면 밥 주고 약주고 똥 제깍제깍 치워주고.
  • 이틀
    • 말콤이는 아타한테서 얻는 게 확실하게 있구나. 아타는 말콤이한테서 뭘 얻는 걸까?
  • 아타
    • 나는 말콤이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아, 이런 애도 있구나. 이렇게 지낼 수도 있네. 60일 동안 지내면서 우리 사이에 알게 모르게 약간의 의리가 생긴 거 같아. 그게 느껴져 살짝. 이런 게 나름 또 재밌는 거야. 
  • 이틀
    • 지금까지 아타가 임보한 고양이가 몇 마리야?
  • 아타
    • 처음에 두 마리 한 번에 했었고, 그 다음에 우리 루미가 있었고, 그다음에 말콤이.
  • 이틀
    • 첫 번째 임보했던 친구 중에 내가 아는 그 까만 고양이 있지 않나?
  • 아타
    • 어, 맞아. 까만 색이랑 고등어. 
  • 이틀
    • 그 친구들은 정말 임보였었네. 다른 집으로 갔으니까.
  • 아타
    • 응. 눈이 한쪽이 잘 안보여서.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 이틀
    • 시흥에 살 때도 반려동물이 있었나?
  • 아타
    • 아주 어렸을 때, 7살쯤? 삐뽀라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어. 삐뽀는 내가 지어준 거야. 뽀삐로 부르자고 했는데 너무 흔해서 내가 삐뽀로 하자고 했어. 나중에 삐뽀가 엄마 친구 집으로 갔거든. 근데 1년 안 돼서 떠났지. 너무 관리를 못 받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 남동생이 유독 힘들어했어. 지금도 가끔 그 얘기를 해. 누나, 나는 삐뽀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파, 그러지. 남동생은 그때 심지어 4~5살밖에 안 됐었거든. 엄마가 아무 상의 없이 삐뽀를 친구분 집으로 보낸 거야. 남동생이 완전 자지러졌지. 맨발로 뛰어나갔어, 삐뽀 찾으러. 남동생이 숨을 못 쉴 정도로 울던 기억이 있어. 그 뒤로 남동생은 못 키우겠다고 하더라고. 그 트라우마가 있대. 그 뒤로 몇 번 엄마한테 데리고 오자고 그랬었는데 엄마는 너희가 키울 거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셨지. 여튼 그 이후로는 반려동물과는 함께 살 거라고 생각 안 해봤던 것 같아.
  • 이틀
    • 근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임보로 지냈지?
  • 아타
    • (웃음) 일단, 고양이가 너무 귀엽다는 걸 알고 나서. 사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카페에 고양이가 있었어. 처음에는 고양이 무서워 했거든. 근데 너무 예쁜 거야. 어떻게 이런 애들이 다 있지, 싶었다니까. 그때부터 고양이가 되게 예뻐졌어. 그래서 사실 몇 년 안 됐어, 내가 고양이 예뻐한 지. 자취 시작하고 초반에는 여건이 안 되니까 못 키웠는데, 독립문 오고 나서 임보를 시작한 거야. 어떤 분이 자기 고양이 잠깐 봐줄 수 있냐고 해서, 원래 한 달을 봐주는 거였는데 내가 한 넉 달을 봤지.
    • 그러고 나서 한 석 달 있다가 루미가 오게 된 거야. 내가 몸살이 있어서 한의원에 다녀오던 날이었어.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 다음 주에 방사 대상인 아이가 하나 있는데 혹시 거둘 생각 없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물어봤지. 방사되면 어떻게 되냐고. 그랬더니 ‘빨리 죽겠죠’ 이러는 거야. 나는 그 말이 나는 너무 싫은 거지. 바로 데리고 오겠다고 했어. 사진도 안 봤어. 나중에 보니까 내가 같이 살 거라고 생각했던 고양이는 아니었어. 나는 치즈를 생각했거든. 근데 루미는 젖소잖아. 그래서 처음엔 약간 그랬어. 근데 아직도 기억나. 처음에 한옥 집을 한 바퀴 돌더니 딱 내 무릎에 앉더라. 내 무릎에 앉아서 자는데 너무 귀여운 거야. 
  • 이틀
    • 루미는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구나.
  • 아타
    • 응. 루미는 그랬어. 캣초딩 짓을 많이 해서 나한테 많이 혼났지. 사료며 모래, 장판 다 뜯어놓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미안해. 왜 그렇게 혼을 냈을까? 그냥 뒀어도 됐는데. 이렇게 짧을 줄 알았으면.
  • 이틀
    • 루미의 첫 모습이랑 더 비교되겠다. 말콤이랑. 루미는 이렇게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는데. 그치? 말콤이는 65일째 저기 있으니까. (웃음)
  • 아타
    • 그래서 처음엔 말콤이한테 정이 가진 않았어. 근데 그런 생각도 들더라. 그게 뭐가 중요한가. 쟤가 나한테 마음을 안 열 수도 있는거고, 뭔가에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꼭 예쁜 짓을 해야만 예쁜 아이인가. 모든 아이가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쟤를 보면서 들어.
  • 이틀
    • 처음에 아타가 가족이 몇 명이다, 누구다, 특정할 수 없겠다고 말했잖아.
  • 아타
    • 응, 루미나 말콤이는 케어의 느낌이 있긴 해. 가족이긴 한데, 이것도 범주가 나뉘는 거 같아. 온전히 내가 케어해줄 수밖에 없는 존재-는 거의 유일한 것 같아. 인간은 그러지 않는데 동물이라서 좀 다른 점이 있는? 그래서 인간한테는 그런 마음이 잘 안 드는 것 같기도 해.
  • 이틀
    • 루미와 말콤이한테 느껴지는 감정도 갭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 아타
    • 말콤이는 아직. 말콤이는 사실 가족이라기보다는 보호 대상이라는 생각이 아직은 더 커. 만약에 쟤가… 음… 모르겠다, 말콤이. 아직은 잘 모르겠어. 루미는 죽을 때까지 내가 봐야겠다 결심한 게 된 것도 있었고. 말콤이는 아직은 내가 보호자라는 생각 정도? 그게 좀 다르긴 하다.
  • 이틀
    • 이렇게 같이 지내는데 불편한 게 없고,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 아타
    • 맞아, 불편한 게 없어. 희한하게. 불편할 줄 알았는데. 딱 자기 바운더리 안에서 다니고 침범하면 싫어하고.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과 함께 지내는 느낌이지.

#외로움과함께살아가기

  • 이틀
    • 이렇게 살 수 있는 거 보면 가족이고 아니고가 뭐가 중요한가란 생각도 들고.
  • 아타
    • 맞아. 옛날에 제주도에 있는 요가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같이 사시는 할머니가 계셔. 다들 어머니라고 생각한 거야. 근데 혼자 사시는 할머니래. 그냥 모시고 같이 살게 됐대. 너무 신기하지. 그냥 같이, 공간에서 방 하나씩 해서.
    • 아침에는 요가 수업하러 나오시니까 점심이나 저녁을 꼭 집에 가서 할머니랑 같이 하셔. 회원분들이랑 같이 있다가도 시간 되면 꼭 “난 집에 잠깐 들어갈게. 그래도 할머니가 계시잖아” 이러시더라고. 어쨌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선생님의 방식을 보고 ‘와’ 이랬던 것 같아. 그냥 그렇게도 살 수 있는 거야. 그들에게 우리가 얘기하는 각별한 사랑은 없을지 몰라도 어떤 인간적인 부분? 또는 우정, 또는 의리는 있는 거란 생각이 들어. 할머니가 내가 안 오면 저녁을 차려서 안 드시더라고, 그러면서 집에 가시는 거야. 그걸 누구도 의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냥 그들만의 우정이 있구나, 하는 거지. 그 할머니 지금도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네.
    • 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한테 아직 없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어서 그렇게 느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근데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배워가고 있지. 앞으로는 더 그럴 거라고 생각해. 앞으로의 시대가, 세대가. 물론 그 안에서도 왔다 갔다 해. 그래도 누군가랑 더 복작복작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가끔 들 때 있고. 왔다 갔다 해.
  • 이틀
    • 아타는 어때? 연인이거나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우정을 근간으로 한 누군가와 같이 산다면 그때도 가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 아타
    • 아니. 그냥 그게 가족이 된 거 같아. 그게 서로 잘 맞는 사람. 그러면 더 이상 난 가족에 대해 집착하지도 않을 거 같고. 물론 지금도 많이 안 하려고 노력하고, 안 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정 부분 있기도 하거든. 그게 되는 삶이라. 생각만 해도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거니까 약간 설레는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가족관계에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그거거든.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그런 생각이 우리 가족 안의 폭력으로, 그리고 세뇌가 되어있는 것 같고, 나도 적게라도 경험했던 사람이니까. 물론 섭섭해할 수도 있긴 하지. 하지만 맨날 그 말을 달고 사는 가족, 부부는 별로 건강해 보이지도 않고 그런 삶을 추구하고 싶지도 않고. 다행히 그렇게 안 살고 계시는 주변에 좋은 파트너, 커플도 좀 있어. 그래서 그런 분들하고 자꾸 만나고 싶어 하고 얘기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아.
  • 이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외로운 밤들이 있잖아, 문득 외로운 순간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순간에 기존의 가족은 ‘넌 나의 외로움을 받아줘야 해. 나의 기대를 받아줘야 돼’라고 많이 이용했던 거 같은데.
  • 아타
    • 사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되게 많이 그랬어. 우리 엄마가 너무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나한테 그걸 구구절절 말하는 거야. 근데 다 엄마의 슬픈 과거인 거지. 그게 나한테 좀 세뇌가 된 게 있어.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한 사람이니까 남들이 또는 아빠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싫은 거야. 지금은 엄마한테 많이 벗어나기도 했고, 감사한 건 감사한 거지만 엄마가 그랬던 걸 좀 떨어져서 보게 된 거 같아. 사실 엄마한테는 내가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거지. 근데 그런 건 있어. 엄마, 그러기엔 내가 너무 어렸어. 차라리 그런 얘기를 엄마 친구한테 했으면 좋았겠지만 엄마가 친구가 없었던 것도 이제 이해해. 엄마한테 유일한 친구이자 딸이 나였고. 그렇다 해도 난 이제 더이상 그걸 내 후세에 이어가고 싶지 않아. 물론 그걸 안 하려고 노력한다 해도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각인이 된 채로 살 거고. 아직은 그걸 경험시켜주고 싶지 않아.
  • 이틀
    • 그렇다면 아타의 그 외로움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 어떤 모습으로 해결하는지를 묻는 거라기보다 외로움과 같이 지내는 방식 같은 거 있잖아. 그리고 아타가 온전하게 서 있기 위해서는 그 외로움을 혼자 끌어안을 수는 없잖아. 같이 나누는 어떤 존재들이 필요한데, 어떤 존재들이 있고 그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
  • 아타
    • 친구들, 산책, 맛있는 브런치, 영화, 음악, 좋은 글귀, 요가, 명상, 호흡… 방법이 꽤 많긴 많아. 그런 방법으로 가는 것도 피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었었어. 불법적인 것만 도피는 아닌 거지. 그 이야기를 듣고 ‘아~’ 하긴 했어. 뭐 어떻게 해. 인정한 거지. 그렇게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맨날 요가만 하고 맨날 호흡을 바라보기도, 그리고 이제 그러고 싶지도 않아. 그냥 좋은 영화 있음 거기에 영감받고.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어차피 나도 이 친구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 서로 진심이었다고 생각하니까 그거면 된 거 같아. 예전에는 그 후에도 잔여물에 내가 있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욕심이더라고. 나도 그러지 않으면서 남한테 그런 거 바라는 건 욕심이지 뭐야. 그래서 지금은 친구들 만날 수 있을 때 만나는 게 좋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나오는 영화 보는 게 너무 좋고, 요가 하는 거 당연히 좋고, 가끔 달리기하는 거 좋고 짜릿하고. 또 뭐가 있을까. 산책. 난 산책이 제일 커, 사실. 제일 쉽고 돈 안 들이고 그러면서 가장 사색할 수 있는.
  • 이틀
    • 그게 중요한 거 같아. 도피하는 곳이 많은 거, 나와 연결된 곳이 많은 게. 연결된 곳이 한 군데만 있다면 거기에 대한 기대도 커지잖아. 실망이 커지고, 거기에 내가 좌지우지되는 것도 커지고. 그러면 더 건강해지지 못하는 거 같은데, 아타가 이렇게 많은 곳에서 얻는 기쁨이나 연결감을 느끼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 건강한 것 같고. 만약 아타가 가족에게만 기대와 그런 걸 원했다면 엄마가 결혼하라고 했을 때 크게 휘둘렸을 거 아냐. 지금도 그런 소리 좀 듣잖아.
  • 아타
    • 듣지. 이제는 웃어 그냥.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누군가와 함께 살아보고 싶다. 근데 또 그런 생각도 들지. 내 라이프 스타일 – 저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 각자 있잖아. 비슷한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다르고. 그러면 그냥 각자 집에서 잘 지내면서 한 번씩 만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꼭 같이 살아야 하나? 그런 마음도 있어. 어느 순간부터는 만났을 때 좋은 사람이 좋아. 약간 추상적일 수 있는데, 딱 만났을 때 좋은 사람들하고 계속 만나고 싶은 거? 예전에는 꼭 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게 계속 있었으니까. 근데 꼭은 없더라. 차라리 그때 나를 더 바라보는 게 좋지. 나는 내가 중요했으면 좋겠어. 내가 누굴 사랑해도 내가 중요했으면 좋겠어. 처음으로 든 생각이야. 나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모든 걸 다 바치고 싶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거든. 로맨스물을 보거나 연애할 때 특히 더. 근데 아니야. 아니더라고. 내가 중요한 게 진짜인 거 같아.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 이틀
    • 아타의 그 말은, 가족이나 연인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내가 온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산책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 아타
    • 맞아. 내가 살면서 기쁜 것들이 많아지면 좋아. 내 삶에 있어서 소소하게 좋아지는 것들이 많아지면 너무 감사한 게 그중에 돈 안 들고 할 수 있는 게 꽤 있다는 걸 알게 된 거. 옛날에는 돈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물론 맛있는 브런치는 돈이 들지만, 그것도 매일 먹는 건 아니니까. 그래, 보이차도 있어. 빼먹을 뻔했네. 제일 깊숙하게 있으면서도. 
  • 이틀
    • 앞으로의 아타의 모습도 지금처럼 죽 이어졌으면 좋겠어? 어때?
  • 아타
    • 나는 어제 어떤 선생님이랑 얘기하다가 떠오른 건데 그냥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그 정도. 딱.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나도 아직 있어. 내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런다고 하지만 아직 혈연관계의 가족들한테는 좀 너그럽지 못한 게 여전히 있단 걸 보거든. 근데 그게 좀 너그러워지면 삶이 매끄러워질 것 같아. 삶이 짧을 것 같아.
  • 이틀
    • 아타는 기쁜 것들이 되게 많을 것 같아. 주변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능력. 그게 난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 아타
    • 어, 이 얘기를 되게 오래전에 누군가 나한테 했었던 것 같은데. 누구나 좀 있는 거 같아. 맛있는 커피 마실 때나 햇살이 탁 창가에 잘 비칠 때나 오늘 하루 치 구몬을 끝냈을 때나. 그런 행복이 좀 있지 않아? 이틀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잦아졌으면 하는 게 있어. 그게 사라질 때 힘든 거지. 통째로. 근데 통째로 사라지는 순간들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오는 거 같아. 아,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한테 닥치는 일들이 있구나. 이제 알겠어. 그때도 일상을 많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칠, 몇 주, 몇 달은 그럴 수 있는데, 다 놓으면… 사는 게 아니더라고.
  • 이틀
    • 맞아. 인생은 회전목마 같아서(웃음) 노래 제목이야.
  • 아타
    • 차를 다시 마시고,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다시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 이틀
    • 전혀 다른 스타일이지만, 새로운 고양이랑도 같이 지내고.
  • 아타
    • (웃음) 말콤인 진짜 특이해. 어떻게 65일 동안 저러고 있을까. 지금은 그러려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자, 그러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미한테는 미안한 것도 있고. 이제 말콤이는 당분간 병원에 안 데려가기로 했어. 토를 하든 뭐를 하든 집에서 지켜보기로. 병원 한 번 갔다 오면 트라우마가 며칠 더 가니까. 고양이가 진짜 예민한 거 같아. 나도 그랬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을 수 있음 좋긴 좋겠는데, 그냥 보내다가 갔으면 좋겠다.
  • 이틀
    • 옛날에는 그런 거 상상 못 했는데. 나도 이제 엄마도 그렇고 계속 누군가 왔다 가는 거 같아. 내 인생에서. 정말 큰 것들이 왔다 가는 것도 있고 작은 것들이 왔다 가는 것도 있고. 나도 또 왔다 갈 거고.
  • 아타
    •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 생각했어. 다 왔다 가는구나. 근데 다 언제 갈지는 모르는 거지. 그런 것 같아.

임보중인 고양이 말콤이와의 거리, 유년시절 많은 것을 기대오던 엄마와의 간격, 그날그날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찾는 하루치의 행복. 혈연만이 가족이고 살면서 서로에게 되도록 많은 것을 새기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관계의 제약에서 벗어나, 우리는 모두가 인생에서 왔다 가는 존재라는 것을 점차 수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타의 이야기. 잠시 이 세상으로 소풍왔다 돌아간다던 시인의 말이, 아타가 좋아한다는 산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별별인터뷰 #레이!루이!

레이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게 된 것은 어쩌면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만난 모임에는 누구나 한번씩 꼭 하게 되는, 구성원들에게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날은 레이의 차례가 아니었지만 사정이 생긴 멤버 대신 레이가 예정된 순서보다 빨리 이야기를 하게 된 날이었다.

생각해 온 이야기가 있는 듯 메모해 온 내용을 천천히 눈으로 읽어내려간 다음, 차분히 자신을 소개하는 레이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10년지기 친구와의 사랑, 생각보다 조금 먼저 찾아온 아이, 가족의 반대, 그리고 출산 전에 찾아온 이별까지.

미혼모에서 5살 아이의 엄마로 살게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정갈한 말투와 단단한 눈빛으로 해나가던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모임에 처음 나왔던 날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어색한 자리에서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애꿎은 메모만 끄적거리던 나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괜찮아요’ 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준, 비슷한 또래의 레이를 만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잔뜩 위축되었던 나는 그 다음 주부터 모임에 나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살뜰한 손길로 처음 온 사람을 챙기는 레이 덕분에 초반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그렇게 매주 수요일 저녁에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하는 사이가 되면서 이내 거리감을 좁혀갔다. 그야말로 ‘괜찮아’지고 있었다.

레이의 삶에 대해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인터뷰를 결심했다. 그리고 며칠 후, 조심스럽게 건넨 간곡한 요청에 레이가 응답해 주었다.

#별별인터뷰 #레이!루이!

좋다. 보기만 해도.

별) 먼저, 두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레이, 아이는 루이라고 불러주세요. 레이와 루이는 저희 모자의 영어이름인데요, 뭔가 파이팅이 필요할 때 둘이 같이 주먹을 쥐고 팔을 크로스하며 “레이!” “루이!” 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힘이 생겨요.

루이가 자기 이름을 알기 시작한 나이부터는 부모님께서 기사나 인터뷰 등의 자료에 아이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반대하셔요. 나중에 성인이 되어 루이가 알게 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조심스럽다고 하시더라구요. 사실 저는 괜찮은데… 아무래도 루이 출산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거쳐오면서 어른들 말씀에 더 귀기울이게 되네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웃음)

별)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볼까 합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40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39세 워킹맘 레이라고 합니다.

별) 오늘은 비오는 일요일이었어요. 저는 쉬는 날이면 밀린 빨래와 청소, 그리고 요리.. 이런 것들을 하거든요. 근데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와서 그런지 부지런히 움직이기보다는, 빗소리 들으면서 원고 정리도 하고 괜히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레이의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일과를 이야기해주신다면?

워킹맘이라서 주말마다 아이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주기 위해서 나들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하는데,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는 예보에 교회에서 하는 추수감사축제에 참석하고 일찍 귀가해서 홈놀이에 홀릭했답니다. 뒹굴뒹굴 놀이, 댄스 파티, 블록 놀이, 책 놀이 등… 그리고 빗소리를 들으며 맛난 립을 먹었네요. 오가는 길에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멋진 풍경도 구경하고요.

별) 그랬군요. 레이의 가족도 궁금해요. 가족이 어떻게 되세요? 간단히 소개도 곁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와 5살 루이,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 집에서 부르는 곰 네 마리 노래가 있어요. 할아버지 곰은 뚱뚱해, 엄마랑 할머니 곰은 날씬해, 아기 곰은 너무 귀여워~

별) 아, 그렇게 네 가족이군요. 레이는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일까요? 저의 경우, 아직도 엄마에겐 ‘우리 아기’로 불리우고요. 동생이 보는 저는 음, 엄마보다 무서운 누나? 거든요.

루이가 바라보는 저는 아마도, 슈퍼 히어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준다는 이유죠. 그렇지만 제게 짧은 바지나 치마, 조금 파진 옷은 절대 못 입게 하는 걸 보면 루이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고 싶은 것 같기도 해요. 정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면에 부모님께서 보는 저는 아직도 지켜줘야 하는 존재, 보호해야 하는 존재, 도움이 필요한 존재?!

별) 그런가 봐요. 부모님은 제가 몇 살이 되더라도 여전히 아이같이 느끼시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벌써부터 엄마를 보호하려는 든든한 루이가 있다는 점이 저와는 좀 다르군요. (웃음)

이 자그마한 발이 지금은 세상을 딛고 선 루이의 발이다.

루이를 낳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10년지기 친구였던 루이 아빠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을 때, 레이는 출산을 앞둔 시기였잖아요. 레이가 스스로를, 또 뱃속의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한 힘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레이를 루이 엄마로서의 삶으로 인도하고 그 결심을 용기내어 실천할 수 있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루이를 임신했을 때는 교회를 다닌 지 10년이 되었을 때였고, 뱃속의 아이와 결혼 생활을 잘 지켜내고 싶어서 교회에서 결혼을 했어요. 아이의 태명도 믿음이라고 지었지요. 물론 이후에 아이 아빠와 헤어지게 되었지만 루이가 저에게 온 것도. 제가 루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것도 모두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고, 힘들 때는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의 고난을 주신다’는 성경 말씀을 붙들면서, 루이 엄마로서의 삶을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별) 지금 레이의 어머니께서 루이를 함께 돌봐주시잖아요. 가끔 어머니와 그때 이야기를 하시나요? 처음 레이가 루이를 가졌을 때, 또 루이를 낳은 상황에 대해서 알렸을 때 말이에요. 어머니는 그때를 어떻게 회상하시는지 혹시 이야기나눠보신 적 있으신지 궁금해요.

어머니께서는 제가 40세가 넘어서 결혼하기를 바라셨어요. 여자는 결혼하면 자기계발에 한계가 있으니 사회 생활을 마음껏 하고 아주 늦게 결혼해도 괜찮다고 하셨죠.

루이를 임신하게 되어 결혼을 서둘러야 했을 때, 일단은 임신한 딸에 대한 노여움이 크셨고요. 루이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혼자 루이를 낳았다는 사실과 앞으로 모든 책임을 저 혼자 져야한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는 루이 아빠에 대한 노여움이 크셨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그때 할머니 입장에서 루이를 먼저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아직까지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 하세요. 물론 여전히, 가끔 그때의 노여움을 살짝 드러내실 때도 있어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요.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며 많이 나아지셨다고는 해도, 그때 그 감정을 잊기는 어려우신 듯해요.

별) 말씀을 들어보면, 어머니께서 누구보다 레이를 많이 이해해주시고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 혹시 이전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레이가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무용을 전공했어요. 외동딸로 귀하게 자랐지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해도 부모님이 제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철이 없고 이기적인 생각이었죠. 제가 루이의 밝은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엄마가 얼마나 힘든 역할인지 느끼고 있습니다. 루이를 임신하고 결혼을 준비할 때 사실 서운한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때는 이해가 안 됐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때 어머니의 말씀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난 루이보다 내 딸의 삶이 더 중요해. 하나밖에 없는 딸이 지금까지 노력해 온 모든 것을 버리고 산다는 데 어떤 부모가 박수치고 좋다고 하겠니?!!”

아마 저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루이 엄마가 된 후, 그리고 40세를 바라보며 이제 좀 철이 들려나 봅니다. 이제는 루이 아빠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도 이해해 보려고 해요. “내 아들이 싫다고 하는데 부모가 무슨 힘이 있겠니? 미안하다…”

별) 우리 사회는 결혼과 혈연 관계를 필수조건으로 하는, 엄마-아빠-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기본값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잖아요.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나보신 적이 있으세요? 피가 안 섞여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끼리도, 부모자식간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다양한 사례를 접해보지 않아서.. 직접 본 경우 안에서만 말씀드린다면 입양 가족이 있겠고요, 이 경우는 당연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루이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부모님께 면목도 없고 부담을 드리기도 죄송해 미혼모자 보호시설에서 출산과 산후조리를 했어요. 그곳에서는 미혼모가 입양과 양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저처럼 양육을 선택하는 경우는 사실 매우 드물어요. 대부분 입양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친부모가 얼마나 힘든 마음으로 아이의 입양을 선택하는지, 또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입양이 되는지를 보면서, 입양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답니다.

힘들게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 분들은 저를 많이 부러워했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는 양육 미혼모의 삶이 더 힘들다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그분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니까요. 그 애틋한 마음까지 함께 지켜내고자 루이를 더욱 잘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별) 우리 사회에서 ‘가족’을 이야기할 때 레이가 가장 불편을 느끼는 지점은 어느 부분일까요?

엄마, 아빠, 아이 – 이런 구성원의 가족이 아니면 뭔가 특이한, 뭔가 문제가 있는 가족으로 보는 시각이 저에게는 조금 불편한 부분이에요, 아이에게는 어쩌면 상처가 될 수도 있어서 더 안타까워요. 모자 가정이라 솔직히 엄마의 부담이 배가 되긴 하지만, 또 어찌보면 전혀 불편함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죠. 사회에서 아웃사이더 가족으로 보는 시각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별) 우리 사회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교육과 캠페인 그리고 정책이 병행되어야 하구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함께 모든 가족이 사회 정책 안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과 고민이 조금은 해소될 것 같습니다. 유아교육을 비롯하여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이런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는 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별)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요. 최근, 레이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부모님께서 루이를 데리고 외출해 놀아주시는 동안, 친정에서 아무 생각 없이 TV 보다가 낮잠을 잤던 2시간이요. 루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와 함께 있으면 매순간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별) 저는 그날 – 레이가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던 날이요.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들었지만 그런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어요. 이렇게 단단하고 강한 엄마로서의 레이의 마음 속에는 매일매일 해야할 일과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그리고 루이를 생각하면 절대 아프거나 힘들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서른아홉의 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맞아요. 물론 이제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저는 루이에게 아빠 역할까지 해야하는 만능 엄마로서 할 일도 많고 절대 아프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어요. 출산 전에는 노는 것도 좋아하고 나름 저의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은 다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지요.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제 저에게 사치가 되었어요. 제 삶의 중심이 루이라서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요. 나중에 루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루이가 결혼하면 허무함이 클 수도 있다… 그렇게요.

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슬럼프, 우울한 시기, 무기력한 날들.. 레이에게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나요? 한 사람으로서의 레이는 지금 별일 없으신가요?

엄마가 되기 전에는 때로는 제 감정을 앞세워 화도 내보고 마음껏 우울해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된 이후에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조금 더 성숙한 태도로 살게 된 것 같아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발급받고 취업 준비를 하는데 생각처럼 막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도 계속 생각했죠.

“괜찮아, 좋은 곳을 곧 만나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일을 하면서도 마음 다치는 일을 겪거나 억울한 상황에 놓일 때 제일 먼저 심호흡을 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합니다.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아이는 엄마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살아간다.”

어쩌면 우울해질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삶을 살고 있어서 다행히도 큰 슬럼프 없이 5년을 잘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레이는, 다행히 별일 없이 행복하고 감사하게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 사실 5살 사춘기 루이의 땡깡에 가끔 무너지기는 합니다. (웃음)

너무도 사랑스러운 루이(현재 5살, 사춘기)

별) 2020년, 레이에게, 또 레이의 가족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특별한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 번째, 우리 가족 네 식구 모두 건강하고 사이좋게 하루하루 잘 지냈으면 좋겠다!

두 번째,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무사히 재계약 되었으면 좋겠다!!

세 번째, 괌 가족 여행 지원에 선정되었으면 좋겠다!! (루이의 첫 해외여행이 될지도!)

별) 레이의 세 가지 소원에 저도 기도를 보탤게요. 꼭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말로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으로 사는 것이 별일이 아닌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다양한 모습의 가족 모두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서 겪는 많은 일들로 마음에 상처를 받아도 가족의 품에서 따뜻하게 위로받고 힐링할 수 있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다한 인터뷰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레이.

우리 모두가 별일없이산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아요, 우리.

사랑합니다. 두 사람.

[행사 안내] “확장하는 가족: 안과 밖”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가족커뮤니티사업단 2019 국내학술대회] “확장하는 가족: 안과 밖”

12월 20일(금), 전남대학교 김남주기념홀에서 “확장하는 가족: 안과 밖”이란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됩니다. 가족구성권과 관련한 제도 법제화에 있어서 이론적, 학술적 접근은 필수적일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별별인터뷰 #김선호 #꼬미 #느루 #해방

얼마 전, 공동체주택으로 입주한 선호에게 근황과 함께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꼬미는 선호에게 유일한 가족이자 선호의 힘든 시기를 지킨 고마운 생명체이다. 매력적인 마스크의 꼬미, 그리고 지난 11월, 별일없이산다 부스에 홀연히 나타나 “2천만원이 없어서 원가족이랑 산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고 간 선호는 이제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오키] 꼬미는 적응을 잘하고 있어요? 발치에서 자던 꼬미가 선호 님 곁에 꼭 붙어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사 후 꼬미의 안위를 걱정했어요.

[선호]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라 아무래도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긴 해요. 집근처 수의사분에게 어제 이사왔다고 하니까 한숨을 푹 쉬시더라고요. 며칠 옆에 붙어서 자더니 이제는 침대 옆 스크래쳐에서 자고 있어요. (참고설명: 기분 좋은 표정임)

[오키] 오, 그래도 이사한 지 며칠 안 된 것 치고는 무척 고무적이군요. 총 몇 분이 거주하시는 거예요? 꼭 사람만 말하는 건 아니구요. 함께 사는 생명체..?

[선호] 인간 네 명에 고양이 두 마리입니다. 

[오키] 이사는 무사히 마친 거예요?

[선호] 오늘까지 해서 짐을 다 옮겼어요. 수납공간이 모자라서 선반이나 책장을 더 구입할까 싶어요.

[오키] 어때요? 구성원들과는요?

[선호] 동거인이 제가 입주한 조합의 활동가인데요. 다음 주에 환영회 같은 걸 하려나 봐요. 정기회의도 있다고 하고요.

[오키] 오, 회의? 정기적으로 뭐가 있나보네요. 공동체주택.. 어쨌거나 굉장히 빠르게 결정하고 이사하신 케이스라 아직까지는 뭔가 그 입주 전후의 느낌을 이야기하긴 좀 그렇겠어요. 원가족으로부터의 분리를 실천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선호] 평생동안 집에서 느끼는 이 불안함에 대해서 고민해 왔어요. 공간 분리는 십대때부터 해오던 거지만 짐을 꾸리는게 기분이 좋지는 않죠. 남들은 흔히 안 하는 이동을 해야하는거 같아서. 그래도 제가 2016년에 잠깐 혼자 살때가 있었는데 그때보다는 훨씬 안정적이예요. 그때는 혼자 있어도 외롭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걸 나누고 또 스스로 보듬을 힘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집안일도 그때보다 잘 하기도 하고.

[오키] 부모님은 별 말씀 없으셨어요? 이렇게 갑자기 나가서 살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  

[선호] 여름쯤에 가정폭력 생존자로 기금에 선정되서 독립하게 될 거라고 모부 두 분께 직접 얘기드린 적이 있어요. 아버지는 제가 너무 고통받고 살았다는 걸 아시고 제가 잘못되는 걸 가장 걱정하는 분이라 알았다고 그렇게 하라고 하셨구요. 어머니는 왜 또 나가냐고, 그래 너는 너 편한대로 살라고 계속 투덜거리시고 하라 마라 얘기가 없으셨어요. 사실 어머니는 저한테 의지하는 게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긴 해요. 집에서 말 통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오키] 마음이 편하진 않았겠네요.

[선호] 사실 이번에 이사 나오면서 얘기를 제대로 안 했어요. 이사 일정이 급하기도 했고, 말한다고해도 어떻게 반응을 하실지 아니까 또 그 상황을 대면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집이 비어있는 시간에 이동했어요. 솔직히 아직 분리한 느낌은 안 들어요. 모부가 지어준 이름이 아직 실명으로 쓰이고 있어서.

[오키] 공동체주거라고 해도 본가에 살던 때에 비해서 이제 주거비용이 더 지출되겠어요.

[선호] 현재까지는 청년수당으로 생활비를 그럭저럭 충당했는데 그게 2월이면 종료되니까요. 그전에 일을 구해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네요. 동시에 청소년 상담사 자격 준비 중인데 정말 죽겠네요.

[오키] 그와중에 공부라니. 근데 저는 힘들어도 꼭 완주하시기를 추천드려요. 참, 동네는 어때요? 적이 없는 곳이라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그랬는데. 분위기는요?

[선호] 제가 길치라 길을 많이 헤매다보니 벌써 집 주변을 거의 돌아봤는데, 여긴 초등학교 근처라 좀더 사람사는 동네 같아요. 본가는 청년은 많아도 온통 술집 뿐이거든요. 여기가 본가인 서울 고척돔 근처예요.

[오키] 개명계획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정말 하실 예정?

[선호] 개명은 10대 때부터 생각하던 거였어요. 누가 부르는 제 이름을 들을 때마다 저는 그게 정말 제 이름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개명은 한글로 할 거라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데 그냥 좀 고민하고 있어요.

[오키] 아. 뜻을 고민하시는 구나. 김선호, 제 생각엔 선우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건 정말 그냥 제 생각. 

[선호] 아, 그냥 어감으로 지었어요. 여러 후보군이 있었는데 선호로. 이제 언제 개명할지를 결정하면 될 거 같아요. 받침이 많은 이름으로 살았어서.

[오키] 선호 좋아요. 그 이름이 이제 익숙해서 저는.

[선호] 저도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오키] 이름이 바뀐다는 건 좀 더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는 분도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어서 개명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준다는 것. 뭔가 큰 의미가 있어보여요, 삶에. 인생에. 이제 선호라는 이름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선호] 귀엽고 재밌는 사람으로 살고싶다고 생각해요. 단어의 느낌이 생동감이 있잖아요. 가끔 너무 힘들땐 무생물이 된 느낌이 들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싶고 움직이고 싶지도 않고. 오늘이 그랬는데, 움직이니까 나아지더라고요. 움직이면서 사람들도 모으고, 너무 들어주지만 말고 내 이야기도 좀 하고,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요. 일상을 되찾고 싶어요. 너무 오래 생각하고 풍경을 쳐다만 보지 않고 참여하고 바꾸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오키] 우리, 느루라는 친구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두 분은 어떻게 처음 알게 된 거예요?

[선호] 예전부터 알던 친구는 아니고, 페이스북에 탈가정 이야기를 공개로 올리던 분이었는데 제가 궁금해서 친추를 했어요.

[선호] 느루랑 주고 받았던 페북 메시지네요. 2017년 11월. 저렇게 저도 탈가정 했다 어쨌다 얘기를 나누고 보니 행사에서 자꾸 마주치더라고요. 그러다 차별금지법연대에서 12월에 행진을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만난 거죠. 그날 밥 먹고 카페 가서 이야기하면서 같이 활동하자고 했어요.

[오키] 아, 두 분 같이 활동하신 거군요. 어느 단체에서 활동하셨어요?

[선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트랜스인권팀 공동팀장이었어요. 둘이.

[오키] 아하.

[선호] 팀이 TF체제로 시작하는 단계라 팀장을 정해야 했는데, 저는 직장인이기도 했고 부담이 되서 느루한테 같이 하자고 했죠. 이미 10대 때부터 앰네스티에서 활동해왔고 3개 국어가 되던 친구였어요. 주도적이고 발이 넓어 활동단체가 많았어요. 작년엔 매달 만났고요.

[오키] 이야기가 힘들 땐 언제든 멈추셔도 돼요.

[선호] 느루는 후천적인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다녔어요. 지난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때 혐오세력의 폭력상황들로 너무 안 좋아서, 조직위도 아니었는데 안전 감시를 하느라 느루를 챙겨주지 못했는데 그 난리통에 휠체어로 행진을 완주했더라고요. 비장애인도 힘든 상황이었던 터라 저는 느루가 당연히 어디서 쉴 줄로만 알았는데…  행진 완주하고 지쳐서 집에 가는데 느루가 하는 전화를 못 받았어요. 두고두고 후회가 돼요. 느루 얘기는 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오키] 친구의 의미를 다시 알게 해 준 친구였겠어요.

[선호] 크리스도 느루도 둘다 너무 착한 사람들이라. 미화하는 게 아니라 참 다정한 사람들이어서요, 오래 가네요. 올해 인천퀴퍼 조직위원회의 부탁을 받아서 추모사를 읽었는데요, 이제와서 추모사의 무게를 실감하고 못 이겨하고 있어요.

[오키] 추모 부스 운영도 하셨었죠?

[선호] 네. 인천퀴퍼에서 부스 열기 전 주에 용기 내서 느루와 어머니를 뵈었어요. 올해 어딘가 참여하거나 담당해야 할때마다 느루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친구 볼때마다 신경쓰였던 게 저와 주어진 조건이 너무 비슷했거든요. 청소년기에 탈가정했고, 논바이너리에, 해방촌에서 십대를 보내고 있다는 게 특히 더 그렇게 느끼게 했어요. 느루가 해방촌 빈집(주거공동체)에 산다는 건 느루가 떠나기 몇 달 전에 안 거였어요. 장례가 끝나고 곧 추석이었는데 그 동네 다시 가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혼자 해방촌 가서 동네 구경을 했어요. 제가 자살 시도를 세번 하고, 친구가 두 명 떠나고, 활동도 여러 사정으로 그만두고나니 괴롭더라도 저에게 집중해야만 되겠더라고요.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오키] 한창 선호님이 카톡 탈퇴와 재가입을 반복하던 즈음에는 정말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선호 님의 자립이 지속적인 삶으로 안착하기를 기대하고 바라요. 꼬미도 그 집에서 평안하면 좋겠구요.

앞으로 선호님이 이루게 될 가족에 대해, 로망을 듬뿍듬뿍 잔뜩잔뜩 담아서 그려 보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선호] 가족단위는 언제나 꼬미와 저 둘일것 같고 여유 공간에 대한 생각을 늘 하는데, 십대때부터도 늘 방 하나 정도 더 있어서 누구든 와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늘 떠나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충족되지 못했으니까.) 

이제는 그 여유 공간에 비인간과 인간을 함께 생각하고 있고, 유기동물 몇 마리 더 입양하고 싶어요. 특히 장애를 가지거나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입양이 잘 안 되니까 그런 아이들. 현재 공간에 입주하면서 여기 조합 활동가에게 저도 이런 주거 공동체 꾸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했어요. 제가 심리검사 척도에도 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나오더라고요. 혼자로도 살아보고, 내 의사와 상관 없이 외롭게 지낸 기간도 기니까, 이제는 퀴어이거나 페미니스트이거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과 느슨하게 공동체를 맺고 싶어요. 엄청 북적한 관계망이 아니라, 어울릴 중간 지대가 있으면서도 퍼스널이 존중되는 대안적 한국문화를 지향해요. 최종적으로는 퀴어랑 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성별은 상관없이 배려심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오키] 그렇군요.

[선호] 저는 장기기증을 늘 생각하는데, 이게 원가족의 최종 승인이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아플 때나 의식이 없을 때 대신할 친구들이 대리인이 되어주면 좋겠다 생각해요. 그러니까 단순히 친밀한 게 아니라 저의 생애를 알고 저와 지속적으로 관계맺는 친구들에게 제도상으로 지원을 해주거나 비상시 결정 권한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중장년기에는 계절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천천히 늙어가고 싶고요.

[오키] 그렇게 될 거예요.

10월, 해방촌,김선호 ⓒ오키

사실 김선호와는 인터뷰를 위해 이미 한 차례 만났었다. 그때 우리는 해방촌 인근의 한 비건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해방촌은 김선호가 처음으로 탈가정해 한동안 머물렀던 곳일뿐만 아니라 느루가 살던 빈집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꼬미와 꼭 닮은 고양이 인형을 보여준 김선호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인형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정작 그날 우리는 느루의 이야기도, 가족의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12월 3일 행사 이후에 다시 나눈 이야기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은, 그제서야 우리가 사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좀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나절에 걸쳐 진행됐던 해방촌에서의 첫 인터뷰는 사진으로만 남았지만, 그것도 괜찮다. 김선호는 그날 내가 찍은 사진을 꽤 마음에 들어했다. 나도 선호라는 이름이 꽤 익숙해졌다. 우리는 꽤 괜찮다. 지금. 

[행사 안내] 그럼에도, 별일없이산다

그러니까 11월 28일, “가족다양성 시대, 현행 법령 개선과제” 토론회가 열렸는데 말입니다.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주관하는 가족다양성 정책관련 포럼에 참석 요청을 받았는데, 여성가족부가 토론자에게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을 빼라”는 요구를 했고, 연구소는 이를 거절해 포럼 참석을 거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미 토론문도 제출하고, 행사포스터에 토론자로도 이름을 올렸는데 참석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연구소의 입장은, 페이스북에 소상히 올라와 있습니다. (링크)

이미 대부분의 시민들은 국가가 강요하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대안들을 찾아나선지 오래이다. 동성파트너쉽을 국가가 부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한부모가족과 다문화가족 등 이미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가족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과 가족이 존중받고 평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감히 선언한다. 다양성은 국가에서 허용하는 한에서 질서를 넓히는 것이 아니다. 가족 다양성은 가족에 대한 차별과 규제에 대항하여 자유롭고 실질적인 가족관계들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을 통해서 추구되어야 한다. 

<“가족다양성 시대, 현행 법령 개선과제” 토론회에 가족구성권연구소가 불참하는 이유에 대한 입장문> 중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편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만들기>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사례들을 모아 책을 발간하는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초대합니다.

결혼과 출산, 그 견고한 가족의 조건에 따르지 않고 살더라도 딱히 별일 없다는 사람들, 그렇지만 정말 좀 별일 없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네 ‘별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야기에 함께 하실 분을 기다립니다.

사전신청 (클릭) *신청마감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넘쳐나는, 오롯이 오신 분들이 서로의 삶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 하루 단순히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고 삶 전체가 유쾌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별일 없이 산다>는 말을 하기가 녹록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우리 각자의 별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12월 3일, 사전 신청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자리가 마련됩니다.

곧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탈(脫)시설보다 어려운 것들

✅ 참고기사원문 및 전문 보러가기 > 탈(脫)시설 운동, 모든 ‘시설화된 삶’의 자립을 꿈꾸다

장애인의 자립이 대한 사회의 관심도는 매우 낮다. 최근 들어 비장애인의 주거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부 언론에서 일회성으로 취재를 나선 정도이다. 자립에 있어서 주거의 문제는 장애의 유무를 따지지 않더라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립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 이야기되는 경제적, 제도적인 문제 외에도 장애인의 자립 미션을 임파서블하게 만드는 것이 참 많다. (*위 참고기사에서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보다 폭넓은 대상을 함께 이야기한다.)

장애인 IL(자립생활, Independent Living) 운동은 대체로 시설을 나와 독립된 삶을 살게 하는 ‘탈시설’ 운동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운동은 주거의 독립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시설 밖으로 나와 자립 생활을 시작하더라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온전히 편입되기까지 또 문턱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

‘일다’의 기사를 읽고 나는, 작년 겨울 어느날 바쁜 틈을 비집고 만난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의 서기현 소장에게 실제 사례를 전해 듣고 할 말 없는 입술이 되어 우두커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날을 떠올렸다. 생활보조인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서 소장이 2019년 3월 드디어 자립생활에 돌입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올해 자립을 했어요. 직접 부동산을 돌아다니면서 집을 구하고 대출을 받고 이사하고 가구와 집기를 사넣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직접 하면서 정말 고생이 많았죠. 집만 한 30곳 넘게 봤을 거예요. 전동휠체어가 들고 나야 하니까 건물 입구에 계단이 있거나 집안에 문턱이 있으면 일단 후보에서 탈락이죠. 집 있느냐고 물어보러 부동산에 들어서는데 제가 입도 떼기 전에 업자가 나가라고 손을 휘휘 저은 적도 있어요. 어찌 저찌 보게 된 집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건물주가 입주를 거부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서기현 소장의 말

그렇다. 장애인이 자립을 시도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자체부터 걸림돌이다. (이게 이해시키고 이해받아야 할 문제라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지만.) 부동산 입구에서부터 거부당하고 손사레 치는 사람 앞에서 돌아서는 서 소장의 모습을 상상하니 한숨이 쏟아졌다. 물론 이 정도에서 놀라기는 일렀다.

“부동산업자나 건물주 이전에, 탈시설자립생활을 누가 제일 반대하는데요. 가족 설득이 제일 힘들어요.”

서 소장과 함께 일하는 최정희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장애인이 자립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의 걸림돌은 의외로 가족이라는 것이다. 자립생활주택 지원제도나 탈시설지원사업 등에 대해 안내하고 체험홈 시도를 권했을 때 막상 당사자의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가족의 반대가 더 만만하지 않다고 한다.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으세요. 시설에 있으면 사고가 나도 책임을 지는데, 탈시설이니 자립이니 하면서 괜히 바람넣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책임질 수 있느냐고. 그리고 일단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오면 가족의 부양부담이 커진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고 정확하게 인식시키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폭력적인 반응도 많고요.”

최정희 활동가

최 활동가는 이것이 무지함에서 오는 반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좋은 사례를 충분히 보여드리고 지원체계에 대해서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이날 나눈 짧은 대화만으로도 이것은 시간을 갖고 후속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안이 무거웠다. <별일없이산다> 프로젝트는 가족구성권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나누기로 하였지만 이는 역시 주거권을 떼어놓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이 자립의지를 가지고 지역사회로 자유롭게 들고 날 수 있으려면, 장애의 경중에 관계 없이 자립생활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려면, 그리고 그것이 제도적 지원의 영역 안에 있으려면, 혼인과 출산을 전제로 하는 현재의 가족에 대한 정의가 더 넓어져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자기자신의 인권을 수호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가족 단위의 주거 형태만을 정상으로 규범하는 현재의 제도는 많은 부분에서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사회적 가족에게도 평등한 기회를

✅ 참고기사원문 및 전문 보러가기 > 혼인·혈연 아닌 ‘사회적 가족’의 파트너십 인정하라

서울시는 ‘정상가족’ 궤도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2016년에 제정한 ‘서울특별시 사회적 가족도시 구현을 위한 1인 가구 지원 기본 조례’에서 이미 ‘사회적 가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여기서 ‘사회적 가족’이란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 취침 등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뜻한다.

기사 원문 중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 취침 등의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사회적 가족이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원가족이라는 것도 생판 남남이었던 남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뒤 얻는 이름이다. 현재의 제도 안에서 가족의 최소 단위로서 지위를 부여받는 유일한 방법이다. 관계 속에서 고립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혼인, 혈연을 넘어 다양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가족이 등장하고 있는 때에 너무나도 구시대적인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의 주거정책 또한 ‘정상가족’의 구성·유지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최근 행복주택, 청년주택 등 주거지원정책이 확대되었지만 그 대상은 이성애 부부, 청년, 대학생 등 지극히 일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 안전망은 대상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편견을 공고히 하는 제도의 차별적 요소를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 나중은 없다.

#별별인터뷰 #중년여성 #엄마 #또_다시_만들어_갈_나의가족

2019.10.18 @재미난카페

노오란 꽃과 함께한 인터뷰:)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폴리

저는 이 동네에서 나서 자라서, 이제 막 40대를 맞이한, 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폴리입니다. 저는 작곡하고 음악감독 일을 하고 있어요.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겨서 기웃거리고 있다가, 동네에 마음을 함께할 수 있는 분들이 계셔서 여성주의 문을 하고 있고요. 갑자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하하)

써니

저는 써니입니다. 지방 살다가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고, 결혼하면서 동네로 왔어요. 원래는 다니던 회사가 종로구 가회동이었는데 너무 비싸서 대학로 왔다가 비싸서 성신여대 알아보다가 밀려밀려 미아동쯤에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전세를 얻어서 들어갔어요. 거기서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지금은 중학생 아이 한 명 초등학생 아이 한 명 있고요. 지역에서 여성들하고 <여성주의 문>을 하고 있습니다.

잠만보

저는 30대 중후반이 된 잠만보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9년 동안 아르바이트만 했었어요. 그래서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아르바이트하고 어디 소속되는데 없이 히키코모리처럼 아르바이트 좀 하면서 집에 은둔생활 하다가, 20대 후반에 아기 가지면서 남편 집으로 이사 왔어요. 남편 만나고, 아기 낳고 시댁에 들어가면서 시댁에서 5년 정도 살고요, 그러다 분가하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여기 강북구로 이사 오게 되었어요. 그렇게 벌써 30대 중반이 되었더라고요. 

마을에 와서 서울시 뉴딜 일자리 지원해서 처음으로 취업을 하게 됐어요. 청년이라고(하하) 그동안 정체성이 없었었는데 ‘아 청년이었구나’ 이런 느낌을 새로 받으면서 교육도 받고, 무엇보다 마을에서 마을공동체 생활하면서 네트워크라고 할까요, 사람들을 알게 되고 소속하게 되는 경험을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성주의 문>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안내문

<여성주의 문>은 어떤 곳인가요?

써니

지역에서는 대략 2014년 때부터 여성주의 관련된, 페미니즘 관련된 책 읽기부터 시작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지역에 여성 활동가들이 많이 있는데, 여성 활동가들 상담해주고, 만남을 지원해주는 여성 건강사업이 있었어요. 그 계기로 아이도 키우고 지역 활동도 지치고 하는데 만나서 밥먹으면서 서로 알아가고 지역활동 하는 것을 넘어서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2016년도에 서울시에서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젠더 거버넌스’라는 협치 사업을 시작했어요. 

여성 활동가들, 책 모임 활동가들 중 몇몇이 젠더 거버넌스로 지역 정책을 성 평등하게 하는 모니터링을 했었는데 6-7월 짧게 여름에 하는 거였어요. 한 번 하고 그냥 헤어지기 아쉽잖아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만나서 재미있는 것들을 해보자고 해서 페미니즘 관련한 영화를 봤었어요. 그러다가 2017년에 서울시 협치 사업으로 젠더 거버넌스를 25개 자치구에서 시행되면서 지원을 해준다고 참여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모임 이름도 없었어요.(하하) 그냥 한 달에 한 번 영화를 보는 거지 이름을 붙인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참여한다고 하니까 이름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단순하게 ‘강북의 여성주의 모임이다’ 하고 냈었어요. 그때 처음 지원받아서 페미니즘 강좌를 열게 되고, 그 때 지역에서도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알게 됐고, 그래서 모니터링도 하게 되고, 그쯤에 동북권에 단체 네트워크도 하고 활동이 굉장히 풍부해졌어요. 토론회도 하고 캠페인도 하고 여성 영화제도 열고, 큰 단체도 아닌데 활발해져서 우리도 이름을 정하자 해서, 연말에 모여가지고 같이 정한 게 ‘문’이라는 이름이에요. 

한문으로 문을 열다의 문 문, 세상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다 물을 문, 달 moon. 현재는 확장된 것들이 계속 이어져서 현재는 책 읽기 모임, 한 달에 한 번 정기 밥상 모임, 페미니즘 강좌, 토론회, 정책분석, 동북권 단체들과 캠페인 하고 있어요.

제가 문을 꼭 인터뷰하고 싶었던 이유는, ‘가족’이라는 단어에 중년 여성이 빠질 수 있을까? 중년 여성의 이야기는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써니

오늘 위기의 가정들이 안 왔어요, 와야 하는데. (하하)

가볍게 OX퀴즈를 해볼게요. 그 전에, 당신의 가족은 몇 명인가요?

써니

4명

잠만보

5명

폴리

4명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억해주시고, OX퀴즈 시작합니다!

질문 1번. 10억과 가족을 맞바꿀 수 있는가? (단, 10억을 받으면 가족들의 기억에선 내가 사라지는데, 내 기억엔 가족들이 남아있어요.)

잠만보

[X] 저는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이 두려워요. 사회에서 내가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나는 잊혀있고 없는 존재 같다고 느껴지는 게 싫어서 아이를 가지고 싶었고,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만든 가족이라서 제 존재가 없어지고 10억을 받는다 해도 별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에요.

써니

[X] 저는 이렇게 들었어요.(세모) 솔직하게. 현재의 기분 상태라면 가족과 남편이 분리되는 질문이라면 O. 왜냐하면 기억을 못 하잖아요, 기억을 못 하고 이 사람이 나를 기억 못 하고. 내가 죄책감이 있을 거라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있으니까, 아이들은 돈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물론 너무 괴로워요 요즘. 아이가 중학생이라. 

폴리

[X] 저도 원래는 되게 ‘너는 너, 나는 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성향인데, 자식을 낳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을 자식을 낳고 나서 사람과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겠구나, 이건 뭘 줘도 바꿀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요즘 예쁘거든요. 9살 7살인데, 너무 예쁘고, 소중한 존재라서 ‘내가 이 아이들을 낳으려고 세상에 나왔나?’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한 짓 중에 쓰레기만 만들고 가는 세상에 내가 너희들을 낳으려고 세상에 나왔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남자친구 집에서 주 4일을 산다. 함께 사는 남자친구, 가족인가요?

잠만보

[세모] 이유는 4일이라는 것이 명확한 것 같아요. 이 사람을 정말로 가족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해보면서 같이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폴리

[O]저는  가족이 절대적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남자친구도 가족이 될 수 있고 헤어지면 가족이 아니고. 그렇게 그 순간은 좋으니까 같이 사는 거고 마음을 쓰는 거고 아프면 걱정되고, 시간과 돈과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니까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써니

[O] 주 4일을 왜 사는지 모르겠지만(하하) 주 3일은 어디 가서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주 4일을 산다고 했을 때 남자친구 집이면 공간적 셰어가 아니라 그 정도 살면 성관계 이런 것도 하는 관계일 것 같고, 그런 친밀함 속에 있을 것 같아서 가족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렇게  OX퀴즈가 끝이 났습니다!(짝짝짝) 가족이 조금 막연했다면, 이 OX퀴즈로 어디까지 내 가족이고, 어디까지 내 가족이 아닌지 구분이 조금 되셨을 것 같아요. 

원가족과 분리되어 현재의 가족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폴리

저는 일단 대세를 따르는 편이었어서 결혼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내가 되게 좋아하던 남자와 때에 맞춰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고, 아기도 생기고 해서 같이 살게되었어요.

써니

저는 이 사람을 만나고, 원 가족에 대한 부담이 엄청 컸었어요. 아빠가 약간 한량이고 , 엄마는 너무 고생하고. 어릴 때부터 아빠에 대한 미움,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이 있었죠. 그래서 서울로 대학을 오고 어린 나이에 뭔가 가족을 내가 부양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이 어린 마음에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까지는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이 사람, 현재의 남편을 만나서 좋다고 생각한 기억이 선명해서 잊을 수 없는 게, 이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하고 이러면 원 가족에 대한 부담을 잊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부담을 도망치듯이 결혼했어요. 어릴 때부터 나와 살아서 결혼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였던 것은 나의 공간을 갖는 거였어요. 그 전까지는 하숙을 하거나 친척 집에 사는 식으로 지냈거든요. 나의 공간이나 집에 대한 것도 컸던 것 같아요. 저는 이 새로운 가족을 선택한 이유는 원 가족에서 오는 부담, 그게 제일 컸어요. 물론 그때는 사랑도 했겠지만,(하하)

잠만보

써니는 가족을 책임져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면, 저는 제가 부모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그런 부담이 있었어요. 청소년 때부터 경제적인 imf 겪고, 경제적인 문제로 와해됐던 것 같아요. 부모가 ‘내가 자식 때문에 산다, 네가 있어서 산다’ 이런 게 아니라 ‘아휴, 내가 저것들 때문에 죽지 못해 산다’ 이런 상황이였기 때문에 저는 제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웠어요. 가족이 있어서 힘이 나는 게 아니라 가족이 있어서 힘이 더 빠지는 상황이랄까요, 그래서 원 가족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내가 없어져주는 거면 참 좋을 텐데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고. 주변에 가까운 친밀한 사람도 없으니까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외롭고, 혼자는 못 살 것 같다는 두려움도 되게 컸었어요. 그래서 혼자보다는 누군가랑 같이 살게 되면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그렇고 훨씬 안정적일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그걸 원하는 사람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자발적으로 구성한다면, 지금 있는 공동체보다는 조금 더 나은 공동체가 될 것 같아서 떨어져 나왔어요.

공동체가 가족이 될 수 있나요?

잠만보

모든 공동체가 가족이 될 필요는 없지만, 가족은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폴리

가족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는 공동체도 큰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공동체는 어떤 작은 단위의 가족보다 똘똘 뭉쳐서 하나의 뜻을 온 공동체가 실천하는 공동체를 있고 봤거든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는 가족이겠구나, 어떤 하나의 신앙이든 생활방식이든 공동체로 살아간다면 가족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원 가족과 현재의 가족. 가장 큰 차이점은?

폴리

내 공간이 생긴 것? 우리 엄마의 기획에 따라 만들어진 곳에 살다가 지금은 청소 안 하고 싶을 때 안 하고 있어도 되는 것이 큰 차이죠. 원래 제가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내 공간이라고 하니까 페인트를 희한한 색으로 해보고 싶은 거예요. 하고 나니까 너무 좋고 뿌듯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되게 좋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내 공간을 내 계획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원 가족과 떨어져 나오면서 제일 좋았던 점이에요. 원 가족일 땐 결정을 어른들이 내리고 했었을 텐데 지금은 저의 계획대로 내가 결정을 내리니까요.

써니

구성원이 전혀 다르다는 거랑, 일단 공간이 가지고 싶었고. 그냥 원 가족 때는 상당히 엄마에게 전적이지만 기생해서 살았다면, 이 현재의 가족은 오롯이 어쨌든 나와 나의 배우자나 이 둘의 노동으로 먹든, 입든, 뭐든 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가족의 큰 힘든 부분들이고, 경제적인 것이든 일상의 노동이든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되는 부분들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새로운 가족을 꾸리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가족을 새로 꾸릴 것인가요?

써니

현재를 다 알고? 이 기억을 갖고? 안 해요.(하하) 폴리랑은 다를 것 같은데, 저는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타고난 모성애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내가 낳았으니까 책임감으로 기르고 있고, 물론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복장 터질 때도있거든요. 좋은 건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성장했어요. 하나의 생명을 키운다는 게 나를 성찰하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성장시켰다는 의미가 분명히 있는데, 이 과정은 너무 고통스러웠거든요. 이걸 다 안다면 안 할 것 같아요. 아이만 있다면 고민을 하겠지만 남편도 있잖아요? 남편의 가족들도 있고. 생각해보니까 이만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을 생각해보면 선택을 안할 것 같아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원 가족하고 살지만 지금과 같은 가족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독립해서 살든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아빠와의 관계는 안 좋았었기 때문에. 물론 나이가 들고 그러려니 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같이 살거나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잠만보

제일 큰 차이점은 주도성, 주도권, 권한이 일단 너무 많아졌고, 너무 많아진 만큼 책임도 많이 커졌죠. 그게 제일 큰 차이점이에요. 그리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는 어쨌든 가족이 새로운 가족? 내가 가족을 꾸리고 싶어서 선택한 거니까요. 저는 여전히 가족을 굉장히 필요로 할 것 같아요. 다만, 다른 가족을 꾸려도 괜찮다는 생각은 들어요. 다양한 모델이 조금 더 많았다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할 것 같아요 기꺼이. 혈연이 가족의 중심이 되는 것과 어린아이와 가족이 된다는 건 정말 굉장히 정말 다른 경험이거든요, 상호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고 관계가 훨씬 더 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랑으로 충분히 보호하고 긴밀해지는 경험이 꼭 자기 자식 뿐만 아니라, 어떤 어린아이와 그렇게 관계를 맺어도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입양을 해서 마음이 맞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이 가족을 꾸려서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폴리

저는 과거에 결혼의 갈림길에 큰 고민이 있었어요. ‘파리로 취직을 하느냐, 이 남자와 결혼해서 사느냐’ 생각해보면 지금도 아까운 게 있어요. 그 당시엔 이 남자와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되게 좋은 남편인데, 결혼하면 수반되어 오는 것들을 몰랐어요. 시월드도 몰랐고, 출산과 육아가 이런 것이라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거예요. 알고 닥치는 거랑 모르고 닥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그냥 남편과 결혼 안 하고 파리로 가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까 잠만보가 말했던 것처럼 아이를 낳은 경험이 너무 특별한 거예요. 너무 특별하고, 걔랑 나눈 사랑도 너무 특별해서, 남편도 그때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결정요인은 아니고, 결혼을 안했다면 아이들을 못 봤겠구나, 다시 돌아가도 아이들을 선택할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하고 동거를 하는 식의 방법들도 있으니까 지금 사는 가족 구성원은 다시 만나고 싶을 것 같아요.

공유하고, 또 공유되어지는 책과 장난감

가족이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은 무엇인가요? 

써니

일단 혈연으로 연결된 원 가족의 경우에는 혈연이 있으니까 떨어져 살아도 가족으로 인식이 되는데, 따로 만나지는 가족은, 혈연이 아닌 경우에는 공간,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 제일 큰 것 같아요. 혈연이 아닌 다른 사람과 가족이라는 것까지 느낄 정도는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 정도 되면서 관계에 따라서 더하면 가족이 될 것 같아요.

잠만보

저는 공간보다는, 뭐랄까요. 소중한 어떤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엄청 즐거운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아까 ‘10억 주고 버릴 수 있는 건가요’라고 말했던 것처럼 잊고 싶지 않은 굉장히 소중하고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면 가족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대상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공유하잖아요. 만약에 내 다른 형제가 ‘나는 다 컸어, 나는 기억나지도 않고 중요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아’ 할 정도로 이렇게 멀어져있다면, 버렸다면, 공유가 안됐다면 썩 가족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남편 같은 경우도 아이를 통해 소중한 추억이나 기억을 공유할 수 있거든요, 그럴 때는 남편하고 가족이 되고, 아이도 나와의 어떠한 것들을 통해서 공유가 되고 하면 가족 구성원인데, 언제든지 공유하지 않겠다고 하면은 그때는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폴리

저는 물리적인 건데, 밥을 같이 먹는 행위가 생명을 나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밥을 먹고 밥을 같이 먹거나 챙겨주는 과정들이 가족의 기준이고, 잠만보가 말한 것처럼 기억을 같이 공유하는 것. 그 기억을 통해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 또 그것이 공유가 된다면 가족인 것 같아요. 그 기억이 지난 일이고 별로 소중하지 않다고 하면 가족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물리적인 공간과 정신적인 것이 함께 해야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두 분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느꼈어요.

내가 또 다시 만들어갈 나의 가족은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잠만보

저는 문에 먼저 계셨던 언니들께서 공동체 주택 지어서 같이 살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나중이야 애들은 자라서 자기의 가족을 만들어 갈 거고, ‘나는 내 가족을 만들겠습니다’ 하고 분리가 되겠죠? 그때가 올 것 같고, 남편과의 관계도 공동체 활동을 통해서 못 살았던 자기의 삶의 방향을 가고 싶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땐 서로 또 분리될 수 있을 것 같고요. 나도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구성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때는 활동이라든지, 삶을 살면서 가치관이 잘 맞으면서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가족을 삼아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폴리

저는 얼마 전 친구 얘기를 듣다가 친구 어머니가 아프셔서 같이 살게 된 거예요. 다시 돌아간 거죠, 어떻게 보면. 부모님 아프신 것, 그 생각을 안 할 수 없더라고요. 물론 의무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난 안 할 거야’ 부정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한 공간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내가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난 또 책임을 져야 할수도 있겠구나. ‘나중에 아이들 떠나고 우리 둘이-’ 이런 이상적인 생각도 들면서도 내가 놓지 못하는 연결되어 있는 가족을 책임져야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무겁게 하고 있어요.

써니

저도 이런 부분들이 있긴 한데, 아프시고 책임지는 상황이 짧았으면, 스쳐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그것보다 훨씬 부담스러운 건 남편이 아플까 하는 거예요.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독립할 때쯤 우리도 각자 독립된 선택을 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생각했을 때, 훨씬 더 나이가 들고 여성 노인이 됐을 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성일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여성과 같이 살고, 같이 늙어가고 싶고. 남성하고는 살 것 같진 않아요. 이미 늙어서 그런 생각이 안 들고, 그런 남성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요. 그렇게 서로를 돌보면서 따뜻하게 늙어갈 수 있는 여성을 못 찾는다면 혼자 늙는 게 차라리(하하)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저도 지금은 원 가족이랑 살고 있는데 앞으로 나의 가족이 어떻게 될까? 인터뷰하면서 저도 앞으로의 가족이 기대되고, 인터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